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8성급 던전 브레이크 사태가 벌어졌을 때, 루이스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자신의 조국으로 향하였다.
무공 아카데미에서 어떤 처벌을 당하게 될지 걱정하지 않았다.
그저 고향을 지키고 싶은 마음.
그에게는 그 마음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페루로 귀국한 그는 참담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제인스가 죽었다고요?”
“다른 동생들을 모두 구출한 뒤, 고블린이라는 몬스터에게 당했어.”
“PUC(페루 연합 자위군)는 뭐 했는데요?”
“그놈들이 제때 도착한 적이 있나. 수백 명이 죽고 나서야 뒤늦게 도착하더군.”
겨우 고블린.
한국에서는 그야말로 보잘것없는 몬스터로 취급받는 고블린에게 동생이 죽었다.
심지어 그의 동생들이 있던 지역이 페루에서는 나름대로 치안이 좋은 지역이었는데도 말이다.
‘이 나라는 정말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
원래부터 갖고 있던 생각이었다.
하지만 동생을 잃고 나니 페루란 나라가 더욱더 부정적으로 느껴졌다.
한국처럼 8성급 던전이 터진 것도 아니다.
그저 이웃 국가에서 8성급 던전 브레이크 사태가 발생한 여파로 7성급 이하의 던전들에서 브레이크가 발생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페루는 엄청난 피해를 입어야 했다.
수도에서만 수천 명의 사상자가 나올 정도였다.
만약 루이스를 비롯한 무공 아카데미의 인원들이 페루로 지원 오지 않았다면?
만 단위를 넘어 십만 이상의 피해를 봐야 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능하기 그지없는 PUC가 정권을 장악하다니.’
위기를 겪고 더 강해지는 것은 소설에서나 있는 일이었다.
페루는 8성급 던전 브레이크라는 위기를 겪고 더 망가졌다.
사실상 마피아와 다를 게 없던 헌터 집단인 PUC가 정권을 장악한 것만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언젠가… 언젠가 이 나라를 꼭 개혁하고 말리라.”
루이스는 다짐하였다.
페루를 개혁하겠다고.
그저 고향만 바꾸는 것으로 만족했던 이전과 비교했을 때, 훨씬 원대해진 꿈을 갖게 된 셈이었다.
그리고 이런 꿈을 품은 그에게 교수 중 한 명인 이정이 좋은 제안을 하였다.
“빌런 때려잡는 일에 관심 있나?”
“빌런 말씀입니까? 저는 무공 수련에 집중하고 싶은데….”
“페루의 빌런을 때려잡는 일이라도?”
“…관심이 방금 생긴 거 같습니다.”
“근데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건, 우리가 지목한 빌런이 페루에서는 권력자일 수도 있다. 아니, 거의 100% 그럴 거야.”
“오히려 더 좋습니다.”
“좋다. 그럼 나를 따라와. 라틴아메리카로 간다.”
그렇게 그는 다시 페루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무공 아카데미 소속의 일개 학생 신분이 아니었다.
무려 IHA의 집행부 소속이었다.
그야말로 꿈에도 그리던 금의환향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금의환향을 자축할 시간도 없었다.
IHA의 개혁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IHA 홈페이지에는 무려 수백 명이나 되는 빌런이 새로 지명 수배 되었다.
A급 위험군 빌런도 다수 포함된 그 명단은 남아메리카 소속의 헌터가 90% 이상의 지분을 차지하였다.
브라질을 중심으로 남아메리카에서 반 IHA 연합이 결성될 조짐이 보이는 상황에서도 IHA는 강경한 조치를 취한 셈이었다.
이런 급박한 상황이었으니 루이스도 한가하게 자축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스승인 박한새를 위해서, 그리고 페루를 위해서.
IHA에서 지목한 빌런들을 사로잡아야만 했다.
“제가 가장 먼저 잡아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알베르토 세론이다.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이정의 말을 듣고 루이스는 눈을 부릅떴다.
알베르토 세론.
세계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페루에서 그는 거물 중의 거물이었다.
무려 S랭크급 무력을 가졌다는 인물이었으니.
단순히 무력만 강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현재 페루의 내무 장관이기도 하였다.
정치적으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설마 못 하겠다는 소리를 하지는 않겠지?
“…해보겠습니다.”
-해내야 해. 무공을 배운 놈이 S랭크도 아닌 놈을 못 잡는 건 말이 안 되니 말이야.
무공을 배우기 전이었다면 엄두도 못 낼 상대였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는 무공을 배웠고 S랭크 헌터를 상대로도 일방적인 패배를 당하지 않으리라 자신하였다.
하물며 S랭크급 강자라는 명성만 있고 실전 경험은 턱없이 부족한 알베르토 세론이라면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저를 믿어주십시오.”
-믿고 기다리지. 그리고 혹시 해서 하는 말인데, 최대한 죽이지 않게 노력하도록 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죽이는 것보다 죽이지 않고 살려서 데려오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루이스는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그는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있는 인물이었다.
페루 사람으로서 페루 헌터들의 수준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는 알베르토 세론이 전혀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정의 지시를 받은 이후, 루이스는 바로 알베르토 세론의 체포 작전을 준비하였다.
