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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153화 (153/275)

#153화

“그런데 이런 말씀 드리기 조심스러운데, 러시아는 아무래도 파견비는 많이 드리지 못할 거예요.”

“돈은 괜찮습니다.”

돈은 아무래도 좋았다.

나에겐 돈보다, 사람 한 명의 목숨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였다.

무엇보다 여명회의 5사도인 아니트리 코프헤브.

‘재해급’을 넘어 최초로 ‘멸망급’ 빌런이란 칭호를 얻는 그자를 제거해야 했다.

이성은이 제때 그를 제거하지 않았다면 13년 뒤가 아닌, 그해에 세계가 멸망했을지도 모른다고 평가할 정도로 아니트리 코프헤브란 사내는 위험하였다.

아직은 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가 아니긴 했지만, 8성급 던전 브레이크가 예정보다 일찍 발생했으니 아마 역사가 또 바뀌었을 터.

러시아로 가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자를 찾아내 제거해야만 했다.

“늘 느끼는 거지만, 미스터 박은 정말 멋있으시네요.”

“연애 안 하신다고 하셨죠?”

“지금은 생각 없습니다.”

“저, 지금 고백하기도 전에 차인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그냥 당분간 연애할 생각 없다고 말씀드린 거뿐입니다.”

“제 나이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죠?”

“아쉽네요. 미스터 박의 나이가 조금 더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제니퍼는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고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국제 헌터 협회에서 요청이 왔습니다. 현재 세계 각국이 던전 브레이크로 위기에 처했으니 저희에게 도움을 달라고 하더군요. 협회장이 직접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교수들을 부른 나는 제니퍼의 요청을 그들에게 전해주었다.

“그래서 말인데, 노홍만 교수님. 유지은 교수님. 저와 함께 러시아에 가시죠.”

“좋다.”

“저요? 호호, 저야 좋죠.”

러시아로 데려갈 인원은 교수급에선 딱 두 명을 선택하였다.

노홍만과 유지은이었는데, 일단 노홍만은 그린스킨 소속이라 데려가기로 하였다.

러시아에서도 그린스킨의 명성은 잘 알려졌으니.

유지은의 경우는 정보와 언어 때문이었다.

러시아에서 활동하려면 정보력은 필수였다.

내게 아무리 미래의 정보가 있다지만, 직접 러시아를 가본 적은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러시아의 경우, 8성급 던전 브레이크가 터진 이후, 5사도 아니트리 코프헤브로 인해 헌터 전력이 거의 몰살하다시피 한 나라였다.

나로선 정보가 없을 수밖에 없는 것.

‘그리고 유지은 교수는 7개 국어 능력자지.’

다재다능한 그녀는 7개 국어 능력자이기도 했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불어, 중국어.

참고로 러시아에는 국제 헌터 협회 소속 헌터들도 같이 갈 예정인데, 유지은만 데리고 간다면 대부분의 헌터와 소통이 가능하였다.

“저도 총장님과 같이 러시아로 가고 싶어요.”

김민경이 살짝 조급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원래 김민경 교수님에겐 대만을 부탁드리려고 하였으나, 원하신다면 러시아로 오셔도 좋습니다.”

“대만은 제가 가겠습니다.”

주현근이 먼저 나서서 그리 말하자, 강병철과 신경철도 따라나섰다.

“총장님, 저도 보내주십시오!”

“전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강병철 교수님은 주현근 교수와 함께 대만에 가시면 될 거 같습니다.”

“그리고 신경철 교수님은 미국으로 가주십시오.”

“미국이라, 좋습니다!”

“아, 그리고 미국에 도착할 때쯤, 신기한 일이 일어날 텐데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내 말에 신경철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신경철 교수도 권속으로 받아야겠어.’

1년 넘게 나에게서 무공을 배운 신경철의 경우, 지분율이 100%가 된 지 오래였다.

원래 같았으면 100%가 되자마자 권속으로 받아들였겠지만, 10명이라는 제한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조금 더 신중하게 권속을 뽑으려고 하였으나, 상황이 상황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신경철 정도면 권속으로 뽑아도 아깝지 않은 인재였지만 말이다.

“이정 교수님에게는 페루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가기 싫다면? 국내에 남아있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 거지?”

이정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같이 물었다.

그러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국내에 남고 싶으시다면 남으십시오.”

“상관없다는 건가?”

“저는 지시를 내리는 게 아니고 부탁하는 겁니다. 저와 같이 싸워달라고 말입니다.”

“다른 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 지시에 무조건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외국을 돕는 것. 이건 어디까지나 여러분의 자유 의지입니다.”

물론 이렇게 말해도 사실상 반강제나 마찬가지였다.

교수들 대부분은 내 권속이었고 권속이 아니더라도 어쨌든 나에게서 무공을 배운 제자들이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과분한 은혜를 입었는데 어찌 거절할 수 있으랴.

뭐, 이정 같은 경우는 그런 거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니 거절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냥 해본 소리였다. 어차피 나도 전리품 때문에라도 다른 나라를 가볼 생각이었어. 노홍만이 얻은 도끼가 제법 탐이 났거든.”

다행히 이정은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에게 페루를 맡겼으니 페루의 안전은, 아니 남미 전체의 안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고정희에게는 인도네시아를 부탁하기로 하고는 학생들도 자발적인 참가 인원에 한해 파견 가야 할 국가를 정해줬다.

그런데 말이 자발적인 참가지, 헌터 출신의 학생은 거의 전원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많은 인원이 참가하였다.

아무래도 헌터이기에 몬스터를 두려워하지 않기도 했고, 더 강해진 무력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그동안 교육했던 것들의 효과일지도 모르고.

