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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177화 (177/275)

#177화

“유지은 교수가 설마 저런 생각을 품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다 들었어?”

“바로 근처에 있었으니 못 들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후. 설마 권력욕 때문에 내 곁에 있는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꼭 권력욕 때문이라고만 볼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사부님을 남자로 생각해서 그런 소리를 한 것일 겁니다. 황후니, 빈이니 괜히 꺼낸 이야기가 아닐 테니.”

주현근의 말에 나는 픽 웃었다.

“남자로 보기는. 나는 자기 객관화가 잘 된 사람이야. 유지은 교수 같은 여성이 매력 없는 나를 남자로 볼 리는 없지.”

“사부님. 아니, 형님. 그 말씀, 진심으로 하신 겁니까?”

“또 쓸데없는 소리를 할 거면 됐다.”

“형님, 여성 교수들이 단순히 형님이 사부란 이유로 호감을 표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성 교수들이 내게 호감을 표하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김민경의 경우는 아예 나에게 고백하기까지 했으니.

“형님은 남자인 제가 봐도 멋있으십니다. 강하고 정의롭고 남자답기까지 하시지 않습니까.”

늘 진지한 그였지만, 이번은 유독 진지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래서 더 낯간지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말이다.

“그 이야기는 됐다. 어차피 당장 연애는 생각이 없으니.”

“그보다 유지은 교수를 어떻게 생각해?”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유지은 교수가 권력욕 때문에 사부님의 곁을 지키는 것은 제가 생각했을 때,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을 거 같습니다.”

“그녀만큼 정보 관련으로 능력이 출중한 사람은 구할 수 없지 않습니까.”

뭐 그렇긴 하다.

나 역시 그녀 말고 정보를 담당할 사람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

“아, 그리고 아까 제니퍼 협회장과 통화하실 때,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청와대에서?”

“예. 사부님이 언제쯤 한국으로 돌아오는지 궁금해하는 거 같습니다.”

“요즘 계속 내 일정을 묻는 거 같군.”

“아무래도 걱정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내가 러시아로 귀화할까 봐?”

“청와대뿐만이 아니라, 국민들도 꽤 우려하는 분위기입니다. 사부님이 러시아에서 국가 정상급 대우를 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데….

‘지금 한국에 있는 고정희 교수에게 전화해서 한국의 상황을 물어봐야겠군.’

내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휴대폰이 울리더니 발신자 이름에 ‘고정희’가 떠올랐다.

-총장님.

-정부에서 무공 아카데미와 붙어있는 국가 소유의 7만 평 부지를 무상으로 넘겨주겠다고 이야기하였어요.

“무상으로 말입니까?”

-한국을 구해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라는데, 국가 소유의 던전들도 총장님이 원한다면 언제든 넘겨주겠다고 하네요.

고정희의 그 같은 말을 듣고 나는 피식 웃었다.

청와대에서 나를 붙잡기 위해 안달이 난 것은 확실한 듯싶었다.

7만 평에 달하는 엄청난 면적의 토지에 던전까지 주겠다니.

‘의도가 뻔히 보이기는 해도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네.’

러시아는 나라를 구해줬는데도 쓸데없는 기 싸움을 벌였다.

반면 한국은 내가 아니었어도 자력으로 충분히 위기를 견뎌낼 수 있었을 터.

그런데도 정반대의 반응을 보이니 나로선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제가 한국에 가서 직접 하겠다고 전해주십시오.”

-예, 그렇게 전할게요.

“한국 헌터들을 모집하는 일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여명회와의 전쟁에 러시아 헌터들만 동원할 수는 없는 일.

당연히 내 모국인 한국의 헌터들도 최대한 모집할 계획이었다.

-일반 헌터들은 참여율이 꽤 높은 편이에요. 그런데 길드 소속의 헌터들은….

“참여율이 낮나 보군요.”

-크게 이익이 없는 전쟁이라며 망설이는 분위기예요.

“공적치에 따라 무공을 배울 기회가 주어진다는 소문이 났을 것인데도 그렇습니까?”

헌터들의 참여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나는 특단의 조치를 사용하였다.

그 조치란 다름 아닌, 무공 아카데미 입학 추천서였다.

