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이것들 도대체 뭐야?’
쑹춘리는 자신이 환술에 당한 게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진법 교관이라는 자들과의 전투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이것도 막을 수 있나 보자!”
그녀의 주력 스킬은 염수력.
즉, 물을 다루는 능력이었다.
주로 허공에 수백 개의 물방울을 생성한 뒤, 총알처럼 쏘아내는 식으로 스킬을 활용하였다.
“C 포지션으로!”
강충구는 쑹춘리가 허공에 물방울을 생성하는 모습을 보더니 바로 포지션 변경을 지시하였다.
그러자 열 명의 진법 교관이 한 몸처럼 움직여 새로운 포지션을 만들었다.
‘포지션을 바꾼다고 뭐가 달라질 거 같으냐!’
쑹춘리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고 속으로 외쳤다.
실제로 겉으로만 봐서는 오히려 이전의 포지션보다 더 빈틈이 많아 보였다.
캉! 캉! 캉!
하지만 막상 결과를 보면 그들이 왜 지금 포지션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분명 나는 열 명을 동시에 노렸는데 어째서…!’
또다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그녀는 협회에서 인정하는 S랭크 헌터는 아니었으나, S랭크급 실력을 가졌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당연히 스킬을 다루는 실력도 일반적인 헌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능숙하였다.
100m 바깥에 세워진 음료수 캔도 정확하게 맞힐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진법 교관이라는 자들을 노리려고 할 때면 명중률이 극악으로 떨어졌다.
포지션 C라는 것을 들고 나올 때는 명중률이 떨어지는 수준을 넘어 자석마냥 앞 열의 세 명에게만 스킬이 날아갔다.
심지어 그 세 명의 진법 교관은 마치 가속 스킬이라도 사용한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검을 휘둘러 그녀의 공격을 막아냈다.
‘도대체 이놈들, 무슨 사술을 쓰는 거야?’
한편, 적비단 단주인 진비우도 당황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 여자, 분명 일개 조교수라고 들었는데….’
무공 아카데미에 교수진은 거의 남지 않았다.
남은 이들의 직급도 정교수, 부교수, 조교수로 이어지는 직급 체계에서 가장 말단인 조교수였다.
실력이 전부인 헌터의 세상에서 직급이 가장 낮다는 말은 실력이 낮다는 말과 다를 게 없을 터.
하지만 정작 조교수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여인, 유현경은 막강한 무력을 보여주었다.
‘어찌 스킬도 없는 자가 내 스킬을 막을 수 있는 거지?’
그냥 막아내는 것도 아니었다.
“아, 귀찮게 왜 나한테 와서 난리야. 배고파 죽겠는데.”
왼손으로 배를 벅벅 긁으며 공격을 막아내는 그녀의 모습에 진비우는 눈을 부릅떴다.
중국에서는 그 누구도 그의 앞에서 여유를 보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름 한번 들어본 적이 없는 여인이 하품하며 방심하는 모습을 보이니 그로선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감히 나를 무시하는 것이냐!”
“시끄럽게 아까부터 중국어로 쫑알쫑알 뭐라는 거야.”
“가만두지 않겠다!”
“그런데 중국인 아저씨. 아까부터 급소를 노리지 않고 엉뚱한 곳만 노리던데, 설마 손속에 사정을 두고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만약 그렇다면, 초짜 주제에 너무 건방진 생각인데?”
“이 건방진 년!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앞에서 방심한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서로가 서로에게 건방지다고 말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정작 두 사람의 전투는 그 어떤 전투보다 치열하였는데 말이다.
모스크바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무공 아카데미가 중국어를 사용하는 괴한들에게 공격받고 있다는 정보를 접하였다.
“아니, 무공 아카데미를 어떤 놈들이!”
교수와 조교들이 기겁한 얼굴로 소리쳤다.
무공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나의 제자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제자이기도 했다.
애초에 무공 아카데미의 일원으로서 자부심과 소속감이 남다른 그들이었기에 무공 아카데미가 공격당했다는 소식에 분개할 수밖에 없었다.
