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북한 헌터들의 쿠데타를 진압하는 일은 너무도 쉽게 끝이 났다.
IHA의 아시아 본부를 맡은 정승호가 동원한 헌터는 300명.
이 중 무공 아카데미 소속이 20명이었다.
무공 아카데미 소속이 아니어도 정승호나 정호연처럼 무공을 익힌 헌터들이 참여하였다.
수준이 높지도 않고, 숫자도 겨우 천 명도 안 되는 북한 헌터들쯤이야 진압이 쉬울 수밖에 없었다.
“방병률 헌터는 어떻게 하고 있답니까?”
다른 북한 헌터들이야 별로 관심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북한의 유일한 S랭크 헌터인 방병률은 그래도 회귀 전의 역사에서 꽤 족적을 남겼던 사람이었다.
그의 처리는 나에게도 조금은 신경 써야 할 문제였다.
“얌전하게 지내고 있다네요.”
“의외군요. 거칠게 반항할 줄 알았는데.”
“언니 말로는 완전히 의욕이 꺾인 거 같다고 해요.”
아무래도 정호연에게 진 것이 그에게 큰 무력감을 안겨준 거 같았다.
‘하긴, 북한에서는 호연 씨의 이름이 그리 알려지지 않았을 테니,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겠지.’
차라리 정승호에게 졌다면 저항이 거셌을 수도 있다.
정승호의 길드인 화영 길드는 현재 한국에서 10대 길드 중 하나로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정승호 본인은 IHA의 한국 본부의 총책임자가 된 상태.
북한에서도 나름대로 이름이 알려졌을 게 분명하였다.
반면 정호연은?
S랭크 헌터라는 사실 말고는 크게 알려진 것이 없을 것이다.
물론 그녀의 외모나 호방한 성격 등을 생각하면 북한에서 아예 인지도가 없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다른 나라의 반응은 어떤 거 같습니까?”
“각국의 반응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 같습니다.”
내 물음에 강충구가 바로 대답하였다.
그의 말처럼 IHA가 북한 정변에 개입한 일을 두고 크게 말들이 나오지는 않고 있었다.
아무래도 사전에 경고한 일이기도 했고, 쿠데타의 주체가 헌터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인들은 오히려 IHA가 드디어 제 역할을 하고 있다며 환호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여론도 나쁘지 않았다.
IHA는 단순하게 북한 헌터들의 쿠데타를 막는 것으로 이번 사태를 일단락한 것이 아니었다.
네오콘에서 계속해서 주장하였던 것이 북한 정권의 배후에 여명회가 있다는 음모론이었다.
나는 이 음모론을 해소하기 위해 김정운과의 협상에서 몇 가지를 강하게 요구하였다.
그중 대표적인 게 여명회와 관련된 모든 것을 조사할 수 있는 권리였다.
어떻게 보면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이었으나, 나는 여명회와 관련된 일에서 IHA가 배제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렇기에 북한 쿠데타를 막은 김에 여명회를 조사할 권리까지 억지로 얻어냈다.
아무튼, 이런 조치로 미국 국민은 IHA가 북한 사태에 개입한 것을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신속한 선제조치에 감탄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다만, 네오콘은 나를 더욱더 싫어하게 되겠군.’
물론 그에 대해서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네오콘은 여명회와 손을 잡은 시점부터 나와 적이 된 것과 다름없었다.
설령 그들이 북한을 노리지 않고 다른 나라를 노렸다고 해도 나는 최선을 다해 네오콘의 음모를 막으려 들었을 것이다.
“각국의 반응보다는 오히려 헌터들의 반응을 걱정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때 강충구가 살짝 심각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헌터들이라. 남아메리카가 특히 저희에게 부정적일 거 같은데, 맞습니까?”
“예, 남아메리카 헌터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습니다. 특정 국가가 아닌, 거의 모든 남아메리카 국가가 말입니다.”
이건 절대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아메리카는 헌터들이 정치권력까지 손에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남아메리카 헌터들이 IHA를 불신하게 될 경우, 남아메리카 국가들까지 IHA를 불신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전쟁까지는 가지 않겠지.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이번 일로 남아메리카 헌터들은 확신했을 것이다.
