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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160화 (160/275)

#160화

시베리아를 달라는 내 말에 블라디미르 대통령은 애써 화를 참는 기색으로 내게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지금 러시아의 영토를 달라고 하신 거 같은데…. 제가 잘못 들은 것이겠지요?

만약 내가 눈앞에 있었다면 버럭 화를 내지 않았을까 싶었다.

아무리 상황이 상황이라고 해도, 러시아는 중국과 ‘세계 2위의 군사 강국’을 다투던 나라였다.

그런 나라의 대통령에게 일개 민간인이 다짜고짜 영토를 달라고 했으니, 화를 내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물론 나는 더 이상 일개 민간인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정확하게는 시베리아의 던전을 원합니다.”

-던전이라고요?

영토야 내가 받아서 뭐 하겠는가.

내가 무슨 시베리아에다 제국을 건설해서 황제 놀이를 할 것도 아닌데.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시베리아의 넘쳐나는 던전이었다.

‘시베리아의 던전을 내가 맡는 것은 러시아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일이지.’

5사도가 러시아 정부를 완전히 무너뜨리기 직전, 이성은은 5사도를 죽이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현 5사도인 아니트리 코프헤브가 죽은 이후에도 시베리아에서는 제2, 제3의 5사도가 끊임없이 나왔다.

시베리아의 던전 수가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었다.

여명회에게는 그야말로 양질의 몬스터 수급처였기에 러시아는 끊임없이 여명회의 공격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회귀 전에는, 여명회로 인해 가장 빨리 멸망한 나라 중 한 곳이 되었다.

이성은이 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9성급이 열리기 전에 멸망하고 만 것이다.

‘덤으로 시베리아에는 내게 유용한 던전이 많지.’

영약을 생산할 수 있는 던전부터, 무공 아카데미 생도들의 훈련장으로 쓰일 던전.

그리고 언데드 몬스터가 존재하는 던전까지.

여명회가 던전으로 전력을 한층 강화하듯, 나 역시 시베리아의 던전들만 얻을 수 있다면 전력을 크게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좋습니다. 모스크바를 구원해주시기만 한다면 시베리아를 드리지요.

어차피 나는 모스크바를 구원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덤으로 시베리아의 던전들까지 얻게 되었으니 남는 장사가 아닐 수 없었다.

‘아마 협회를 견제하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겠지?’

뭐가 됐건, 나 역시 러시아 협회의 무능함을 알고 있었기에 그들을 대신하는 것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공항엔 왜 가는 거야?”

“이번에는 모스크바로 간다던데?”

“모스크바? 거기는 또 왜? 지금까지 잘 막고 있지 않았어?”

“우랄산맥에서 8성급 던전이 터졌는데 몬스터들이 다른 곳으로 안 가고 모스크바 방향으로 진격한다더라.”

“그래서 또 우리가 가는 거야? 아니, 이 나라는 언제까지 의존만 하려는 거야?”

“의존하지 않으려고 자기들끼리 갔다가 몰살당했다잖아.”

“진짜 우리 총장님 아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니까. 솔직히 총장님이 러시아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니까? 아무런 대가 없이 수억 명의 러시아인을 구해준 거잖아.”

“그래도 이번에는 아무런 대가가 없지는 않다더라.”

“아, 시베리아의 던전을 주는 거? 그거야 러시아 협회가 무능하니까, 총장님이 대신 던전을 관리해주려 하는 거지. 오히려 러시아에서 고마워해야 할 일 아니야?”

“하긴, 무능한 러시아 헌터들을 보면 이번 위기를 넘긴다고 해도 8성급 던전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안 들어.”

“총장님이 던전을 맡는 것도 러시아를 위한 행동이라니까.”

학생들이 투덜거리며 불만을 토로하였다.

그들은 지금까지 두 시간 이상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그야말로 강행군을 하였다.

만약 그들이 무공을 배우지 않았다면 이미 체력이 방전되고도 남았으리라.

