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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159화 (159/275)

#159화

8성급 던전 레이드, 이른바 ‘개미 여왕 토벌전’을 총지휘하는 헌터는 이고르 바실예프였다.

그는 협회장의 동생이었는데 협회장과 마찬가지로 S랭크 헌터로 알려져 있었다.

“선발대가 전원 몰살당했다고?”

본부의 헌터들은 기차에서 내린 뒤 도로를 타고 천천히 행군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선발대가 몰살당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드미트리 이 병신 같은 놈!”

이고르 바실예프는 선발대 대장의 이름을 외치며 욕지기를 내뱉었다.

무려 100명의 고랭크 헌터를 데리고 가서 제대로 된 정보도 주지 못하고 몰살당했으니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으리라.

‘빌어먹을! 시작부터 재수 없게 되어버렸어!’

박한새란 이름의 비각성자가 이끄는 레이드 부대는 타디그레이드를 잡고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박한새보다 훨씬 많은 병력을 동원한 그가 벌써 100명의 피해를 보았다.

이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실패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이고르 바실예프가 이번에 출정할 때 세운 목표 중 하나가 바로 박한새를 압도하는 레이드 성적을 내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레이드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 레이드를 포기하면 그는 아예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명예를 잃고 말리라.

“선발대가 그토록 무기력하게 당한 이유가 뭐지?”

“개미지옥이라고 아십니까?”

“개미귀신이 함정을 파서 사냥하는 법을 말하는 건가?”

“선발대도 바로 그 개미귀신의 수법에 당한 듯합니다.”

“함정에 당했다는 말이야?”

“몬스터 주제에 함정이라니.”

그는 헛웃음을 흘렸다.

역시 8성급 던전이라는 건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패턴이었다.

‘아무리 함정을 팠다지만, 텔레파시 능력자가 몇 명인데 정보 하나 못 남기고 몰살이라니.’

이고르 바실예프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할 때, 부관이 그에게 말하였다.

“그리고 이건 확인되지 않은 정보라 말씀드리기 조심스러운데, 몬스터 부대를 이끄는 것이 보스 몬스터가 아닌, 인간이라고 합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보스 몬스터는 개미 여왕이 아니었어?”

“당연히 개미 여왕으로 알고 있었는데, 정보부에서 전하기를, 개미 여왕의 머리 위에 인간으로 보이는 자가 타 있었다고 합니다.”

“인간이 몬스터를 부린다는 건가?”

“그렇게 신빙성 있는 정보는 아닙니다.”

“몬스터 부대를 이끄는 인간이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사람이 어떻게 몬스터를 통제한단 말인가.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인간형 몬스터라. 이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오히려 잘됐다. 몬스터에게 피해를 본 게 아니라, 마피아나 반군 놈들이 깽판을 쳤다고 소문을 내면 되겠어.’

현재 그는 비각성자인 박한새와 실시간으로 비교당하는 상황이었다.

선발대 백 명이 당했다는 소식이 알려진다면 당장 언론부터 난리가 날 것이다.

같은 8성급을 레이드 하는데 박한새는 피해를 안 보고 그만 큰 피해를 보는 상황이었으니.

이렇게 되면, 아무리 협회장의 비호가 있더라도 그의 위상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몬스터에 당한 피해가 아닌, ‘빌런’의 개입으로 인한 피해라면?

그때는 변명의 여지가 있으리라.

오히려 빌런의 방해에도 레이드에 성공했다면서 ‘러시아의 영웅’이 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였다.

하지만 이때의 그는 몰랐다.

그가 단순히 변명거리로 삼으려 했던 ‘빌런 개입설’이 진짜였다는 사실을.

물론 그 빌런이 훗날 재해급을 넘어 ‘멸망급’ 빌런이라 불리게 될 거라는 사실도 몰랐고 말이다.

선발대의 전멸로 잠시 재정비 시간을 갖고 있는데, 협회에서 정보를 전해주었다.

몬스터 부대가 그들이 있는 장소로 접근하고 있다는 정보였다.

“수비를 준비하라!”

“수비 진형으로 갖추랍니다!”

“수비 진형! 수비 진형!”

이고르 바실예프의 지시에 헌터들이 신속하게 수비 진형을 갖추었다.

탱커가 가장 앞 열에, 그다음 근거리 딜러, 원거리 딜러 순으로 정렬하였다.

‘올 테면 얼마든지 와라!’

백 명이 당했다지만, 어차피 선발대의 헌터들은 정찰 계열의 헌터들이 대부분이었다.

