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개미 여왕을 토벌하기 위해 준비할 때, 나는 교수들에게 여명회의 존재를 간략하게 알려주었었다.
인류의 주적이 누구인지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교수들은 5사도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내 말의 진의 여부를 확실하게 가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뒤로 지속해서 여명회가 어떤 성좌를 모시는지, 그 성좌가 왜 악신인지를 설파하였다.
‘교수들은 여명회가 적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된 거 같군.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학생들에게 가르치면 되겠어.’
멕시코의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여명회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될 터.
무공 아카데미의 학생들도 여명회가 인류에 해가 되는 세력이란 사실을 공감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면 앞으로 여명회와의 전쟁도 한결 수월해지리라.
“근데 IHA의 말만 듣고 무작정 멕시코로 쳐들어갈 수는 없지 않나요?”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아까 교수들이 말했던 것처럼, 명분이 부족한 건 사실이었으니.
제아무리 멕시코의 헌터들을 IHA에서 빌런이라 선언하여도 사실상 타국을 침입하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도 IHA의 의견을 따르고자 한다면 방법은 하나뿐일 거 같네요. 국제 여론을 움직여서 멕시코의 빌런들을 악의 축으로 만드는 것.”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뭐 어려울 건 없지 않을까요. 지금이야 멕시코 안에서만 사고를 일으킨다지만, 그 광신도들이라면 분명 외국인을 상대로도 사고를 일으킬 거예요.”
“외국인 몇 명이 피해를 입는다고 해도 국제 여론이 움직이겠습니까?”
“만약 그 외국인이 미국인이라면 다르지 않을까요?”
하긴,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미국은 자국민이 당했을 때 가만히 있을 나라가 아니었다.
교수들에게 멕시코의 사교 집단을 공격해야 할 이유를 설파한 나는 호텔로 돌아와 생각을 정리하였다.
‘여론도 여론이지만, 일단 정보가 필요하다.’
멕시코의 헌터들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게 2사도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회귀 전에도 있었던 일이었으니.
하지만 회귀 전과 완전하게 똑같이 일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었다.
멕시코에서 종교를 만들고 정착시키는 행위가 원래보다 한참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원래라면 지금으로부터 2년은 지난 뒤에야 종교를 만들고 미국의 여러 주와 남미로 세력을 뻗치는데 말이다.
‘단순히 시기만 빨라진 것이 아니겠지.’
헌터 전력도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여명회의 또 하나의 힘이라고 할 수 있는 몬스터 전력이 어떻게 달라졌을지도 미지수였고.
하여 나는 우선 정보부터 파악하기로 하였다.
“김수민 헌터님. 혹시 지금 일어나 계십니까.”
마치 혼잣말하듯, 김수민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허공에서 김수민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예. 시키실 일이 있으신가요.
미국에 있는 그녀가 나에게로 순간이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그녀와 대화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성좌로서의 권능.
즉, 그녀가 내 권속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멕시코의 내부 정보를 알고 싶습니다.”
-제가 직접 멕시코 내부로 잠입하면 될까요?
“그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녀는 흔쾌히 대답하였다.
내 도움으로 복수에 성공하였던 그녀는 나의 검이 되기로 하였었다.
어떤 명령이든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그녀에게 멕시코 내부로 잠입하라는 명령은 전혀 어려운 명령이 아니었다.
-정확히 어떤 정보를 얻으면 될까요?
“멕시코 헌터들의 수준을 파악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8성급 던전 브레이크 사태 이후로 생겨난 던전들까지도.”
5사도가 개미 여왕으로 힘을 얻었듯, 2사도 역시 멕시코에 생겨난 던전들로 힘을 얻었을 터.
그러니 당연히 멕시코의 던전도 파악해놓는 게 좋았다.
-근데 저는 아시다시피 첩보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어요.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을 사용하시든 상관없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뜻이군요.
“예. 대신 목숨이 위험할 일은 하지 마십시오. 저는 김수민 헌터의 목숨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죠.
