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즉, 당신들이 정권을 세우면 그 정권을 인정해달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동무. 동무의 지지만 있으면 우리의 혁명은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요구한 것은 단 하나.
그들이 세울 정권을 인정해주는 거뿐이었다.
그리고 이 말은 이미 쿠데타를 일으킬 준비를 끝마쳤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심지어 성공을 확신하고 있군.’
하기야, 북한 유일의 S랭크 헌터인 방병률이 가담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쿠데타는 절반 이상 성공한 거나 다름없었다.
김씨 정권을 지지하는 헌터들이 아무리 많아도 S랭크 헌터 한 명의 존재감을 이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경고하겠습니다. 혁명이니 쿠데타니, 그런 거 하지 마십시오.”
“예? 동무,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애초에 IHA 회장인 저에게 그런 부탁을 하는 것도 우습지 않습니까?”
“동무는 같은 조선의 남아이며 헌터 협회의 수장이십니다. 왜 저희의 부탁을 이상하게 여깁니까?”
“IHA에선 늘 이렇게 말합니다. 헌터는 헌터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그런데 당신들은 헌터이면서 쿠데타를 모의하였습니다. 쿠데타로 권력을 갖는 게 헌터 본연의 역할에 맞다고 생각합니까?”
“쿠데타 아닙니다! 저희는 숭고한 뜻을 가지고 혁명을 일으키는 겁니다!”
“그래서 혁명에 성공하면 바로 권력을 내려놓을 겁니까?”
그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기껏 정권을 장악하였는데, 권력을 내려놓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동무. 미제에서는 지금 저희 공화국을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 탐욕스러운 김씨 정권의 배후에 여명회라는 악랄한 단체가 있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그런데요?”
“명분은 저희에게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동무께서도 여명회를 인류의 적이라 선언하시지 않았습니까! 저희는 여명회의 졸개를 잡으려는 거뿐입니다!”
나도 모르게 내 입가에 조소가 지어졌다.
헌터라고 해도 권력을 탐하는 헌터라면 정치인처럼 뻔뻔해지는 모양이었다.
되지도 않는 명분을 들먹이는 걸 보면 말이다.
“어떤 명분을 내세워도 저는 헌터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권력을 장악하는 행위를 용납할 생각이 없습니다.”
단호한 목소리로 그리 말하자, 방학세의 눈이 싸늘하게 변하였다.
나를 존경한다더니, 눈빛만 보면 그야말로 원수를 보는 눈빛이었다.
“누구도 저희의 숭고한 신념을 막을 순 없을 겁니다.”
“이건 알아두시길 바랍니다. 저는 말로 끝내는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내 마지막 경고에 그는 순간 몸을 움찔하였다.
말로만 경고한 것이 아니라, 살기까지 내뿜었기에 그로서는 몸이 저도 모르게 반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내 경고를 듣지 않기로 한 것인지 별다른 대꾸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꾸벅.
고개를 숙인 채 그대로 물러나는 방학세의 뒷모습을 보고 나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내 경고를 무시하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줘야겠군.’
안 그래도 내가 IHA 회장이 되고 가장 먼저 할 일이 정치 권력화 한 헌터들과의 전쟁이었다.
남미, 중동, 인도 등.
내가 일으킨 나비효과 속에서도 헌터가 정권을 장악한 국가는 적지 않았다.
그리고 헌터가 정권을 잡은 국가의 상황이 어떤지는 너무도 뻔한 것이었다.
헌터 시절에, 제아무리 히어로라 불렸던 이도 정치인으로선 아마추어였다.
그나마 히어로라 불렸던 이들이 정권을 장악한 나라는 양반이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그저 일신의 무력이 강할 뿐인, 심지어 탐욕스럽기 그지없는 헌터들이 정권을 장악하였다.
나로선 그들이 인류의 힘을 갉아먹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이 있듯, 헌터에게는 헌터만의 의무가 있는 법이었다.
IHA 회장으로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그들이 제 역할을 하게끔 만들고 말리라.
‘그 시작이 북한이다.’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그러고는 아까 통화하였던 상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애인도 아닌데 잠을 두 번이나 방해하는 것은 경우가 아니지 않나?
“급히 할 말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정승호 본부장님.”
