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에두아르도 가르시아.
멕시코를 대표하는 헌터이자, 얼마 전까지는 IHA에서 ‘빌런’이라 선언하였던 이가 나에게 감사 인사를 하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미스터 박, 당신 덕분에 긴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습니다.”
2사도, 데미안 디아스의 죽음은 멕시코 전역에 엄청난 영향을 가져다주었다.
세뇌에 빠졌었던 멕시코 헌터들이 그의 죽음과 동시에 동시다발적으로 세뇌가 풀렸던 것이다.
“데미안 디아스를 죽인 것은 제가 아닙니다.”
“산타 무에르테의 교주를 죽인 것은 터키 헌터라는 사실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멕시코를 구원한 것은 미스터 박, 당신이지 않습니까.”
세뇌가 풀린 멕시코 헌터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왜 자신이 동료들을 공격했는지.
왜 자신의 조국인 멕시코가 이리도 엉망이 되었는지.
그냥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중 정신을 빠르게 차린 일부 멕시코 헌터들은 나를 은인처럼 생각하였다.
미국은 그저 영토를 확장할 생각으로 데미안 디아스가 지배하던 멕시코를 침공한 것에 비해, 나의 의도는 미국보다 훨씬 순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미스터 박. 아직 멕시코의 위기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예, 9성급 던전 보스의 침입이라는 미증유의 위기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스터 박은 이번에도 멕시코를 위해 싸워주실 겁니까?”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였다.
그녀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잡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저도 그 싸움에 함께해도 되겠습니까?”
에두아르도 가르시아가 비장한 각오를 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 크루엘라와의 싸움에 참전한다는 것은 엄청난 각오를 해야지만 가능한 결정이었다.
이미 그녀의 손에 여섯 명의 S랭크 헌터가 당한 상황.
데미안 디아스의 죽음에 분위기가 그리 밝아지지 않는 것도 바로 그녀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그녀 한 명이 멕시코 전역을 지배하던 데미안 디아스보다 위협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죄송하지만, 거미 괴물은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손발을 맞춰 온 이들과 싸울 생각입니다.”
“거미 괴물도 산타 무에르테의 교주가 소속되어 있는 여명회 일원이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반드시 그자들에게 복수하고 싶습니다! 그자들은 저를 능욕했으며, 제 가족을 인신공양하였습니다!”
가족을 그냥 잃은 것도 아니고, 제물로 바쳐졌다니.
실로 끔찍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에두아르도 가르시아는 데미안 디아스에 의해 가족을 잃었음에도 잠시나마 그를 종교 지도자로서 찬양하였었다.
아무리 세뇌 상태였다고 해도 원수를 찬양했던 그 굴욕과 치욕, 분노가 쉽게 가라앉을 리는 없었다.
그는 나 이상으로 여명회를 향해 분노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에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가르시아 헌터도 아시지 않습니까. 손발이 맞지 않는 인원과 레이드를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번이 아니라도 기회는 많을 겁니다. 여명회란 적은 앞으로도 계속 인류를 위협할 것이니 말입니다.”
“…다음에는 꼭 당신과 함께 여명회에 맞서 싸우고 싶습니다.”
“그럴 기회가 반드시 생길 것입니다.”
데미안 디아스로 인해 멕시코 헌터들이 많이 죽은 상태였다.
하지만 여전히 수천 명의 멕시코 헌터들이 생존한 상태.
나는 그들에게도 무공을 배울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에두아르도 가르시아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듯, 그들은 여명회를 향해 엄청난 복수심을 가지고 있었다.
향후 여명회와의 전쟁에서 크게 일조할 수 있을 것이리라.
“가족이 인신공양 당했다니, 저였어도 분노를 참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
이성은이 내게 다가와서는 낮은 목소리로 그리 말하였다.
“꼭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사람이라면 여명회의 행태를 용납해선 안 되지.”
“너도 안주하지 말고 더 실력을 키우도록 해.”
“안주할 생각 따위는 맹세코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원래 헌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본인의 무력을 키우려고 들었다.
멕시코에 펜테리움이 유행했던 것도 결국 헌터들의 그런 욕구 때문이었다.
당연히 이성은이라고 그런 욕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니, 그는 오히려 여느 헌터들보다 강해지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한 편이었다.
그러니 역대급 유망주란 소리를 듣던 상황에서도 더 강해지겠다며 카펠라를 자신의 배후령으로 두었던 것이겠지.
“근데, 나즐라 헌터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그녀의 능력이라면, 여명회와의 전쟁에 큰 도움이 될 거 같은데….”
“퀘스트 때문에 그런 말 하는 것은 아니고?”
이성은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정곡을 찔려서 무안했던 모양이다.
“근데 솔직히 궁금하긴 합니다. 사부가 왜 그렇게까지 그녀를 적대하는 것인지.”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고민하고 있었다.
그에게 회귀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줄지, 아니면 지금까지처럼 계속 감출지를.
‘성은이는 나에게 이야기해줬었지. 자신이 회귀했다는 사실을 말이야.’
단순히 회귀했다는 사실만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다.
회귀 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어떤 과거를 바꿨는지까지 다 이야기해주었었다.
물론 그때의 나는 그의 말을 반신반의하여 제대로 귀담아듣지 않았었지만 말이다.
‘어쩌면 그때부터 성은이는 나를 회귀자 후보로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도 모르겠군.’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굳이 회귀했다는 사실을 내게 알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 이유는 나중에 설명해주겠다.”
“나중에 언제요?”
