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여명회라고?”
“멕시코 사태의 주범들 아닙니까?”
밀실 회의의 참석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웅성거렸다.
몇몇은 눈치를 보며 조용히 자리에서 벗어날 궁리를 하였다.
요한이라는 자에게 죽을까 두려워 도망치려는 것이었다.
“경호원들은 뭐 하는 거야!”
“이래서 헌터 놈들은 믿을 게 못 된다니까!”
“제길, 저놈이 우리를 죽이려는 거 아닙니까?”
그런 그들을 보며 요한은 픽 웃고는 천천히 움직여 하나뿐인 문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조용히 자리에서 빠져나갈 준비를 하던 사람들이 다시 의자에 앉았다.
“우리에게 왜 이러는 것이오?”
태프트 상원의원이 모두를 대표하여 요한에게 물었다.
“여러분께 제안할 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제안?”
“여러분, 권력을 가지고 싶지 않습니까?”
갑자기 양손을 뻗으며 이상한 말을 하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제정신이 아닌 거 같습니다.”
“산타 무에르테의 신도들만 봐도 광신도들이지 않습니까? 제정신일 리 없지요.”
요한은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전혀 개의치 않아 하였다.
그는 이번엔 태프트 상원의원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마치 나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줄 것처럼 말하는군.”
“가능합니다!”
태프트 상원의원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는 한때 대통령 후보였던 사람이었다.
당연히 대통령이 되는 과정이 얼마나 험난한지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런데 일개 헌터 집단인 여명회가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하니 그로선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나를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거지?”
“IHA에 의해 우리 여명회는 인류의 적이 되었습니다.”
태프트 상원의원이 미간을 좁혔다.
다 아는 이야기를 갑자기 왜 꺼내는지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요한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인류의 적에게 가장 강하게 맞서 싸우는 정치인이라면 대중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요한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린 사람들은 눈을 부릅떴다.
태프트 상원의원 역시 정계에서 활동하는 이답게 요한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야. 박한새가 여명회의 대항자로 활약하여 인류의 구원자가 되었다면 나 역시 미국의 영웅이 되지 못할 게 없지 않은가.’
눈에 띄는 몇 가지 성과만 내도 될 일이었다.
어차피 그는 정치인이니 작은 성과도 크게 부풀릴 능력이 있었으니까.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정권을 장악한다면, 우리는 당신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지?”
그는 여명회와 힘을 합치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는 그같이 물었다.
그러자 다른 네오콘 소속 정치인들이 우려의 눈으로 바라봤다.
여명회와 힘을 합치는 것은 그들과 합의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아무런 이익 없이 우리를 돕겠다는 건가?”
“당신들은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들은 존재 자체로 저희에게 도움이 됩니다.”
그 말에 태프트 상원의원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왠지 그의 말이 모욕적으로 들렸던 것이다.
‘우리가 권력을 잡는 것만으로도 여명회 세력이 더 강해질 것으로 생각하는 건가?’
어찌 보면 틀리지 않은 생각이었다.
만약 네오콘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가장 먼저 할 일이 헌터들에게 준 특권을 회수하는 것이었다.
헌터들은 여명회에게 있어 장애물과 같을 테니, 네오콘 세력이 정권을 잡는 것만으로도 여명회에게는 엄청난 이익이었다.
‘우리를 우습게 본 것을 후회하게 해주지.’
네오콘이라고 여명회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명회의 본질도 결국 헌터였으니 말이다.
“일단 우리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 결정을 내리도록 하지.”
“좋습니다. 여러분의 현명한 선택을 기다리겠습니다.”
요한은 웃는 얼굴로 그리 말하더니 창가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고는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창밖으로 뛰었다.
“여러분, 여명회의 제안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태프트 상원의원의 물음에 의견은 반반으로 나뉘었다.
맥콘 전 CIA 국장의 경우 ‘그들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여명회의 도움을 받는 것을 강하게 반대하였다.
하지만 태프트 상원의원이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 손해 볼 것은 없다.’는 의견을 내세우자 순식간에 결론이 나왔다.
이미 궁지에 몰릴 대로 몰린 네오콘 세력은 고양이 손이라도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이다.
“드디어 귀국이네.”
멕시코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탄 헌터 커플이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근데 생각했던 것보다 위험하지는 않았어. 난 솔직히 목숨을 잃을 것도 각오했었는데 말이야.”
“자기, 미쳤어? 진짜 그런 생각으로 멕시코까지 온 거야?”
“으, 응? 아니,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보다 자기, 이번에 받은 공적치로 뭐 살 거야?”
남성 헌터, 김한선이 다급히 말을 돌렸다.
그러자 여성 헌터는 표정을 풀고는 이내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뭐 사면 좋을까? 자기는 뭐 사고 싶은데?”
“나는… 무공을 배워보려고.”
“무공? 무공 아카데미에 입학하겠다는 거야?”
“응.”
“아깝지 않아? 올해 입학한 사람은 공적 점수 같은 거 없이 공짜로 입학했었잖아.”
“그 사람들은 운이 좋았던 거고, 앞으로는 무조건 공적 점수가 있어야지만 입학할 수 있게 바뀐다잖아.”
“그래도 조금 아까운데….”
“이번에 못 느꼈어?”
“뭘?”
“무공 아카데미 다니는 사람들, 다 너무 강하더라. 마치 고랭크 헌터들을 보는 거 같았어.”
“원래 무공이란 게 그랬잖아.”
“이번에 더 확실하게 느꼈다는 거지. 무공이 필요한 이유를.”
