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밖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마 내가 타디그레이드에게 잡아먹힌 것을 보고 놀란 것일 터.
하지만 정작 타디그레이드 입 속으로 들어온 나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애초에 당황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의도한 일이었으니까.
‘타디그레이드를 잡을 방법은 입 속으로 들어가는 것뿐이다.’
극강의 방어력을 가진 타디그레이드의 유일한 약점.
회귀 전의 기억까지 포함하면 거의 20년 이상 타디그레이드를 경험했던 이성은도 다른 공략법을 찾지 못하였다.
‘뭐, 입 속도 마냥 안전한 것은 아니지만.’
타디그레이드의 입 속은 결코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일단 공간이 작아도 너무 작았다.
나를 잡아먹기 위해 벌렸을 때만 해도 고래 입처럼 거대했었는데, 정작 입 안은 비좁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꾸물꾸물.
더 큰 문제는 천장과 바닥에 붙어있는 수백 마리의 타디그레이드였다.
타디그레이드 입 안에는 강아지 크기의 타디그레이드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었던 것이다.
사사삭!
꾸물거리며 이동하던 수백 마리의 타디그레이드가 나를 발견하더니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었다.
바깥의 대왕 타디그레이드를 생각하면 같은 개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나는 달려오는 새끼 타디그레이드를 검으로 베고 또 베었다.
다행히 대왕 타디그레이드와 달리 조그만 타디그레이드는 방어력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그저 죽을 때 극독을 주변에 퍼뜨릴 뿐이었다.
물론 이마저도 검막을 쓰면 나에게 영향이 오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시간을 끌면 내가 죽을 수 있다. 서두르자.’
검막을 두른 채 검기를 사용하는 것.
당연히 내공 소모가 막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공이 전부 소모된다면 내 목숨도 거기서 끝이었다.
내공이 없는 나는 조금 강한 일반인일 뿐이니.
회귀 전에 이미 타디그레이드를 수차례 레이드 한 경험이 있는 나는 거침없이 타디그레이드의 입 속을 개척해나갔다.
입 안을 헤집고 다니자 고통스러웠는지 타디그레이드가 난동을 부렸다.
아마 바깥에서는 지진이 나고 아주 난리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그저 무언가가 끊임없이 검막을 두드리는 듯한 느낌만 받을 뿐이었다.
그렇게 타디그레이드의 입 속을 헤집고 다니자 마침내 타디그레이드의 심장이 보였다.
타디그레이드의 심장은 마치 광장과도 같은 큰 공간에 있었는데, 그곳에도 수십 마리의 새끼 타디그레이드가 대기하고 있었다.
물론 이미 수백 마리의 새끼 타디그레이드를 잡고 온 내게 그 정도 숫자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앞을 가로막는 것이면 무엇이든 베어낼 기세로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내 앞에는 타디그레이드의 커다란 심장만 남았다.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타디그레이드의 심장에 검을 내질렀다.
“구오오오오오!”
타디그레이드가 고통에 찬 포효를 내지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포효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심장이 파괴되었기 때문이었다.
박한새가 타디그레이드에게 잡아먹힌 순간, 러시아 헌터들은 패닉에 빠졌다.
“미친! 가장 강하다던 놈이 당해버렸잖아!”
“비각성자가 나대더니, 이럴 줄 알았다니까!”
“어떡하지? 저놈을 잡으려면 뭐를 해야 하는 거야?”
“일단 확실한 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거야. 빌어먹을!”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는 불사의 적.
그런 적을 상대하고 있을 때, 가장 강한 무력을 가진 아군이 당하였다.
러시아 헌터들로선 사기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난 도망가야겠어!”
“겁쟁이 새끼! 외국 놈들도 저리 싸우는데 도망치겠다고?”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
심지어 일부는 도망치기까지 하였다.
박한새가 타디그레이드에게 잡아먹히는 광경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박한새의 제자라고도 할 수 있는 한국의 헌터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총장님은 이런 곳에서 돌아가실 분이 아니다!”
“타디그레이드의 공격을 왜 피하지 않으셨겠어? 생각이 있으셨을 거야.”
