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뉴욕, 록펠러 센터.
44층에 위치한 세계 제일의 경매소, 버네트에서는 오늘도 경매가 열리고 있었다.
“요즘은 정말 풍년입니다. 풍년. 오늘도 아주 좋은 물건들이 들어왔으니,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단상에 오른 사회자가 신난 목소리로 경매의 시작을 알렸다.
그의 자화자찬대로, 오늘 경매에 올라온 물건들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았다.
이른바 ‘유니크’급 아이템.
불과 얼마 전까지는 미국, 중국, 바티칸 등.
세계에서 극히 일부만이 보유하던 등급이 바로 유니크급이었다.
하지만 8성급 던전이 열리면서 세상이 변하였다.
이젠 유니크급 아이템이 경매소에 등장할 정도로 개수가 늘어났다.
물론 여전히 귀한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말이다.
“오억 삼천 달러까지 나왔습니다! 더 없으면….”
“오억 오천.”
“오억 칠천!”
“자, 치열한 접전! 오억 팔천 없습니까?”
유니크 아이템 중, 비교적 쓰임새가 적은 아이템이 6억 달러에 가까운 가격으로 경매되었다.
그만큼 유니크 아이템의 가치는 상당하였다.
‘시시하군.’
하지만 엄청난 경매가 연달아 진행되는 동안, 동양인으로 보이는 한 사내는 무료한 표정으로 경매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사내는 다름 아닌, 여명회의 7사도 창웨이였다.
원래라면 중국에 있어야 할 그가 1사도의 부름으로 미국에 와 있었던 것이다.
“이 아이템의 이름은 타곤의 방패입니다.”
무료한 표정을 짓던 7사도는 타곤의 방패라는 아이템의 경매가 시작되자 눈빛이 바뀌었다.
아이템이 매력적이기 때문에 그의 눈빛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경매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표정이 달라진 것.
“이렇게 효과가 좋은 아이템을 누가 판 걸까요? 헌터 본인이 쓰는 게 더 이득일 텐데 말이에요.”
“뻔한 거 아니겠나. 무공을 익힌 헌터가 얻은 전리품이니 그런 거겠지.”
“아. 저 아이템도요?”
“오늘 올라온 아이템 중, 장비 아이템들은 대부분 무공을 익힌 헌터들이 사냥해서 나온 아이템들일 거야.”
박한새만 8성급 던전 보스를 사냥한 것이 아니었다.
신경철, 이정, 강병철 등등.
무공 아카데미 교수들은 세계 곳곳에서 8성급 던전 보스를 사냥하였다.
일각에서는 무공 아카데미가 8성급 몬스터를 독점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무공을 익힌 헌터라. 어디서든 놈들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곳이 없군.’
안 그래도 그가 관리하는 영역에서도 무공을 익힌 헌터들 때문에 소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설마 미국에서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다니.
“유니크 아이템 경매는 이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자리를 지켜주십시오. 더 재미난 물건들이 올라올 예정입니다.”
버네트 경매소에서는 단순히 아이템만 경매하지 않았다.
그림, 고대 예술품, 던전 소유권 등등.
온갖 것을 경매하였다.
심지어 ‘몬스터’까지도 말이다.
“꽤 예쁜데?”
“가슴도 풍만하군. 흐흐.”
단상 위로 올라온 무언가를 보며 가면을 쓴 경매 참석자들이 탄성을 질렀다.
유니크 아이템이 경매로 나왔을 때와 비교하면 조금 더 요란한 반응이었다.
물론 새로운 경매 물건이 유니크 아이템들보다 가치가 더 높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인간 본연의 욕구를 끌어올리는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인간 본연의 욕구는 ‘성욕’이었다.
“하피를 데려왔습니다. 하피 중에서도 과연 이렇게 아름다운 하피가 있을까 싶은 초특급 미녀 하피를 말입니다!”
분명 몬스터였다.
하지만 사회자의 말처럼 하피의 외모는 실로 아름다웠다.
붉은 머리에 갸름한 얼굴, 백옥 같은 피부.
등에 달린 날개와 꼬리를 제외하면 그야말로 완벽한 미녀였다.
아니, 경매 참가자들은 오히려 그 날개와 꼬리 때문에 더 열광하였다.
