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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162화 (162/275)

#162화

적비단 단주, 진비우.

그는 세 명의 부단주를 불렀다.

“주군께서 마지막 기회를 주셨다.”

진비우만 죄인인 것이 아니었다.

세 명의 부단주 역시 7사도에게는 죄인이나 다를 게 없었다.

13연맹과의 전쟁에서 연전연패를 거듭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중과부적이긴 했다.

만약에 상대가 13연맹 하나뿐이라면 적비단의 힘으로 압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무공’을 익힌 한국의 헌터들이 개입했다는 점이었다.

한국의 헌터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개입으로 13연맹과의 전쟁은 패퇴를 거듭하였다.

“마지막? 이번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기라도 한답니까?”

“죽을 것이다.”

“제기랄! 단주, 협박 좀 그만하세요. 협박하지 않아도 어차피 명령을 따를 것인데, 기분만 잡치잖아요.”

유일한 여성 부단주인 쑹춘리가 뾰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사실만 말했을 뿐이다.”

“됐고,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뭔데요?”

“우리는 한국의 무공 아카데미를 공격할 것이다.”

“무공 아카데미를 말씀입니까?”

“그래! 무공 아카데미를 공격하고 그곳에 있는 교수들을 납치하는 게 우리의 목표다.”

“우리가 한국에 간다면, 우리 사업장은 누가 지킵니까?”

“그러니까요. 지금 급한 게 뭔지 모르세요?”

원래라면 13연맹의 공격으로부터 본토를 지켜야 할 상황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적비단의 사업장은 공격받고 있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키워 왔던 사업 영역을 적에게 빼앗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진비우는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단호하게 말하였다.

“주군의 명령이니 그저 따르면 될 일이다.”

부단주들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진비우와 달리 여명회나 7사도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지는 않았다.

그저 강하기에 따르는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강함’ 때문에 그들은 이견을 내놓을 수 없었다.

괜히 명령에 따르지 않고 반항했다가는 사업장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목숨이 사라지게 될 테니까.

“좋아요. 어차피 지금 무공 아카데미의 본거지에는 약자들밖에 없다죠? 복수도 할 겸, 그들의 본거지를 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네요.”

“단주, 비각성자 따위 단숨에 박살 내고 돌아오겠습니다.”

“나 역시 갈 것이다.”

“와아, 단주까지 간다고요? 이번 일을 꽤 중요하게 생각하나 보죠?”

“내가 말했을 텐데.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다른 건 몰라도 무공을 가르칠 수 있는 교수를 데려오는 임무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박한새의 제자를 죽이는 것도 물론 중요한 임무이긴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임무는 역시 ‘납치’였다.

무공 아카데미에는 교수급 인력이 몇 명 있었고 이들만 납치한다면 적비단도 무공이란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

물론 7사도가 적비단에게 무공을 배울 기회를 언제쯤 줄지는 의문이었지만 말이다.

현재 무공 아카데미에 잔류한 이들 중 헌터는 교수 몇 명과 조교들뿐이었다.

학생이고 교수고 헌터는 모두 외국으로 떠났다는 것.

반면 비각성자들은 한국에 잔류하였다.

아직 헌터 라이선스 취득이 불가능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실력 차이가 크기 때문이었다.

27반의 송하윤은 비각성자이기에 당연히 무공 아카데미에서 잔류하고 있었다.

“나도 활약할 수 있는데….”

그녀는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보다, 아쉬운 목소리로 그같이 말하였다.

“진. 너는 아쉽지 않아? 우리 반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나잖아.”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내가 아직 실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니까.”

“우리 반 반장인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나는 뭐가 되냐.”

허진은 어깨를 으쓱하였다.

그는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있는 사람이었다.

8성급 던전 브레이크에서 활약하는 것?

아무리 그가 무공을 배웠다지만, 지금 실력으로는 몬스터 한 마리나 제대로 상대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협회에서 비각성자들도 라이선스를 취득할 수 있게 바꾼다고 하니, 그걸 기다려야지.”

“우리도 나중에 각성반 아이들처럼, 영웅이 될 기회가 생길까?”

“언젠가 분명히 기회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던 도중, 갑자기 폭음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정문 쪽에서 비명이 들렸는데 그 비명을 듣고 허진은 눈을 부릅떴다.

“비, 빌런의 습격이다!”

빌런의 습격이라니.

실로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하지만 폭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계속해서 이어지는 비명은 현재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려주었다.

“아무래도 영웅이 될 기회가 지금 생긴 모양이네.”

“…그러게.”

“왜, 막상 기회가 생기니 두려워?”

“아니! 너무 기뻐서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려!”

허진은 그런 송하윤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무기를 챙겼다.

송하윤 역시도 그와 행동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무기를 챙긴 뒤 곧바로 소란이 벌어진 장소로 뛰쳐나간 것이다.

한편, 기공 수련실에서 호흡법에 열중하던 안능희도 사람들의 비명을 들었다.

‘빌런이라고?’

그녀는 송하윤처럼 들뜨거나, 반대로 두려움을 느끼거나 그러지 않았다.

극도로 절제된 움직임으로 현재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었다.

‘침입한 빌런은 대략 백 명.’

옥상으로 올라가 정문에 보이는 빌런의 수를 확인하였다.

흑복을 입은 사람은 모두 백 명.

경비를 맡은 오성 길드의 헌터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을 보면 실력이 상당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던 중 빌런 일부가 기공 수련실 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안능희는 바로 건물 아래로 내려와서는 빌런의 앞을 막아섰다.

“이 건물에 접근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그녀가 그리 외쳤으나, 괴한들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들끼리 중국어로 뭐라고 외치며 그녀에게 다가올 뿐이었다.

