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한국에서의 모든 영광을 뒤로하고 일본을 구원하러 온 일본의 구원자, 야마구치 스토무!>
<검성, 야마구치. 미야모토 타이시의 도전을 이겨내다!>
<야마구치 스토무, 일본 제일의 검성이 되다!>
무공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의 이름을 아는 일본인은 거의 없다시피 하였다.
헌터로서 존재감을 발휘할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공 아카데미에 들어가고서부터 그를 향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8성급 던전 브레이크 사태가 발생했을 때, 그가 누구보다 먼저 일본으로 귀국하자, 무려 ‘일본의 구원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이후로도 검성이란 칭호를 얻게 되었는데, A랭크와 S랭크 헌터들과의 대결에서 연달아 승리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단순한 검성이 아닌, 일본 제일의 검성, 또는 일본 제일의 헌터로 불리고 있었다.
“야마구치. 정부에서 사람이 왔어.”
“또 뭐래?”
“일본 헌터들에게 무공을 가르쳐달라고 하더군.”
동기지만, 일본에서는 사실상 그의 부관으로서 활동하는 나가야마의 말에 야마구치 스토무는 코웃음을 쳤다.
“계속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네.”
“뭐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지. 야마구치, 너도 무공 학과장이 된다면….”
“그만. 학과장 자리는 총장님께서 정해주시는 거다.”
“…역시 야마구치. 너는 충성심이 남다르구나. 네가 진정한 사무라이야.”
야마구치 스토무는 조소를 지었다.
충성심?
그는 사무라이 정신 같은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충성하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충성받는 것을 더 좋아하는 그였다.
당연히 무공 학과장이란 자리에도 욕심을 갖고 있었다.
일본 헌터 아카데미에서 무공 학과장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일본에서 최고의 권력을 누리게 될 테니까.
하지만 그는 처세술의 달인이었다.
리암 골드버그라는 미국 헌터가 무공 학과장 자리를 노리다가 크게 혼쭐났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공연한 욕심을 부릴 수는 없었다.
“그보다 이제 슬슬 한국으로 돌아가야겠어.”
지금까지는 일본이 안정되지 않았다는 핑계로 일본에 남아있었다.
새롭게 등급이 올라간 던전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여 계속 사고가 발생했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 헌터들도 이제 적응이 끝나 일본 전체가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니, 더 남아있을 핑계가 없었다.
“지금 돌아간다고? 일본 방송국에서 전부 너를 찾고 있는데?”
“방송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야마구치 스토무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돈이나 인기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박한새를 비롯한 교수들의 마음을 얻는 것.
박한새와 교수들에게 외면을 받는다면 새로운 무공을 배우지 못할 것이니 그는 한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정 교수님이 다시 수업을 시작하셨어. 쾌검을 배우려면 서둘러 돌아가야 해.”
“하긴, 일본의 자랑스러운 사무라이가 검술에서 밀릴 순 없지.”
나가야마는 그제야 야마구치 스토무의 뜻이 이해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야마구치 스토무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였다.
-야마구치 스토무 학생. 저 박한새 총장입니다.
그러던 중, 한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무려 무공 아카데미의 총장, 박한새의 전화였다.
“예! 총장님! 전화 주셔서 영광입니다!”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부탁이라니요!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일본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허리를 숙이지 않은 그였다.
심지어 총리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박한새의 전화가 걸려오자, 단순히 전화인데도 허리를 숙이며 최대한의 예의를 보여주었다.
설령 충성심을 갖지 않을지언정, 박한새를 존경하는 마음은 여느 학생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본 헌터들을 전쟁에 동원하고 싶습니다.
“전쟁이라면?”
-멕시코와의 전쟁, 정확히는 여명회와의 전쟁을 말하는 겁니다.
야마구치 스토무는 눈을 크게 떴다.
설마 박한새에게 이런 부탁을 받게 될 줄이야!
‘이건 기회다!’