그런데 이렇게 지친 상태에서 이제는 더 먼 모스크바로 가야 하니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일부 학생들은 달랐다.

“우리가 가지 않으면 러시아는 어쩌게? 수억의 사람들이 고통받는 걸 외면할 거야?”

“힘들어도 참아! 총장님은 전리품조차 포기하며 강행군을 하고 계시잖아!”

“다른 나라의 사정을 봐! 이것도 경쟁이야. 최정예만 모인 우리 1반이 다른 반에게 질 수는 없다고!”

몇몇은 박한새가 그토록 강조하던 ‘인류애’ 때문에.

그리고 몇몇은 박한새에 대한 존경심으로, 나머지는 다른 반과의 경쟁심으로 사기를 끌어 올렸다.

“학생들의 사기가 많이 낮아졌어요.”

“사실 지칠 수밖에 없죠. 처음으로 겪는 8성급 던전이었으니까요.”

제대로 된 전투를 치르지 않아서 아직은 여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유지은의 말처럼 학생들은 8성급 던전을 처음 경험하였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어도 아마 엄청난 정신적 부담을 느꼈었을 터.

그런데 몇 시간도 채 휴식을 취하지 않은 채 바로 먼 곳으로 떠나야 한다고 하니 사기가 좋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1기생들은 온실 속의 화초가 될 일은 없겠어. 무공에 익숙해질 때쯤 바로 실전을 경험하였으니 말이야.’

어찌 보면 시기적절한 타이밍이었다.

무공 아카데미의 학생 수는 무려 삼천 명.

이 중 헌터 수만 이천 명이었다.

만약에 한국에서 이 이천 명에게 실전 경험을 얻게 하려면 엄청난 자원과 시간이 소모되었을 터.

그런 의미에서 8성급 던전 브레이크는 무공 아카데미 학생들에게는 하나의 기회라고 봐도 무방하리라.

물론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서두르자. 놈이 더 큰 인명 피해를 입히기 전에 제거해야 해.’

마음 같아서는 혼자 달려가 여명회 5사도를 처리하고 싶었다.

모스크바로 가려면 나 또한 비행기를 타기는 해야겠지만, 그래도 수백 명의 헌터와 같이 가는 것보다 훨씬 빨리 현장에 도착할 것이다.

하지만 8성급 던전이 열린 이상, 가능하면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은 피해야 했다.

8성급이 열렸다는 것은 성좌들의 힘도 더 강해졌다는 뜻.

실제로 장산군도에서 마주쳤던 7사도의 수하들도 만만치 않은 실력을 보여줬었다.

아마 리치와 듀라한 부대가 아니었다면 나도 조금은 고전했을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내가 더 강해지기 전까지는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은 피하는 게 좋았다.

‘8성급 던전으로 인한 혼란만 수습한다면 나도 수련에 집중하여 무력을 더 키우든가 해야겠어.’

여명회가 더 강해진 만큼 나도 더 강해져야 할 거 같았다.

언젠가 열릴 9성급 던전을 대비하여 절정의 경지를 넘어서기도 해야 했고 말이다.

여명회 5사도, 아니트리 코프헤브는 굉장히 신중한 성격이었다.

확신이 서기 전까지는 절대 행동하지 않는 그런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한번 행동에 나서면 대담하고 거침없는 추진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8성급 던전 브레이크 사태가 벌어진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섰다.

통제할 수 있는 한계치까지 몬스터 숫자를 늘렸고 여기에 서진하면서 인간들까지 전사 노예로 만들었다.

모스크바에서 보낸 원정대도 확실하게 잘라주었기에 그에게 남은 장애물은 이제 별로 없었다.

최후의 발악 정도만 막아준다면 러시아가 그의 것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이리라.

‘그런데 하필 이때 중대한 변수가 발생했단 말이지.’

아니트리 코프헤브는 ‘박한새’란 이름을 곱씹으며 이를 갈았다.

그가 속으로 생각한 변수란 다름 아닌, 박한새였다.

