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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203화 (203/275)

#203화

“글쎄요. 저희 아르헨티나는 IHA에서 탈퇴할 생각이 없어요.”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마리아 엘리사의 한마디에 회의장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차가워졌다.

“IHA가 저리 만행을 저지르는데도 가만히 있겠다는 겁니까?”

“아무리 IHA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IHA에서 탈퇴하는 것은 손해가 너무 커요.”

“손해? 도대체 어떤 손해가 두렵기에?”

“IHA에서 탈퇴하면 무공을 배울 수 없게 되잖아요?”

마리아 엘리사의 말에, 조제 콜로르는 바로 반론을 하지 못하였다.

헌터들에게 있어 이제는 필수로 배워야 할 기술이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수만 명의 헌터가 왜 자신들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멕시코까지 갔었던가.

다 무공이란 것을 배우기 위함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남아메리카 헌터들이라고 무공에 대한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 역시 남아메리카에 무공 아카데미가 설립되는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깟 무공보다 우리의 대의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말이 대의지, 그들의 권력을 의미하였다.

IHA의 뜻에 따르면 언젠가 권력을 잃게 될 것을 암시하는 말이었다.

“헌터에게 더 강해지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게 뭐가 있죠?”

마리아 엘리사는 당차게 대답하였다.

그러자 조제 콜로르는 코웃음 쳤다.

“대중들에게 인기가 많으셔서 그런 여유로운 생각도 하실 수 있나 봅니다.”

“지금 그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투표로 대통령이 되셨지 않습니까?”

조제 콜로르의 말에 사람들은 질투가 섞인 눈으로 마리아 엘리사를 바라봤다.

실제로 남아메리카의 헌터 출신 대통령 중에서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된 사람은 그녀가 유일하였다.

즉, 그녀는 IHA의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뜻이었다.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무공, 그거 하나 때문에 우리의 대의를 포기하는 게 옳다고 여기십니까?”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강해지는 게 아무리 중요해도, 조제 콜로르가 그러하듯 다른 국가의 대통령들 역시 자신이 가진 권력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당연히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무공을 포기하는 게 맞았다.

“대의를 포기하다니. 그럴 수 있겠습니까!”

“나 역시 콜로르, 당신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이오.”

“IHA 따위에 굴복하느니, 우리끼리 연합을 만드는 게 나은 선택입니다!”

분위기는 조제 콜로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한 명.

마리아 엘리사를 설득하기만 하면 됐다.

“엘리사. 여전히 선택을 바꿀 생각이 없습니까?”

“전혀 없어요.”

“하. 남아메리카 전체가 힘을 합쳐야 할 상황에서 그런 이기적인 태도를 취하시다니.”

“이래서 아르헨티나는, 쯧.”

“자기들만 건전한 국가라고 착각하는 모양이군.”

여기저기서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마리아 엘리사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누구 때문에 분위기가 험악해졌으니 오늘은 일단 정회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제 콜로르는 마리아 엘리사를 강하게 노려본 후 정회를 선언하였다.

‘저년만 아니었어도….’

남아메리카 전체가 힘을 합쳐야 할 상황.

아르헨티나만 예외로 둬서는 명분이 약해지게 된다.

불리한 싸움을 하게 될 텐데 명분까지 약해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

‘계속 반대한다면 아예 죽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마리아 엘리사만 사라진다면 남아메리카 전체가 똘똘 뭉치게 되리라.

조제 콜로르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북한 사태에 개입한 일을 두고 남아메리카 국가들이 크게 반발할 것을 예상하였다.

“브라질에서 주최하는 회의에 칠레 대통령, 아르헨티나 대통령 등 남아메리카의 각국 수반들이 직접 참석하였어요.”

남아메리카에서 반 IHA 연합이 결성될 징후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중심은 브라질이었다.

브라질의 조제 콜로르 대통령이 있었다.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도 알고 계십니까?”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IHA에 어찌 대응할지를 회의하는 거 같아요.”

“아마 제 예상이지만, 그들이 IHA에서 탈퇴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들이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나온단 말씀입니까?”