즉, 전쟁에서 어느 정도 활약하기만 하면 무공을 배울 권리가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네, 강충구 진법 교관은 그들이 총장님과 직접 합의하려고 간을 보고 있는 거라고 말했어요.

아마 강충구의 말이 맞을 것이다.

한국의 길드 마스터들은 내가 그들의 도움을 꼭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리라.

그러니 저렇게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겠지.

‘나를 너무 쉽게 보는 거 같은데.’

내가 한국 헌터들을 많이 배려해줘서 그들이 나를 쉽게 여기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강충구 진법 교관이 멕시코와의 전쟁에 본인도 참전하고 싶다면서 총장님의 생각을 여쭈어 달라고 하였어요.

한국에 있는 게 답답하였던 모양이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제가 한국에 가면 그때 할 거라고 전해주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전할게요.

“고정희 교수님은 어떻습니까? 멕시코와의 전쟁에 참전하고 싶으십니까?”

-저는… 잘 모르겠어요. 사람과 싸우는 것은 조금 꺼려지긴 하거든요. 아! 물론 총장님이 명령을 내린다면 언제든 참전할 거예요.

나는 그녀의 답변에 피식 웃었다.

더는 몬스터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그녀였지만, 아직 사람의 피를 보는 것은 두려운 듯싶었다.

‘꼭 모두가 전쟁에 나설 필요는 없지.’

그녀의 여린 성격이 걱정되기는 했다.

여명회와의 전쟁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여리다 해도, 누군가를 ‘지키는’ 입장이 된다면 피를 보는 걸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아닙니다. 고정희 교수님은 처음 이야기했던 대로 저희의 아카데미를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네! 그럴게요!”

밝아진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통화를 마무리하였다.

이틀 뒤.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넘어온 뒤, IHA에서 잡아준 5성급 호텔로 향하였다.

“뉴스 내용도 그렇고, 확실히 전운이 감도는 느낌인 거 같기는 합니다.”

제니퍼의 우려는 괜한 것이 아니었다.

미국 정부에서 멕시코와의 전쟁을 준비한다더니, 이미 미국은 일반 국민들부터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근데 표정들이 그리 나쁘지 않은 거로 봐서,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모양새야.”

“미국의 국력이라면 질 수 없는 전쟁 아니겠습니까?”

“글쎄요. 일반적인 전쟁이 아닌데, 과연 미국의 군사력이 의미가 있을까요?”

그녀가 냉정하게 말했다.

실제로 미군은 이번 전쟁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다.

멕시코인 전체를 학살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나저나 역시 한새 씨를 찾는 미국인들이 많네요.”

“어디서 저를 찾았습니까?”

“발라 모굴리스 길드에서 가장 먼저 초대장을 보냈고 우분투 길드의 길드 마스터도 직접 한새 씨를 만나고 싶다고 전했어요. 거기다 S랭크 헌터, 트레이블레이저도 시간을 내달라고 하였어요.”

러시아에서의 활약이 인상 깊긴 했나 보다.

미국에서도 대형 길드로 손꼽히는 발라 모굴리스 길드와 우분투 길드가 나를 찾는 걸 보면.

“나중에 시간을 따로 내보도록 하겠습니다.”

S랭크 헌터니, 대형 길드니.

미국을 설득하는 것.

내가 미국에 온 이유는 오직 그 이유뿐이었다.

“IHA에서 전하기를, 내일 오후 세 시쯤에 백악관으로 가면 된다고 합니다.”

오늘 하루는 편히 쉬고 내일 백악관에 가면 될 거 같았다.

그렇게 호텔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한 미국인이 나를 찾아왔다.

“미스터 박, 저는 CIA 요원 제이슨 핸슨이라고 합니다.”

“CIA 요원이시라고요?”

“예, 의심스러우면 IHA에 전화해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이자가 CIA에 소속되어 있단 사실은 나도 이미 알고 있었으니.

“그래서 CIA에서 저를 찾아온 이유가 뭡니까?”

“미스터 박에게 정보를 얻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다짜고짜 찾아와서는 마치 맡겨놓은 것을 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내게 정보를 요구하는 모습이 좋게 보이지 않았다.