난데없이 러시아를 돕겠다며 한국에서 건너온 비각성자.

비각성자 따위가 대세에 영향을 끼칠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방심했건만, 박한새는 순식간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연해주의 던전 브레이크 사태를 모조리 정리하고는 타디그레이드까지 레이드 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군. 도대체 블라디미르 그놈이 무엇을 제시했기에, 박한새라는 자는 저리도 맹목적으로 러시아를 돕는 거야?”

돈 때문일 가능성은 극도로 적었다.

그가 조사해본 결과, 박한새는 엄청난 자본가였다.

한국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돈도 상당하였고 국제 헌터 협회에서도 수억 달러의 지원금을 받았다.

학생 개개인에게 받는 학비와 여러 길드에게 받는 후원금도 상당한 규모였고 말이다.

아마 박한새가 운용하는 자산의 규모는 조 단위는 족히 될 터.

그 자산이 박한새 개인의 자산은 아니겠지만, 그가 천문학적인 자산가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돈이 아닌 다른 것을 노린다면 그것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미 명성이면 명성, 권력이면 권력, 그 모든 것을 가진 사내였으니.

아니트리 코프헤브는 다시금 이를 갈더니, 누군가의 직급을 불렀다.

“인티머트 세크러터리.”

“예, 5사도시여.”

“놈이 다가온다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 거 같나?”

그의 책사이자, 여명회에서 인티머트 세크러터리란 직급을 가진 사내가 턱 끝을 쓰다듬었다.

그러더니, 냉정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만약 우리 병력만으로 놈과 정면승부를 한다면 거의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게 될 겁니다.”

책사의 말에 아니트리 코프헤브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도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는 당연히 예상했었다.

하지만 전멸을 예상할 정도라니.

그의 수하 중에서 가장 유능한 인티머트 세크러터리의 말이니 그냥 흘려들을 수도 없었다.

“비각성자라던데, 그놈이 그리 강한가?”

“자존심 강한 S랭크 헌터들이 그의 수족 노릇을 하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건 그렇군.”

“무엇보다 시베리아에서 보여준 놈의 무력은 실로 압도적이었습니다. 8성급 던전 보스인 타디그레이드도 사실상 그놈 혼자서 잡지 않았습니까?”

아니트리 코프헤브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전히 믿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박한새가 타디그레이드를 혼자서 잡은 것은 사실이었다.

박한새의 무력이 괜히 세계 정상급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리라.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 거 같나?”

“일단 나이트들을 불러야 합니다.”

“영주 놀이 하느라 바쁜 그놈들을 불러서 뭐 하겠다고?”

“굳이 우리 병력만으로 놈과 충돌하여 피해를 자처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나이트.

여명회의 신도 계급 중에서 중상위에 해당하는 계급이었다.

몇 사도의 밑에 있느냐에 따라 나이트의 권력이 달라지는데, 5사도의 밑에 있는 나이트들은 봉건시대의 귀족들처럼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였다.

즉, 5사도는 중세 유럽의 군주들처럼 절대 군주라고 보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러시아를 집어삼키기 전까지는 나이트의 힘을 빌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말이야.’

속으로 혀를 찼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명회 내부에서의 권력 다툼보다는 피해를 줄이는 게 우선이었으니.

“그리고 7사도와 협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거 같습니다.”

인티머트 세크러터리가 그답지 않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또 하나의 전략을 이야기하였다.

5사도와 7사도의 사이가 얼마나 안 좋은지 알고 있었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7사도와의 협상이라.”

아니트리 코프헤브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불쾌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하필 7사도지?”

“7사도의 세력권이 중국이지 않습니까? 중국은 한국의 이웃 나라이니 놈을 견제하기 좋을 겁니다. 이를테면 놈이 세운 학교를 부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 말을 듣고 아니트리 코프헤브는 눈을 빛냈다.

“한마디로 빈집털이를 시도할 수 있단 말이군.”

학교를 공격한다면 박한새는 학교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한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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