강충구가 유지은을 향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갈 수도 있었다.

IHA에서 탈퇴한다는 것은 현재 IHA가 주도하는 ‘무공 도입’이란 흐름에서 배제된다는 뜻을 의미하였다.

헌터가 더 강해지고 싶어 하는 것은 마치 자연의 섭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즉, 강충구로서는 그들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처럼 느껴졌을 거다.

‘하지만 헌터들이라고 모두 힘만을 숭상하는 것은 아니지. 힘보다는 권력을 숭상하는 헌터도 없지는 않아.’

권력을 숭상하는 헌터, 그들이 바로 남아메리카의 헌터들이었다.

이미 그들은 권력의 단맛을 맛볼 대로 맛본 상태.

무공을 배우면 더 강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크게 미련을 두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지금 무력으로도 남아메리카에서 절대자 행세를 하기에는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희소식이 있다면 남아메리카 국가 중 두 나라는 브라질이 주도하는 연합에 참여하지 않을 거라는 점이에요.”

“두 나라라면 어떤 나라들이죠?”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예요.”

남아메리카 국가들 사이의 역학 관계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특히 나처럼 회귀 전의 기억까지 있는 경우라면 더더욱.

‘마냥 좋아할 일도 아니지. 남아메리카를 한꺼번에 정리할 수가 없게 되는 셈이니까.’

나로선 오히려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까지 브라질이 주도하는 반 IHA 연합에 참여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저는 그들이 움직이기 전에 우리가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란 말이 있다.

어차피 적이 될 자들이라면 먼저 공격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선제적인 대응이라면 어떤 대응을 말씀하시는 거죠?”

“남아메리카 헌터들 중, 죄가 확실한 이라면 빌런으로 선포하여 우리 손으로 직접 잡아 오는 겁니다. 북한의 헌터들을 구치소로 잡아 왔던 것처럼 말입니다.”

보름 전에도 비슷한 선언을 한 바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어디까지나 대변인 또는 인터뷰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내 의지를 밝혔을 뿐, 실질적으로 행동에 나서지는 않았었다.

‘이젠 진짜 행동에 나서야 할 때지.’

권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죄를 지었음에도 벌을 받지 않는 헌터들이 너무 많았다.

남아메리카의 헌터들 대부분이 그러했다.

“…너무 과격한 방법이 아닙니까?”

IHA 이사 중 한 명이 우려스럽다는 듯 그리 말했다.

다른 사람들 역시도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어쩌면 IHA의 가장 든든한 아군이어야 할 헌터들을 적으로 돌리게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 우려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들이 빌런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은 여러분도 인정하시는 일 아닙니까?”

“그건 그렇죠. 쿠데타를 일으키기 전부터 남아메리카에서는 헌터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일상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치안이 거의 공백이나 마찬가지였던 남아메리카였다.

우범 지역에서는 경찰 제복이나 군복을 입으면 마피아의 린치를 당할 정도.

이런 곳에서는 정신이 똑바로 박혀있는 헌터도 힘을 절제하고 법을 준수하기가 쉽지 않았다.

당연히 너 나 할 것 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일상이었다.

조제 콜로르, 호세 바첼레트, 후안 카르도나 등은 헌터 시절 사실상 마피아 보스로 군림했었다.

“빌런이면 응징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그들이 저희를 적대할 게 확실한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그렇게 강하게 대응할 경우, 전 세계의 헌터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이 생기지 않을까요?”

“두려움을 심어주긴 할 겁니다. 그래도 저는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IHA는 그저 헌터의 이권을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단체가 아니니 말입니다.”

IHA가 처음 만들어진 계기는, 세상이 한창 격변하고 있을 때, 헌터를 데리고 인체 실험을 하거나 헌터의 인권을 무시하는 경우가 허다하여 헌터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뜻이 변질하더니 헌터의 이권을 수호하는 단체가 되어버렸다.

IHA든, 아니면 각국의 헌터 협회든 말이다.

나는 이런 IHA를 강하게 개혁할 것이다.

헌터가 헌터 본연의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 대신 무공이라는 당근을 주겠다. 영약까지 얹어서 말이야.’

