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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156화 (156/275)

#156화

“아,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았다고?”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는 충격에 빠진 듯,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군부에서 8성급 던전 보스를 잡겠다고 주장했을 때, 그는 말리지 않았다.

그 역시 외국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8성급 던전 보스를 잡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8성급 던전 보스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하였다.

러시아군의 화력을 총동원하여 공격하였으나 상처조차 주지 못할 정도였다.

사실 이때 타디그레이드의 처리를 박한새에게 맡겼어야 했다.

그런데 블라디미르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러시아의 힘으로 8성급 던전 보스를 잡는 것과 외국 헌터들의 힘으로 8성급 던전 보스를 잡는 것은 엄청난 차이였다.

그렇기에 블라디미르 대통령은 핵을 사용하였다.

국가의 힘으로 8성급 던전 보스를 잡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처참하게 실패하였다.

핵은 무의미하게 소모되었고, 무능한 정부의 행보에 지지율만 더 떨어졌을 뿐이었다.

“대통령님. 바실예프 협회장이 접견을 요청하였습니다.”

“…무슨 소리를 지껄이려고.”

“일단 대화라도 해보시는 게 어떠신지.”

블라디미르 대통령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러시아 헌터 협회의 회장, 유라이치 바실예프.

그는 블라디미르 대통령과 사실상 정적이나 다를 게 없는 존재였다.

헌터들의 이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정부와 계속해서 충돌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집무실로 불러오도록.”

얼마 지나지 않아 유라이치 바실예프가 그를 찾아왔다.

잘생겼지만, 어딘가 모르게 성격이 음험하게 느껴지는 외모를 가진 유라이치 바실예프가 웃는 얼굴로 블라디미르 대통령에게 말하였다.

“핵을 무의미하게 낭비하였으니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비웃으려고 온 것이오?”

“설마 그렇겠습니까. 저는 그저 안타까워서 그랬습니다.”

“용건이 무엇이오?”

“대통령님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타디그레이드 레이드를 원하는 거 같은데, 맞소?”

“레이드를 원하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건 저의 사리사욕이 아닌, 대통령님을 위한 선택입니다.”

유라이치 바실예프는 언제나 국가의 위기를 이용하여 더 많은 특혜와 이권을 차지하려고 하였다.

이번 타디그레이드 레이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타디그레이드를 레이드 하지 않고 있었던 것도 타디그레이드를 잡는 대가로 정부에게서 무언가를 얻어가기 위함이리라.

‘네놈들에게 더 양보할 생각은 없다!’

대통령인 그를 제외하면 러시아의 재벌이든, 정치가든 협회의 눈치를 보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만큼 협회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뜻이었다.

만약 8성급 던전 브레이크를 막겠다고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을 쥐여준다면?

그때는 협회장이 이 나라의 지배자가 된다고 해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리라.

“그렇다면 확실하게 말해주겠소. 협회의 도움은 받지 않겠다고 말이오.”

유라이치 바실예프는 단호한 그의 거절에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통령님. 정말로 우리 헌터들의 도움이 필요 없으십니까?”

“두 번 묻지 마시오. 내 생각이 달라질 일은 없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대통령님의 뜻이 그러시다면 저도 군말 없이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을 이었다.

“혹시 나중에 뜻이 바뀌신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물론 우리 협회는 당분간 다른 던전 브레이크를 정리하느라 바쁘긴 하겠지만, 대통령님이 부르신다면 언제든 가겠습니다.”

나중에 부탁할 때는 더 많은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유라이치 바실예프는 자신의 속내를 반쯤 드러낸 채 그와 같이 말하였다.

그런 유라이치 바실예프의 모습에 블라디미르 대통령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제는 한국의 헌터들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나.’

솔직히 믿음이 가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파견 온 헌터 중, S랭크 헌터로 알려진 이는 겨우 두 명.

유지은이라는 여성 헌터와 노홍만이라는 남성 헌터였다.

물론 둘 중 노홍만의 경우, S랭크 헌터들 사이에서 30위 안에 들 정도로 강력한 무력을 가진 것은 블라디미르도 인정하였다.

노홍만은 무려 그린스킨 소속의 S랭크 헌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봤자 겨우 두 명이었다.

8성급 던전 보스를 잡으려면 최소 다섯 명의 S랭크 헌터가 필요하다는 게 현재까지의 정설이었다.

그런데 과연 두 명의 S랭크 헌터로 타디그레이드를 잡을 수 있을까?

블라디미르 대통령으로선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으로선 방도가 없었다.

한국을 믿어보는 수밖에.

‘그 비각성자라는 자가 소문의 절반 정도라도 활약해줬으면 좋겠군.’

“타디그레이드가 서쪽으로 진격하고 있습니다. 타디그레이드의 진격을 막지 못하면 러시아는 무너지고 말 겁니다. 그러니 부디 러시아를 도와주십시오!”

러시아 고위급 공무원이 내게 간절히 호소하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 러시아 정부에서 하바롭스크 출입을 막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역설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그들의 요청에 대한 답변을 주려고 할 때,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국제 헌터 협회의 수장, 제니퍼의 전화였다.

-미스터 박, 이야기는 들었어요.

“이야기라면 어떤 이야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러시아 정부에서 미스터 박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였다는데, 제가 들은 게 맞나요?

“타디그레이드란 8성급 던전 보스를 잡아달라는 부탁을 하긴 했습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요청을 들어줄 겁니다.”

-러시아 정부에서 미스터 박에게 제대로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러시아 정부의 인정을 받으려고 러시아에 온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러시아 정부가 무능하기 그지없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5사도에게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무너진 것만 봐도 그들의 무능함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러시아 정부가 나를 어떻게 대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구하려는 것은 러시아 정부가 아닌, 러시아 국민들과 헌터들이었으니까.