-후우. 뭔가?
“곧 북한에서 쿠데타가 있을 것이니, 작전을 준비해주시길 바랍니다.”
-뭐, 뭐라고? 자네 지금 뭐라고 했나?
“거리가 멀어서 그런지 통화 음질이 안 좋군요. 중요한 정보는 전해드렸으니 이만 끊겠습니다.”
-야, 이 박한새! 제대로 설명이나 하고….
뚝.
정승호의 잔소리를 들을 자신이 없었기에 바로 통화를 종료하였다.
‘북한에서의 작전이라고 해도 그리 대단한 일은 없을 겁니다.’
S랭크 헌터라고 해봐야 고작 한 명밖에 없는 북한이었다.
솔직한 말로 정승호 혼자 가도 북한의 쿠데타 세력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리라.
뭐 그래도 만약을 위해 아시아 본부의 총력을 다하여 사태를 정리하는 그림이 가장 좋겠지만 말이다.
방학세와 방병률.
두 사람은 혹시 모를 도청을 걱정하여 러시아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가 뭐라고 했지?”
“협조하지 않겠답니다.”
조카의 답변에 방병률은 인상을 찡그렸다.
“물건을 주겠다고 했는데도?”
참고로 그가 말한 물건이란 던전을 의미하였다.
만약 정권을 잡으면 그는 북한의 던전을 일종의 뇌물로 박한새에게 줄 생각이었다.
던전이 아니라면 북한에서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그가 우리 제안을 바로 거절했습니다. 거절한 것도 거절한 건데, 협박까지 받았습니다.”
“뭐라고?”
“그것은 헌터가 해야 할 일이 아니랍니다.”
그 말에 방병률은 헛웃음을 흘렸다.
“진짜 헌터가 아니라서 그런가. 물컹한 말을 잘도 지껄이는군.”
헌터라고 권력을 잡으면 안 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선택받은 자다.
S랭크 헌터인 그는 그중에서 가장 선택받은 이였다.
북한 인민조차 그를 찬양하고 있는 상황.
백두혈통이니 뭐니 김씨라는 이유로 정권을 잡는 돼지 놈보다 그가 정권을 잡는 게 훨씬 더 이치에 맞았다.
“그는 무시하고 일을 진행한다.”
“괜찮겠습니까? 그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설마 나를 잡으러 이곳까지 온다는 말이냐?”
“그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은 말로 협박하지 않는다면서.”
“흥. 간나 새끼. 되지도 않는 협박을 하는군.”
방병률이라고 박한새의 소식을 듣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비각성자이면서 웬만한 S랭크 헌터들보다 강하다는 소식을 그 역시 이미 들었었다.
만약 박한새가 일개 야인이었다면 그는 오히려 박한새의 협박에 두려움을 느꼈을지도 몰랐다.
야인이라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문제 될 것은 없으니까.
하지만 박한새는 IHA 회장이었다.
전 세계의 헌터들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국제 헌터 협회의 수장이란 뜻이었다.
만약 그가 방병률을 잡으러 온다면 헌터들이 정권을 장악한 국가들에서 바로 외칠 것이다.
내정 간섭이라고.
IHA도 내부에서부터 분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니, 박한새가 절대 그런 선택을 할 리는 없으리라.
“놈의 협박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방학세는 어딘가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느낀 박한새의 인상은 한다면 하는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결정권자는 그가 아닌 그의 삼촌인 것을.
그리고 상식적으로 따졌을 때, 방병률의 말은 절대 틀리지 않았다.
자신들은 박한새의 원수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세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자랑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즉, 박한새가 무리하면서까지 그들을 공격할 리는 없다는 뜻이었다.
박한새도 생각이 있다면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짓은 절대 하지 않으리라.
방학세와 만나고 얼마 뒤, 나는 대변인을 통하여 나의 의지를 밝혔다.
헌터들이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행위는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내 의지를 IHA 대변인을 통하여 밝힌 것이다.
그러자 황당하게도 북한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불똥이 튀었다.
“왜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을 해서 논란을 만드는 겁니까!”
카를로스 벨라스쿠.
그는 브라질 사람으로 IHA 남미 본부를 총괄하는 이였다.
