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평양의 밤은 그 어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위원장의 집무실로 쓰이는 노동당 본관은 그 어느 때보다 소란스러웠다.
“위원장은?”
“아직 못 찾았습니다!”
“찾아라! 위원장을 잡지 못하면 일이 귀찮아져!”
북한군의 군복과는 전혀 다른 색상의 군복을 입은 자들이 노동당 본관을 수색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소속은 북한군이었으나, 정체성은 전혀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정체는 바로 헌터였기 때문이었다.
군인임과 동시에 헌터인 그들은 북한 최고의 헌터, 방병률의 지시에 따라 노동당 본관을 기습하였다.
노동당 본관뿐만이 아니었다.
서호초대소, 15호 주택 등.
북한 지도자인 김정운이 소유한 모든 저택을 기습적으로 습격하였다.
“쿠데타다! 헌터 놈들이 쿠데타를 일으켰어!”
“총을 쏴! 거리를 내주면 당한다!”
호위사령부 소속의 군인들이 헌터들을 향해 일말의 망설임 없이 총을 발사하였다.
하지만 헌터들은 흔하디흔한 E~F랭크 수준의 하위 헌터들이 아니었다.
북한에서는 그래도 최정예라 불리는 C랭크 이상의 헌터들이었다.
C랭크 이상의 고위 헌터들에게 총알이 통할 리 없었다.
물론 유탄이나 수류탄에는 제아무리 고위 헌터들이라고 해서 피해가 아예 없을 수는 없었다.
몇몇 헌터들이 팔을 잃거나 장기에 손상을 입는 등, 큰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헌터들의 사기는 전혀 낮아지지 않았다.
그들은 부상에 너무도 익숙한 존재였다.
북한 정권에 의해 강압적으로 던전 사냥에 몰두해왔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호위사령부는 순식간에 진압이 되어갔고 총소리도 점점 멎어갔다.
“위원장을 찾은 거 같습니다.”
“어디 있던가?”
“위생실(화장실)에 숨어있었습니다.”
“간나 새끼. 겁은 지지리도 많으면서 달아날 줄도 모르는구만그래.”
부하의 보고를 받은 방병률은 피식 웃었다.
숨어도 위생실에 숨다니.
역시 품위라는 게 없는 자다웠다.
“끌고 와.”
“예! 알겠습니다!”
방병률은 부하들을 기다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시시하군.’
지금껏 괜히 인내해온 게 아닌가 싶었다.
이리 쉬운 줄 알았으면 진즉에 쿠데타를 일으켰을 텐데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명령을 받은 헌터들이 한 사내를 정중하게 데려왔다.
“위원장 동지를 끌고 왔습니다.”
“이런.”
방병률은 부하들이 끌고 온 사내를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북한 지도자인 김정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 모습을 보고는 방병률의 수하들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아무리 그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지만, 김정운의 상징성을 생각하면 그를 험하게 대해서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두를 놀라게 한 방병률의 입에서는 예상과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이 머저리 새끼들! 사람 낯짝도 면바로(똑바로) 못 알아보는 거야!”
“지도자 동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놈은 위원장이 아니다!”
“위, 위원장이 아니라는 말씀은?”
“가짜라는 말이다! 이 머저리 같은 놈들아!”
김정운을 잡아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그들이 잡은 김정운은 진짜 김정운이 아닌, 어디까지나 대역에 불과하였다.
진짜 김정운은 이미 쿠데타를 피해 몸을 숨긴 상태였던 것이다.
‘빌어먹을. 일이 귀찮게 되었군.’
방병률은 속으로 혀를 찼다.
쉽게 끝날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였다.
물론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고 쿠데타의 성공 여부를 걱정하지는 않았다.
헌터들이 그의 지시를 따르는 한, 이 쿠데타 아니, 혁명은 실패하고 싶어도 실패할 수 없는 혁명이었다.
평양의 평범하기 그지없는 건물 아래에는 지하 벙커가 숨겨져 있었다.
김씨 일가가 비밀리에 소유한 안가로서 오늘 있었던 사태와 같은 일들을 대비하기 위해 만든 벙커였다.
