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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189화 (189/275)

#189화

제니퍼와 한창 즐겁게 대화하는데 누군가 나를 찾아왔다.

일전에 본 적이 있는 CIA의 제이슨 핸슨이라는 요원이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입니까?”

내가 까칠한 목소리로 묻자, 그도 까칠하게 받아쳤다.

“미스터 박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거 같으니, 저는 이만 일어나볼게요.”

“일어나지 마십시오. 제니퍼 회장님도 들으셔야 할 이야기입니다.”

“미스터 박이 어떤 짓을 했는지 제니퍼 회장도 알아야 하니 말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미간을 좁혔다.

제이슨 핸슨, 아니 찰리 배리스란 본명을 가진 이 사람을 볼 때면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파롤의 졸개를 볼 때처럼 역겨운 기분이랄까.

‘러시아 헌터 협회장처럼, 몰래 처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도.’

유라이치 바실예프.

그자는 인류의 해악이었다.

오직 자신의 영달만 생각하는 인물이었으니.

그리고 내가 봤을 때, 눈앞의 찰리 배리스란 인물도 유라이치 바실예프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오만하고 이기적이며 인종차별주의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나에게는 물론이고, 인류 전체에 해가 됐으면 해가 됐지 도움이 될 인물은 절대 아닐 것이다.

“제가 전에 경고했을 텐데요. 제 앞에서는 말조심하는 게 좋을 거라고.”

내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그리 말하자, 찰리 배리스가 코웃음을 쳤다.

“미스터 박. 저도 분명 경고했을 겁니다. 미국을 우습게 보지 말라고.”

“제가 미국을 우습게 봤다는 말입니까?”

“그게 아니라면 왜 2사도란 자를 죽이지 않고 있는 겁니까?”

찰리 배리스는 날카로운 눈으로 내게 따지듯 물었다.

“저희가 모른다고 생각하셨으면 그건 착각입니다. 엘치촌 던전. 멕시코의 유일한 8성급 던전에 2사도란 자가 숨어있지 않습니까?”

“왜 그걸 알면서도 그를 죽이지 않고 있는 겁니까. 미스터 박!”

“저를 추궁하는 겁니까?”

“추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당신은 지금 전쟁을 장기화하려는 수작을 부리고 있습니다!”

웃기는 말이었다.

내가 전쟁을 장기화하려고 수작을 부린다니.

나를 무슨 전쟁광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제니퍼 회장! 회장이 보기에는 어떻습니까? IHA에서도 2사도에게 거액의 현상금을 걸었지 않습니까.”

“…걸었었죠.”

“미스터 박은 2사도의 위치를 파악했으면서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IHA 입장에서 이는 중죄 아닙니까?”

제니퍼가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이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스터 박이라면 다 이유가 있을 거예요. 저는 미스터 박을 믿습니다.”

“멕시코를 지배하려고 수를 쓴 것인데, 이자를 믿는단 말입니까?”

“미스터 박이 멕시코를 지배할 생각을 품고 있다고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게 아니라면 미스터 박의 의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나를 추궁하더니 이번에는 제니퍼를 추궁하는 찰리 배리스였다.

“찰리 배리스 씨.”

“본명을 부르는 건 자제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건 경고입니다. 미스터 박.”

“당신의 경고가 저에게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아까부터 저를 추궁하시는데, 이게 미국의 뜻입니까?”

“미국은 당신이 멕시코 전쟁에 참전한 의도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정부가 저를 추궁하라고 시키기라도 했다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미국은 저에게 아직 제대로 된 감사 표현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불쾌하게 대하기만 한다면 제 기분이 어떨 거 같습니까?”

“저희가 느끼고 있는 의문만 해결해준다면….”

“제가 분명 말했을 텐데요. 멕시코 전쟁은 제가 직접 지휘할 것이라고.”

2사도를 미끼로 사용할 거란 내 작전을 굳이 이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비밀이 지켜질 거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꺼냈다.

작전 지휘권은 어디까지나 나에게 있고 미국이 따질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짚고 넘어간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고하겠습니다. 저는 미국 시민권자도 아니고 미국의 지시를 받는 PMC 기업도 아닙니다. 그러니 저의 일에 간섭하거나 추궁하는 일은 하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일단은 그럼 지켜만 보겠습니다.”

