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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178화 (178/275)

#178화

‘역시 미국인가. 러시아에서 있었던 일을 알아차리다니.’

그가 말한 피어란 내가 실수로 살기를 일으킨 것을 말하는 게 틀림없었다.

절대 의도된 바는 아니었으나, 블라디미르 대통령에게 내 의지를 강요한 것은 사실이었다.

백악관의 경호를 담당하는 이로선 우려가 될 수밖에 없겠지.

‘그나저나 이렇게 뛰어난 정보력을 겨우 미국이란 나라 하나를 위해 사용한다는 게 참 안타깝군.’

미국이 십수 년 전부터 여명회를 견제해줬다면?

여명회가 전 인류를 위협할 만큼 거대한 세력이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십수 년 전이 아니라, 12사도가 다 정해지기 이전에라도 견제했다면 성장이 늦어졌을 터.

하지만 미국은 이 뛰어난 정보력을 오직 미국만을 위해 사용하였다.

8성급 던전이 열린 지금도 다르지 않았다.

“대신 저도 경고 하나 하겠습니다.”

“경고? 미국을 상대로 경고하겠다는 겁니까?”

나는 그의 반응을 무시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앞으로 어떤 경우에도 제 뒤를 미행하지 마십시오. 더는 미국인이라고 봐주는 일은 없을 겁니다.”

상대는 DHS 즉, 국토안보부 소속이었다.

그리고 국토안보부는 미국의 정보기관이었다.

아마 CIA뿐만이 아니라, 이들 역시 나의 뒤를 캐고 있을 터.

지금까지 나는 어느 정도 눈감아주었었다.

악을 쓰며 막아봤자 더 집요하게 굴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DHS에서 나를 경계하며 협박까지 하니 나로선 더 봐주고 싶지 않았다.

“제 경고를 무시하고 싶으면 무시하셔도 좋습니다. 물론 결과는 책임지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미스터 박의 경고를 새겨듣도록 하겠습니다.”

내 실력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그는 ‘비각성자 따위가 감히.’라는 식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차가운 얼굴로 내 말을 새겨듣겠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렇게 시크릿 서비스를 담당하는 A랭크 헌터를 일별하고는 백악관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미스터 박.”

백악관에서 나를 기다린 사람은 세 명이었다.

국가 안보 보좌관, 대통령 비서실장, 미국 대통령.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앉으시지요.”

로건 해리스 대통령과 악수하고는 그가 가리킨 곳에 가서 앉았다.

“꼭 뵙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미국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더 빨리 찾아오지 않은 게 너무 아쉽습니다. 우리는 작년부터 미스터 박을 초대하였었는데 말입니다.”

존 쇼어 국가 안보 보좌관이 해리스 대통령의 말에 덧붙였다.

그런데 말투가 왠지 책망하는 느낌이었다.

초대할 때는 안 오더니, 뭘 바라고 지금 온 거냐고 말하는 느낌이랄까?

“시간이 안 나서 늦게 찾아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이제라도 왔으니 다행입니다.”

“미스터 박, 백악관을 찾은 이유가 멕시코 때문이라는데 일단 그 이야기부터 들어보고 싶습니다.”

또다시 까칠한 목소리로 용건을 묻는 존 쇼어 국가 안보 보좌관이었다.

“미국에서도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멕시코의 헌터들 위에서 군림하는 종교 단체는 멕시코에서만 활동하는 세력이 아닙니다.”

“산타 무에르테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산타 무에르테.

미국에서는 멕시코의 종교 단체를 산타 무에르테라고 불렀다.

멕시코의 토종 종교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실제로 여명회가 산타 무에르테를 기반으로 멕시코의 종교를 장악하기도 하였다.

“예. 그들은 멕시코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러시아에서 나타났던 개미 여왕의 군세를 기억하십니까? 사실 그 개미 여왕을 조종하던 것도 바로 그 단체입니다.”

별로 놀라는 표정들이 아니었다.

내 말을 믿지 않거나, 아니면 이미 알고 있는 정보라서 저러는 거 같았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개미 여왕을 이끌던 것은 그 단체에서 5사도라 불리는 인물입니다. 즉, 겨우 한 명의 사도에게 나라가 멸망할 뻔했던 겁니다.”

