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2사도가 있는 던전을 발견한 거 같아요.”
“찾은 겁니까?”
유지은의 말에 나는 반색하였다.
이번 전쟁은 ‘킹’을 잡아야 승리하는 전쟁이었다.
수도를 빼앗는 것?
군대를 전멸시키는 것?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킹, 그러니까 2사도란 자가 존재하는 한 수도는 의미 없고 병력은 언제든 다시 뽑아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놈을 찾기까지 상당히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적어도 한 달 이상은 걸릴 것으로 생각했다.
회귀 전에도 이만한 수의 헌터를 동원했음에도 놈을 찾기까지 수개월이 소모되었으니.
“어디에 있답니까?”
“야마구치 스토무 학생의 말로는 엘치촌 던전이라는 곳에 숨어있다고 하더군요.”
“엘치촌 던전이라면 8성급 던전 아닙니까?”
“예, 맞아요. 그들의 거센 저항에 잠시 물러났다고 해요.”
야마구치 스토무, 역시 운이 좋은 사내였다.
가장 먼저 2사도를 발견하다니.
‘역시 운이 좋은 사람을 곁에 두면 나에게도 좋은 일이 생기는 거 같군.’
2사도를 늦게 찾으면 늦게 찾을수록 멕시코인들이 받을 피해는 커졌다.
현재의 멕시코는 무정부 상태나 다를 게 없었으니 말이다.
“야마구치 스토무 학생이 지원을 요청하였는데, 제가 갈까요?”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2사도를 처리하는 일엔 내가 직접 움직이는 것이 좋았다.
현장에서 어떤 식의 변수가 발생할지 모르니.
하지만 내가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릴 때, 내 권속 중 한 명이 중요한 보고를 하였다.
-사부가 말한 거대 거미가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김수민의 목소리를 들은 나는 다급히 김수민의 시야를 확인하였다.
그러자 보였다.
10사도, 크루엘라.
산보다 더 거대한 거미 괴물이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을 부서뜨리며 북으로 진격하는 모습이.
8성급 던전 보스는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지는 엄청난 체격의 괴물이었다.
‘결국, 그녀가 움직였군.’
아메리카에 왔으니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다.
남미는 그녀의 주 무대였다.
무공을 익힌 헌터들에게 이상할 정도의 집착을 보이던 그녀였으니 분명 우리를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당장 과테말라의 던전으로 헌터들을 보내야겠습니다.”
유지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2사도를 죽인다고 하다가 갑자기 멕시코도 아니고 과테말라로 헌터를 보낸다고 하니 그녀로선 의문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던전은 갑자기 왜 공략한다는 거죠? 2사도란 자를 잡기만 하면 끝나는 전쟁 아닌가요?”
“2사도는 지금 잡지 않을 겁니다. 저는 놈을 미끼로 사용할 생각입니다.”
“미끼라…. 누구를 끌어들일 생각이신 거죠?”
“거미 괴물입니다.”
“거미 괴물이요?”
“여명회에서 무력을 담당하는 사도 중 한 명인데, 그녀의 본체는 9성급 보스 이상의 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8성급도 아니고 9성급이라니….”
그녀가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워하였다.
8성급 던전이 열린 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다.
세상은 여전히 8성급 던전에 대한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황.
그런 상황에서 9성급 던전 보스를 거론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9성급 보스 수준인데, 우리가 잡을 수 있는 건가요?”
“정면으로 싸운다면 피해가 클 겁니다. 그래서 2사도를 미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크루엘라라는 거미 괴물은 나도 혼자서는 상대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아마 내가 초절정이나 화경 같은 경지에 올라야 상대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경지를 높일 방법은 없었다.
경지를 올릴 때까지 크루엘라를 가만히 놔두는 것도 불안 요소였다.
그녀는 단신으로 남미 전체를 초토화시킨 괴물이었다.
심지어 시간이 갈수록 더 강해지는 존재였기에 죽일 수 있을 때 죽여야만 했다.
‘다행히 나는 혼자가 아니지.’
혼자서라면 아무리 나라도 포기했을 것이다.