내 경고에도 그는 태연한 척 대꾸하였다.

그가 물러나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CIA가 감히 미스터 박에게 저리 무례한 태도를 보일 줄은 생각 못 했네요.”

제니퍼가 위로하듯 내게 말을 꺼냈다.

“제 영향력이 강해지니 저를 견제하지 못해 안달이더군요.”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몰래 미행하거나 가끔씩 찾아와서 협박하는 정도입니다.”

“저로선 정말 이해하기 어렵네요. 미스터 박은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의 영웅인데. 고마워하지 못할망정 견제를 하다니.”

“제니퍼가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사실을 몰랐다면 모를까, 안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어요. 제가 미국 백악관에 공식적으로 항의할게요.”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에요. 은인을 이리 대우하는 건 미국의 신념에도 위배되는 행동이에요. IHA 회장이기 이전에 미국 시민권자로서 용납할 수 없어요.”

“그래야만 마음이 편하시다면 마음 가시는 대로 하십시오.”

“언론에도 퍼뜨려서 CIA를 압박해야겠어요. 미국을 도와준 히어로를 CIA에서 푸대접했다는 식으로 말이에요.”

그녀는 찰리 배리스가 나를 대한 태도를 보고 진심으로 화가 난 거 같았다.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2사도에 관해서는 묻지 않으십니까?”

“엘치촌이란 던전에 숨어있다는 2사도 말이죠?”

“예. 저는 그가 엘치촌 던전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오래전에 알았으면서도 방치하고 있습니다.”

“그런가요? 솔직히 궁금하긴 한데, 저는 아까도 말했던 것처럼 미스터 박을 믿어요.”

“미스터 박이 이유 없이 그자를 내버려 두는 게 아닐 거잖아요?”

“예, 작전에 필요해서 잠시 내버려 두고 있는 것입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제 작전에 대해 말씀해드리자면….”

내가 그녀에게 거미 괴물의 존재를 알리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유지은이 내게 다가오더니 이와 같은 보고를 하였다.

“한새 씨, 거미 괴물이 과테말라의 후에고 화산이란 곳에 나타났어요.”

박한새를 따라 멕시코로 온 헌터들이 전부 박한새의 명령에 적극적으로 따르는 것은 아니었다.

오직 ‘무공’을 보고 멕시코로 왔다면 당연히 박한새의 지시를 적극 따를 수밖에 없었다.

무공의 창시자인 박한새의 심기를 어지럽힌다면 무공을 배울 때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든 헌터가 무공 하나만 보고 멕시코로 온 것은 아니었고, 그 외의 다른 보상을 노리고 온 헌터도 적지 않았다.

“9성급 던전 보스가 이곳으로 오고 있단 말이지?”

태국의 S랭크 헌터, 카셋신은 기대감 어린 목소리를 하며 그같이 중얼거렸다.

과테말라로 이동한 헌터들은 박한새로부터 ‘던전으로 피신’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정체불명의 보스 몬스터를 피해 던전으로 도망치라는 지시였다.

대만 헌터들의 경우 이 같은 지시에 적극적으로 따라주었다.

하지만 카셋신을 비롯한 태국, 베트남 등의 헌터들은 박한새의 지시를 따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거미 괴물도 잡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어때?”

“9성급 던전 보스라는데, 자신 있나?”

“8성급 던전이 열린 게 불과 얼마 전이야. 세상에 9성급 던전 보스라는 게 존재할 리가 있겠어?”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하는데, IHA가 거짓된 정보를 주지는 않았을 거 아닌가?”

“멍청한 새끼. IHA의 의도를 모르겠어?”

“뭐? 멍청한 새끼? 너 지금 뭐라고 했지?”

“IHA는 우리가 거미 괴물을 독점할까 봐 일부러 말도 안 되는 경고를 한 거야. 9성급 던전 보스가 나왔다고 하면 우리가 도망칠 거라고 생각해서 말이지.”

카셋신의 빈정거리는 말에 베트남의 S랭크 헌터, 응우옌 캉은 분노를 토해내려다가 이어지는 그의 말을 듣고 가까스로 분노를 가라앉혔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9성급 던전 보스라니.

응우옌 캉이 생각하기에도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카셋신의 추측처럼 IHA가 거미 괴물을 노리고 있다고 보는 게 훨씬 더 현실성 있었다.