‘무엇보다 러시아 헌터 협회가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든단 말이지.’

러시아 협회는 한국 협회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선민사상으로 가득 찬 집단이었다.

헌터들이 대놓고 빌런 짓을 해도 온 힘을 다해 보호해줄 정도였다.

러시아 길드들이 반쯤 마피아나 다를 게 없는 존재가 된 것도 협회의 잘못이 컸다.

그런 러시아 협회가 지금 러시아 영토와 국민을 인질로 잡고 정부를 협박하고 있었다.

나로선 무능한 정부보다, 자신들이 가진 힘을 삿되게 사용하는 러시아 헌터 협회가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러시아인들은, 아니 세계 모든 이들은 미스터 박의 희생을 기억할 거예요.

“희생이라 하니 제가 죽으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군요.”

-위험한 것은 사실 아닌가요? 제가 듣기로 타디그레이드가 나온 던전은 일반 몬스터가 없이 던전 보스인 타디그레이드 하나만 나왔다고 들었어요.

던전 중에는 보스만 존재하는 던전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던전이 평범한 던전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고는 했다.

보스가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었다.

-하루 정도만 기다려주시면 제가 지원을 더 보내드릴 수 있어요. 이틀을 기다려주시면 제가 직접 갈 수도 있을 거고요.

“제가 못 미더우신 겁니까?”

-…그건 아니에요. 단지 저는 만에 하나의 경우로라도 미스터 박을 잃고 싶지 않아요.

나를 잃고 싶지 않다라.

그건 내가 그녀의 스승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유야 뭐가 됐건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나는 픽 웃고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전 무공을 만든 순간부터 8성급이 아닌, 9성급을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8성급 정도는 제게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가요? 미스터 박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더는 걱정하지 않을게요. 부디, 러시아를 구원해주세요.

“이왕이면 세계를 구원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런 말 하면 웃었을 텐데, 미스터 박이라면 왠지 가능할 거 같네요.

가능할 거 같은 게 아니라, 가능해야만 했다.

내가 세계를 구하지 않으면 인류는 멸망할 테니까.

제니퍼와의 전화가 끝나고 나는 러시아 공무원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의 요청을 들어주겠다고.

지금 바로 타디그레이드를 잡으러 가겠다고 말이다.

그러자 러시아 공무원들은 반색한 표정을 짓더니 내게 고개를 숙였다.

“한국은 러시아의 진정한 우방입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나는 그들의 감사 인사를 받으며 세 사람을 불렀다.

“러시아에서 타디그레이드를 잡아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핵이 안 통하니 바로 저희에게 도움을 요청하네요.”

김민경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노홍만이나 유지은도 표정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자신들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그만큼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기 위해 러시아로 온 것이 아니었다.

“타디그레이드를 레이드 하러 갈 건데, 여러분도 함께하셨으면 합니다.”

다행히 거절 의사를 밝힌 사람은 없었다.

유지은은 바늘 가는 데 실 가는 법이라고 넉살스럽게 말하였고 김민경은 사부님의 지시라면 무조건 따를 거라고 말하였다.

노홍만의 경우는, 타디그레이드를 레이드 하는 것에 흥미가 생겼다며 나를 따르겠다고 하였다.

세 사람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 역시 불참하는 인원이 거의 없었다.

세 명의 교수와 백 명의 학생들, 그리고 그 뒤로 삼백여 명의 러시아 헌터들까지.

무려 사백이 넘는 이 대인원이 나와 함께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들 전체가 타디그레이드 레이드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타디그레이드를 처음 조우한 사람들은 모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타디그레이드는 역대 그 어떤 몬스터보다 크기가 거대했다.

현장에서 타디그레이드가 움직이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 눕혀진 빌딩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저걸 어떻게 잡아?”

“핵도 통하지 않았다더니, 실물로 보니 핵이 통하지 않은 이유를 알 거 같네.”

“그래도 검기는 통하겠지?”

“글쎄…. 교수님들이 하는 걸 우선 지켜봐야겠지.”

무공 아카데미 학생들이 그와 같은 대화를 나눌 때, 가장 선두에 서 있던 노홍만이 타디그레이드를 향해 공격을 감행하였다.

멀리서 철권을 날리며 타디그레이드를 공격하던 노홍만이 뭐 때문인지 미간을 구겼다.

자신의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흠집도 내기 어려울 거 같군.”

그러자 유지은이 나섰다.

“제가 검기로 공격해볼게요.”

유지은은 보법을 펼쳐서 타디그레이드의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둔하기 그지없는 타디그레이드는 그녀가 다가온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거리가 좁혀지자, 그녀는 타디그레이드의 목이라 생각되는 부분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평소에 몬스터를 벴을 때와는 사뭇 다른 소리가 들렸다.

검이 무언가에 막힌 소리였는데, 그녀가 검기를 배우고 나서 처음 듣는 소리였다.

‘흠집조차 나지 않았어….’

검기가 통하지 않는 몬스터라니.

실로 경악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까지 검기가 통하지 않은 경우는 특수한 능력을 가진 몬스터를 제외하면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한새 씨라면 다르지 않을까?’

그는 심안으로 ‘결’이란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박한새가 앞으로 나서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머, 먹혔어!”

“어떻게 된 거야? 진짜 잡아먹힌 거야?”

타디그레이드가 갑자기 입을 크게 벌려 박한새를 집어삼킨 것이다.

“한새 씨!”

유지은은 그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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