“사도는 총 몇 명입니까?”

“제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모두 합해서 열두 명입니다.”

“열두 명 중 겨우 한 명을 당해내지 못했다는 말입니까?”

“그 정도로 그 단체, 여명회란 이름의 단체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제야 놀라는 표정을 짓는 세 사람이었다.

초강대국인 미국이니만큼 여명회에 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터.

하지만 여명회의 힘이 이 정도일 줄은 예상 못 했을 것이다.

‘이조차도 빙산의 일각이지.’

나는 이틀 전, IHA의 전용기가 추락당한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었다.

우연한 사고가 아닌, 여명회가 계획하여 일으킨 테러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물론 김수민이 수집해준 멕시코 내부의 정보도 빠뜨리지 않았다.

2사도가 이끄는 여명회의 멕시코 지부가 어떤 전력을 가지고 있는지.

왜 미국 혼자서 그들과 싸우면 안 되는지를 알려줄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알려주었다.

그러자 해리스 대통령이 앓는 소리를 냈다.

멕시코의 전력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에 놀란 거 같았다.

하지만 그런 해리스 대통령과 달리, 존 쇼어 국가 안보 보좌관의 모습은 차분하였다.

그는 차분함을 넘어 차갑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런데 미스터 박은 그런 정보들을 어떻게 얻게 된 겁니까? 우리 미국에서도 얻지 못했던 정보들인데….”

약간 추궁하는 말투였다.

CIA에서 나와 김수민의 관계를 알고 있듯, 이들은 내가 김수민에게서 멕시코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듯싶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닌 거 같습니다만.”

“정보의 신빙성을 확인하려면 꼭 필요한 절차이지 않겠습니까?”

말이 신빙성 검증이지, 이참에 나를 압박하여 김수민에 관한 정보를 뜯어내려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

“제 명예를 걸고 보장하겠습니다.”

내 명예를 건다고 하니, 더는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였다.

이미 나는 한 개인으로 보기에 영향력 면에서나 실질적인 권력 면에서나 너무도 거대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좋습니다. 저는 미스터 박을 믿으니, 미스터 박이 알려준 여명회에 관한 정보도 거짓이 없을 거라고 믿겠습니다.”

“하지만 멕시코와의 전쟁에 관해서는 결정이 달라질 일은 없을 거 같습니다.”

해리스 대통령의 말에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졌다.

그의 말은 결국, 멕시코와의 전쟁을 처음 계획했던 대로 진행하겠다는 뜻이었다.

“…큰 피해를 보시게 될 수 있습니다.”

“여명회란 조직이 미스터 박이 말한 것처럼 위협이 되는 세력이라면 피해를 감수하고라도 제거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굳이 감수할 필요가 없는 피해였다.

나와 함께하면 되었으니까.

하지만 대통령은 끝까지 나에게 함께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얻을 전리품을 모조리 독식하려는 생각이겠지.’

내 도움을 받으면 멕시코의 영토를 얻는 건 불가능하였다.

“그리고 미스터 박에게 하나 통보할 게 있습니다.”

“무공 아카데미에 재적 중인 미국 헌터들을 이번 멕시코 해방 전쟁에 동원할 계획입니다. 나중에 괜한 오해 없기를 바라며 미스터 박에게 미리 알려드리는 겁니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대놓고 멕시코 해방 전쟁을 운운하는 것도 황당하게 느껴졌지만, 내 제자들을 전쟁에 동원하겠다는 주제에 괜한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니?

참으로 뻔뻔하기 그지없는 태도였다.

“강제 동원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내가 단호하게 대꾸하자 해리스 대통령이 웃는 얼굴로 물었다.

“자발적 참여는 상관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헌터 개인이 자발적으로 참전한다면 제가 어찌 반대하겠습니까.”

애국심이 넘쳐서 미국의 전쟁에 참전하겠다는 걸 내가 어떻게 말리겠는가.

