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워싱턴에 도착하고 바로 다음 날.
나는 양복을 빼입고 제니퍼의 자택으로 향하였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사적인 용무로 그녀의 저택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공적인 영역이었는데, 그녀의 자택에서 파티가 열렸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나를 IHA 회장으로 공식 선언하는 파티가 말이다.
‘뭐 이미 내가 IHA 회장이 될 것이란 사실은 모르는 이가 없지만.’
그녀의 저택 앞에 수백 명의 기자가 모여 있었다.
나를 취재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찾아온 기자들이었다.
“미국 정부와 충돌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잘 해결되었습니까?”
“일각에서 미스터 박이 중국인을 혐오한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해명해주시길 바랍니다.”
“IHA 회장이 되면 어떤 사안에 집중하실 계획입니까?”
한국어부터 시작해서 영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심지어 중국어나 불어, 일본어까지.
다양한 언어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미스터 박이 원하신다면 기자들을 통제하여 돌려보내겠습니다.”
IHA 현장 직원이 내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질문 몇 가지만 받도록 하죠.”
“예, 그러면 미스터 박이 기자를 선택해주십시오. 통역가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제니퍼의 저택 앞에서 나는 간단하게 기자회견을 하였다.
“미스터 박이 IHA 회장으로 추대된 과정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데, 자세한 과정을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니퍼 회장에게 가장 먼저 제안을 받았고 이사회에서도 저를 차기 회장으로 지지하겠다는 확답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의 제안을 수락했을 뿐, 그 외에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각국에서는 헌터들이 정치화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미스터 박은 이에 관해 어떤 입장입니까?”
“저 역시 헌터들의 정치화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무공 학과를 미국에도 개설할 계획이 있으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있습니다. 앞으로는 IHA 주도로 무공 학과나 무공 아카데미들이 만들어질 예정입니다.”
무공에 대한 권한은 이제 IHA를 통해 행사할 생각이었다.
그로써 IHA의 영향력은 더욱더 커져갈 터.
나는 이렇게 늘어난 IHA의 영향력으로 여명회와 전쟁을 치를 준비를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쉼 없이 이어진 질문을 상대하던 나는 시간이 지체되자 양해의 말을 전하고 기자들을 해산시켰다.
어느 정도 나에 대한 의문이 해소된 것인지, 기자들은 별다른 저항 없이 IHA 직원들의 통제에 따라주었다.
“미스터 박, 이렇게 당신을 만나게 되어 영광이에요.”
“저도 영광입니다.”
제니퍼의 넓은 저택에는 이미 많은 인사가 와있었다.
나는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에게 웃는 얼굴로 화답해주었다.
그러다 저택의 주인인 제니퍼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친근하게 그녀를 껴안아 주고는 기자들이 어떤 질문들을 했는지 간단하게 이야기해주었다.
“세상 사람들이 미스터 박에게 관심이 많은 거 같네요. 역시, 인류의 구원자라 그런 걸까요?”
이런 자리에서까지 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 그녀였다.
아니, 이런 자리여서 더 과장하는 거 같기도 했다.
파티의 주최자는 그녀였지만, 사실상 이 자리의 주인공은 나였으니까.
“제가 IHA 이사들을 소개해드릴게요.”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녀의 안내를 받으며 IHA 이사 한 명, 한 명과 인사를 나누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IHA 이사 전부가 나를 환영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나의 성향은 그들에게 어느 정도 알려졌을 터.
그들이 보기에 나는 독단적이고 고집이 지나칠 정도로 강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아니, 성향을 논하기 이전에 나는 동양인이면서 비각성자 출신이지.’
따지고 보면 나를 싫어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그저 나의 압도적인 무력과 인지도, 그리고 제니퍼의 지지 때문에 나의 회장 취임을 반대하지 않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자는 선을 넘어도 단단히 넘는군.’
제니퍼가 전무 이사라고 소개한 마크 엘리스라는 사내가 나의 악수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나의 악수를 받으면서도 고개는 돌리지 않은 채, 부인으로 보이는 여인과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마치 ‘노 룩 패스’를 당한 꼴이었다.