“그럼 전리품은 어떻게 분배할 거지?”

“전리품 이야기를 했다는 건 나와 함께 거미 괴물을 잡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거겠지?”

“물론이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흐흐! 머리 나쁜 놈인 줄 알았더니, 그래도 생각을 조금은 할 줄 아는 놈이었군!”

“도발하는 거냐?”

“아니, 그냥 기분 좋아서 한 말이다. 8성급 던전 보스의 전리품에 엄청난 양의 공적치까지 쌓을 기회니 말이야. 하하하!”

그가 웃자 응우옌 캉도 기분 좋게 웃었다.

전리품을 어떻게 분배할지 아직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공적치 시스템’ 덕에 평소보다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IHA가 거미 괴물을 9성급 던전 보스라고 발표했으니, 공적치도 그에 상응하는 만큼 지급해줄 터.

박한새로부터 받게 될 보상도 엄청날 것이 분명하였다.

이러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안전을 위해 네 명의 S랭크 헌터를 더 포섭하였다.

8성급 던전 보스를 안정적으로 잡기 위해서는 다섯 명의 S랭크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들은 전리품 분배에 대해서는 조금 더 여유가 있었기에 한 명 더 포섭하여 여섯 명이서 거미 괴물을 잡기로 하였다.

IHA의 경고도 있으니 조금 더 안정적으로 거미 괴물을 잡으려 한 것이다.

“우리 여섯 명이면, 러시아에 나타났었던 개미 군단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는데?”

“8성급 던전 보스쯤은 한 번에 두 마리도 토벌할 수 있을 거다.”

“너무 여유 갖지는 마.”

“설마 두려운 거냐?”

“그게 아니라, 여유 부리다가 박한새의 제자들이 스틸 하러 올 수도 있잖아.”

“아, 그건 그렇지.”

“박한새 그놈이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아이템에 대해서는 욕심이 없어 보이는 거 같던데 말이야.”

“그럴 리가. 어지간한 건 성에 안 차서 유니크 이상의 아이템만 노린다는 소문이 있어.”

S랭크 헌터들은 그와 같은 대화를 나누며 거미 괴물이란 존재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왔다.”

마침내 몇 km 떨어진 곳에서 ‘괴물’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새, 생각했던 것보다 큰데?”

“건물 한 채 크기라고 해서 그냥 1, 2층짜리 건물로 생각했건만, 저건 저층 건물이 아니라, 고층 건물이잖아!”

거미 괴물의 형체는 실로 무시무시하였다.

높이만 해도 30m가 넘었다.

건물 기준으로 대략 6층 정도의 크기라고 봐야 했다.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빌딩이었다.

하지만 크기보다는 외형이 더 공포적이었다.

환공포증이 느껴질 정도로 거미의 안면에는 눈이 빼곡하게 있었다.

“쫄지 마! 그래봤자 몬스터일 뿐이야!”

“맞아. 크기가 크면 오히려 좋은 거잖아?”

“사거리 안에 들어오면 바로 압살해버리자고!”

B랭크 헌터들, 아니 그보다 한 단계 높은 A랭크 헌터들이어도 거미 괴물의 외형을 보면 겁에 질렸을 것이다.

그만큼 거미 괴물의 체격과 외형은 무시무시하였으니까.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헌터들의 랭크는 무려 S였다.

S랭크 헌터들이 한낱 몬스터에게 두려움을 느낄 이유는 없었다.

“나부터 공격할 테니, 모두 준비해!”

카셋신이 앞으로 나가더니 그렇게 외쳤다.

그가 양팔을 하늘로 뻗는 모습을 취하자 다른 S랭크 헌터들은 그의 손에서 만들어질 스킬을 기대하였다.

하지만 몇 초가 지났는데도 그의 손에서는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고 있었다.

“야, 카셋신! 뭐 하는 거야?”

“주, 죽었어!”

자신만만하던 카셋신이 갑자기 뒤로 쓰러졌다.

그의 얼굴은 심한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당황한 S랭크 헌터들이 고개를 돌려 거미 괴물을 바라보았다.

거미 괴물의 수많은 눈과 마주친 그들은 이내 카셋신과 똑같은 최후를 맞이하였다.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즉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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