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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170화 (170/275)

#170화

바실예프 협회장을 노려본 나는 단전의 내공을 일으켰다.

엄청난 내공이 몸 밖으로 발산되더니, 바실예프 협회장의 몸을 압박하였다.

꼴에 S랭크 헌터이긴 한 건지, 바실예프 협회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저항하였다.

바실예프 협회장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더니, 이내 입으로 ‘항복’을 외쳤다.

“그만! 그만하시오!”

“무엇을 그만하란 겁니까?”

“마력으로 압박하는 것을 그만하란 말입니다.”

말투가 조금은 공손해졌다.

역시 이런 자는 실력을 보여줘야 정신을 차렸다.

“같잖은 러시아식 협상은 시도하지 말고 용건만 이야기하십시오. 이미 1시간 낭비한 것으로도 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니.”

내공을 다시 추스르며 그리 말하니, 그가 입술을 깨물었다.

“제 용건은 하나입니다. 시베리아의 던전, 다시 러시아에게 돌려주십시오.”

“이미 끝난 이야기입니다.”

“금전적인 보상은 충분히 해드릴 테니….”

“제가 돈 때문에 시베리아 던전의 소유권을 원했으리라 생각합니까?”

“…돈이 아니면 뭡니까?”

협상을 하러 왔으면서 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던전 그 자체입니다.”

“비각성자가 던전을 얻어서 뭐 한다고….”

“저야 쓸 일이 없어도 제 제자들은 다르지 않습니까?”

실제로 던전을 얻는 주목적은 수련용이었다.

몇몇 던전들은 환경 자체가 무공 수련에 도움이 되기도 하였는데 내가 얻은 시베리아 던전 중 그런 환경을 가진 던전이 있었다.

물론 영약을 생산할 수 있는 종류의 던전도 있었고 말이다.

“한국인인 총장이 수백 개나 되는 시베리아의 던전을 강탈하면 러시아 헌터들이 불만을 가지게 될 겁니다.”

“강탈? 지금 강탈이라 하셨습니까?”

내가 그의 표현을 지적하자, 그가 바로 정정하였다.

“…강탈이 아닌, 정당한 대가로 얻으셨다고 해도 결과는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얻은 던전은 어디까지나 정부 소유의 던전입니다. 정부에서 저에게 감사 인사로 넘긴 건데, 러시아 헌터들이 왜 불만을 가집니까?”

“그야 러시아의 것이니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어쩔 수 없다면?”

“저에게 불만을 드러내고 싶으면 얼마든지 그러라고 하십시오. 저는 신경 안 쓸 테니.”

“러시아의 자랑스러운 15만의 헌터를 적대해도 상관없다는 말씀입니까?”

협상이 전혀 통하지 않아서인지, 그가 목소리를 높여서 말했다.

“15만 전부가 저를 적대한다는 말씀입니까?”

“지금이야 잠잠해도 제 말 한마디면 그렇게 될 겁니다.”

“마치 15만 헌터 전부가 협회장의 말에 맹목적으로 따른다는 듯 말씀하시는군요.”

“이 나라의 협회장이 저입니다. 제가 해준 게 얼마인데, 당연히 제 말을 따르지, 누구의 말을 따릅니까?”

블라디미르 대통령에게 듣던 대로였다.

허세가 심하고 입만 열면 거짓을 말한다더니, 진짜 그런 사람처럼 보였다.

“뭐 좋습니다. 15만 헌터 전부가 협회장의 말에 맹목적으로 따른다 치죠.”

“치는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겁니다.”

“어쨌든, 15만의 헌터들이 저를 적대하게 된다고 해서 그게 저와 무슨 상관입니까?”

“뭐요?”

“저와 적대 관계가 돼서 손해 볼 쪽이 누구일 거 같습니까.”

그가 불쾌한 표정으로 콧김을 뿜어냈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서 마저 말을 이었다.

“후회할 짓을 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하십시오.”

러시아에서 사실상 최고의 권력을 누렸던 그다.

당연히 불쾌할 수밖에 없을 터.

‘근데 불쾌하면 어쩔 건데?’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내부에 총질을 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탐욕을 위해서라면 인류도 배신하는 그런 사람을 가장 싫어하였다.