물론 헌터라는 이유로 차별당하지 않게끔 헌터의 기본적인 권리를 수호하는 것에도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남아메리카 본부장을 다시 뽑는 일이다.’

현재 IHA의 남아메리카 본부장은 공석이었다.

카를로스 벨라스쿠가 헌터 출신의 독재자들 편만 들어주다가 내 손에 해임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정 교수님.”

-또 무슨 일을 시키려는 거 같은데, 맞지?

이정이 내 전화를 받자마자 추궁하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런 이정의 목소리를 들으며 피식 웃었다.

꽤 날카로웠다.

역시 나와 오래 지내다 보니 적응이 된 거 같았다.

“남아메리카에서 지냈을 때, 어떠셨습니까?”

-뭐 나쁘지는 않았지. 나야 몬스터 죽이러 간 거지만, 꽤 재미있는 경험이었어.

“그 재미난 경험, 다시 해볼 생각 없으십니까?”

-아니. 생각 없는데?

내가 귀찮은 일을 시킬 걸 미리 알아차린 그가 퉁명스럽게 대꾸하였다.

그러자 나는 예상했다는 듯,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쉽군요. 제가 쾌검의 새로운 실마리를 얻어서 이를 공유할까 했는데 말입니다.”

-새로운 실마리? 무슨 실마리인데?

“쾌검에 엄청난 변화를 섞는 그런 검식을 찾아냈습니다.”

-일종의 환검인 건가?

“예. 다만 쾌검이 주입니다.”

-빠르면서 변화가 많은 검법이라는 것이군.

이정의 목소리가 흥미롭게 변하였다.

역시 무공에는 누구보다 진심인 그다웠다.

-내가 뭘 하면 되지?

난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그를 끌어들이는 것엔 새로운 무공만큼 확실한 것이 없었다.

‘뭐 사실 이정이라면 결국 싫은 척 내 부탁을 들어줬겠지만 말이야.’

툴툴거려도 늘 내 말에 따라주던 이정이었다.

설령 무공 아카데미나 IHA에서 독립한다고 해도 나와 관계를 끊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IHA의 남아메리카 본부장 자리를 맡아주십시오.”

-남아메리카 본부장? 왜 나에게 그런 자리를 주는 거지?

“남아메리카에서 이정 교수의 인지도가 상당하더군요. 페루에서의 활약이 남아메리카 전체에 큰 인상을 남긴 모양입니다.”

-크게 활약한 적은 없었는데 말이야.

이정은 크게 활약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남아메리카 헌터들은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콜롬비아 헌터들이 괜히 이정을 두려워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우리 학교에 루이스라고 페루 출신의 헌터가 있는데 그 친구도 데려가도 되나?

“루이스 학생이 원한다면 그래도 됩니다.”

-근데 나는 남아메리카에서 뭘 하면 되는 거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겁니다. 그저 빌런들에게 참교육만 해주면 되는 일이니.”

-빌런들을 때려잡는 일을 시키겠다는 거군. 알았다.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이정은 대수롭지 않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브라질에 도착한 이후에도 지금처럼 태연한 반응을 보일 수 있을지 궁금하였다.

‘빌런 몇 명을 상대하는 수준이 아닐 텐데 말이야.’

어쩌면 브라질 헌터 전체와 싸우게 될 수도 있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브라질의 대통령, 조제 콜로르까지 감옥에 넣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정과 통화가 끝나려는 순간, 누군가가 내 집무실 문을 두들겼다.

“협회장님. 아르헨티나에서 손님이 왔습니다.”

“아르헨티나?”

“예, 무려 대통령이 직접 협회장님을 찾아왔습니다.”

대통령이 소식도 없이 나를 직접 찾아왔다니.

‘별로 반갑지 않은 손님인데 말이야.’

마리아 엘리사.

어쩌면 남아메리카에서 유일한 아군이 될 수도 있는 그녀였지만 나는 그녀가 조금도 반갑지 않았다.

그녀는 내 오랜 연인인 나즐라처럼 훗날 인류를 배신할 변절자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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