취임식 때는 사람 좋은 얼굴로 내게 인사를 건넸던 그가 지금은 악귀 같은 얼굴로 내게 강한 분노를 표출하였다.
“벨라스쿠 본부장. 회장님께 지금 이게 무슨 무례입니까!”
“내가 괜히 이러는 것으로 보이시오! 회장의 경솔하기 그지없는 태도 때문에 남아메리카 전체가 분노하고 있소!”
이사들이 만류했음에도 그는 기세를 죽이지 않았다.
나는 그런 그를 보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남아메리카 전체가 분노한 게 아니라,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일부 헌터들이 분노한 것이겠지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원래도 남아메리카는 헌터의 권력이 강한 편이었다.
그런데 8성급 던전 브레이크 사태가 벌어지자, 남아메리카 헌터들은 아예 국가 권력을 통째로 장악하였다.
당연히 그들로선 내가 한 말이 거슬리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쿠데타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건, 자신들을 저격하는 발언이나 다를 게 없었으니.
“설령 그렇다 한들, 이미 그들은 남아메리카의 지도자가 되었소! 지금 그들의 일에 개입하는 것은 내정 간섭이란 말이오!”
“지도자? 국민 수백 명을 불로 태워 죽이고 얼려서 죽이는 게 제대로 된 지도자로 보이십니까?”
헌터 출신의 독재자는 필연적으로 잔혹해질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독재자들은 군인들 눈치라도 봤지, 헌터들은 그럴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남아메리카의 독재자들은 자신이 가진 스킬로 정적이나 일반 시민을 제거하는 일도 빈번하게 행했다.
“그들이 어떤 부류의 인간이든, 내정 간섭은 절대 용납할 수 없소!”
“일개 본부장이 저의 행사를 막겠다는 겁니까?”
“IHA가 잘못된 길을 걷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소? 나라도 바로잡아야지!”
누가 보면 정의로운 사람으로 착각할 거 같았다.
남아메리카 독재자들에게서 뇌물을 받는 사람인데 말이다.
“막을 수 있으면 막아보십시오.”
나는 그리 말하고는 그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제니퍼가 어느 정도 개혁을 했는데도 여전히 적폐가 많이 남아있어.’
제니퍼로서도 모든 적폐를 다 도려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녀의 부족한 기반으로는 한계가 있었으니.
내분이 일어날 것에 대한 걱정도 있었을 것이고 말이다.
‘나는 다르다. 모든 적폐를 다 도려내 헌터의 힘을 올바른 곳에 쓸 수 있게 하리라.’
헌터는 인류를 지키기 위한 전사가 되어야 했다.
설령 헌터들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그렇게 만들고 말리라.
강제로라도 그렇게 만들지 않으면 인류는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벨라스쿠 본부장을 해임하도록 하겠습니다.”
“남아메리카 헌터들이 더 큰 반발을 할 텐데, 괜찮습니까?”
“반발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하라고 하십시오. 그들이 무력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한 거 같으니, 저도 무력으로 짓밟아주겠습니다.”
내 말에 이사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얼마나 강한 의지를 가졌는지 그제야 알아차린 기색이었다.
그렇게 카를로스 벨라스쿠 본부장이 해임되었다.
남아메리카 헌터들은 예상대로 아우성을 쳐댔지만, 나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런 이야기까지 하였다.
“앞으로 IHA는 국제법에 근거하여 빌런을 규정하겠습니다.”
“국제법에 근거한다는 말씀은, 그 나라의 법으로 무죄를 인정받아도 빌런으로 선포하시겠단 말씀입니까?”
“예. 설령 헌터가 그 나라의 권력자라고 해도 강력범죄를 저지르면 빌런입니다. 그리고 빌런을 진압하는 일에 더는 예외란 없을 겁니다.”
내 발언은 전 세계가 놀랄 정도로 강경하기 그지없는 발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몇몇 국가에서 헌터는 법 위에 군림하는 특권층이었다.
누군가를 때리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해도 빌런으로 선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 나라 법이 헌터의 편이기 때문에 그러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상황을 가만히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헌터가 되었다는 이유로 혜택만 챙기면서 의무는 지지 않는 행위를 나로선 절대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의무를 논하기 이전에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받는 게 맞는 이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