이미 평범한 인간에게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이 이곳에는 아주 많았으니 말이다.
하피 이후에도 몬스터 경매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7사도는 이전보다 더 흥미를 가지고 경매를 구경하였다.
그러다 마침내 그의 흥미를 자극하는 몬스터가 하나 올라왔다.
‘언데드 몬스터라.’
가스트라는 언데드 계열의 몬스터.
보는 것만으로도 역겨움을 느끼게 하는 그 몬스터를 보며 7사도는 흥미를 느꼈다.
‘그러고 보면 장산군도의 던전도 언데드 계열이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7사도가 그 같은 생각을 할 때였다.
갑자기 그의 옆에 누군가가 다가와 그에게 귓속말하였다.
“회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필 타이밍이 안 좋았다.
경매가 마침 흥미로워지려고 하였는데….
7사도는 혀를 차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성격이 아무리 제멋대로라고 해도 1사도의 부름을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다.
“러시아 놈이 죽으니 이제 다른 놈이 지각하네.”
“죄인 주제에 주인공 행세를 하려나 보지?”
7사도가 향한 곳은 어두운 밀실이었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록펠러 센터 안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마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보고 죄인이라 한 건가?”
7사도가 차가운 표정으로 묻자, 거미와 인간이 합쳐진 반인반수의 끔찍한 외형을 가진 여성이 코웃음을 쳤다.
“자기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몰라?”
“네년의 입을 진작 찢어버리지 않은 것은 확실히 내 잘못이 맞는 거 같은데.”
카아악!
반인반수의 여성이 위협하듯 앞발로 보이는 네 개의 발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도 7사도는 같잖다는 듯,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앉아라. 창웨이.”
두 사람의 신경전을 지켜보던 미남자가, 7사도를 향해 나직하게 말했다.
“저년이나 앉으라고 해.”
“크루엘라. 너도 앉아라.”
“싫은데? 서 있을 건데?”
“…마음대로 해라.”
미남자, 1사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본론을 꺼냈다.
“다섯 번째 사도 아니트리 코프헤브의 죽음에 우리 아버지께서 크게 슬퍼하셨다.”
“흥! 파롤이 그런 놈 뒤졌다고 슬퍼할 성좌는 아닐 텐데.”
“무능한 놈. 무가치한 죽음.”
“그런 재미없는 이야기보다, 새로 발견한 몬스터 뭐 없어? 나는 몬스터 거래하려고 여기 온 건데.”
서두를 꺼낸 1사도를 제외하면 5사도, 아니트리 코프헤브의 죽음에 그 누구도 슬퍼하는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같은 성좌를 모시고, 같은 집단에 소속되어 있을 뿐, 그들은 서로 경쟁하는 관계였다.
동료의 죽음에 일희일비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때, 광신도 2사도가 나섰다.
“아버지가 슬퍼하시고 분노하시는데 자식으로서 어찌 가만있을 수 있겠습니까?”
2사도가 격앙된 목소리로 그리 입을 열자, 7사도가 무심하게 물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지?”
“이단자, 박한새를 화형시켜야 합니다!”
“박한새라면 창웨이가 죽여야 할 놈 아니야? 한국인이잖아.”
“그놈이 한국인인 것과 내가 무슨 상관이지?”
“아시아 전체가 제 것이라고 떠들어대더니, 한국은 아시아가 아니고 어디 유럽에 있는 나라였나 봐?”
7사도는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본인이 담당하는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은 본인이 처리해야 하는 법.
이게 여명회의 룰이었다.
물론 7사도에게도 변명의 여지는 있었다.
“나 혼자서는 애초에 감당할 수 없는 놈이었다. 나라고 놈을 견제하지 않은 건 아니야. 그저 실패했을 뿐.”
“호오, 천하의 창웨이가 약한 소리를 다 하네?”
“더 이죽거려 봐. 입을 찢고 혀와 눈을 뽑아줄 테니.”
그러자 1사도가 나섰다.
“창웨이의 말도 일리가 있다. 박한새라는 자의 힘은 일개 사도가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아니야.”
한 명의 사도가 가진 힘이 웬만한 국가보다 강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실로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객관적인 분석이었다.