나 혼자서 그녀를 죽일 방법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내 제자라 할 수 있는 무공 아카데미 인원 중 무려 이천에 가까운 숫자가 이번 전쟁에 참전하였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헌터들도 5만이었고 멕시코에 원래 있었던 미국 헌터도 수천 명이나 되었다.
이들이 있다면 크루엘라를 잡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그런데 한새 씨. 과테말라의 던전에 헌터들을 보내는 이유는 뭔가요?”
“일종의 청야 전술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동료들만 믿고 크루엘라를 정면으로 상대할 생각은 없었다.
정면으로 그녀를 상대했다가는 피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공략법이 청야 전술이었다.
“거미 괴물은 엄청난 대식가입니다. 하루에 수십에서 최대 수백 마리의 몬스터를 먹을 정도입니다.”
“몬스터를 먹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죠?”
“인간도 먹을 수 있습니다. 단, 마력을 지닌 인간만 먹을 수 있죠.”
이것이 내가 생각한 최고의 공략법이었다.
2사도를 미끼로 유혹한다면 크루엘라는 내 쪽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을 터.
깊은 곳까지 유인한 뒤에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막는다면 크루엘라는 자멸할 수밖에 없을 거다.
“연합군이 멕시코의 주요 거점을 전부 장악하였습니다.”
“허어. 일주일이 채 안 지난 것으로 아는데….”
해리스 대통령은 혀를 내둘렀다.
말이 연합군이지, 사실은 박한새의 사병이나 다를 게 없는 집단이었다.
그런데 미군도 애를 먹다 못해 철군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멕시코를 순식간에 장악하였다.
“어떻게 될 거 같습니까? 여명회라는 자들이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지 않습니까?”
여명회는 미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정도로 과격한 성향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들이 연합군에게 일방적으로 당할 거 같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이미 두 차례에 걸쳐 그들의 지부가 박살이 났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도 적비단이란 세력이 대만의 헌터 집단에 의해 궤멸 직전의 상황에 놓였습니다. 참고로 이 적비단이란 세력이 여명회의 중국 지부입니다.”
여명회의 한국 지부가 박살이 났고 중국의 지부 역시도 궤멸 직전의 상태라는 말에 해리스 대통령은 눈을 크게 떴다.
“그럼 여명회는 미스터 박에게 어떤 반격도 하지 못할 것이란 뜻입니까?”
“예, 여명회에서 한국을 직접 노리는 것은 어려울 겁니다.”
“여명회는 CIA도 얼마 전까지 알아채지 못한 집단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미스터 박은 어떻게 그들을 이리도 잘 아는 겁니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파악하지 못하였습니다.”
일개 개인이 세계 초강대국이라는 미국보다 더 막강한 정보력을 손에 쥐고 있다는 것이 그로선 믿기지 않았다.
‘박한새. 그는 정말 미스터리로 가득 찬 인물이군.’
애초에 비각성자인 그가 S랭크 헌터들보다 강하다는 것도 미스터리한 일이었다.
아무리 무공이란 것이 있어서라고 하지만, 무공을 익힌 한국의 비각성자들은 일반 헌터보다 약하지 않던가.
“미스터 박, 그자를 이대로 방치해도 되겠습니까?”
“그러면요? 전쟁 중인 상황에서 아군끼리 총질이라도 하자는 겁니까?”
“저는 그자가 여명회란 세력보다 위협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명회는 우리 미국을 공격한 자들인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해리스 대통령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듯 그와 같이 말하였다.
하지만 CIA 국장, 맥콘은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지금 멕시코 전쟁만 봐도 그렇습니다. 정보원의 보고에 따르면 그자는 일부러 전쟁을 장기화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쟁을 장기화하고 있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여명회의 주요 간부이자, 산타 무에르테의 교주로 알려진 데미안 디아스를 일전에 보고한 적이 있을 겁니다.”
“무정부 상태의 멕시코를 지휘하는 자라고 하셨던 거 기억하고 있습니다.”
“IHA에서는 그자만 잡으면 전쟁이 끝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미스터 박, 그자는 데미안 디아스의 위치를 알아냈음에도 아무런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예. 90% 이상의 신뢰성이 확보된 정보입니다.”