“어쩌면 입 속으로 침투하는 게 타디그레이드의 공략법이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지.”
박한새는 이런 그들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다.
마치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나기라도 한 듯, 타디그레이드의 몸이 크게 출렁였다.
“새로운 기술일 수 있어! 조심해!”
국제 헌터 협회 소속의 헌터들이 기겁하며 물러났다.
지금까지 타디그레이드가 했던 공격은 그렇게 위협적이지는 않았었다.
지진을 일으키거나 몸통박치기를 하거나, 새끼 타디그레이드를 소환하여 공격하거나.
고랭크 헌터라면 쉽게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의 공격만 하였었다.
하지만 타디그레이드는 8성급 던전 보스였다.
타디그레이드가 작정하고 공격을 시도한다면 분명 만만치 않은 공격이 들어올 것이다.
그러니 헌터들로선 타디그레이드의 사소한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헌터들이 뒤로 물러난 와중에도 무언가 터지는 소음이 계속 들렸다.
“소리가 멈췄다!”
“타디그레이드의 움직임도 멈췄는데? 뭐지?”
“죽은 거 아니야?”
“죽었다고? 이렇게 갑자기?”
발작하듯 몸을 뒤척이던 타디그레이드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모두가 의아한 눈으로 타디그레이드를 바라볼 때, 죽은 듯 잠잠하던 타디그레이드의 입이 작게 열렸다.
그리고 그 입에서는 사람으로 보이는 이가 튀어나왔다.
“총장님이다!”
“와! 총장님이 해내셨어!”
“역시! 몬스터에게 당할 사부님이 아니시라니까!”
사내, 박한새를 본 순간 무공 아카데미 학생들은 함성을 내질렀다.
타디그레이드의 죽음이 확실시된 순간이었으니 그들이 함성을 내지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수천 마리의 몬스터로 이루어진 군대가 러시아의 우랄산맥을 넘고 있었다.
“저, 저게 뭐야?”
“몬스터다! 도망쳐!”
“정부는? 헌터들은 어디 있지?”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수천 마리의 몬스터를 발견한 사람들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8성급 던전 브레이크 사태가 벌어지면서 이미 전쟁 통이나 다를 게 없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우랄산맥 서쪽은 그나마 조금씩 혼란이 수습되어가고 있었다.
수도인 모스크바에 가까워질수록 파견된 헌터 수준도 올라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혼란이 수습되어가는 과정에서 갑자기 수천 마리의 몬스터가 등장하였다.
당연히 사람들은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도망치는 자, 죽을 것이다. 살고 싶으면 투항해라.”
“살고 싶으면 투항해라!”
하지만 더 충격적인 광경이 사람들 눈앞에 펼쳐졌다.
여기서 말하는 충격적인 광경이란, 몬스터 부대가 사람들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광경이었다.
물론 정확하게 말하면 몬스터들이 항복을 권유한 것은 아니었다.
몬스터가 아닌, 몬스터를 마치 말처럼 타고 있는 ‘같은 인간’이 항복을 권유하였던 것.
“다, 당신들은 누굽니까? 누구기에 몬스터와 함께하고 있는 겁니까?”
“우리는 여명회. 파롤이란 신을 모시는 자들이다.”
“파롤? 그자를 따르면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우리를 따르는 자, 신의 축복을 받을 것이다. 더는 몬스터를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며, 몬스터보다 더 강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5사도, 아니트리 코프헤브가 이끄는 여명회 세력이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몬스터가 항복을 권유했다면 항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같은 국적의 사람이 항복을 권유한다면?
심지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항복을 권유한다면 어떨까.
열에 아홉은 항복을 할 수밖에 없을 거다.
우랄산맥에서 갑자기 출몰한 몬스터 부대는 모스크바를 향해 쾌속 전진하였다.
헌터와 군대가 그들을 막으려 하였으나, 중과부적이었다.
원래라면 필사적으로 싸워서 몬스터 부대의 진격 속도를 늦췄겠지만, 여명회 신도들이 항복을 권유하자 결사 항전을 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
그 덕에 몬스터 부대는 막힘없이 쾌속 전진할 수 있었다.