“총장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지금 바로 비행기를 돌리는 게 좋지 않을지.”
지금이라도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맞는 선택일까?
‘블라디보스토크에 웨이포인트를 찍어놨으니 나 혼자라면 바로 돌아갈 수 있기는 해.’
타디그레이드를 잡고 얻은 와그너의 신발.
나는 이 신발을 얻고 시베리아 곳곳에 웨이포인트를 찍었다.
이동이야 하루에 한 번밖에 못 한다지만, 웨이포인트를 찍는 것은 제한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찍은 웨이포인트 중에는 한국과 비교적 거리가 가까운 블라디보스토크도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순간이동 한다면 시간 내에 무공 아카데미에 도착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하지만 그랬다가는 러시아가 무너질 수 있다.’
나 없이 5사도의 군세를 막아낼 수 있을까?
남들이 생각하기에는 자의식 과잉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미래를 경험한 사람이었다.
회귀 전의 러시아는 5사도의 군세를 막지 못하고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나마 이성은이 구세주처럼 나타나지 않았다면 러시아뿐만이 아닌, 동유럽까지 위기에 처했을 터.
그렇기에 나로선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무공 아카데미도 내게는 중요하였지만, 수억의 인구를 지키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였으니까.
“쳐들어왔다는 괴한의 수는 모두 합해 몇 명이랍니까?”
“확인된 바로는 C랭크 이상의 고랭크 헌터가 백 명이라고 합니다.”
C랭크 이상의 강자가 백 명이라.
실로 엄청난 전력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백 명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심지어 그중에 S랭크급 강자도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S랭크급 강자 말입니까?”
“예. 그래도 어찌어찌 유현경 조교수와 진법 교관들이 막아내고 있는 듯합니다.”
S랭크급 강자 세 명에 C랭크 이상의 무력을 가진 백 명의 헌터.
무공 아카데미에 잔류한 인원이 대부분 비각성자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했다.
“계획은 바꾸지 않겠습니다. 그대로 모스크바로 가겠습니다.”
“하, 하지만 총장님. 학생들이 위험에 처해있는데….”
“저는 우리 학생들을 믿습니다. 물론 유현경 교수를 비롯한, 조교와 교관들도 믿고 있고 말입니다.”
유현경과 일부 조교를 제외하면 비각성자들밖에 없다는 게 걱정 요소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나 역시 비각성자였다.
‘무공을 익힌 한, 그 사람은 비각성자도, 헌터도 아니야. 그저 무인일 뿐.’
제자들을 어린아이 취급할 거였으면 던전 브레이크 사태에서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서도 안 됐다.
그러니 지금은 제자들을 믿고 나는 내가 할 일을 하는 게 맞는 선택이었다.
“나이트들의 병력이 모두 집결 완료하였습니다.”
5사도, 아니트리 코프헤브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거의 만에 가까운 병력이 모였다.
여명회 역사에서도 이만한 대군단을 모은 역사는 없었다.
심지어 6성급 이상의 몬스터가 절반 이상이었다.
세상 그 어떤 나라, 어떤 단체도 이 대군단을 막을 수 없으리라.
‘아니, 한 곳은 예외일 수 있겠어.’
한 명, 한 명이 고랭크 헌터라는데 그 숫자가 이천 명이 넘는 곳이었다.
그곳이라면 아니트리 코프헤브가 모은 대군단을 막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으리라.
‘하지만 그놈들은 이곳에 올 수 없을 거다.’
무려 개미 여왕의 딸을 주기로 약속하고 7사도에게 빈집 털이를 시킨 상태였다.
개미 군단을 생산할 수 있는 개미 공주의 가치는 실로 엄청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 엄청난 가치의 몬스터를 7사도에게 주면서까지 무공 아카데미를 견제하였으니, 그들의 개입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일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리고 7사도는 아무래도 실패한 거 같습니다.”
