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던전을 소유화하는 과정은 가지각색이었다.
즉, 던전을 공략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라는 뜻이었는데, 단순히 몬스터를 잡는 것만으로는 점유율이 100%까지 오르지 않는 던전도 존재하였다.
요르단에 있는 페트라 던전이란 곳도 바로 그런 조건을 가진 던전 중 하나였다.
“드디어!”
“15층이야. 15층이라고!”
페트라 던전의 조건은 굉장히 특이하였다.
던전 내부에 탑이 존재하였는데 이 탑의 끝을 보는 게 완전 공략법이었다.
그리고 오늘, 제우스 길드는 마침내 탑의 끝에 도착하였다.
헤아릴 수 없는 희생 끝에 이룩한 결과였다.
“케라우노스. 기분이 어떤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이성은은 고개를 돌렸다.
제우스 길드의 제1 공대장, 엘 클라넬의 모습이 보였다.
이성은은 그녀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통쾌하게 웃었다.
“하하하! 기분이 어떻냐고요? 좋습니다, 너무 좋아요!”
“너의 성좌께서도 기뻐하셨으면 좋겠군.”
“기뻐하실 겁니다. 분명히.”
그와 계약하자마자 마치 유언처럼 페트라 던전을 너의 것으로 만들라는 메시지만 남기고 사라진 카펠라를 떠올리며 이성은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공략이 너무도 까다로워 모두에게 외면을 받던 던전이 페트라 던전이었다.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이성은조차 감히 엄두가 안 날 정도.
하지만 그는 페트라 던전이라는 하나의 목표만 가지고 지금껏 달려왔다.
제우스 길드에 들어온 이유도 바로 이 페트라 던전을 공략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왜 아무 말씀이 없으신 거지?’
페트라 던전을 공략했으니 카펠라도 본신의 힘을 되찾았을 거다.
하지만 카펠라에게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 거지?”
“그야, 길드장의 지시에 따라야겠죠.”
엘 클라넬의 물음에 이성은이 그와 같은 답변을 할 때였다.
[‘박한새’에게 가서 무공을 배우십시오.]
갑자기 그의 눈앞에 반투명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이성은은 놀란 눈으로 반투명한 홀로그램에 적힌 문구를 바라보았다.
‘뭐? 퀘스트라고?’
이런 일은 그 역시 처음 겪는 일이었다.
헌터라고 게임 속 유저처럼 상태창을 열거나 퀘스트를 수행하지는 않으니까.
카펠라와 계약했을 때도 카펠라가 직접 그에게 말을 걸고는 했었다.
아주 아름다운 미성의 목소리로 말이다.
‘그리고 박한새라니.’
박한새라면 헌터인 이상,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최근 들어 가장 화제가 된 인물이 박한새였으니.
이성은의 경우, 오성 길드 길드장인 진수호 덕에 한참 전부터 박한새에 관련된 정보를 접하였다.
그는 늘 무공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었다.
아마 페트라 던전을 위협하는 외부 세력만 없었으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한국에 가지 않았을까.
‘퀘스트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 내용에 따라야겠지?’
이성은의 예상대로라면 퀘스트는 카펠라와 관련이 된 것일 터.
즉, 카펠라는 그가 무공을 배우는 것을 원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안 그래도 무공에 흥미를 갖고 있었으니, 이성은으로선 다음 목표를 한국에 가서 무공을 배우는 것으로 정할 수밖에 없었다.
‘길드 마스터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페트라 던전을 공략하는 것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던 게 제우스 길드였다.
그에게는 은인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길드 마스터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웨에에에엥-!
하지만 던전 바깥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그의 고민을 부질없게 만들었다.
“케라우노스! 서둘러.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Yes sir!”
요르단의 공항은 그야말로 전쟁 통이었다.
곳곳에서 포격 소리가 들렸고 도시 전체가 불바다로 바뀌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요르단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제우스 길드의 본거지가 있는 미국.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에서도 지금 요르단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유사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유지은에게서 중요한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며칠 동안 고민에 잠겼다.
칼의 형제들이란 단체를 지금이라도 막아야 할까?
그들이 던전 점유율을 높이는 것을 막는다면 8성급 던전이 등장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런다고 과연 뭐가 달라질까?
세계 곳곳에서 성좌의 권속들이 자신의 성좌를 위해 던전을 공략하는 중이었다.
내 힘으로 어찌어찌 칼의 형제들의 공략을 막아도 다른 곳에서 던전 공략에 성공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으리라.
‘차라리 그럴 시간에 대비책이나 강구하는 게 낫겠지. 적어도 회귀 전보다는 8성급 던전 브레이크가 훨씬 빨리 발생할 거 같으니 말이야.’
물론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유지은이 경고했던 칼의 형제들이란 단체가 던전 공략에 실패하여 8성급 던전이 열리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대비를 한다고 나쁠 것은 없으리라.
그때,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총장실의 전화기가 요란하게 벨 소리를 울렸다.
그 순간 나는 직감하였다.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강충구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더니 급보를 전하였다.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였습니다!”
“전국적인 던전 브레이크냐?”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유지은의 예고를 들었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정말 회귀 전보다 반년이나 일찍 8성급 던전이 열리다니!
‘내가 무엇을 바꾸었다고 이런 변화가 생긴 거지?’
나비효과라는 게 말만 들었지, 이런 식으로 내가 개입하지 않은 곳에서까지 변화가 일어날 줄은 몰랐다.
8성급 던전이 이렇게 빨리 열렸다면 9성급 던전도 더 빨리 개방될 수 있다는 말 아닌가.
‘하지만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한 상황.
한가히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서둘러 움직여야 할 때.