“무공의 창시자란 자가 타디그레이드를 잡았다고?”
수천 마리의 몬스터 부대는 5성급 이상의 몬스터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몬스터 부대의 정중앙에는 앤트 자이언트로 이루어진 개미 군단이 있었는데, 그 개미 군단을 이끄는 것은 여왕개미가 아니었다.
바로 사람.
정확하게 말하면 5사도, 아니트리 코프헤브란 자가 개미 군단을 이끌고 있었다.
“예, 타디그레이드의 입 속으로 들어가 심장을 파괴하였다고 합니다.”
“확실히 위협적인 놈이군. 나조차 엄두도 못 냈던 타디그레이드를 잡다니 말이야.”
아니트리 코프헤브는 혀를 내둘렀다.
박한새를 일개 비각성자라고 무시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 그의 활약을 보면 일개 비각성자가 아니라, 그야말로 세계 최강의 헌터라 칭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하필 그렇게 강한 놈이 러시아로 오다니.’
운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여명회의 5사도인 아니트리 코프헤브는 오랫동안 힘을 감춰왔다.
힘을 비축하고 또 비축한 뒤에 기회가 올 때 과감하게 승부를 볼 계획이었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8성급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한 것이다.
아니트리 코프헤브는 더 망설이지 않고 진격을 선택하였다.
힘을 오래 비축한 덕분인지, 그의 진격에 러시아 헌터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였다.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이대로 진격을 멈추지 않는다면 한 달 안에 러시아란 나라를 세계 지도에서 지울 수도 있으리라.
그런데 하필 이때 박한새가 등장하면서 대계가 흐트러지게 되었다.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감히 나를 방해해?’
아니트리 코프헤브는 이를 갈았다.
마음 같아선 진격 방향을 돌려 박한새를 짓밟아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러시아 정부를 무너뜨리는 것.
박한새를 징벌하는 것은 나중으로 미뤄도 문제 될 것은 없으리라.
박한새가 핵으로도 막을 수 없었던 ‘재해급’ 몬스터, 타디그레이드를 레이드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 세계를 강타하였다.
“진짜 그자는 한계가 없는 거 같아.”
“그러게. 무공이란 게 이 정도로 대단할 줄이야.”
“박한새 정도면 세계 최강자로 칭해도 이상할 게 없을 거 같은데?”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실로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실상 단독으로 8성급 던전 보스를 잡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의 반응이 이렇게 열광적인데, 헌터들이라고 반응이 뜨뜻미지근할 리는 없었다.
특히 시베리아에서 박한새와 함께 움직이고 있는 러시아 헌터들은 박한새의 무력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S랭크 헌터를 쓰러뜨렸다는 소문이 절대 과장된 게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 그들은 박한새를 찬양하기 시작하였다.
“S랭크급 강자라는 표현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달았어.”
“그러니까. 저게 S랭크급 강자면 나는 D랭크밖에 안 될 거야.”
“심지어 단순히 강하기만 한 것이 아니래. 무공이란 것을 만들어내기까지 했어.”
“대단하다, 진짜.”
“아마 그는 헌터가 아니면서도 헌터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기록되는 인물이 될 거야.”
“그나저나 나도 무공을 배워보고 싶은데, 기회가 있을까?”
“기회가 있든, 없든 무조건 배우려는 시도를 해봐야 해! 너도 봤잖아, 한국 헌터들이 얼마나 강한지!”
“누가 그러던데. 무공을 배우려면 한국어부터 배워야 한다고.”
“한국어를 배우라고? 그까짓 것, 배우고 말지. 무공을 배울 수만 있다면 그게 뭐 어려워?”
박한새가 러시아에 오기 전까지는 무공이란 것을 아예 알지도 못했던 러시아 헌터들이, 지금은 너 나 할 것 없이 무공을 배워야 한다고 소리쳤다.
그만큼 박한새와 박한새의 제자들이 보여준 모습은 러시아 헌터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