‘이자는 원래도 이런 자였지.’

회귀 전에 처음 만났을 때도 똑같은 태도를 보였었다.

성격 자체가 글러 먹은 인물이었다.

“무슨 정보를 말씀하는 겁니까?”

“김수민. 죽음의 천사라고 불리는 그녀의 정보를 저희에게 넘겨주시길 바랍니다.”

김수민과 나의 관계를 알아차린 것일까?

‘뭐, CIA라면 자세히는 몰라도 어느 정도 눈치채기는 했겠지.’

그녀가 나의 권속이란 사실 빼고는 어지간한 것은 다 알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그들이 알고 있다고 해서 내가 인정할 필요는 없었기에 나는 태연한 목소리로 대꾸하였다.

“왜 제가 김수민 헌터의 정보를 알고 있을 거로 생각합니까?”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잡아떼지 마십시오. 다 알고 있으니까.”

그가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하듯 그와 같이 말하였다.

“뭘 알고 있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저를 추궁하듯 말씀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상당히 무례하게 느껴집니다.”

“미스터 박. 당신은 지금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재해급 빌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협박하시는 겁니까?”

“그건 미스터 박이 얼마나 협조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비릿한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미간을 좁혔다.

“미국에 순순히 협조하세요. 그러면 미스터 박은 앞으로도 계속 세계의 영웅으로 불리게 될 겁니다.”

그는 나를 명예에 집착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듯하였다.

하긴, 그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공을 독식하지 않고 전파한 일이나, 러시아를 구한 일 등.

내가 한 행동들은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할 필요가 없는 행동들로 보였을 것이니 말이다.

“저와 관계가 어긋나면 손해 볼 사람이 우리 둘 중 누구일 거 같습니까? 제이슨 핸슨 씨. 아니, 찰리 배리스 씨.”

찰리 배리스가 눈을 부릅떴다.

비밀요원인 자신의 본명을 불러서 놀란 것이다.

나는 그런 찰리 배리스를 향해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저를 적대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적대하십시오. 하지만 이 사실을 알아두길 바랍니다. 저는 적으로 판명된 자에게 관용을 베푸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몸을 돌렸다.

그러자 그가 다급히 나를 따라오더니 내 팔을 붙잡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가 내 팔을 붙잡기 전에 주현근이 그의 팔을 붙잡았고 유지은이 그의 혈을 짚었다.

순식간에 꼼짝도 못 하는 몸이 되어버린 찰리 배리스였다.

“한새 씨, 저 사람의 본명은 어떻게 알았나요?”

“쉿.”

-앞으로 중요한 대화는 전음으로 하겠습니다.

유지은이 온갖 도청 방지 장비로 도배했다지만, 상대가 CIA라면 만약을 대비해야 했다.

무공 아카데미 교수쯤 되면 전음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가 없으니 앞으로는 되도록 전음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알겠어요.

-아까의 질문에 답하자면, 그냥 우연입니다.

-우연으로 CIA 요원의 본명을 알아냈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한새 씨. 저보다 뛰어난 정보통이 있다고 해도 저를 버리지는 말아 주세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녀보다 뛰어난 정보통이 어디 있겠는가.

찰리 배리스의 본명을 안 것은 미래의 기억 덕분일 뿐, 나는 앞으로도 유지은의 정보에 의지해야 했다.

이른 점심을 먹고 두 사람과 함께 차를 탔다.

“역시 보안이 삼엄하네요.”

“저희에게도 옵니다.”

나에게 정장을 입은 헌터들이 다가왔다.

백악관의 시크릿 서비스를 담당하는 헌터들이었다.

랭크는 모두 B랭크 이상으로 느껴졌는데, 그들 중 리더로 보이는 이가 나에게 다가왔다.

“미스터 박.”

“예, 박한새라고 합니다.”

“미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백악관에 입장하기 전에, 미스터 박에게 경고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경고라….”

그는 낮고 굵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내게 경고하였다.

“이곳은 크렘린궁이 아닙니다. 만약 백악관에서 피어를 사용한다면 그 즉시 저희는 행동에 나설 겁니다.”

행동에 나선다는 말이 무척이나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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