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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192화 (192/275)

#192화

엘치촌 던전.

던전 보스가 있다는 던전의 심장부 입구를 레이한 길드 소속의 헌터들이 지키고 있었다.

“레이한 길드에서 레이드 중이다. 방해하지 말고 물러나라.”

객이 주인 행세를 한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이분은 박한새 총장님입니다. 괜히 더 큰 문제 일으키지 말고 비키십시오.”

주현근이 나를 가리키며 그리 말하자, 레이한 길드의 헌터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놀라기만 할 뿐, 그들은 길을 비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앞서 말했듯, 길드 마스터가 레이드 중입니다. 잠시 대기해주시길 바랍니다.”

말투는 정중하였으나, 여전히 단호한 태도였다.

그러자 이정이 코웃음 치며 앞으로 나섰다.

“말이 안 통하는 놈들인데, 굳이 더 대화할 필요 있어? 그냥 때려눕히면 되지.”

그는 분명 한국말로 말했지만, 워낙 공격적인 태도여서 그런지 레이한 길드의 헌터들이 전투 준비를 갖추었다.

“그런다고 달라질 거 같아?”

이정의 신형은 어느새 그들 중앙으로 이동해있었다.

보법을 펼치면서 가속 스킬까지 사용한 것이다.

헌터들이 놀란 표정을 지을 때, 이정의 주먹이 그들의 얼굴로 향했다.

퍽, 퍽, 퍽!

C랭크 이상의 고랭크 헌터들로 보였으나, 딱 한 명 빼고는 이정의 공격을 전혀 막아내지 못하였다.

물론 유일하게 이정의 공격을 막아낸 자의 상태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크윽.”

“반응이 꽤 빠른데? 탱커 주제에 가속 계열의 스킬을 가지고 있나 보지?”

이정은 나름대로 감탄하며 말한 것일 거다.

하지만 상대에게는 빈정거리는 것으로 느껴졌는지, 레이한 길드의 탱커가 분노에 찬 표정을 지었다.

“IHA에서 우리를 공격한 것으로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나는 IHA 사람이 아닌데?”

“그러면 당신은 누굽니까?”

“저희 학교 교수입니다.”

내가 나서서 이정의 신분을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이정은 나를 돌아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급한 거 아니었어? 이러고 있어도 되나?”

“이미 상황은 종결되었습니다.”

2사도, 데미안 디아스.

그는 이미 누군가의 손에 의해 숨을 거둔 상태였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레이한 길드의 길드 마스터, 나즐라였다.

“이게 무슨 짓이죠?”

그때, 나에게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성의 목소리였는데, 꽤 사납게 느껴졌다.

“사부, 저 사람이 나즐라인 거 같은데요?”

뒤에서 이성은이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나즐라를 바라봤다.

그러자 나즐라 역시도 나를 바라봤는데 눈빛을 보니 나를 알아보는 눈치였다.

“박한새 씨. 왜 우리를 공격한 건가요?”

“그 전에, IHA의 지시를 무시하고 던전 내부로 진입한 이유를 묻고 싶습니다만.”

내 입에서 나도 놀랄 정도로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그리움이나 사랑 같은 감정보다는 분노와 증오라는 감정이 더 깊게 남아있었던 거 같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닐 텐데요?”

“IHA의 지시를 무시했기에 저희는 강경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저희가 IHA의 지시를 들어야 하죠?”

그녀의 말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사실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긴 했다.

IHA는 비록 국제 헌터 협회였지만, IHA의 지시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법은 없었다.

즉, 강제성이 없다는 뜻이었다.

“이 던전은 IHA가 선점한 곳입니다. 레이한 길드는 엘치촌 던전에 들어올 자격이 없습니다.”

“이상하네요. IHA는 여명회와 적대 관계 아니었나요?”

“적대 관계, 맞습니다.”

“그런데 왜 여명회의 2사도를 죽인 저를 적대하는 거죠?”