“방가 놈…. 감히 나를 배신하다니.”
북한의 지도자, 김정운은 방병률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방병률이 배신할 것을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의심병 환자처럼 의심이 많은 그가 헌터들을 의심하지 않을 수는 없었으니.
하지만 설마 이렇게 갑작스럽게 쿠데타가 발생할 줄은 그도 예상 못 했다.
“인질들은 어떻게 됐나?”
“방병률 조카인 방학세가 인질들을 풀어주었다고 합니다.”
그가 쿠데타를 걱정하지 않았던 이유.
그것은 지극히 단순하였다.
방병률의 가족을 인질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식과 부모, 아내까지 모든 가족이 인질로 잡혔는데 쿠데타를 일으킬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방병률은 허술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미 인질을 구할 계획까지 다 세워놓고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수방군의 상황은?”
“리관일 군단장이 헌터들에 의해 암살당했습니다.”
제91 수도방어군단, 일명 수방군의 최고 지휘관이 당했다는 소식에 벙커 안은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문제는 리관일 군단장뿐만이 아니었다.
수방군의 고위 장교들을 시작으로 각 군의 장교들 역시 한날한시에 들이닥친 헌터들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실로 철저하게 준비된 쿠데타가 아닐 수 없었다.
“군이 쿠데타를 진압해줄 것은 기대할 수 없단 말인가?”
김정운의 물음에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 역시 지금 상황에서 군의 활약을 기대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방법은 하나뿐인 거 같습니다.”
“하나? 그 방법이 설마 남조선의 도움을 받자는 건 아니겠지, 동무?”
침묵은 곧 긍정인 법이었다.
김정운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남조선이 방가 놈들을 당해낼 수 있겠나?”
그 말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변이 튀어나왔다.
“무공을 배운 헌터들이 일반 헌터들보다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건 세상의 상식입니다.”
“맞습니다. 방병률 그 간나 새끼가 아무리 조선에서 무명이 높아도 남조선 전사들이 온다면 순식간에 쿠데타는 진압될 것입니다.”
사실 김정운도 알고 있었다.
남한의, 정확히는 IHA의 헌터들이 나선다면 쿠데타를 일으킨 북한 헌터들쯤은 순식간에 진압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가 굳이 이 말을 꺼낸 이유는 다른 것에 있었다.
‘늑대를 쫓아내려다가 호랑이를 불러오는 꼴이 되는 게 아닌지 걱정이군.’
하지만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었다.
늑대를 쫓아내지 않으면 어차피 그 늑대에게 죽을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남조선에게 전하도록. 요구는 다 들어주겠다고 말이야.”
“현명한 결단입니다!”
‘아무 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정승호는 북한에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기를 하늘에 기도하였다.
하지만 하늘은 그의 기도를 배신하였다.
박한새의 지시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에서 큰 소란이 발생하였다.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둥, 김정운이 죽었다는 둥, 여명회가 나타났다는 둥.
북한이 소란스러운 와중에 온갖 뜬소문이 난무하였다.
그러자 정승호는 가장 먼저 박한새에게 연락하였다.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물어보기 위함이었다.
-병력이 준비되는 대로 청와대와 한국 헌터 협회에 통보 후, 행동에 나서십시오.
예상했던 대로라고 해야 할까?
박한새는 북한에 일어난 쿠데타 사건에 개입할 것을 지시하였다.
마침 기다렸다는 듯, 북에서 연락이 왔다.
IHA의 도움을 호소하는 연락이었다.
완벽한 명분이 생긴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북이 IHA에 지원을 요청하였습니다. 하여 IHA는 북에 병력을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정승호 길드장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은 길드장 말고 본부장이라 불러주시길 바랍니다.”
“지금 호칭이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북한 정변에 개입할 것이라니요?”
“맞습니다. 북한에서 일어난 정변에 개입해봐야 좋을 게 뭐가 있다고 개입한답니까.”
청와대 관계자들은 갑작스러운 정승호의 말에 황당하다는 듯 말하였다.