띵동~
김수민과의 대화가 끝이 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벨 소리가 울렸다.
내가 인터폰을 확인하자, 화면에 제니퍼의 얼굴이 보였다.
다소곳하게 서있는 그녀의 모습을 본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멕시코 일을 더 이야기하려고 찾아온 것일까?
뭐가 됐건 그녀를 기다리게 할 이유는 없었기에 문을 열어주었다.
“미스터 박. 늦은 시간에 찾아와서 미안해요. 놀라셨죠?”
그녀는 활짝 웃으며 인사하더니 자연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스톱.”
“무슨 일이세요?”
“누구냐, 넌.”
“제가 누구냐고요? 미스터 박. 농담하시는 거죠?”
분명히 그녀의 얼굴에, 그녀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IHA 회장인 제니퍼가 아닌 다른 무언가라는 사실을 말이다.
“누가 보냈지?”
“누가 보내다니요. 계속 엉뚱한 소리만 하시네요. 미스터 박, 저예요, 저. 화장을 조금 다르게 했다고 못 알아보는 거예요, 설마?”
“10사도가 보냈나?”
아직 몇 사도인지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이 러시아라는 것을 생각하면 10사도일 가능성이 높았다.
동유럽과 북유럽을 맡은 게 9사도였으니까.
“미스터 박이 저희에 대해 이상하게 알고 있는 게 많다던데, 사실이었네요.”
“내가 물은 것은 그게 아니었을 텐데?”
“미스터 박. 저와 협상할 생각 없으세요?”
“협상?”
파롤의 졸개와 협상이라.
나는 코웃음을 치며 말하였다.
“지금 이렇게 마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역겨움이 느껴지는데 협상은 무슨.”
“이 얼굴, 미스터 박의 취향이 아니었나 보죠?”
그녀와 더 대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나는 그녀의 목을 잡았다.
“이, 이게 무슨 짓이죠?”
“나를 암살하려고 찾아왔겠지만, 오늘 죽게 될 것은 내가 아니라, 너다.”
“미스터 박이 이렇게 폭력적인 사람인 줄 몰랐는데요? 조사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어요.”
숨이 턱 막힐 텐데도 쓸데없는 말만 하였다.
하지만 내가 그녀의 목을 더 강하게 쥐자 그녀도 더는 여유를 부릴 수 없게 되었다.
“무공을 알려주면 다른 사도들에 대한 정보를 넘겨줄게요. 우리는 좋은 동맹이 될 수 있어요.”
하다 하다 이제는 동맹하잔 소리까지 나왔다.
여명회와의 동맹이라니.
인류를 팔아먹을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 누가 그런 선택을 하겠는가.
“컥컥!”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른 그녀는 더 참지 못하고 이내 나에게 손을 뻗었다.
같잖은 반격이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자 이대로는 정말 죽겠다고 판단하였는지 그녀가 몸을 변신하기 시작하였다.
제니퍼의 얼굴이 사라지고 화상을 입은 듯, 울퉁불퉁한 피부의 얼굴이 나타났다.
물론 얼굴의 변화보다 몸의 변화가 더 컸다.
무려 날개가 생겨났으니까.
“캬아악!”
짐승 같은 포효를 내지르며 긴 손톱을 활용하여 공격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코웃음을 치고는 주먹을 휘둘렀다.
나에게 얻어맞은 그녀는 복도 바닥을 나뒹굴었다.
하지만 그녀는 주먹 한 방에 죽을 정도로 약하지는 않았다.
“너를 죽일 수 없다면 네놈의 주변 인물들을 전부 죽여주마!”
복도의 창문을 깨며 도망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나 역시 창문으로 뛰어갔다.
그녀를 따라 하늘로 치솟은 나의 손에는 검 한 자루가 들려있었다.
카르마 상점에서 방금 막 구매한 검이었다.
그녀의 목이 깔끔하게 잘렸다.
이름도, 소속도 알 수 없는 여인의 허무한 최후였다.
‘역시 여명회도 나를 적으로 여기기 시작한 모양이군.’