“교수와 학생을 가리지 않고 헌터 라이선스를 가진 이들 전부를 집합시키도록. 외국 헌터들도 포함이다.”
평범한 학교였으면 학생들을 지키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무공 아카데미는 평범한 학교가 아니었다.
헌터 라이선스를 가진 학생만 무려 이천 명.
학생이라는 이유로 이천 명에 달하는 헌터를 놀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라이선스가 없는 이들은…, 잔류입니까?”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군.”
“서둘러 움직여라.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곳곳에서 피해자가 생겨나고 있을 거다.”
강충구는 뭔가 할 말이 있는 표정이었지만, 아쉽게도 그의 말을 들어줄 시간이 없었다.
지금은 그나마 일선의 헌터들이 던전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을 막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나오는 몬스터를 과연 언제까지 막아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가끔 일어나는 던전 브레이크라면 지원이 바로 와서 충분히 막아낼 수 있겠지만, 지금 일어나는 던전 브레이크는 그런 흔하디흔한 던전 브레이크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재해급.
8성급이 등장하면서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전국의 던전이 거의 다 열리게 된 것이다.
지원을 보낼 수 없을 정도로 전국이 비상일 테니, 위기에 빠진 곳이 한둘이 아니리라.
“신경철 교수님은 충청도로, 강병철 교수님은 전라도, 그리고 고정희와 김민경 교수님은 경상도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정 교수님은 혼자 움직이는 게 편하다고 하셨으니, 지금 바로 움직여주십시오.”
“그러지.”
“외국에서 온 학생 중에는 귀국을 원하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니 그것을 감안하시고 인원을 분배하십시오.”
가장 먼저 정교수들을 부른 박한새는 6성급 이상의 던전으로 그들을 파견하였다.
마치 이런 사태가 일어날 것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명령은 신속하면서 정확하였다.
조교수, 부교수에게도 지휘권을 줘서 각각 맡아야 할 던전을 할당하였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헌터 라이선스를 가진 모든 이에게 임무를 내린 것이다.
심지어 박한새는 명령을 내리기 무섭게 본인도 바로 창밖으로 뛰어나갔다.
그의 다리가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니, 더 지체하지 않고 현장으로 달려가려는 것이었다.
‘역시 사부님은 대단하시네.’
강충구는 그런 박한새의 뒷모습을 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는 스스로 박한새의 최측근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정교수라 불리는 박한새의 오랜 제자들보다 그가 더 박한새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던전 브레이크 같은 위급 상황이 벌어지자 그는 철저하게 소외되었다.
헌터 라이선스가 없다는 이유로 그는 무공 아카데미에서 가만히 대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구경만 해야 하나?’
예전이었으면 선택지가 하나뿐이었다.
대피소로 이동하여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는 것.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주어진 선택지가 하나 더 있었다.
그 선택지란 다름 아닌, 던전 브레이크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들과 맞서 싸우는 것.
‘더는 방관자로 살고 싶지 않다.’
강충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곤 자신의 사제와 사매들을 불렀다.
마치 그가 부를 것을 예상했다는 듯, 검과 창을 차고 있는 사제와 사매들.
“사부님에게 허락도 구하지 않고 움직여도 될까?”
물론 이 같은 고민을 하는 사제도 있었다.
박한새는 분명 헌터 라이선스를 가진 이들에게만 출동 명령을 내렸었다.
당연히 헌터 라이선스를 가지지 못한 강충구는 출동 대상이 아니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야. 우리에겐 힘이 있다. 아무리 못해도 5성급 던전 정도는 충분히 공략할 수 있는 힘이!”
힘이 있는데 나서지 않는 것.
그게 오히려 죄악이 아닐까?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던전 브레이크 상황에서 말이다.
피해를 줄일 수만 있다면 사부도 이해해줄 수밖에 없으리라.
이 같은 강충구의 말에 사제와 사매는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높은 등급의 던전 브레이크가 위험한 이유는 별게 아니었다.
3성급일 경우, 주변의 2성급과 1성급 던전에도 영향을 끼쳐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킨다.
6성급 브레이크만 되어도 한국처럼 국토가 작은 나라의 경우, 수백만의 인구가 직접적인 피해를 볼 수 있었다.
서울에서 터지면 당연히 수도권 전체에 영향이 갈 것이고 말이다.
6성급도 이런데 8성급이라면?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재해가 발생할 것이다.
“막아!”
“빌어먹을! 왜 갑자기 등급이 올라 가지고!”
고양시 일산의 한 던전에서는 치열한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10대 길드 중 하나인 새벽 길드가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들과 혈투를 벌이는 것.
원래였으면 새벽 길드는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고서 몬스터들을 처리했을 것이다.
충분한 전력을 던전 입구에 대기시켜놓았으니까.
하지만 8성급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면서 몇몇 던전의 등급이 상승하였다.
하필 그들이 담당하는 던전이 바로 그런 던전이었다.
4성급이었던 던전이 5성급으로 올라가면서 엄청난 위기에 직면하였다.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새벽 길드 3팀 팀장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쩌면 오늘이 생의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팀장님! 지원군이 왔습니다!”
갑자기 막내가 지원군이 왔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벌써? 좋아! 어디서 온 지원군이야?”
“무공 아카데미에서 온 지원군입니다!”
그 말을 듣고 팀장은 반색하였다.
무공 아카데미라니!
이보다 든든한 아군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어지는 막내의 말을 듣고 팀장의 얼굴이 굳었다.
“그런데 지원군으로 온 이들이, 헌터 라이선스가 없다고 합니다.”
“…뭐?”
“아무래도 비각성자 출신의 생도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친.”
지원군이 온 게 아니라, 짐이 왔다는 생각에 팀장은 욕지기를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