뭐가 됐건, 나로선 좋은 일이었다.

“총장님, 공항에 중국 대사가 와있습니다.”

그렇게 러시아에 갈 준비를 끝마치고 공항으로 출발하는데, 배웅을 와준 강충구가 내게 그와 같은 말을 전해주었다.

‘어쩔 수 없이 만나고 가야겠군.’

솔직히 정치인이든, 외교인이든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았다.

만나 봐야 듣게 될 말은 뻔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뻔한 말을 듣는다고 해도 공항에서 기다린다는데 피할 수는 없었다.

“무공의 창시자, 박한새 총장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대사님이 어쩐 일로 저를 뵙자고 하신 겁니까?”

“제가 듣기로 국제 헌터 협회의 요청을 받아 외국으로 지원을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예, 중국에도 일부 인원을 파견할 계획입니다.”

미국 다음으로 헌터 전력이 강하다고 알려진 중국이지만, 그렇다고 8성급 던전 브레이크 사태의 대응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언론 통제로 잘 알려져 있지는 않았지만 지금쯤이면 중국도 상당한 피해를 보고 있을 것이다.

“저희 당에서 바라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박한새 총장님이 직접 중국에 와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이미 중국은 한번 갔다 왔는데….’

그냥 갔다 오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무려 8성급 던전 브레이크를 막아주기까지 하였다.

8성급 던전 보스를 직접 잡아서 말이다.

뭐 이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저는 러시아로 갈 계획입니다.”

“제안을 듣지도 않고 거절한다는 말씀입니까?”

중국 대사가 내 단호한 거절을 듣고 심기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애써 표정을 수습하며 다시금 내게 중국행을 권하였다.

“저희 주석께서는 박한새 총장님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계십니다. 특히 무공을 독식하지 않고 세상을 위해 전파하는 그 의협심! 주석뿐만이 아니라, 중국인 전체가 박한새 총장님을 진정한 대인으로 여깁니다.”

내가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식으로 무심하게 말하자, 그가 안색을 붉혔다.

“안 그래도 박한새 총장의 인기가 상당한데, 여기서 공까지 세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박한새 총장은 중화의 영웅이 되실 겁니다. 14억의 영웅이 말입니다!”

전혀 와닿지 않는 말이었다.

차라리 미국처럼 거액을 제시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중국이라고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물론 거액을 제시한다고 해도 내가 중국에 갈 일은 없었겠지만.’

나는 속으로 그같이 생각하며 중국 대사에게 다시금 단호한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중국 대사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더니,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그대로 등을 돌렸다.

외교관답지 않게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역시 중국 대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한새 총장이 방금 러시아로 출국하였다고 합니다.”

이윤세 대통령은 그 보고를 듣고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러시아에 가다니.”

청와대로 정중하게 초청하였음에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거절하였다.

그러고는 그와 상의도 없이 러시아로 떠나버린 박한새.

‘그야말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군.’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보다 박한새와 어울리는 말은 없으리라.

‘하지만 따질 수도 없는 일이지.’

대통령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박한새의 태도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건 성인군자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힘과 명분 그 모든 것을 갖춘 박한새였으니까.

‘그런 거 보면 박한새 총장의 명성이 지금 같지 않았을 때 괜히 신경전을 벌이지 않은 게 천만다행인 거 같군.’

과거에는 자신이 직접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대선을 도와주지 않는 박한새의 행보에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당선인 신분일 때는 대통령이 될 자신보다 인지도가 높은 것이 마음에 안 들어 질투를 느끼기도 하였었다.

그래서 한 번쯤 무공 아카데미나 박한새에게 직접 제재를 가할까도 고민하였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그런 짓을 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이미 무공 아카데미 총장으로서 박한새의 위상은 대통령보다 더 높았으니 말이다.

러시아.

중국과 거의 비등한 수준의 헌터 전력을 가졌다고 알려진 나라였다.

이 나라의 S랭크 헌터는 무려 서른 명이 넘었는데, S랭크 헌터의 숫자만 봤을 때는 세계 2위였다.

하지만 그런 러시아의 현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에 가까웠다.

시베리아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였고 나머지 지역도 몬스터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의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위기에 빠트린 것은 ‘6성급’ 던전이었다.

고작 6성급이었으나, 블라디보스토크의 헌터들은 수많은 희생을 치르며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6성급 몬스터, 라미아 특유의 휘파람 소리를 듣고 러시아 헌터들은 절규하였다.

그들이 느끼기에 라미아는 강해도 너무 강했다.

뭉치면 뭉칠수록 강해지는 것이 라미아라는 몬스터의 특성이었다.

그런 라미아가 몇 마리도 아니고 수백 마리가 몰려왔으니 다른 6성급 몬스터보다 강하게 느껴지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누가 스킬 좀 써봐!”

“마력이 없어! 다 썼다고!”

“젠장! 왜 숫자가 줄지 않는 거야!”

“바실리 대장! 뭐라도 해봐! A랭크 헌터잖아!”

“A랭크 헌터라고 지금 상황에서 뭘 할 수 있는데!”

점점 궁지에 몰리는 러시아 헌터들.

아직 던전 보스인 ‘라미아 족장’이 등장하지도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실로 최악의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순간이었다.

“지원군이다!”

절망에 빠져있던 러시아 헌터들은 새롭게 등장한 헌터들을 보고 희망에 찬 표정을 지었다.

“라미아가 저렇게 쉽게 죽는다고?”

“뭐, 뭐야? S랭크 헌터들인가?”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동양인 헌터들.

그들은 어떻게 봐도 평범한 헌터로 보이지 않았다.

A랭크 헌터인 나우모프 바실리도 고전하던 라미아를 너무도 쉽게 사냥하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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