순간적으로 그런 판단이 내려졌다.
이건 기회라고.
박한새의 신임을 얻고 일본의 명실상부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있는 그런 기회 말이다.
-어렵겠습니까?
“아닙니다!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최대한 많은 헌터를 동원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아는 길드가 많습니다. 그들을 설득하면 최대 만 명에 가까운 헌터를 동원할 수 있을 겁니다!”
절대 과장해서 말한 것이 아니었다.
일본의 헌터 수는 6만에 가까웠고, 그의 인맥을 총동원한다면 이 중 절반까지도 움직이게 할 수 있었다.
단순히 그가 ‘일본의 구원자’란 별명을 갖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일본 제일의 검성이란 별명과 무공 학과장 후보라는 것이 그를 엄청난 거물로 만들어주었다.
-그럼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예! 믿어주십시오! 실력자들을 최대한 데려가겠습니다!”
미국도 고전하는 여명회와의 전쟁?
박한새의 힘을, 그리고 무공 아카데미의 힘을 몰랐다면 두려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무공 아카데미의 학생이었다.
무공 아카데미가 가진 전력이 어느 수준인지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전쟁이 어떻게 될지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 전쟁에서 내가 어떤 활약을 펼칠지만 고민하면 될 문제야!’
“야마구치 스토무와의 대화는 잘 되었습니까?”
“최대 1만 명의 헌터를 동원하겠다더군.”
“1만 명이나 동원한다고요? 그게 가능한 겁니까?”
강충구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그런 강충구를 보며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마구치 스토무라면 가능하다.”
회귀 전에도 그는 뒤늦게 무공을 배운 편인데도 일본 제일의 실력자가 된 인물이었다.
절정 고수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일본의 절정 고수가 그 한 명만이 아니었다는 걸 생각하면 그의 정치력이 남다르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으리라.
“대만에서도 5천, 동남아에서 1만 정도의 헌터들이 전쟁에 참전한다고 했으니, 상당한 숫자가 모이겠는데요?”
“5만 명 정도는 모일 거다.”
“그런데 사부님. 그렇게까지 많은 숫자를 부를 필요가 있는 겁니까?”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전 세계를 단합하게 하려면 꼭 필요한 절차야.”
“단합이 의도라면 그냥 각 국가에서 소수 정예만 불러도 되지 않습니까?”
“소수의 인원만으로 전쟁을 끝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2사도라는 자만 잡으면 되는 전쟁 아니었습니까?”
“다른 자들도 참전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야.”
“특히 10사도, 그자가 참전한다면 헌터는 많을수록 좋다.”
내 말에 강충구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자세한 정보를 모르니 더 할 말이 없었던 것이리라.
“한새 씨.”
“무슨 일입니까, 유지은 교수.”
“손님이 왔어요. 칼의 형제들 아시죠?”
“S랭크 헌터들로 이루어진 단체 아닙니까?”
노홍만이 소속된 그린스킨과 비슷한 단체였다.
즉, 소수 정예라는 뜻인데 이들 역시도 배후령을 두고 있었다.
“칼의 형제들에서 한새 씨와 만나고 싶다며 저에게 접근하였어요. 지금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한새 씨가 마음에 안 든다면 다음에 오라고 이야기할게요.”
“그들이 저를 찾아온 목적이 무엇인 거 같습니까?”
“무공을 배우고 싶어서 온 게 아닐까요? 다른 곳들도 그랬잖아요.”
무공을 배우고 싶다면 무공 아카데미에 다니면 될 텐데….
‘정확히는 내 허락을 받고 싶은 거겠지.’
나도 몰랐던 사실인데 배후령이 있는 헌터들은 내 허락 없이 무공을 배울 수 없었다.
설령 무공의 원리를 알고 있다고 해도 내 허락 없이는 무공을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이정이나 유지은, 노홍만의 경우는 내가 ‘허락’해서 무공을 배울 수 있었던 것.