“…도저히 답이 안 나올 때. 그때 내가 모든 걸 설명해주마. 교수들의 반대에도 너에게 적극적으로 무공을 가르쳐준 이유에 대해서도.”
내 말에 이성은은 눈을 빛냈다.
아마 그도 궁금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는 이유를 말이다.
“전 다른 사람들 말을 듣고 오해했지 뭡니까. 사부의 취향이 그쪽인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오해.”
“취향? 그게 무슨 말이지?”
“농담입니다. 농담. 그냥 저에게 이유 없이 친절하게 굴어서 오만 가지를 생각했었습니다.”
이상하게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가 무슨 오해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썩 긍정적인 오해는 아닌 듯싶었다.
“한새 씨. 급한 소식이에요.”
그렇게 이성은과 대화를 나누던 중, 유지은이 다급히 내게 다가왔다.
“거미 괴물이 진로를 바꾸었다고 해요!”
유지은은 엄청난 소식을 전하는 듯, 표정이 꽤 비장하게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소식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이미 예상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인내심을 잃은 모양이군요.”
“인내심을 잃었다는 말은, 거미 괴물의 상태가 그만큼 안 좋다는 뜻이겠죠?”
“그러면 바로 공격을 시작할 건가요?”
“아직입니다.”
방심은 절대 금물이었다.
그녀를 괜히 9성급 던전 보스로 상정한 것이 아니었다.
그만큼 방심할 수 없는 존재인 것.
‘2사도가 죽어서 더 이상 유인이 통하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유인을 할 수밖에.’
“저도 데려가주십시오!”
“아닙니다. 단순히 유인하는 거뿐인데, 여러 사람이 갈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혼자서 크루엘라를 유인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자 주현근과 이성은, 그 외에 여러 교수들까지.
너 나 할 것 없이 나에게 함께 가고 싶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요구를 전부 거절하고 결국 혼자서 움직이기로 하였다.
‘역시 엄청나군.’
직접 내 눈으로 본 크루엘라의 위압감은 실로 어마어마하였다.
일반인이 크루엘라를 본다면 바로 실신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계속 방치했다면 저것보다 훨씬 더 거대해졌겠지?’
거대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더 빠르고 더 완전해졌을 것이다.
그녀는 나날이 성장하는 성장형 괴물이었으니까.
“크아아아아악!”
그때, 크루엘라가 갑자기 괴성을 질렀다.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다급히 검막을 사용하였다.
단순히 괴성일 뿐이었다.
그런데 무슨 미사일이라도 맞은 것처럼 검막에 엄청난 대미지가 가해졌다.
물론 제때 검막을 사용하였기에 피해는 입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다급히 경공을 사용하였다.
크루엘라가 괴성을 질렀던 이유.
그것은 바로 나를 발견해서 그랬던 것이었다.
경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렸는데도 뒤에서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에는 느릿하게 움직이지만, 사냥감을 발견했을 때만큼은 엄청나게 빠른 듯싶었다.
‘역시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오지 않길 잘했어.’
어떤 교수를 데려와도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크루엘라가 아직 모든 기술을 다 사용한 게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절대 방심할 수 없었다.
운이 나쁘다면 교수들도 크루엘라에게 당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한참이나 나를 뒤쫓던 크루엘라는 분노하였는지 제자리에서 괴성을 질렀다.
그러다 거미 발로 주변에 있는 건물들을 부수더니, 그 잔해를 나에게 던졌다.
내 주변은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수십 개의 크레이터가 만들어졌다.
물론 주변에만 영향을 끼쳤을 뿐, 나는 어떤 대미지도 입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입을 크게 벌리더니, 무언가를 내뿜기 시작하였다.
‘닿기만 하면 바로 즉사하겠는데?’
겉으로만 봐도 위협적이었다.
무려 브레스.
그것도 포이즌 브레스였으니.
하지만 크루엘라가 내뿜는 독은 일반 몬스터가 내뿜는 독과는 차원이 달랐다.
회귀 전, 이성은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던 히드라의 독만큼 치명적인 독이었다.
절정 고수들조차 저 독에 맞는다면 즉사하고 말리라.
설령 직접 맞지 않아도 저 연기를 흡입한다면 사실상 죽은 목숨과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경공을 극성으로 펼쳐, 포이즌 브레스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
다행히 늦지 않게 피할 수 있었는데, 나는 주위에 벌어진 참상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내가 방금까지 있던 자리는 그야말로 죽음의 땅이 되어 있었다.
마치 유황 광산처럼 연기로 가득 찼는데 그 연기는 색깔부터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실제로 그 붉은 연기에 닿는 모든 것들이 재가 되어 사라지는 게 보였다.
저 땅은 따로 조치하지 않는 한,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도 사람이 살 수 없을 것이다.
‘후우. 역시 방심할 수 없는 존재군.’
오랜만에 식은땀이 나는 거 같았다.
그나마 체력을 빼둔 게 이 정도라니.
만약 크루엘라의 상태가 정상적일 때 정면 승부를 시도했다면 과연 몇 명이나 살아남았을지 의문이 들었다.
‘저 괴물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인류를 위해서 반드시!’
나는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크루엘라의 강력한 모습을 보니 사기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올라갔다.
그녀를 제거해야 할 강력한 동기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크아아아악! 두고 보자! 네놈은 내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다시 괴성을 지르던 그녀는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나를 잡는 걸 포기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네가 사냥을 포기했다고 나까지 사냥을 포기할 거란 생각은 하지 마라.’
그녀와 나는 단순한 사냥꾼과 사냥감의 관계가 아니었다.
내가 반대로 사냥꾼이 되어 그녀를 사냥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