전투 실력으로 따지면 본대에 못 미친다는 뜻이었다.

더군다나 헌터의 수는 칠백 명.

이중 C랭크 헌터가 오백, B랭크 헌터가 백오십, A랭크 헌터가 오십 명이었다.

S랭크 헌터도 무려 다섯이나 포함되어있는 전력이었으니 8성급 던전 보스가 아무리 강해도 두렵지 않았다.

“전방에 무언가 오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흔히 ‘천리안’이라 불리는 시력 강화 스킬의 소유자가 이고르 바실예프에게 그같이 말하였다.

“척후들은 전방에서 무엇이 다가오는지 확인하도록.”

이고르 바실예프가 정찰 계열의 능력자들에게 정찰을 명령하였다.

그러자 열 명의 헌터가 나무를 타며 천리안 스킬 소유자가 가리킨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그때, 그들이 달려가던 숲속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리가 들렸다.

탕탕탕!

다름 아닌, 총소리였다.

“이건 또 뭔 소리야?”

“군복을 입은 자들이 아군을 향해 사격하였습니다.”

“군이 우리를 공격했다고?”

이고르 바실예프는 미간을 찌푸렸다.

군부가 아무리 헌터들을 싫어한다고 해도 갑자기 이렇게 명분 없이 그들을 공격할 리는 없었다.

‘진짜 빌런들이 몬스터 편에 가담하기라도 한 건가?’

그는 처음으로 ‘빌런 개입설’을 진지하게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소총 정도로 고랭크 헌터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척후들이 멀쩡한 상태로 군복을 입은 의문의 남자들을 이고르 바실예프의 앞에 끌고 왔다.

“너희들은 누구기에 우리를 공격한 거냐!”

“지금 당장 정체를 말하지 않으면 죽이겠다!”

곧 죽을 상황인데도 그들의 얼굴에서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결연한 의지가 드러나는 표정도 아니었다.

동태의 썩은 눈처럼 초점 없이 생기 없는 눈을 하고 있었다.

‘뭐야, 이놈들?’

이고르 바실예프는 눈살을 찌푸리며 감금 명령을 내렸다.

그 이후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발견하였다.

“선발대 생존자입니다!”

“생존자가 있었다고?”

이번에는 희소식이었다.

다 죽은 줄 알았던 선발대에 생존자가 남아있다는 소식이었으니.

하지만 막상 생존자의 얼굴을 본 이고르 바실예프는 찝찝한 기분을 느꼈다.

생존자들이 아까 사로잡았던 군인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얘네들 표정이 왜 이래?”

의아함을 느낀 순간, 갑자기 선발대 생존자들이 스킬을 사용하며 그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미, 미친!”

“배신입니다!”

“일단 막아!”

동료 헌터들의 갑작스러운 배신에 헌터들은 패닉에 빠졌다.

몇 명은 스킬에 맞고 죽기까지 하였다.

“어떻게 할 거야? 설마 이유도 묻지 않고 죽이려는 건 아니겠지? 저 안에는 우리 길드의 길드원도 있어!”

“길드원은 무슨 길드원! 우릴 공격했는데 뭐 하자는 거야! 바실예프! 명령을 내려. 저놈들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라고!”

지휘관에 해당하는 S랭크 헌터들조차 선발대의 배신에 설왕설래하였다.

그만큼 예상치 못한 상황의 연속으로 헌터들 전체가 동요하고 있었다.

‘사람이 몬스터를 조종한다더니, 반대로 몬스터가 사람을 조종하는 것이었나!’

이고르 바실예프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개미 여왕이란 보스 몬스터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까다로운 상대임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뒤, 뒤에 몬스터들이 나타났습니다!”

“헉! 언제 저렇게 많은 몬스터가 후방에 나타난 거지?”

헌터들은 또다시 당황하고 말았다.

무려 오백이 넘는 앤트 자이언트가 그들 바로 뒤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동쪽에서도 몬스터 무리가 나타났습니다.”

“서, 서쪽도 보십시오! 오우거 무리입니다!”

나타난 몬스터는 앤트 자이언트뿐만이 아니었다.

오우거, 미노타우로스, 라미아, 회색 오크 등등.

5성급 이상의 몬스터들이 사방에서 대거 나타났다.

개미 여왕 토벌대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사면초가의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이다.

‘빌어먹을! 이런 전술을 사용하는 게, 무슨 몬스터야!’

아군의 반란으로 헌터들이 혼란에 빠진 틈에 사방에서의 기습 공격이라니.