몇몇은 비웃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뭐라고 하였는데, 굳이 해석을 하지 않아도 그 말이 성희롱임을 알 수 있었다.

그녀에게 다가와서 가장 먼저 한 행동만 봐도 그랬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대뜸 그녀의 가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공격을 위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그저, 가슴을 만지려는 의도였다.

안능희는 단호하게 응징하였다.

검기를 가득 실은 검으로 우두머리의 팔을 베어낸 것이다.

빌런들이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악귀 같은 표정을 짓고는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가장 먼저 장발의 사내가 화염 채찍을 날렸다.

화르륵-!

몸에 닿지 않았는데도 뜨거운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온도가 상당하였다.

하지만 안능희는 침착하게, 그가 날린 화염 채찍을 검기를 두른 검으로 막아냈다.

그러자 탱커로 보이는 이가 콧김을 뿜어내며 그녀에게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빈틈을 노린 수법이었으나, 탱커는 그녀에게 접근하지 못하였다.

바로 근처까지 다가온 순간, 검기가 가득 실린 그녀의 검이 탱커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탱커가 거기서 공격을 왜 피해! 맞으면서 싸워, 병신아!”

“맞으면 뒤질 게 뻔한데, 지랄이야!”

“시발, 계집년이 그리도 무섭냐?”

“그러는 넌 뭐 하는 건데. 스킬도 없는 년을 상대로 무슨 싸움을 하는 거야?”

탱커와 원거리 딜러는 서로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투닥거렸다.

비각성자에게 시간이 잡아먹히는 것이 답답했기 때문이었다.

둘의 다툼은 당연히 안능희에게는 호재였다.

하지만 안능희는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적이 너무 많아.’

뒤늦게 다른 학생들이 그녀를 돕고자 건물에서 내려와 합류하였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의 실력은 그녀와 달리, 잘 쳐봐야 E랭크 헌터 수준이었다.

그래도 몸놀림이 날렵해서 아직 다친 사람은 없지만, 장기전으로 갈수록 급격히 불리해질 것이다.

안능희도 마찬가지였지만, 비각성자 무인들은 고질적으로 내공이 부족하였다.

아마 몇 분만 버텨도 많이 버틴 것이리라.

“물러나! 놈들은 우리가 맡겠다!”

타이밍 맞게 진법 교관들이 나타났다.

어찌 보면 그들과 같은 비각성자였지만, 학생들은 든든한 눈빛으로 진법 교관들을 바라봤다.

진법 교관들은 순식간에 상황을 종료시켰다.

기공 수련실 건물 앞에 나타난 다섯 명의 괴한을 순식간에 제거한 것이다.

“모두 건물 옥상에 올라가 숨어있도록.”

강충구의 말을 들은 학생들이 큰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하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유일하게 단 한 명, 안능희만은 움직이지 않았다.

“안능희 학생! 대피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뭐 하시는 거예요! 서둘러 움직이세요!”

강충구의 사매가 그리 묻자, 안능희가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같이 싸우겠습니다.”

“비각성자라서 싸우지 못할 거란 말씀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녀의 당찬 말에 진법 교관 중 한 명인 김휘니가 강충구에게 물었다.

“사형, 어떻게 하죠?”

“데려가자.”

“괜찮을까요?”

“너희들도 알잖아. 안능희 학생의 실력을.”

“군인이었으니 실전 경험도 충분해. 방해될 일은 없을 거다.”

“사형의 생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안능희는 진법 교관들과 함께 빌런 진압에 나섰다.

적비단 단원들은 무공 아카데미 학생들의 강한 저항에 당황하였다.

“분명, 비각성자들이라고 하지 않았어?”

“빌어먹을! 저게 어떻게 비각성자야!”

처음 무공 아카데미를 기습할 때까지만 해도 어렵지 않은 임무라고 생각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습격에 동원된 적비단 단원은 무려 백 명이 넘었다.

그중에는 S랭크급 강자가 세 명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단주인 진비우와 부단주 두 명이 습격에 동원되었던 것이다.

이렇다 보니 적비단은 자신감이 넘쳐흐를 수밖에 없었다.

비각성자들 따위, 천 명이 아니라 만 명이 있어도 두려울 게 없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그들이 무시했던 ‘비각성자’들이 변수를 일으켰다.

“리시엔이 당했다!”

“아니, 리시엔이 어떻게 스킬도 없는 자들에게 당할 수가 있지?”

C랭크 빌런 리시엔.

공격력은 형편없지만 방어 스킬을 두 개나 가지고 있어, 탱커로는 훌륭한 전력이었다.

그런 리시엔이 스킬도 사용할 줄 모르는 비각성자들에게 당하였다.

적비단 단원들로선 실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비켜! 내가 가겠다!”

여유를 부리던 부단주 중 한 명인 쑹춘리가 뒤늦게 공세에 나섰다.

확실히 S랭크급 강자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단원들의 공격은 곧잘 막아내던 무공 아카데미 학생들이 쑹춘리의 공격에는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그때, ‘진법 교관’이라는 자들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그들은 요란하게 진형을 갖추었는데, 마치 고슴도치가 가시를 세운 느낌이었다.

“너희들이 그렇게 뭉치면 달라질 거 같아?”

쑹춘리는 뾰족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조무래기가 뭉쳐봤자 달라질 게 뭐가 있겠는가.

적비단 부단주들을 괜히 S랭크급 강자라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 한 명, 한 명이 C랭크 헌터 수십 명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열 명의 비각성자들이 아무리 C랭크 헌터 이상의 무력을 보여줘도 쑹춘리 입장에서, 그들이 같잖게 느껴지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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