강대국이라던 러시아조차 박한새에게 쩔쩔매고 있지 않던가.
박한새가 가진 힘은 그야말로 세상의 상식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무엇보다 그자가 우리를 노리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우리를 노린다고?”
“흥! 헌터도 아닌 놈이 까불고 있네!”
“한국에서만 머물던 자가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리는 없을 텐데.”
의아해하는 사도들을 보며 1사도가 단정적으로 말하였다.
“그자는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다. 명백히 우리를 적대하고 있지.”
그러자 7사도가 동의하였다.
“맞아. 놈은 정확하게 내 세력을 공격하였다.”
“그는 이단자입니다! 반드시 화형시켜야 합니다!”
2사도까지 나서서 박한새를 처단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혹시 박한새를 Proscript(살생부) 1순위에 두는 것에 반대하는 이 있나?”
“난 찬성.”
“그럼 모두 동의하는 것으로 알겠다. 박한새, 그자가 우리의 최대 적이라는 사실을.”
그린스킨, 칼의 형제들, 홍염의 날개 등.
여명회를 적대하는 세력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사도가 모여 힘을 합쳐서 대응하기로 결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박한새를 위협적인 적수로 판단한 것이다.
‘슬슬 한국으로 돌아갈 때군.’
러시아의 8성급 던전 브레이크 사태는 끝이 났다.
시베리아에서는 여전히 던전 브레이크 소식이 들려왔지만, 그 정도야 평소에도 있는 일.
더는 러시아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러시아에서 얻을 수 있는 건 거의 다 얻었다.’
러시아를 위기로부터 구원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소기의 목표는 달성한 셈이었다.
내가 아니었으면 러시아의 십만이 넘는 헌터는 죽음을 피하기 어려웠을 테니.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각종 아이템까지 얻었다.
타디그레이드를 잡고 얻은 와그너의 신발부터 개미 여왕을 잡고 얻은 수호의 비늘 등.
시베리아의 던전들도 빠질 수 없었다.
원래도 상당한 가치를 지녔던 시베리아의 던전들.
8성급이 터진 후, 더 많은 가치를 지니게 될 수백 개에 달하는 시베리아의 던전들이 모두 내 것이 되었다.
물론 절반 이상은 민간 소유의 것이라 정확하게 말하면 러시아 정부가 소유하던 던전들만 나의 것이 되었다고 표현하는 게 옳겠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얻어야 할 것은 러시아 헌터들이지.’
십만을 넘어 무려 십오만에 달하는 러시아의 헌터들.
그들에게 무공을 가르치기만 한다면 여명회도 두렵지 않으리라.
내가 그 같은 생각을 할 때였다.
“총장님. 러시아 헌터 협회의 협회장이 접견을 신청하였습니다.”
“바실예프 협회장이?”
주현근의 보고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쯤 찾아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오늘이었던 듯싶다.
“웃기는 놈입니다. 자기가 보자고 해놓고서 늦는 놈이 어디 있습니까?”
“10분. 딱 10분만 더 기다리고 일어나겠습니다.”
나는 미간을 좁히며 그와 같이 말하였다.
그렇게 다시 10분이 지났다.
약속 시간으로부터 한 시간이 지난 상황.
더는 기다릴 이유가 없었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던 그때, 뒤늦게 협회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자리에서 일어난 나를 향해 다가왔다.
뒤에는 헌터들이 경호원마냥 따라오고 있었는데, 인상들이 하나같이 험상궂었다.
“그랴즈눌랴! 지빌! 욥 뜨바유 맛!”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혼잣말로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거칠게 바닥을 쿵쿵거리며 신발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이게 무슨 무례한 태도입니까!”
주현근이 그답지 않게 버럭 화를 냈다.
늦게 온 주제에 사과도 하지 않고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니 그로선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날강도에게 예의를 갖추어야 할 이유는 없다.”
“날강도? 지금 우리를 날강도라 표현하였습니까?”
“러시아의 것을 빼앗아가는 그대들이 날강도가 아니면 누가 날강도일까!”
나는 그런 바실예프 협회장의 태도에 싸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런 식이라면 더 대화할 필요가 없겠군.”
대화는 필요 없다.
그저 실력을 보여주면 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