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영약의 이름은 천마유액.
몸에 바르면 피부가 하얘지고 극도로 단단해지는 영약이었다.
마치 회복 포션처럼 상처를 치료해주는 효과도 있었다.
천마유액 말고도 상당히 좋은 아이템이 많이 나왔다.
나는 그중 도끼를 노홍만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왜 주는 거지?”
“전투가 끝났으니 전리품을 분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거절하지는 않겠다.”
“나머지도 맡아주십시오. 저는 급히 가봐야 할 곳이 있습니다.”
아이템 몇 개 때문에 시간이 잡아먹히는 것은 사양이었다.
나는 바로 떠날 기세로 그에게 아이템을 맡겼다.
그러자 노홍만이 내게 물었다.
“다음은 어디로 갈 생각이지?”
“중국에 갈 생각입니다.”
“…중국이라고?”
노홍만이 의외라는 듯 나를 빤히 쳐다봤다.
뜬금없이 중국으로 간다고 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으리라.
나는 그의 의문을 풀어주는 대신,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이성은이 회귀하고 나서 가장 후회했던 날 중 하나가 바로 오늘, 던전 브레이크가 벌어지는 날이었지.’
사실 날짜는 달랐다.
원래는 8성급 던전 브레이크가 반년 뒤에 일어나야 했으니.
하지만 상황은 같았다.
8성급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때, 이성은은 아주 중요한 기회를 놓쳤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한 실수를 반복할 생각이 없었다.
9성급 몬스터 중에 데스 나이트란 몬스터가 존재하였다.
약점이 없는 듯, 그야말로 불사의 존재가 바로 데스 나이트였다.
무공을 익힌 헌터들조차 그런 데스 나이트가 등장하면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사부는 정말 대단해. 분명 처음 본 적일 텐데도 바로 약점을 찾아내다니.”
이성은은 재가 되어 사라진 데스 나이트의 빈자리를 보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가 감탄하는 대상은 듬직한 체구에 남자다운 외모를 가진 사내였다.
S랭크 헌터조차 상대하기 까다롭게 여기는 데스 나이트를 순식간에 쓰러뜨린 이자는 바로 이성은의 스승, 박한새였다.
“사부가 알려준 심안이 아니었다면 나도 놈들을 잡는 게 어려웠을 거야.”
“꼭 내가 아니더라도 너는 결국, 공략법을 찾았을 거다.”
박한새는 늘 그렇듯 겸손하게 말하였다.
비각성자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엄청난 업적을 세운 그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만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그런데 사부 그거 알아?”
“죽음의 군단을 다스리는 거 사실 파롤의 능력이 아니야.”
이성은의 갑작스러운 말에 박한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명회 말고 몬스터를 다스리는 능력을 가진 단체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당연히 여명회가 이끄는 죽음의 군단도 파롤의 고유 능력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니?
“죽음의 군단을 다스리는 게 파롤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여명회는 어떻게 죽음의 군단을 동원할 수 있었던 거지?”
죽음의 군단이란 듀라한, 리치, 데스 나이트 등으로 이루어진 불사의 군대를 말하였다.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부활하는 몬스터들이라 죽음의 군단이라 불렀다.
이들이 인류와의 전쟁에 전면으로 나서면서 승산은 더더욱 낮아지게 되었다.
비록 숫자가 적고 몬스터 자체의 무력도 여명회가 이끄는 몬스터 군대에서 최강이라 부르기는 어려웠으나, 적 부대 중 일부가 ‘불사’라는 것 자체가 아군의 사기를 갉아먹었다.
심지어 그 부족한 숫자도 점점 늘어나기까지 했기에 사기는 더욱더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죽음의 군단을 통제한 건, 파롤의 고유 능력이 아닌, 뱃사공의 목걸이라는 아이템이었어.”
“뱃사공의 목걸이라….”
“내가 다시 과거로 간다면… 죽음의 군단을 절대 파롤의 졸개 놈들이 가져가게 두지 않을 거야.”
이성은의 말에 박한새는 고개를 저었다.
‘다시’ 과거로 간다니.
지금의 그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회상을 끝낸 나는 다시 경공의 속도를 높이는 데 집중하였다.