IHA와 절대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확신을 가진 남아메리카 헌터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아무도 몰랐다.
어쩌면 그들이 극단적인 길을 걷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어차피 적이 될 자들이니, 내가 먼저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남아메리카 국가들은 거의 똑같은 역사를 공유한 나라들답게, 현재의 정치적 상황 역시 상당히 비슷하였다.
헌터들이 정권을 잡은 것까지 완벽하게 똑같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게 모든 남아메리카 국가들이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헌터 역시도 똑같은 사람이었다.
당연히 헌터들에게도 국가 의식이란 게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헌터 출신으로 브라질의 대통령이 된 조제 콜로르 역시도 브라질리언으로서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또 한편으로 브라질과 사이가 나쁜 국가들에 대한 적개심도 가지고 있다.
“국민 여러분! 제가 올해 안에 우루과이를 다시 브라질의 것으로 만들겠습니다!”
조제 콜로르는 쿠데타를 통하여 대통령이 되었을 때, 국민에게 이 같은 선언을 하였다.
한때 브라질의 영토였던 우루과이를 재합병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외신들은 그가 투표로 선출되지 않은 정통성 없는 대통령이라 무모한 선택을 하였다고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우루과이를 집어삼키겠다는 마음은 그의 본심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우루과이라는 나라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여 그는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우루과이와의 전쟁을 준비하였다.
물론 국력 차이가 압도적이었기에 우루과이보다는 그 이후에 일어날 아르헨티나와의 전쟁을 대비하는 측면이 강하였다.
“대통령님! IHA가 노스 코리아의 헌터들을 강경 진압 하였다고 합니다!”
“이 빌어먹을 아시안들이 내 경고를 무시하다니!”
한참 전쟁을 준비하던 그에게 안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그 소식이란 다름 아닌, IHA의 아시아 본부가 북한의 쿠데타를 강경 진압 했다는 소식이었다.
사실 브라질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소식일 수도 있었다.
지구 정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이었고 브라질이 북한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하지만 브라질이란 나라는 이번 일과 상관이 없을지 몰라도, 그와는 상관이 없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박한새가 IHA의 협회장으로 취임한 뒤로 계속 주장하던 것이 바로 헌터의 정치화를 제재하는 것이었다.
북한의 쿠데타에 개입한 것은 바로 그 제재가 단순히 말로 그치는 것이 아님을 선언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당연히 쿠데타를 일으켜 헌터 정권을 수립한 조제 콜로르로서는 강한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남아메리카의 모든 국가에 연락하도록. IHA의 강압적인 행동에 대응할 방법을 함께 모여서 모색하자고 말이야.”
브라질은 예전부터 남아메리카의 맹주를 자처하는 나라였다.
전 세계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남아메리카 안에서는 가장 목소리가 큰 국가였던 것이다.
그리고 헌터 정권이 수립된 이후, 브라질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조제 콜로르.
그가 남아메리카 헌터 중에서 가장 강한 자로 유명했기 때문이었다.
남아메리카 정상들이 하나둘 브라질로 입국하였다.
“후안 카르도나다!”
“인상이 진짜 사납네.”
“그러게. 대통령이 아니라, 마피아에 어울릴 거 같은 인상인데?”
“실제로 콜롬비아에서 마피아나 다를 게 없었지 않나.”
가장 먼저 입국한 것은 콜롬비아의 대통령, 후안 카르도나였다.
선글라스를 쓴 그는 얼굴에 긴 자상이 있었다.
대통령이라면 수술로 자상을 지울 만도 한데 그는 지우지 않았다.
“로코 모라비토다!”
“칠레의 호세 바첼레트도 왔어!”
“후안 카르도나도 그렇고, 무슨 마피아들이 모이는 거 같군.”
인상이 사나운 것은 후안 카르도나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국가의 정상들 역시 헌터 출신인 것은 마찬가지.
그래서인지 일반인은 범접하기 힘든 무시무시한 기운이 그들에게서 느껴졌다.
하지만 단 한 명, 예외가 있었다.
“마리아 엘리사다!”
“엄청난 미녀!”
“진짜 할리우드 여배우가 따로 없는데?”