뭐 예상했던 일이었다.
5사도를 죽였는데 여명회가 가만히 있을 리는 없었다.
여명회가 나를 적으로 여기기 시작한 이상, 앞으로 이런 일이 많이 벌어질 것이다.
여명회는 자신의 적이라 판명된 이들을 집요할 정도로 견제하였으니까.
‘얼마든지 와봐라. 오는 족족 죽여주마.’
<무공 아카데미 총장 박한새. 호텔에서 IHA 회장을 성폭행하다?>
<단독 보도! IHA 회장과 무공 아카데미 총장의 관계는?>
다음 날 아침.
어떻게 구한 것인지, 호텔 복도 CCTV 영상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파롤의 졸개가 변신한 부분이 잘린 것을 보면 여명회가 공개한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미스터 박!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CCTV의 그 여성은 누구죠?”
아침 일찍 제니퍼가 찾아왔다.
뜬금없이 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보도가 전해지니 그녀로선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녀에게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이사들과 함께 새벽 늦게까지 회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엉뚱한 오해가 빚어지는 일은 없었다.
“여명회의 짓입니다.”
“여명회요? 전에 이야기했던 그 빌런 조직을 말씀하시는 거죠?”
“정말 놀랍네요. 제가 봐도 제 얼굴이었거든요. 심지어 제가 입은 옷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어요.”
“그들의 위장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위장뿐만이 아니었다.
여명회는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었는데 8성급 보스 중에는 도플갱어란 몬스터도 있었다.
성좌가 준 스킬을 제외하면, 상대의 스킬까지 완벽하게 따라 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몬스터였다.
“무서운 자들이군요.”
“멕시코가 괜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IHA에도 아직 그들이 남아있을까요?”
“있을 겁니다. 백악관에도 그들은 존재하니.”
여명회가 무서운 이유.
그들은 단순히 힘으로 세계를 정복하려 하지 않았다.
돈, 정치, 종교….
이용할 수 있는 건 뭐든지 이용하였고 가진 능력으로 인류를 최대한 분열시켰다.
“제가 러시아에 남아있었던 것도 그들이 다시는 러시아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던전을 관리한 것도, 무공 학과를 개설한 것도 따지고 보면 제2의 5사도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러시아의 던전을 여명회가 차지하는 것만큼 골치 아픈 일은 없었으니까.
“미스터 박은 정말 인류를 위해 행동하시네요. 세상이 알지 못하는 적과도 맞서 싸우면서 말이죠.”
“멕시코의 일도 곧 행동에 나설 겁니다. 인류를 위해서 말입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진심으로 감사해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나는 미소를 지었다.
제우스 길드의 길드 마스터 고든은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죽음의 천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냈다고?”
‘죽음의 천사’, ‘동양에서 온 마녀’, ‘재해급 빌런’.
이건 다 김수민의 별명이었다.
김수민은 어느덧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빌런이 된 것이다.
“그년은 지금 어디에 있지?”
“마지막 위치는 멕시코로 확인되었습니다.”
“멕시코로 갔다고?”
“예, 흔적은 명백히 멕시코에 향해 있습니다.”
“하필 멕시코라.”
고든은 자신의 풍성한 콧수염을 쓰다듬었다.
굳이 멕시코까지 가서 죽음의 천사를 잡을 이유가 있을까?
하루에도 수백 명의 사망자가 나온다는 무법지대 멕시코를?
잠깐 고민하였으나, 그가 내린 결론은 ‘멕시코까지 갈 가치가 있다.’였다.
“멕시코로 갈 준비 해. 이번엔 반드시 죽음의 천사를 잡는다.”
김수민에게 걸린 현상금은 무려 1억 달러.
하지만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명성.
그녀를 잡기만 한다면 단숨에 미국에서 랭킹 1위의 헌터로 불리게 될 것이다.
‘성은 리의 입지가 커지니 나를 무시하는 놈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를 우습게 보는 놈들 때문에라도 반드시 죽음의 천사를 잡고 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