멕시코 사태를 종결한 것은 사실 ‘무인’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박한새를 따라 멕시코로 향했던 수만 명의 헌터들이 한 일은 딱히 없었다.
이것은 그 수만 명의 헌터 중 한 명인 김한선부터 동감하는 사실이었다.
그가 멕시코에서 한 일이라고는 그저 한국에서처럼 던전에서 사냥을 하는 것뿐이었다.
멕시코에 처음 도착했을 때야 총격도 경험해보고 멀리서 아군 헌터와 적군 헌터가 싸우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번 전쟁에서 김한선은 무인들의 활약을 구경하는 엑스트라 A에 불과했다.
뭐, 그의 랭크는 고작 D랭크이니 처음부터 정해진 결과였겠지만 말이다.
“너를 지키려면 반드시 무공을 배워야 해.”
“…고마워. 예쁘게 말해줘서.”
“근데 자기는 어떻게 할 거야?”
“모르겠어. 현금으로 바꿔서 집 사는 데 보태는 것도 괜찮을 거 같긴 한데….”
“하긴, 자기의 공적치가 4천 점이니 현금으로 바꾸면 한화로 5천 이상은 되겠네.”
“사냥하면서 번 돈도 꽤 되니까, 대출 조금 끼면 안전지대 근처의 아파트는 충분히 장만할 수 있을 거 같아.”
말을 하는 그녀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아 보였다.
멕시코에서 신혼집을 장만할 돈을 벌게 되었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김한선도 밝게 웃었다.
“오길 잘했지?”
“응. 근데 조금 궁금하긴 해. 우리도 이 정도인데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큰 걸 받을까?”
“그러게. 우리는 던전 사냥만 해서 공적치가 아주 낮은 편에 속할 텐데 말이야.”
실제로 두 사람은 공적치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수만 명의 헌터 중에서 평균보다 조금 아래였던 것.
IHA에서 빌런이라고 발표한 이를 잡았거나 아니면 여명회와의 전쟁에서 크게 활약한 이는 공적 점수가 어쩌면 만 단위를 넘을 수도 있으리라.
“가장 궁금한 것은 박한새 총장님이야.”
“박한새 총장?”
“이번 전쟁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건 결국 그분이잖아? 그분은 과연 무엇을 받게 될까?”
“그러게? 그건 진짜 궁금한데?”
이번 멕시코 사태를 해결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게 박한새라는 사실에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박한새의 활약은 컸다.
거의 모든 헌터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많은 수의 헌터들이 박한새가 IHA에서 어떤 보상을 받을지를 궁금해하였다.
“미국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미스터 박.”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니퍼.”
“감사 인사도 빠질 수 없겠죠. 미스터 박, 멕시코와 미국을 구원해주신 거, 진심으로 감사해요.”
제니퍼는 마치 한국인처럼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였다.
이미 수천 명에게 감사 인사를 들었지만, 왠지 그녀 한 사람에게 듣는 감사 인사가 나의 심금을 울리는 거 같았다.
“해야 할 일을 한 거뿐입니다. 저만의 공도 아니고요.”
“아니에요. 미스터 박과 미스터 박이 키운 제자들이 한 일이죠.”
“제니퍼, 당신의 역할도 작지 않았습니다.”
“미국에 있던 제가 무엇을 했다고요.”
“IHA의 지원이 아니었다면 수만 명의 헌터를 통제할 수 없었을 겁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요?”
“미스터 박이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기분이 좋네요. 멕시코에서 미스터 박을 지원한 게 협회 회장으로서 사실상 마지막 업무였는데, 잘 마무리한 거 같네요.”
나는 그녀의 말에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회장 자리에서 내려오시는 거, 지금이라도 바꾸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정확히 말하면 내려가는 게 아니죠. 무려 명예회장으로 추대될 테니 말이죠.”
“전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미스터 박이 저보다 훨씬 더 이 자리에 잘 어울리는 사람인 걸 아니까요.”
사실상 지금이 IHA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었다.
IHA의 회장이라면 초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도 부럽지 않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였다.
사람이라면 이런 자리에 욕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본래 자신의 자리라면 더더욱 욕심이 날 것이고.
그런데도 제니퍼는 나에게 회장 자리를 양보하였다.
나는 그녀의 선택이 얼마나 어려운 선택인지 알기에, 그저 감탄하였다.
“명예회장이 되시면 무엇을 하실 생각입니까?”
“연구소 하나를 차려서 직속으로 관리하고 싶어요.”
“연구소라면?”
“아프리카 연구소. 저는 아프리카를 연구하고 싶어요. 아프리카의 모든 것을 말이죠.”
제니퍼의 선언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아프리카.
그곳은 현재 미지의 땅이나 다를 게 없는 곳이었다.
처음 던전이 열렸을 때, 인간이 몬스터에게 빼앗긴 대륙이었기 때문이다.
“뜻깊은 선택을 하셨군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인 거 같았어요. 언젠가는 아프리카도 인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해야 하니까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도 맞는 말이었다.
나 역시 언젠가 아프리카를 몬스터로부터, 정확히는 여러 악신들로부터 되찾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만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
아프리카를 되찾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벽이 많았다.
1차 관문은 대륙 전체에 넘쳐나는 몬스터들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넘기 어려운 벽이 있었다.
그건 바로 여명회였다.
여명회, 그중에서 11사도란 자가 아프리카 중심부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이성은이 말하길, 크루엘라가 성장형 괴물이라면, 그자는 이미 완성된 괴물이라고 했었지.’
이성은이 그렇게까지 높게 평가한 괴물은 어느 수준의 괴물일까.
그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버겁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