하지만 원하던 답변을 들었던 것처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세 사람의 표정을 보니 괜히 찝찝하게 느껴졌다.

‘이미 많이 포섭해놨나 보군.’

속으로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토 확장에 대한 야욕으로 가득 찬 이들에게 여명회에 관한 정보를 더 넘겨줘봤자 의미는 없으리라.

“아무래도 미국은 여명회보다 우리를 더 위협적으로 생각하는 거 같아요.”

“유지은 교수도 그렇게 느꼈습니까.”

“대놓고 저희를 견제하는 발언을 하였는데 눈치 못 챌 수는 없죠.”

그녀의 말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미국은 나를 회유하겠다는 생각을 완전히 포기한 거 같군.’

다른 나라들은 내가 8성급 던전이 열리면서 엄청난 활약을 펼치자, 어떻게든 회유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오히려 한 발자국 물러났다.

아마 그들은 오래전부터 나를 지켜본 만큼, 내가 회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님을 알았던 것이리라.

‘그래도 설마 견제 대상으로 여길 줄이야.’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필 미국에서 이런 반응이 나오니 당혹스러울 따름이었다.

회귀 전에는 이성은이 미국에서 주로 활동해서 그런지, 미국은 든든하기 그지없는 동맹이었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한새 씨가 멕시코의 상황을 전해줬는데도 너무 자신감이 넘치는 거 같지 않아요?”

유지은의 말에 나는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느끼기에도 단순히 초강대국이란 이유로 자신감을 내비치는 거 같진 않아 보였다.

“제 생각에는 무공 아카데미에 재적 중인 미국 학생들을 믿고 그러는 거 같습니다.”

“미국 학생들이 멕시코 해방 전쟁에 참전할까요?”

“해리스 대통령의 태도를 보면 최소 백 명 이상은 이미 포섭에 성공한 듯싶습니다.”

그러자 주현근이 분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무리 국적이 미국이어도 제자가 스승들 몰래 미국 정부와 얘기하다니. 이건 우리에 대한 배신 아닙니까?”

“배신이라면 배신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다만 아직 확실한 것은 없으니, 제가 한번 알아볼까요?”

“부탁드립니다.”

유지은에게 정보 조사를 맡기고는 호텔로 돌아갔다.

리암 골드버그.

그는 본래 자신이 A랭크 헌터란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던 사내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A랭크 헌터라는 사실보단 일류 무인이란 것에 더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나 정도의 재능과 실력이면 권혁진 조교수처럼 미국에서 학과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권혁진은 교수였고 그는 일개 학생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권혁진에게 밀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실력에서 밀려도 재능과 내공의 절대량은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권혁진이 러시아 헌터 아카데미의 무공 학과장이 됐을 때, 미국 헌터 아카데미의 무공 학과장이 되는 걸 꿈꿨다.

무공 학과장이란 자리는 일개 학과장으로 보기 어려웠다.

그 나라의 무인들을 대표하는 자리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무공 학과장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활약해야 한다.’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활약해야지만 박한새에게 학과장의 자리를 주장할 수 있었다.

덤으로 미국인들과 미국 정부의 신망도 얻을 수 있고 말이다.

“15반은 어떻게 됐어?”

“몇 놈이 끝까지 거부하더라고.”

리암 골드버그는 동급생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거부한다고 설마 그냥 온 건 아니겠지?”

“그, 그럴 리가. 이따 다시 찾아가서 두들겨 패서라도 참전 약속을 받아내려고.”

그는 무공 아카데미에 재적 중인 수백 명의 미국 헌터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따라오게 만들었다.

혼자서 멕시코 전쟁에 참전하는 것보다는 수백 명의 헌터와 함께 참전하는 것이 공을 세우기에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박한새 총장이 나의 행동을 불편하게 여겨도 수백 명의 무공 아카데미 학생이 함께한다면 나의 행동을 막을 수 없을 거다.’

리암 골드버그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게 그의 계획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미국 정부에서도 그에게 상당한 지원을 약속했으니, 이제 박한새와의 협상만 잘 마무리되면 그는 머지않은 미래에 미국에서 대통령 다음의 권력자가 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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