이런 전술은 같은 인간도 사용하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일개 몬스터 따위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고차원적인 전술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이고르 바실예프로서는 그저 두렵게만 느껴졌다.

모스크바는 큰 충격에 빠졌다.

<개미 여왕 토벌전, 실패!>

<사상자만 무려 오백 명?>

<협회, 뼈아픈 자성! 지금은 책임 공방보다는 재토벌 준비해야 할 때.>

팔백 명의 헌터들이 당당하게 출전하였던 것이 불과 어제 일이었다.

그런데 겨우 하루 만에 그 팔백 명의 고랭크 헌터들이 전멸했단 소식이 들려왔다.

헌터든, 일반인이든, 이 사실에 놀라지 않을 러시아인은 아무도 없었다.

“개미 여왕 토벌대의 퇴각을 최대한 지원하였으나, 사실상 전멸하였습니다.”

“결국, 피해도 줄이지 못한 것인가.”

블라디미르 대통령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결과가 이게 뭐란 말인가.

“협회장은?”

“연락이 안 되고 있습니다.”

“정작 실패했을 때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군.”

개미 여왕의 토벌이 실패로 끝나기 전까지만 해도 제 집마냥 크렘린궁을 드나들던 헌터 협회장이었다.

하지만 개미 여왕 토벌이 실패로 끝이 나자, 어디로 갔는지 통 보이지가 않았다.

토벌대장이었던 그의 동생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서 두문불출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대로 권력이나 내려놓았으면 좋겠는데, 그럴 리는 없겠지?’

본인부터 일단 S랭크 헌터이고, S랭크 헌터인 동생도 여전히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처참한 패배로 위신이 예전만 못하겠지만, 협회장으로서의 권력을 포기할 정도는 아니리라.

“이참에 협회장의 사람을 전부 내쫓는 게 어떻겠습니까?”

비서실장의 제안에 대통령은 잠시 고민하였다.

그 역시 협회장의 세력을 줄이기 위해선 지금이 절호의 기회란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일단 그건 준비만 해두고, 개미 여왕을 처리하는 게 급하니, 도움부터 요청하도록 하지.”

“도움이라면, 한국의 헌터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러시아 헌터들을 불신하게 된 지금, 그가 믿을 수 있는 헌터는 한국의 헌터들뿐이었다.

“그나저나 무슨 아기가 된 기분이군.”

“아기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그에게 도와달라고 하고 있지 않은가.”

“상황이 상황이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원래는 그저 협회를 견제할 생각으로 불렀는데 말이야.”

“어떤 이유로 불렀든, 지금 생각하면 정말 현명한 결단이었습니다. 만약 그를 부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아무튼, 지금 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어주게.”

“대통령님이 직접 통화하시겠습니까?”

“그래도 러시아의 영웅인데, 내가 친히 연락해야 하지 않겠나?”

박한새란 인물은 세계 정상급 강자라고 불리는 인물이었다.

그런 이를 싸게 쓰는데 통화 정도야 어려울 것이 없었다.

‘이번에는 대충 200억 루블 정도만 주면 되겠지?’

200억 루블.

한화로 치면 5,000억이 조금 안 되는 돈이었다.

만약 이게 일개 개인에게 주는 돈이라면 아무리 정상급 헌터라고 해도 지나치게 비쌌다.

하지만 박한새는 일개 개인이 아니었다.

그가 동원하는 헌터만 무려 수백.

그것도 그 수백 명의 헌터는 하나같이 B랭크 이상의 강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정도의 헌터 집단을 200억 루블로 부린다면 엄청나게 남는 장사였다.

핵이나 전폭기를 동원해서 몬스터 부대를 막으려 해도 천억 루블은 우습게 깨질 테니까.

복구 비용까지 생각하면 더더욱 엄두가 안 났고 말이다.

-전화 받았습니다. 박한새입니다.

“대통령입니다.”

-예.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었음에도 박한새의 목소리는 어딘가 퉁명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대통령은 ‘영어를 잘 못하는가 보군.’이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넘어갔다.

러시아의 구원자인 박한새가 대통령인 자신에게 불경하게 대할 리는 없었다.

“부디 러시아를 도와주십시오. 개미 여왕의 진격으로 러시아가 무너지려 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역시 흔쾌히 도와주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통령이 속으로 흡족한 미소를 지을 때, 박한새가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라면 돈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돈은 필요 없습니다.

“그럼 무엇을 원합니까. 말만 하십시오. 러시아를 구원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드리겠습니다.”

-제게 시베리아를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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