#145화
“들었어? 20반에서 비각성자가 5연승을 했다던데?”
“엥? 비각성자가 어떻게 5연승을 해? 내공 차이부터 넘사벽이잖아?”
“상대의 검기를 전부 박살 내버렸대!”
“헉, 그게 가능한 일이야?”
안능희가 마크햄을 상대로 승리하자 비각성자를 은연중에 무시하던 무공 아카데미 학생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물론 20반이 무공 경지 면에서 가장 낮다고 알려져 있기는 했다.
비각성자들로 이루어진 21반 이후의 반들을 논외로 친다면 말이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한들, 20반의 학생들 역시 헌터였다.
헌터를 상대로 전승무패를 기록하다니?
20반에서 그녀처럼 5연승을 한 사람은 모두 세 명뿐.
이 말은 곧 그녀가 20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란 의미였다.
당연히 모든 학생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비각성자를 무시하더니, 꼴좋다!”
“무공은 헌터만의 특권이 아니라는 게 증명이 되었어!”
“맞아, 우리도 할 수 있어! 총장님만 특별한 게 아니었던 거야!”
안능희의 승리로 비각성자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기세로 올라갔다.
모두의 앞에서 증명한 것이다.
비각성자도 무공을 익힌 헌터를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무공 아카데미에서는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심지어 1반의 넘버원인 권혁진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20반의 안능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건 비단 무공 아카데미 내부의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대통령님, 랭킹전에서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놀라운 소식? 무슨 소식이기에?”
“비각성자인 안능희라는 여인이 헌터를 상대로 무패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비각성자가 헌터보다 더 좋은 성취를 거뒀다는 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행정부의 수반인 이윤세 대통령.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그 역시 박한새의 행보와 무공 아카데미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하나의 단체로는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무공 아카데미였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무공 아카데미에서는 강력한 무인이 양성되고 있었으니 대통령으로서도 그들의 행보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비각성자가 헌터들을 상대로 연승을 거두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통령 또한 비각성자였기에 이 사실을 굉장히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무공의 힘이 이 정도였다니. 헌터를 이길 정도면 더 이상 국가 안보를 헌터들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 아닙니까?”
한국은 헌터의 특권이 적은 나라에 속한다.
어떤 나라의 경우 헌터가 중세 귀족처럼 온갖 특권으로 무장하여 새로운 신분으로 자리 잡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한국의 헌터들이 정부로부터 아무런 특혜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세금 부분으로 온갖 혜택이 주어졌고 군 면제에 심지어 한때는 불체포 특권까지 가지고 있었다.
대통령으로서 이런 헌터들을 마냥 좋게 볼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헌터들에게 특혜를 주었던 것은 던전 브레이크 같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헌터들에게 의존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공의 힘이 이토록 대단하다면 헌터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였다.
“마침 안능희라는 생도가 대위라고 합니다.”
“오, 그거 참 좋은 일이군요! 안능희 생도가 졸업하면 바로 군에 무공 도입을 시도해야겠습니다.”
대통령은 희희낙락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자기 임기 내에 헌터 의존도를 확 낮추며 국방력까지 강화하는 업적을 이루어낼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안능희의 5연승은 무공 아카데미의 모든 이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그러자 그녀를 향한 관심은 비각성자들 전체에게로 이어졌다.
21반, 22반, 23반, 24반….
원래라면 관중이 아예 없어야 할 비각성자들의 무대에 관중이 많은 것도 바로 안능희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능희와 달리 비각성자들은 관중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였다.
“뭐야, 쟤네?”
“검기도 사용할 줄 모르나 본데?”
“아니, 검기는 그렇다 치고 움직임이 왜 다 느려?”
“설마 보법도 못 쓰는 건가.”
“헐. 보법을 못 쓴다고? 그게 말이 돼?”
비각성자들이 보여준 실력은 수준 이하였다.
대부분은 보법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정도.
그러자 사람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안능희가 돌연변이었나 본데?”
“그러게. 너무 실력 차이가 크잖아.”
“그보다는 총장님 때문 아니야?”
“아, 맞다! 총장님이 안능희에게 직접 가르침을 줬다고 했었지?”
비각성자들이 보여준 실력에 실망한 헌터들의 관심은 이내 박한새에게 옮겨졌다.
몇몇 이들은 안능희의 선전조차 안능희의 재능이 아닌, 박한새의 덕이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아쉽습니다. 안능희 학생 말고도 다른 천재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비각성자에 대한 여론이 더 좋아졌을 텐데….”
강충구가 실망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비각성자인 그는 늘 여론에 관심이 많았다.
어떻게든 헌터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안능희가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음에도 여론이 극적으로 바뀌지 않았으니 그로선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겨우 몇 달 배운 거로 엄청난 변화를 보일 순 없는 일이니까.”
“쩝.”
“무공을 배우다 보니, 다들 눈이 너무 높아져서 아쉽게 느껴지는 거다. 일반인 기준으로 저 정도면 엄청난 수준이야.”
나는 오히려 21반 학생들의 성취를 높게 평가하였다.
자세도 어설프고 몸놀림도 둔하기 그지없었지만, 그야 기준을 ‘무공을 익힌 헌터’로 잡아서 그런 거다.
만약 기준을 무공을 익히지 않은 헌터로 잡는다면 F랭크 헌터도 능히 상대할 실력이었다.
“정 아쉬우면 네가 직접 보여줘. 비각성자도 무공을 배울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진법으로 말씀입니까.”
강충구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나에게 무공을 배운 지도 벌써 반년이 넘게 지났다.
놀랍게도 그의 경지는 안능희보다 높았다.
안능희처럼 ‘결’을 파악하는 그런 능력은 없어도 이류 무인 이상을 자부해도 좋을 그런 실력자였다.