“제가 알기로 2사도를 죽이면 상당한 공적 점수를 받는다고 들었는데…, 아니었나요?”

“지시를 어긴 이에게 공적치가 지급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2사도의 은신처인 엘치촌 던전을 파악한 이상, 어차피 2사도를 죽이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렇기에 2사도를 죽인 일로 그녀에게 공적치를 지급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이번에 받게 될 공적 점수로 무공을 배워볼까 했는데, 공적 점수가 아예 지급되지 않을 거라고요?”

나는 코웃음을 쳤다.

공적치를 받을 걸 기대하는 그녀의 태도가 나로선 우습게 느껴졌다.

지금 나는 그녀에게 공적치를 주기는커녕 어떤 불이익을 줄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녀의 행동은 내가 세운 작전에 상당히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IHA를 통해 귀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항의할 것입니다.”

“왜죠?”

“당신은 저희의 작전을 방해했습니다.”

“2사도를 죽이지 않고 있었던 게 작전이었다는 말인가요?”

나는 그녀의 질문에 더 대답하지 않았다.

이 이상 대화를 이어나갈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었다.

“돌아갑시다.”

내가 고개를 돌려 교수들에게 그리 말할 때, 그녀가 스킬을 사용하였다.

그러자 이정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나를 향한 그녀의 스킬을 맨몸으로 막아낸 것이다.

이정이 스킬에 당하기라도 했는지 몸을 휘청거렸다.

교수들은 그 모습을 보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보법을 펼쳤다.

반격을 위한 움직임이었다.

“…공격한 것은 아니었어요.”

“스킬을 사용했으면서 그런 변명이 통하리라 생각합니까?”

그녀는 교수들에 의해 사방으로 포위되었다.

스킬 한번 잘못 사용해서 그야말로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냥 당신의 생각만 읽고 싶었어요. 왜 저를 적대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갔거든요.”

나즐라의 능력은 나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상대의 정신을 장악하는, 조금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물론 누구의 정신이든 다 장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정의 상태를 봐도 몸을 휘청거리기만 할 뿐, 정신은 멀쩡하였다.

‘스킬을 제대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서 그런 것이기도 했지만 말이야.’

아마 그녀가 스킬을 제대로 사용하였다면 제아무리 이정이라 해도 잠깐 동안 몸의 통제권을 잃지 않았을까 싶다.

나즐라는 그 정도로 강력한 스킬을 가진 여인이었다.

“남의 생각을 읽겠다는 말을 당당하게도 하는군요.”

“들킬 줄 몰랐거든요. 마력을 얼마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설마 눈치를 챌 줄이야.”

참으로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그녀를 보자 왜 내가 한때 그녀를 좋아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아무래도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했던 모양이다.

“서로 잘못했으니 이 일은 없던 일로 하죠.”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총장도 저희 길드를 공격한 건 사실이잖아요?”

“그리고 공적 점수에 대해서도 말해보자면, 거미 괴물 있죠? 그 거미 괴물을 같이 잡는 건 어떨까요?”

어지간히 공적치가 탐이 났는지 이 와중에 거미 괴물 이야기를 꺼내는 그녀였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교수들에게 눈짓을 줬다.

그러자 교수들은 포위를 푼 채 나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이정만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잠시 제자리에 선 채로 나즐라를 노려볼 뿐이었다.

“이정 교수. 갑시다.”

물론 그런 이정도 내가 부르자 나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지만 말이다.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나즐라는 어느덧 점으로 보이는 박한새의 뒷모습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무공이란 것의 힘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한 거 같습니다.”

길드의 이인자, 무라트의 말에 나즐라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무라트와 다르게 이정이나 다른 교수들의 실력을 직접 눈으로 본 것은 아니었다.

데미안 디아스를 죽이고 바깥으로 나왔을 때 이미 그녀의 부하들은 전부 쓰러진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무공 아카데미 교수들의 실력이 막강하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S랭크 헌터들도 그녀가 스킬을 사용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그런데 무공 아카데미 교수들은 그녀가 스킬을 사용하기 무섭게 바로 알아차렸다.