그리고 바실예프 협회장이 전형적으로 그런 유형의 인물이었다.

정치인으로서는 철저하게 부패하였고 헌터로서는 티끌만큼의 사명감도 없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후회할 사람이 누구인지 나중에 보면 알겠지!”

그는 버럭 외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침을 퉤 뱉고는 그대로 문을 박차고 나갔다.

“실로 무례하기 그지없는 작자군요. 감사 인사를 하지 못할망정, 그저 협박만 하다니. 저런 자가 어떻게 러시아 협회의 수장으로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주현근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에게도, 러시아인들에게도 도움이 안 될 인물이야.”

“어쩌시겠습니까? 행동을 보니, 어떤 식으로든 보복하려고 할 거 같은데.”

“어쩌긴 뭘 어쩌겠어. 협회가 우리에게 반발하려고 한다면, 협회장을 교체해야지.”

협회장을 교체한다니.

어찌 보면 상식에서 벗어난 말일 수도 있었다.

한국의 헌터 협회장도 아니고 러시아의 헌터 협회장을 교체하겠다는 말을 했으니까.

하지만 이 자리의 누구도 내 말을 지적하지 않았다.

마치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람만 여럿 있을 뿐이었다.

‘15만의 헌터들이라. 과연 그 15만의 헌터들이 누구의 편을 들지 두고 보자고.’

바실예프 협회장이 믿고 있던 15만에 달하는 러시아 헌터.

지금 당장이야 같은 국적인 바실예프 협회장의 말을 따를 것이다.

러시아 헌터들에게 있어 나는 외국인에 지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내가 러시아 헌터들에게 ‘무공’을 가르치기 시작한다면?

그때도 과연 바실예프 협회장의 말을 따르려 할까?

협회장과 만나고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유지은이 내게 찾아와 이런 말을 하였다.

“제가 협회장으로 추천하고 싶은 인재가 있는데, 들어보시겠어요?”

인재 추천이라.

그녀의 말만 들으면 차기 협회장을 선정할 권리가 나에게 있는 듯하였다.

‘하지만 어쨌든 러시아 헌터 협회장을 우리 사람으로 두기는 해야 한다.’

바실예프 협회장은 절대 우리 사람이 될 리 없었다.

그러니 교체하는 게 맞는 일이긴 했다.

“파벨 포포프 총장이라고 러시아 헌터들 사이에서 명망이 있는 인물이에요.”

“포포프? 우리 학교의 학생 중에서 포포프라는 성을 가진 이가 있는 거로 아는데, 혹시 같은 가문입니까?”

“역시 기억력이 좋으시네요. 맞아요. 그래서 일부러 추천한 거예요. 9반의 유리 포포프 학생의 아버지가 파벨 포포프 총장이에요.”

호오.

학생의 부친이 명성 있는 러시아 헌터라니.

심지어 그녀의 입에서 나온 ‘총장’이란 직급도 무시할 수 없었다.

“직급이 총장이라 하셨는데, 헌터 아카데미 총장입니까?”

“예, 정말 딱이지 않나요?”

나는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고맙습니다. 정말 좋은 정보였습니다.”

“정말 고맙다면 조금만 더 잡아주세요.”

그녀가 내 손을 쓰다듬기 시작하자, 나는 슬며시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유지은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이런 면만 아니면 최고의 동맹인데 말이야.’

뭐, 지금도 최고의 동맹이었다.

블라디미르 대통령이 배신하려는 것도 바로 알려주었고 그 외에도 이런저런 정보를 주기적으로 넘겨주었다.

한국 내부의 상황도 그녀 덕에 더욱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여명회와의 전쟁에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

곧 본격적으로 시작될 여명회와의 전쟁.

정보력이 뛰어난 그녀의 존재는 우리 인류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파벨 포포프와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파벨 포포프 총장이오.”

40대 중반이라고 들었는데, 민머리라 그런지 원래 나이보다 더 늙어 보였다.

‘뭔가 대학교 총장답게 생기긴 했군.’

눈에서 현기가 엿보인다고나 할까.

다만 고집이 강할 것처럼 느껴지는 사각 턱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날 왜 보자고 한 것이오?”