그들로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거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하필 북한의 정변에 개입한다는 말을 하고 있었으니까.
“저는 상의하려고 청와대에 온 것이 아닙니다. 청와대에서도 우리의 움직임을 미리 알아두라고 통보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정승호는 정치인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 헌터라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치인들은 헌터가 개처럼 굴기를 원하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걸 원치 않아 하였다.
13인의 영웅은커녕 제대로 된 헌터로도 보기 어려웠던 김범수 같은 인물을 협회 회장으로 밀어준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어쨌거나 정승호로선 정치인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그의 입에서는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지. 뭐라 할 거면 나에게 하지 말고, 박한새 협회장에게 하라고. 물론 정부가 협회장에게 과연 뭐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IHA의 대응은 신속하기 그지없었다.
북한에서 정변이 발생하기 무섭게 청와대에 통보 후 바로 수백 명의 헌터가 북쪽으로 이동하였다.
이미 사전에 이야기가 되었기에 북한군은 그들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 헌터들이 있는 장소로 안내해주었다.
북한에서 정변이 발생하고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한국의 헌터들은 평양으로 이동하여 쿠데타를 일으킨 북한 헌터들과 맞부딪쳤다.
“…동무. 동무는 남조선에서 얼마나 강하지?”
평양 곳곳에서 북한 헌터들과 남한 헌터들의 전투가 벌어질 때, 노동당 본관 입구에서도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를 벌인 이는 북한 헌터들의 리더인 방병률과 화영 길드 출신의 정호연이었다.
“제 랭킹이요? 글쎄요.”
정호연은 검을 내려놓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원래 한국의 S랭크 헌터는 열 명 안팎이었다.
이것도 사실 한국의 인구 기준으로 적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공이 등장하면서 한국의 S랭크 헌터는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비공식적으로 집계된 S랭크 헌터는 거의 50명이 넘었다.
무공 아카데미에서 정교수와 부교수까지는 거의 S랭크급 전력으로 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꼭 비공식 S랭크 헌터가 아니어도 공식적으로 S랭크 헌터가 된 이의 숫자도 절대 적지 않았다.
무려 서른.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S랭크 헌터의 수가 많았다.
“끽해 봐야 20위 정도 하지 않을까요?”
“20위…? 동무의 무력이 남조선에서 열 손가락 안에도 안 든다는 말인가?”
“제 생각에는 그런데, 실제론 더 낮을 수도 있어요. 무공 아카데미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저도 잘 모르거든요.”
정호연은 늘 자신감이 넘치는 여성이었다.
무공을 배우기 전에도 S랭크 헌터들에게 경쟁심을 불태웠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무공 아카데미의 교수진과 비교할 때는 겸손해지고는 했다.
박한새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이들이 얼마나 강할지는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으니까.
“미, 믿을 수 없군.”
“아저씨. 우물 안의 개구리라고 아세요?”
“…내가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건가?”
“솔직하게 말하면 그래요. 아저씨의 무력은 저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거든요.”
방병률은 그 말에 고개를 푹 떨구고 말았다.
북조선 최고의 전사라고 불리던 그가 사실은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니.
그의 인생에서 이 정도로 자긍심에 상처를 입은 날은 없었다.
하지만 더 자존심 상하는 일은 그녀의 말에 부정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정호연.
북조선에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여인의 이름이었다.
그녀가 소속된 화영 길드만이 조금은 들어봤을 정도.
그런 그녀가 방병률과의 1:1 대결에서 승리하였다.
‘무공의 힘이 이리도 컸을 줄이야.’
의기소침하던 방병률은 이내 조그만 목소리로 물었다.
“만약… 만약 내가 무공을 배웠다면 어땠을 거 같나?”
정호연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러면 저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겠죠. 물론 아저씨가 얼마나 무공에 재능이 있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에요.”
“그렇단 말이지….”
“근데 무공을 배우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항복을 하셔야 할 거예요. 우리는 일단 전쟁 중이잖아요?”
“항복하겠네.”
방병률은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항복을 선언하였다.
이미 패배가 정해졌는데 더 끌어봤자 의미 없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