무공이 세상에 등장한 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아직 어디에서도 내가 만든 무공 외에 다른 무공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없었다.
완벽한 독점 기술이 된 셈이었다.
“한번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지금 바로 불러올게요.”
과연 어떤 제안을 할까?
이왕이면 여명회와의 전쟁에 참전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최근에 칼의 형제들 소속 S랭크 헌터가 늘었다고 하니, 그들이 전부 무공을 배워서 우리를 돕는다면 전력 상승에 큰 도움이 될 거 같았다.
“한새 씨, 칼의 형제들 소속의 헌터분이 오셨어요.”
“반갑습니다. 기욤 뒤리스라고 합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지은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서양인에게 악수하듯 다가간 나는 검을 빠르게 뽑아 상대의 목에 겨누었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기욤 뒤리스란 이름의 사내는 당황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강충구와 유지은 역시도 갑작스러운 나의 행동에 당황한 눈치였다.
“칼의 형제들이 언제부터 파롤의 졸개가 되었지?”
“한새 씨, 파롤이라면 여명회의 성좌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이자는 파롤의 졸개입니다.”
다른 사람은 속여도 내 눈은 속일 수 없었다.
파롤의 졸개에게는 특유의 악취가 났으니까.
워낙 보상이 작아서 이제는 크게 의미가 없어졌지만, 퀘스트도 상대가 파롤의 졸개란 사실을 알려주었고 말이다.
“내가 여명회의 사람인 걸 어떻게 알았지?”
당황하던 기욤 뒤리스가 이내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너에게 질문할 권리는 없다.”
“우리 좋게 좋게 가자고. 왜 우리를 적대하지 못해서 안달인 거야?”
“칼의 형제들이라고 속여서 내게 접근한 이유가 무엇이냐.”
“좋은 제안을 하고 싶어서. 웬만한 사람이라면 잘 만나주질 않잖아? 칼의 형제들쯤이면 만나줄 거라고 생각했지. 물론 이렇게 바로 들킬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역시 정신 나간 놈들이었다.
겨우 나 한번 보자고 칼의 형제들이라는 막강한 헌터 단체를 사칭하다니.
“제안이라고?”
“러시아, 한국, 대만, 일본…. 그 외에 아시아에서 네가 원하는 나라를 얼마든지 주겠다. 그 대신 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일은 관여하지 않는 게 우리의 제안이다.”
“들을 가치도 없는 이야기군.”
내 검이 그의 목을 갈랐다.
기욤 뒤리스란 사내는 내가 설마 공격할 줄은 예상 못 했는지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죽었다.
“한새 씨. 죄송해요. 제가 바보같이 속고 말았네요.”
“정말 속은 거 맞습니까?”
“…네?”
“제가 어떻게 대처할지 보려고 하신 거 같은데, 이런 장난은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할 겁니다.”
“…그럴게요.”
유지은과 그 같은 대화를 나누는데, 강충구가 내게 물었다.
“사부님, 그래도 대화는 조금 더 나눠보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강충구의 말에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놈들의 제안은 그 어떤 것도 받을 가치가 없다.”
설령 그들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해도 고민할 가치가 없는 제안이었다.
몇 개의 나라를 주든, 이 세계가 파멸한다면 의미가 없으니까.
“놈들이 나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는 건, 그만큼 나를 의식한다는 의미다. 아마 내가 멕시코로 가는 것을 안간힘을 쓰며 방해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한국을 노릴 가능성이 크겠군요.”
“아마 미국에서 있었던 일을 한국에서도 재현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면 큰일이 아닙니까?”
“미국처럼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았다면 큰일이겠지.”
강충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무슨 대비를 했는지 알쏭달쏭한 거 같았다.
나는 그런 강충구에게 화영 길드의 정승호 길드장을 불러오라고 지시하였다.
그제야 강충구는 이해했다는 듯, 눈에 이채를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