파벨 포포프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래도 그는 나를 별로 좋게 생각하는 거 같지 않았다.

“총장님께 제안할 것이 있습니다.”

“내게 제안이라. 그 전에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소.”

“무엇입니까?”

“러시아를 구한 건, 당신의 탐욕을 위한 것이었소?”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던전의 소유권을 탐낸 것만 봐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거 같은데.”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무언가를 탐내고 러시아를 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욕심을 부린 것이오?”

“그야, 러시아 헌터들을 믿을 수 없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러시아 헌터들을 믿을 수 없다고?”

“제가 한국의 던전을 안정화하고서 가장 먼저 들은 소식이 러시아가 무정부 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세계 2위의 헌터 전력을 가졌다는 러시아가 8성급 던전이 겨우 2개 터진 것으로 무정부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것은 개미 여왕이란 존재가 너무 변칙적이라서….”

“8성급 던전 보스는 원래 변칙적입니다. 타디그레이드의 사례만 봐도, 개미 여왕만 유별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수많은 8성급 보스를 상대한 나도 개미 여왕이 유별나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던전이 열린 직후 처음에만 등장하는 히든 보스였으니까.

심지어 여명회의 5사도도 개입하였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게 무슨 상관일까?

결과적으로 러시아는 8성급 던전 브레이크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였고 내가 없었으면 나라 전체가 초토화되었을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파벨 포포프 총장도 이를 부정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시베리아에는 헌터 수에 비해 던전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대응하지 못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러시아는 큰 사고 없이 잘 대응해왔소.”

“이번 사태를 겪고서도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다시 입을 다무는 그를 보며 나는 말을 이었다.

“8성급이 끝이라면 저도 큰 걱정은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8성급이 끝이 아니면 어쩔 겁니까? 그리고 마력 간섭 현상 같은 던전 이변이 또 발생하면 그때는 어쩌겠습니까?”

앞으로 던전 이변은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무공을 익힌 헌터들도 대응하기 어려운 던전 이변이 주기적으로 발생할 터.

지금의 러시아는 그런 던전 이변에 제대로 대응할 실력이 없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러시아가 나에게 던전 관리를 부탁해야 할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박 총장은 결국, 러시아를 위해 시베리아 던전을 강탈해갔다는 것이오?”

“러시아만을 위한 선택은 아닙니다. 저희 무공 아카데미에 훈련으로 사용할 던전이 필요했던 것은 사실이니. 하지만 러시아를 도우려는 마음이 있는 것은 맹세코 거짓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더 묻겠소. 왜 러시아를 도운 것이오?”

“저는 든든한 동맹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15만의 헌터를 보유한 러시아는 제 동맹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내 말에 파벨 포포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신 같은 강자가 무엇 때문에 동맹을 구하는 것이오?”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조직과 맞서 싸우기 위함입니다.”

중2병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나의 말에 그는 눈을 부릅떴다.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알 수가 없군.’

파벨 포포프는 반들반들거리는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며 상념에 잠겼다.

러시아의 구국 영웅이라 불리는 박한새.

하지만 헌터들의 여론은 반반이었다.

파벨 포포프의 경우, 박한새를 부정적으로 봤었다.

시베리아의 던전을 탐하는 모습이 좋지 않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박한새를 만나서 그와 대화하고 나니 혼란이 왔다.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악의 조직이라니. 세상에 그런 조직이 존재한단 말인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는 몇 가지 근거를 제시하였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게 개미 여왕이었다.

개미 여왕이 개미 군단뿐만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몬스터들을 통제할 수 있었던 이유.

사실은 개미 여왕의 뒤에 박한새가 말했던 악의 조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근거를 제시한 것이다.

‘후우. 아직 그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의 의견을 따라서 손해 볼 것은 없다는 점이야.’

러시아의 던전이 외국인에게 넘어가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긴 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어차피 던전을 관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차라리 박한새에게 던전을 넘기고 그에 대한 대가로 무공을 배우는 게 나으리라.

‘만약 그의 말처럼 세계를 파멸시킬 목적을 가진 악의 조직이 존재한다면…. 총력을 다해 박멸시켜야 한다.’

러시아를 무너뜨리려고 했던 원수였다.

그런 조직이 실존한다면, 러시아인으로서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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