‘죽음의 군단이 7사도의 손에 넘어가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이성은이 과거로 가면 반드시 사수하려고 했던 게 바로 뱃사공의 목걸이였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죽음의 군단이 여명회로 넘어가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할 일이었다.
당장은 별로 무섭지 않을지 몰라도 훗날 무시무시한 군단이 될 것이 죽음의 군단이었으니.
중국 창하이현.
장산군도라고 불리던 이 섬에 던전이 하나 있었다.
원래 이곳에 위치한 던전의 등급은 7성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이 던전의 등급이 바뀌었다.
바로 8성급 던전으로 말이다.
던전 주변은 음산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던전에서 나온 몬스터들이 음산한 기운을 내뿜었던 것이다.
구울, 좀비, 가스트.
그리고 목이 없는 기사, 듀라한까지.
던전 입구에는 전 세계에 존재하는 언데드 계열의 몬스터가 거의 총집합하였다.
이런 무시무시한 언데드 군대를 막는 이들이 있었다.
황당하게도 그들은 헌터가 아니었다.
물론 인간의 군대도 아니었다.
언데드 군대를 막는 이들은 다름 아닌, 몬스터 군대였다.
몬스터가 몬스터를 막고 있었던 것이다.
“끈질긴 놈들이야.”
전투가 벌어지는 곳에서 수 km 떨어진 얕은 언덕.
그곳에는 다섯 명의 인간이 있었다.
하나같이 흑색의 의복을 입은 그들은 언데드 군대 못지않은 음산한 기운을 내뿜었다.
“과연 저것들을 가지고 가면 7사도께서 좋아하실까요? 언데드는 지금까지 저희의 대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었는데….”
“싫어하시지는 않으시겠지. 주군은 새로운 몬스터의 등장을 언제나 환영하시는 분이니.”
7사도를 거론하는 것만 봐도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몬스터를 조종하는 능력을 가진 여명회 신도들이었다.
지금 언데드 군대와 싸우는 몬스터 군대를 조종하는 것도 바로 그들이었다.
“좀비나 구울은 그렇다 치고, 듀라한은 아직 한 놈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목 없는 기사, 듀라한.
여명회의 신도들 입장에서도 상당히 까다로운 몬스터였다.
말을 타고 다닌다는 것부터 죽이는 게 쉽지 않았다.
심지어 웬만한 공격으로는 전혀 대미지를 입지 않았다.
듀라한에게 대미지를 주는 방법은 오직 하나.
듀라한이 들고 다니는 머리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듀라한은 자신의 머리를 최우선으로 지켰다.
말을 타고 기동하면서 머리까지 악착같이 지키니 상대하기가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상관없다. 시간은 우리 편이야.”
몬스터는 체력이 넘쳐났다.
언데드 군대라면 더더욱 그러했는데, 언데드 군대를 상대로도 여명회 신도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의 자신감은 여명회 특유의 적응력에 있었다.
새로운 몬스터가 나타나면 누구보다 빠르게 공략법을 찾아내는 게 바로 여명회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듀라한의 약점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여유롭게 전투를 관망하던 신도는 바로 인근에서 낯선 기척을 감지하였다.
그가 고개를 돌리니 웬 사내가 그의 직속 수하들을 공격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웬 놈이냐!”
장산군도에 도착한 순간, 의외의 광경이 펼쳐졌다.
‘몬스터 군대라. 여명회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움직였구나.’
대청봉 던전의 안전을 확보하자마자 장산군도로 온 나였다.
아마 중국 본토에 거주하는 헌터들보다 내 움직임이 더 빨랐을 터.
하지만 이런 나보다 먼저 움직인 자들이 있었다.
여명회가 한 발 일찍 와서 언데드 군대를 상대하고 있었던 것.
‘조금만 늦었어도 기회를 놓칠 뻔했군.’
만약 뱃사공의 목걸이를 빼앗겼다면 후회가 막심했을 거다.
차라리 몰랐다면 모를까, 어디서 아이템이 나오는지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빼앗기는 것만큼 최악은 없을 테니까.
‘그나저나 이곳에 있는 모든 파롤의 졸개를 잡는다면 7사도도 꽤 큰 타격을 입겠지?’