인티머트 세크러터리의 말에, 아니트리 코프헤브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주 전력이 러시아에 있는데도 빈집 털이에 실패하였다고? 다른 전력이라도 있었던 건가?”
“현재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무공 아카데미의 비각성자들이 예상치 못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합니다.”
“비각성자들에게 막혀서 공격에 실패했다는 거야?”
“예, 들려오는 소식은 그렇습니다.”
“창웨이, 이 무능한 새끼!”
무능해도 이리 무능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순간, 아니트리 코프헤브는 7사도가 자신과 같은 12사도 중 한 명이라는 사실에 역겨움을 느꼈다.
“그래서 박한새란 놈이 데려온 헌터가 몇 명이지?”
“모두 합해 이백 명입니다.”
모스크바까지 박한새를 따라온 헌터의 수는 모두 합해서 이백 명이었다.
아무래도 시베리아의 위기 상황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기에 러시아 헌터를 비롯하여 무공 아카데미 조교들도 일부 남기고 온 것이다.
“겨우 이백?”
아니트리 코프헤브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가 무공 아카데미의 세력을 고평가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모스크바까지 데려온 인원이 이백 명에 불과하다니?
“어지간히 나를 우습게 봤나 보군.”
“그만큼 자신감이 대단하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런 건 자신감이 아니라, 만용이라 부르는 거야.”
“뭐, 지금까지 박한새라는 자가 이룬 업적을 생각하면 만용을 부려도 이상할 게 없을 거 같긴 합니다.”
혼자서 8성급 던전 보스를 잡을 정도이니.
심지어 무공 아카데미의 교수들이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이들은 전부 박한새의 제자였으니, 이들의 활약은 곧 박한새의 업적이나 다름없으리라.
“아무리 놈이 강해도 이백 명으로는 우리의 군세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모스크바가 코앞이었다.
박한새가 데려온 헌터가 이백 명뿐이라면 그의 군세로 단숨에 밀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공항에 사람이 참 많네요.”
“전부 이 나라를 떠나려는 사람들 같습니다.”
“러시아의 상황이 많이 안 좋긴 한가 봐요.”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흔히 ‘개미 여왕’의 군대로 알려진 몬스터 부대의 규모는 그야말로 역대급이었다.
수천을 넘어 거의 만에 가까운 몬스터가 한곳에 뭉쳐서 모스크바로 달려오고 있었다.
러시아 정부에서는 이 몬스터 부대의 진격을 막으려고 갖은 수를 써보았지만 어떤 수도 통하지 않았다.
심지어 핵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5사도가 이끄는 몬스터들이 타디그레이드처럼 핵 공격을 버텨내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핵이 날아오면 땅속으로 들어가 핵을 피했기에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뭐가 됐건 러시아 정부만으로는 몬스터 부대의 진격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수차례 증명된 상황이었다.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피난길에 오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였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이들이 피난길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공항을 나오자 기자로 보이는 일단의 무리가 사냥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맹렬한 기세로 나에게 달려들었다.
“개미 여왕을 토벌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오셨다는데, 사실입니까?”
“이번에도 승리를 장담하십니까?”
“무공 아카데미가 지금 빌런의 습격을 받았다는데, 귀국하시거나 하지는 않으시겠지요?”
“두유 노 효도르?”
쏟아지는 러시아 기자들의 질문 세례는 대통령궁 관계자들이 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새삼 느끼네요. 한새 씨가 러시아의 영웅이 되었다는 사실을.”
“유지은 교수님. 사부님은 러시아만의 영웅이 아니에요. 전 세계의 영웅이죠.”
두 여성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러시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내게 공손히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블라디미르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다.
“혹시 지금 바로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죠.”
대통령이 기다린다는데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일단 가야지.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 선택을 하긴 했지만, 어쨌든 한국을 포기하고 러시아에 온 만큼 시베리아는 반드시 받아내야겠어.’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말이 있다.
부디 이번만큼은 그 말이 들어맞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나를 영웅으로 취급해주는 나라에서 쓸데없이 피를 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