사실 이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난 회귀 전에도 그를 가르친 경험이 있었다.
지금처럼 비서로 둘 정도로 아끼는 제자였었는데, 이때 그는 뒤늦게 무공을 배웠음에도 초일류 무인으로 성장하였다.
재능이 그만큼 출중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출중한 재능을 가진 강충구가 훨씬 젊어진 나이에 시행착오를 다 겪은 나에게 왔다.
이미 나는 그를 어떤 식으로 가르쳐야 할지 다 터득한 상태였으니, 강충구는 빠른 성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교수들에게 내세울 정도는 아니지.’
내공만 충분하면 일류를 자부해도 좋을 실력이지만, 그래봤자 겨우 일류였다.
교수들 역시 대부분 경지가 일류라고 해도 실질적인 무력은 강충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하였다.
즉, 지금의 강충구는 사람들 앞에서 내세우기엔 조금 어정쩡한 실력이었다.
“진법의 위력을 확실하게 보여주기만 한다면 사람들도 비각성자가 무공을 배울 필요성을 인정하게 될 거야.”
무공의 경지는 조금 어정쩡할지 몰랐다.
하지만 그에겐 ‘진법’이 있었다.
회귀 전에도 강충구는 진법의 천재라 불린 자.
나에게 진법을 배우기 시작한 강충구는 엄청난 속도로 진법을 익혀갔다.
지금은 내게 배운 진법을 어느 정도 응용할 수 있는 수준.
“과연 사람들이 저를 인정해주겠습니까?”
“5성급 던전 보스까지 상대해낸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알겠습니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강충구는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공 아카데미에는 선택 과목이란 게 있었다.
평소에는 중고등학교 때 그래왔듯, 교사가 직접 강의실로 찾아와 시간표대로 수업을 진행한다면, 하루 마지막 수업은 선택 과목으로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청강하였던 것이다.
선택 과목은 아직 과도기라 권법, 창법, 검법 이렇게 세 개밖에 없었다.
하지만 랭킹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과목이 생겨났다.
“진법?”
“이건 뭐래?”
갑자기 생겨난 과목의 이름은 진법.
학생들은 진법을 알지 못했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의문은 곧 교사들에 의해 해소되었다.
“내일 오후 4시에 대련장에서 진법 교관들의 진법 시범식이 있을 거다. 진법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대련장으로 가보도록.”
대부분의 학생들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마력 집적진 같은 거 만들 때 쓰는 게 진법 아니야?”
“아, 기문식? 하긴, 무협지에 자주 나오긴 했었지.”
“이야, 무공을 진짜 그렇게도 활용할 수 있구나.”
“무공이 스킬보다 훨씬 대단하다니까.”
“근데 진법이 신기한 거는 알겠는데, 그런 거 배워서 어디다 써?”
“그러게. 차라리 그 시간에 권법 배우는 게 훨씬 낫지 않나?”
권법, 창법, 검법 등등.
이미 그들이 배우고 있는 과목들도 배울 게 끝이 없을 정도로 그 깊이가 상당한 과목들이었다.
심지어 각 과목을 가르치는 교수진이 누구던가.
S랭크 헌터 강병철, S랭크 헌터 이정, S랭크 헌터 신경철.
무공 아카데미가 자랑하는 S랭크의 교수들이었다.
그런 교수들을 두고 ‘진법’ 같은 것에 관심을 둘 학생은 얼마 없었다.
하지만 권법과 창법, 검법에서 특출난 재능을 보이지 못한 학생들은 생각이 달랐다.
“일단 구경은 해보자. 우리가 다른 것엔 재능이 없어도 진법에는 재능이 있을 수도 있잖아?”
“애초에 사람들이 참 바보 같은 게, 돈 벌기에는 진법만큼 좋은 게 없음. 재벌의 대저택에 마력 집적진을 설치한다고 해보셈, 얼마 벌 거 같음?”
이 같은 생각을 하는 학생의 수는 무려 천 명에 가까웠다.
특히 비각성자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무협지의 지식대로라면 진법은 그들에게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많이도 왔군.’
강충구는 관중석을 훑어보았다.
거의 천 명에 가까운 인원이 진법 시범식을 구경하러 대련장을 찾았다.
‘만약 우리가 비각성자라고 미리 밝혔다면 과연 몇 명이나 왔을까?’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자신도 한 명의 당당한 무인인데 비각성자라는 이유로 소극적인 행보를 보여야 한다는 게 아쉬웠다.
그 역시도 비서보다는 교수가 되는 것을 원했는데 말이다.
“얘들아.”
강충구가 뒤를 돌아 아홉 명의 무인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들은 무협지로 따지면 그의 사제와 사매라고 할 수 있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박한새의 제자가 되었고 현재는 강충구가 그러하듯, 박한새 밑에서 비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강충구와 똑같은 서러움을 가지고 있었다.
‘사제와 사매들은 사부님의 제자인데도 빛을 보지 못했었지. 가끔씩 마주치는 학생들에게도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어찌 된 일인지, 하나같이 재능이 출중한 자들이었다.
박한새의 사람 보는 눈이 그만큼 정확하다는 뜻일 터.
하지만 그렇게 재능이 출중한 사제와 사매들이 비각성자란 이유로 홀대를 받고 있었다.
강충구로선 더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예, 사형!”
“이번에 헌터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주자. 우리도 헌터들만큼 활약할 수 있다는 것을!”
사제와 사매들이 악을 쓰며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들의 앞에 거대한 몬스터가 생겨났다.
크와아아아!
용을 닮은 거대한 체구의 몬스터.
그 몬스터는 다름 아닌, 5성급 던전 보스인 린드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