꽉.
나는 손에 힘을 주었다.
너무 강하게 쥐면 싸우자는 꼴이었기에 어느 정도 악력을 조절하였다.
하지만 그조차도 강하게 느껴졌는지, 마크 엘리스란 사내가 고개를 돌리더니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나를 노려봤다.
“지금 무슨 짓입니까?”
“절 무시하는 거 같아서 무시하지 말라고 힘 좀 주었습니다.”
“제가 언제 당신을 무시했다고 이럽니까?”
그는 거칠게 내 손을 떼어내며 그같이 말했다.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IHA 회장으로 취임할 박한새라고 합니다.”
“저는 이미 제 소개를 했으니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마크 엘리스 전무 이사.”
“…왜 부릅니까?”
“다음에는 예의를 갖추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정식으로 IHA의 회장이 되면 말입니다.”
앙금이 남은 것일까?
그는 내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마크 엘리스 전무 이사. 두 번 말하게 하지 마십시오.”
“미스터 박. 벌써 제 상관 흉내를 내는 겁니까? 하지만 당신은 제 상관이 아닙니다. 옆에 계신 제니퍼 회장만이 저의 상관일 뿐.”
그러자 제니퍼가 당황하였다.
“엘리스 전무, 미스터 박에게 무례하게 굴어서 좋을 게 없어요.”
“전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왜 제니퍼, 당신이 회장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겁니까?”
“이사회에서 분명히 다 설명해드렸잖아요.”
“저 역시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이자는 헌터가 아니라고. 헌터가 아닌 자가 IHA의 회장이 될 수는 없다고 말입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코웃음 쳤다.
“당신에게 헌터의 정의란 뭡니까?”
“그 질문에 답변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아니요. 답변하셔야 할 겁니다. 당신은 IHA에서 공식적으로 헌터로 인정한 저를 모욕하였습니다.”
올해 상반기.
IHA에서는 무공을 익힌 비각성자들에게도 헌터 라이선스를 취득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이제 비각성자에게도 헌터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IHA의 헌터 라이선스 정책이 바뀌자마자 바로 헌터 라이선스를 취득하였다.
이제 나는 공식적으로 S랭크 헌터였다.
“던전에 들어갈 수도 없으면서 헌터는 무슨.”
마크 엘리스는 나를 비웃듯 그와 같이 말하였다.
“엘리스 전무!”
제니퍼가 격양된 목소리로 외쳤지만, 마크 엘리스는 냉소 어린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내가 러시아에서, 그리고 멕시코에서 인류를 위해 싸울 때, IHA에서 정치 놀음이나 하던 자가 누구를 비웃는 것인지 모르겠군.”
“뭐라고? 정치 놀음?”
“확실하게 말해주지. 내가 IHA 회장으로 취임한다면 당신 같은 정치꾼은 IHA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될 거야.”
일각에서는 나를 독재자나 독불장군이라고 평가하고는 했다.
거의 모든 결정을 토론이 아닌, 나 혼자서 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평가가 완전히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미래라는, 어쩌면 정답에 가까운 답안을 가진 나는 독단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회귀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고는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줄 수 없었던 까닭이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명령을 받는 주체가 내 제자들이거나 권속들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언론에서 크게 논란이 될 일은 없었다.
하지만 IHA에서는 다를 것이다.
지금은 우호적으로 보이는 미국 언론들도 내가 IHA 회장으로 취임하는 즉시 나를 물고 뜯으며 온갖 프레임을 씌우려 들리라.
‘설령 폭군이란 평가를 들을지라도 나는 내 갈 길을 가리라.’
내가 옳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그 길을 갈 생각이다.
지금까지 내가 내린 선택이 틀린 적이 거의 없었기에 인제 와서 다르게 행동할 이유는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할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파티가 끝나고 자신의 저택으로 귀가한 마크 엘리스는 이를 바드득 갈았다.
“나를 무시하다니. 후회하게 해주지.”
그는 자신이 강하게 나서면 박한새 쪽에서 저자세를 취해줄 것으로 생각했다.