아르헨티나의 대표 헌터였고 지금은 대통령이 된 마리아 엘리사.
그녀는 다른 국가의 정상들과 달리, 무서운 기운을 내뿜지 않았다.
오히려 친숙하면서도 우아한 매력을 내뿜었다.
전통적으로 아르헨티나를 싫어하는 브라질의 국민들조차 그녀를 보고 환영할 정도였다.
회의실에 남아메리카의 수장들이 전부 모이자, 브라질의 대통령인 조제 콜로르가 서두를 뗐다.
“여러분! IHA가 결국, 우리의 경고를 무시하고 강압적인 행동에 나섰습니다.”
그의 말에 여기저기서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북한에 직접 헌터를 보내 쿠데타를 진압한 IHA의 행동은 그들에게도 강한 위기감을 선사해주었다.
IHA가 내정 간섭이라는 오명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의미였으니 말이다.
“여러분은 IHA의 만행을 더 지켜보실 겁니까?”
조제 콜로르의 물음에 성질 급한 로코 모라비토란 자가 물었다.
“그래서 어떤 대응을 하자는 말입니까?”
“일단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무력으로 그들을 어찌하는 건 절대 피하고 싶습니다.”
“카르도나! 번개의 신 주피터라 불리는 당신이 무슨 그리 약한 소리를 하고 그럽니까!”
“이미 겪어봤기에 그러는 겁니다. IHA에 이정이라는 헌터가 있는데, 그자의 무력이 실로 무시무시합니다.”
“이정? 그게 누군데 그러십니까?”
“정확히는 무공 아카데미 교수입니다. 무공에 정통한 데다, 분신이라는 스킬을 사용합니다. 전투를 할 때면 몸이 최소 열 개로 늘어나고는 하죠.”
칠레의 대통령, 호세 바첼레트가 코웃음을 치며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몸이 열 개로 늘어나는 게 뭐가 무섭다고 그럽니까? 저는 B랭크 이하의 헌터 백 명이 달려들어도 안 무섭습니다.”
“S랭크 헌터 열 명이 달려들면? 그래도 안 무섭습니까?”
“…설마 이정이란 자의 분신 하나하나가 S랭크 헌터급의 무력을 가졌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이것도 어디까지나 보수적으로 잡았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콜롬비아의 대통령 후안 카르도나의 말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 안에서도 랭크가 꽤 상위권에 속하는 헌터였다.
그런 그가 이토록 자신 없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이정이란 자의 무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저 역시 무력으로 응징할 생각 따윈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조제 콜로르의 말에 후안 카르도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정확히는 IHA에 무력으로 대항하는 것을 진심으로 두려워하는 듯한 반응이었다.
“콜로르. 당신에게 무슨 수가 있는 겁니까?”
“특별한 건 아닙니다. 단지 IHA에게 우리의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의지를 드러낸다라.”
“이미 최고 수위의 경고를 하지 않았소?”
“그보다 더 확실하게 우리의 의지를 드러낼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이란 게 도대체 뭡니까?”
“남아메리카의 모든 헌터들이 IHA에서 탈퇴하는 겁니다.”
“IHA에서 탈퇴를…?”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그만큼 조제 콜로르가 제시한 방법은 극단적이었던 것이다.
“IHA가 지금 전 세계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행사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오? IHA에서 탈퇴하면 우리는 전 세계와 적이 될 수도 있소.”
“지금의 IHA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우리뿐만이 아닐 겁니다.”
“그건 그렇긴 한데 그게 중요한 것이오?”
“우리가 먼저 IHA에서 탈퇴한다면 우리를 시작으로 중동, 인도, 그 외의 여러 나라에서 우리의 뜻에 동참할 겁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전 세계가 반으로 쪼개지겠군요.”
“신냉전을 우리가 주도하게 되는 겁니다.”
신냉전은 이전처럼 신념의 대립이 아니었다.
헌터와 헌터가 아닌 자들의 대립이 될 것이었다.
‘IHA를 상대하기에 힘이 부족하게 느껴진다면 여명회와 손을 잡아야겠지.’
그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인류의 적이라는 여명회와도 손을 잡을 준비가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