중국은 7사도의 세력권이니, 이곳에 모인 파롤의 졸개는 전부 7사도를 따르는 자들일 터.
심지어 직급이 낮지만은 않아 보였다.
그들이 이끄는 몬스터 군대의 규모가 상당한 것을 보면 말이다.
‘한 놈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죽이자.’
그리고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치 내 생각을 읽었다는 듯 퀘스트가 떠올랐다.
[파롤의 졸개를 처단하십시오! 0/25 카르마 +100,000]
‘오랜만의 퀘스트군. 뭐 지금에 와서는 크게 의미가 없지만 말이야.’
퀘스트에 카르마 수급을 의존하는 단계는 일찍이 지나갔다.
애초에 퀘스트가 주는 카르마 양도 더는 크게 느껴지지도 않고.
하지만 퀘스트가 떴는데 구태여 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수천 명의 제자를 가진 나에게 카르마란 많을수록 좋은 법이니 말이다.
은밀하게 기동하여 외곽에 있는 파롤의 졸개를 한 명씩 잘라냈다.
나를 파악하지 못한 상대에게 굳이 모습을 드러낼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들켰군.’
파롤의 졸개 네 명을 죽였을 때,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가 나를 발견하였다.
그는 나를 향해 분노를 터뜨리며 중국어로 뭐라고 외쳤다.
아마 나를 죽이라는 그런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들켰다고 정면에서 싸워줄 필요는 없지.’
보법을 극한으로 펼쳐서 시야가 제한된 숲으로 이동하였다.
그러자 파롤의 졸개는 몬스터 병력을 쪼개 일부만 내게 보냈다.
언데드 군대를 상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병력을 동원한 셈이었다.
하지만 전부도 아니고 일부만 보내는 것은 엄청난 패착이었다.
파롤의 졸개들이야 나를 그냥 평범한 헌터로 알고 있어서 그런 거겠지만 말이다.
“감히!”
그러던 중, 보다 못한 파롤의 졸개 중 한 명이 날아왔다.
무력을 담당하는 졸개인 듯싶었다.
처음 내 앞에 날아왔을 때만 해도 인간이었던 그의 몸은 순식간에 몬스터나 다를 게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체구도 거의 3m에 이르렀고 팔과 다리는 전부 인간의 형체가 아니었다.
단순히 외형만 바뀐 것이 아니었다.
내게 돌진한 그는 보법을 펼치는 무인마냥 엄청난 속도를 보여주었다.
공격에 담긴 파워 역시 만만치 않았다.
한 방, 한 방이 묵직한 것이 마치 S랭크 헌터가 스킬을 연달아 쓰는 느낌이었다.
물론 나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S랭크급에 버금가는 무력이라 해도 S랭크는 아니었으니.
설령 S랭크 헌터라 해도 나에게는 상대가 안 됐고 말이다.
‘다만 8성급 던전이 열렸으니, 앞으로가 문제다.’
곧 몬스터 연구가 끝나면 파롤의 졸개들은 새로운 몬스터를 몸에 조합하여 더 강한 힘을 뿜어낼 것이다.
뭐 그런 고민은 나중 일이었다.
나는 더 지체하지 않고 괴수로 변신한 사내의 목을 베어냈다.
다시 던전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니, 상황이 아까와는 정반대로 뒤바뀌어 있었다.
원래는 파롤의 졸개가 이끄는 몬스터 군대가 언데드 군대를 압도하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몬스터 군대가 언데드 군대에게 밀리고 있었다.
물론 내가 파롤의 졸개 몇 명을 죽인 것으로 상황이 역전된 것은 아니었다.
‘리치가 나왔군.’
상황이 역전된 이유는 내가 아닌, 던전 보스에게 있었다.
8성급 던전 보스, 리치.
바질리스크가 엄청난 무력을 보여주었듯, 리치의 무력도 무시무시한 수준이었다.
리치의 마력에 닿기만 하면 순식간에 미라가 되어버릴 정도.
그리고 리치의 검은 마력은 몬스터 군대를 순식간에 녹이고 있었다.
파롤의 졸개들이 이끄는 몬스터 군대는 7성급 이하의 몬스터로 이루어져 있기에 리치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