“하지만 미스터 박이 왜 데미안 디아스란 자를 잡지 않는단 말입니까?”
“제 예상이지만, 멕시코를 장악하기 위해서 그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맥콘의 말에 해리스 대통령은 눈을 크게 떴다.
안 그래도 백악관 참모들이 비슷한 의견을 제시하였었다.
멕시코의 주요 인사들과 만나고 다니는 IHA의 행태가 수상하다고 말이다.
그들은 IHA가 미국을 배제하고 멕시코의 차기 정부를 세우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박한새가 데미안 디아스를 일부러 살려두고 있다면 그 의혹이 사실이라고 봐도 무방하리라.
“대통령님! 미스터 박을 이대로 내버려 둬서는 안 됩니다.”
“지금 당장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대통령님!”
“지켜만 보세요. 미스터 박이 무슨 수를 쓰려고 하는지.”
해리스 대통령에게 있어 시급한 것은 멕시코와의 전쟁을 끝내는 일이었다.
그러니 괜히 박한새와 충돌을 벌여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해리스 대통령이 관망을 선택하였다고 그 아랫사람들까지 전부 관망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자에게 단단히 경고해야겠어. 허튼수작을 부리지 못하게끔 말이야.’
CIA 국장, 맥콘은 속으로 그와 같은 생각을 하였다.
“미스터 박, 정말 놀라워요. 이렇게 신속히 멕시코의 상황을 안정시키다니. 오직 미스터 박만이 가능한 일이 아닐까요?”
제니퍼가 눈웃음을 지으며 그리 말했다.
“아직 멕시코의 상황이 안정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거 같습니다.”
“정부도 다시 구성되어 가고 있고, 군과 경찰 조직도 정상화되었으니 이 정도면 멕시코 전체가 안정화되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멕시코 정계에서 여명회의 세력을 완전히 퇴출시켰으니 그것만으로도 멕시코의 상황이 안정되었다고 봐도 무방하긴 했다.
물론 2사도를 처리하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제가 놀란 점은 헌터들의 사기예요.”
“사기 말입니까?”
“미군이나 미국 헌터들은 전쟁을 치르면서 사기가 많이 낮아졌다고 들었는데, 미스터 박이 지휘하는 헌터들은 전쟁을 치르는 와중에도 오히려 사기가 높아졌다면서요?”
“아무래도 공적치 시스템 덕인 거 같습니다.”
헌터들의 사기가 높은 이유는 별게 아니었다.
공을 세우면 세울수록 그에 걸맞은 보상이 떨어지기에 사기가 높은 것이었다.
“공적치 시스템에 대해서는 저도 많이 들어봤어요. 8성급 몬스터 몇 마리만 잡아도 레어 수준의 아이템을 받을 수 있다면서요?”
“예, 아이템이 싫다면, 영약이나 금전적인 보상을 선택해도 됩니다.”
“IHA나 각국 정부에서 챙겨주어야 할 보상인데, 미스터 박이 그런 보상을 챙겨주니 뭔가 고마우면서도 민망하네요.”
“괜찮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제 말을 잘 따라주는 헌터들에게 그에 걸맞은 보상을 해주는 것일 뿐입니다.”
나를 따라 멕시코에 온 헌터들은 어찌 보면 ‘나의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한 이들이었다.
실제로 멕시코에 와서도 내 지시를 잘 따라주고 있었고 말이다.
이런 그들에게 내가 얻은 전리품을 일부 나눠주는 것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어차피 8성급 던전 브레이크 사태를 정리하면서 카르마 상점에 막대한 양의 카르마가 쌓이기도 했고 말이다.
‘카르마를 더 모아봤자, 와그너의 신발이나 뱃사공의 목걸이 같은 수준의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이럴 때 팍팍 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카르마 상점에 올라오는 아이템의 기준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였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영약 종류 외에는 내가 욕심을 낼 만큼 대단한 물품은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뭐 그래도 9성급 던전이 열릴 때쯤 되면 그때는 가치 있는 물품이 생기겠지만 말이야.’
8성급 던전이 열릴 때도 카르마 상점에 일부 변화가 생겼었다.
아마 9성급 던전이 열릴 때는 이때의 변화보다 훨씬 큰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