아무리 박한새가 세계에 잘 알려진 영웅이고 가장 강한 무력을 가졌다지만, IHA에서는 그가 왕이었다.
전무 이사라는 위치는 부회장들 다음의 권력, 아니 어떤 면에서는 부회장들보다 막강한 권력을 자랑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박한새는 그의 직위가 전무 이사라는 소리를 들었으면서도 강하게 받아쳤다.
심지어 자신과 함께할 수 없을 거라는 협박까지 하였다.
‘너는 그 말을 해서는 안 됐어.’
마크 엘리스는 곧바로 자신과 친한 언론사 사장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그는 파티에서 있었던 일을 꺼내며 박한새 때문에 곧 사임하게 될 거라고 이야기하였다.
-마크 엘리스. 당신이 사임하면 IHA는 바로 엉망이 되고 말 겁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회장이 제가 싫다는데 억지를 부리며 자리를 지킬 순 없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 동양인은 며칠 안에 자신의 발언을 철회하게 될 겁니다.
언론사 사장들은 마크 엘리스가 직접 말을 꺼내지 않아도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한 번에 간파하였다.
이미 오랜 시간 동안 마크 엘리스와 영합하였기 때문이었다.
‘후후. 나에게 그리 대하지 않았다면 그 잘난 명성은 지킬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마크 엘리스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세계의 구원자라 불리던 자가 갑자기 언론의 맹폭격을 받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언론사들은 그가 원하는 대로 박한새를 앞다투어 비난하였다.
<굴러온 돌이 박혀있는 돌을 뽑는다? 미스터 박, 마크 엘리스 전무 이사에게 퇴임 압박!>
<마크 엘리스 전무 이사, 그는 파티에서 어떤 망언을 들었나.>
<미스터 박, IHA 회장으로서 자격 의심! 그는 과연 IHA 회장이 될 자격이 있는가?>
여기서 그는 더욱더 과감하게 행동하였다.
진짜로 제니퍼에게 가서 사임서를 제출한 것이었다.
“꼭 이렇게까지 하셔야 합니까?”
제니퍼가 차가운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그 모습을 보자 마크 엘리스는 속으로 찔끔하였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과감한 개혁을 진행하던 제니퍼였다.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인사가 해임되었다.
마크 엘리스는 그런 개혁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기에 제니퍼의 무서움을 알았다.
‘하지만 차기 회장은 그녀가 아니고 그 동양인 비각성자 놈이다.’
제니퍼의 시대도 이제 끝났으니 더는 그녀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으리라.
“그가 말했지 않습니까? 저와 함께할 수 없을 거라고.”
“제가 말하는 게 그것이 아님을 알 텐데요?”
그녀는 언론사들을 동원한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전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마크 엘리스는 뻔뻔하게 그리 말하고는 다시 저택으로 귀가하였다.
‘과연 그놈이 얼마나 버틸까?’
언론사 사장들은 며칠을 채 버티지 못할 거라고 장담하였다.
그리고 이 같은 장담에 그도 동의하였다.
박한새는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영웅이라 불리기 시작한 자였다.
한창 명성에 취해있을 때인데, 별거 아닌 일로 오점을 만들 이유는 없으리라.
<그가 말하는 헌터의 의무란?>
하지만 박한새의 대응은 그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마치 명성에 흠집이 생기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단호하게 굴었다.
‘이자가 정녕 끝까지 가자는 건가?’
끝까지 가면 잃을 게 많은 쪽은 박한새 쪽이리라.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여론은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을 비롯하여 국제 여론은 여전히 박한새에게 우호적이었던 것이다.
‘이대로는 안 돼. 더 강한 게 필요하다!’
마크 엘리스는 IHA 내부의 자신의 세력을 결집하였다.
박한새에게 반격을 가하기 위함이었다.
“이게 다인가?”
“예, 다들 일이 바쁘다면서 불참을 선언하였습니다.”
하지만 마크 엘리스는 자신의 파벌에게도 배신당하였다.
이미 대세가 넘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파벌에 속해있던 이사들은 박한새와 대적하는 것을 피했던 것이다.
“빌어먹을! 도대체 그 동양인 놈이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