바로 반격하기까지 하였는데, 그녀는 순간적으로 교수들의 움직임을 놓치기까지 하였다.

그만큼 그들의 반격은 신속하고 정확하였다.

“박한새는 마스터를 싫어하는 거 같은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2사도를 죽인 게 실수였나 봐.”

“하지만 그자는 파롤의 졸개입니다. 죽일 수 있을 때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그건 그렇긴 한데, 10사도를 죽일 때는 나서면 안 될 거 같아.”

원래는 10사도, 크루엘라를 잡는 것도 협조하려고 하였었다.

그녀의 성좌는 파롤을 극도로 증오하였다.

그렇기에 그녀 역시도 파롤의 권속을 잡는 것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파롤의 권속을 잡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박한새의 마음을 얻는 것이었다.

크루엘라를 잡기 위한 그의 계획까지 망친다면 그녀는 그와 원만한 관계를 맺는 걸 영영 포기해야 할 터.

“일단 지켜보고 지원을 요청하면 그때 도와주자.”

“…과연 그들이 지원을 요청할 일이 있겠습니까?”

나즐라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보기에, 무공 아카데미 교수들의 무력은 S랭크 헌터들보다 훨씬 강했다.

제아무리 크루엘라가 강력하다지만, 그들 전부를 이길 수는 없을 거 같았다.

‘더군다나 교수들이 박한새의 말을 절대적으로 따른다는 것을 보면, 박한새의 무력은 교수들보다 더 강하다는 뜻인데….’

박한새의 무력은 어느 수준일까?

그녀로선 감히 상상도 하기 어려웠다.

30m에 달하는 거대 괴물.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두렵게 만드는 그 괴물의 입에서 전혀 의외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까칠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무슨 용건이야! 배고파서 기분 나쁘니까 빨리 용건만 말해!”

거대 괴물, 크루엘라의 모습은 그냥 봤을 때는 위압감이 넘쳐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피부가 푸석푸석하게 느껴졌다.

목소리도 많이 갈라졌는데, ‘영양’이 제대로 보충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2사도가 죽었다고 합니다.”

“2사도가 죽었다고?”

와이번을 탄 사내의 말에 크루엘라는 애꿎은 땅에 발길질하였다.

말이 발길질이지, 그녀의 몸 크기가 30m에 달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반경 수백 m에 그야말로 지진이 일어난 거 같은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1사도께서 말씀하시길, 박한새가 함정을 판 거 같다고 합니다.”

“함정? 무슨 함정?”

“일부러 10사도님을 자신이 있는 장소로 유인한 것이랍니다. 10사도님을 살해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평소 같았으면 사내의 말을 듣고 크루엘라는 크게 웃었을 것이다.

감히 자신을 상대로 함정을 파다니!

오크도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거라면서 실컷 비웃었으리라.

하지만 지금 그녀는 박한새의 행동을 비웃을 만큼 여유가 있지 않았다.

며칠 동안 제대로 영양을 보충하지 못해서 기력이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내게 전해줄 이야기는 그게 끝이야?”

“예. 1사도님과 6사도님에게 따로 전하실 이야기가 있으십니까?”

“그딴 건 없으니, 이제 죽어!”

“예? 크헉!”

거미의 앞발이 와이번의 몸을 움켜잡았다.

와이번은 저항하려고 하였으나, 그 저항은 단 몇 초도 이어지지 못 하였다.

순식간에 제압된 와이번은 그대로 거미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와이번에 탄 사내 또한 최후는 똑같았다.

“부족해! 한참 부족해!”

한 명의 인간과 한 명의 몬스터를 섭취한 크루엘라.

하지만 그녀의 공복감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먹을 거! 먹을 거! 먹을 거!”

크루엘라는 가던 길을 멈추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2사도의 복수를 하는 일이나, 박한새를 집어삼키는 일은 그녀에게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배 속이 찢어질 듯한 굶주림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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