미라플로레스에 있는 대저택.
그곳에서 불과 몇 km 떨어진 빈민가의 판잣집과는 대조된 호화스럽기 그지없는 저택에 알베르토 세론이 있었다.
그야말로 왕궁이 부럽지 않은 크기의 대저택이었다.
“저택을 지키는 경비만 총 백여 명입니다.”
“전부 헌터입니까?”
“아닙니다. 헌터는 열 명 정도고 나머지는 전부 일반인입니다.”
비각성자가 헌터를, 그것도 S랭크급 강자인 알베르토 세론을 경호하다니.
실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곧 작전 시간입니다.”
미국에서 지원 온 로이드의 말에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로이드 말고도 그와 함께하는 IHA 소속 헌터의 수는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무공은 배우지 않았지만 하나같이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헌터들이었다.
“갑시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로이드가 앞장서더니 대저택의 정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서 검은색 구체가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그 구체가 대저택의 정문을 부수었다.
정문의 잔해가 사방으로 날릴 때, IHA의 인원들은 신속하게 대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적이다!”
“어디서 온 놈들이지?”
“몰라! 일단 쏴!”
타타탕!
대저택의 경비들은 엄청난 반응속도를 보여주었다.
갑작스러운 그들의 등장에 전혀 놀라지 않고서 바로 사격을 가한 것이다.
“알베르토 세론! 당신은 1급 범죄를 저지른 빌런이다! 지금 바로 체포에 응하라!”
로이드가 검은색 구체로 온몸을 가린 채 크게 외쳤다.
하지만 사격 소리에 묻혀 그의 말은 경비들에게도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계속 저항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쏴! 놈들을 죽여!”
마지막 경고에도 경비들은 총을 내려놓지 않았다.
오히려 더 격렬하게 사격을 가하였다.
몇 안 되는 헌터들 역시 멀리서 스킬을 쓰며 적극적인 공격을 펼쳤다.
그러자 로이드는 어찌할 거냐는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루이스는 잠시 주변을 돌아보며 알베르토 세론의 위치를 찾았다.
이내 그의 눈에 2층 창가에서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알베르토 세론의 모습이 확인되었다.
알베르토 세론의 위치를 확인한 이상 더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다.
그는 바닥을 박차고 정면으로 돌진하였다.
수십 발의 총알이 그를 향했지만, 그 누구도 그를 맞힐 수 없었다.
헌터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탱커로 보이는 이가 그의 앞길을 막아섰지만, 루이스는 쌩하고 그를 지나쳤다.
물론 그냥 지나친 것이 아니었다.
검지로 탱커의 뒷목을 찌르고 지나쳤다.
짧은 순간에 점혈을 사용한 것.
당연히 탱커는 꼼짝도 못 했고 탱커까지 뚫리니 루이스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네놈은 뭐냐!”
그가 분노에 찬 눈으로 루이스를 노려보며 외쳤다.
“저는 IHA 집행부 직원입니다.”
“IHA?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빌런의 아지트 아닙니까?”
“뭣이!”
“알베르토 세론. 당신은 1급 빌런으로 지명되었습니다. 순순히 체포에 응해주시길 바랍니다.”
루이스의 말에 알베르토 세론은 체포에 응하기는커녕 공격을 퍼부었다.
마치 이기어검처럼 검 수십 자루가 사방에서 날아왔다.
알베르토 세론이 조종하는 검이었다.
겉으로 봐서는 그냥 평범한 검처럼 보여도 하나하나에 막강한 위력이 담겨있었다.
‘느리다.’
루이스의 눈에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들의 궤적이 너무도 선명하게 보였다.
무공 아카데미에서 보법을 수련한 사람이라면 저 정도 공격쯤은 눈 감고도 피할 수 있으리라.
파바박.
사방에서 날아온 모든 검을 회피하고는 2층에 닿을 만큼 높게 점프하였다.
그러자 알베르토 세론의 기겁한 얼굴이 더 자세하게 보였다.
‘실력도 부족한데 반응속도도 형편없군.’
이런 자가 페루를 대표하는 헌터 중 한 명이라니.
던전 브레이크 때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는지 새삼 이해가 가는 듯싶었다.
심지어 알베르토 세론은 자신의 목에 검이 겨누어진 순간까지도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헌터 경력이 10년도 넘었으면서 무척이나 어설프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체포에 응하시겠습니까?”
“으, 응하겠다.”
루이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의 뒷목을 향해 검지를 내질렀다.
작전은 쉽게 끝이 났지만, 왠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었다.
페루의 헌터 수준이 예상보다 더 형편없게 느껴졌기 때문인 거 같았다.
IHA의 작전은 거의 동시에 진행되었다.
남아메리카 전역에서 대대적으로 체포 작전이 펼쳐진 것이다.
이 체포 작전으로 페루의 알베르토 세론처럼 고위직에 있는 헌터들도 IHA의 본부로 끌려갔다.
그리고 이것은 반 IHA 연합의 중심에 선 브라질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 설마 이렇게까지 나올 줄이야.”
“박한새, 그자는 미친 게 틀림없습니다!”
“미쳤지요.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요. 근데 문제는 그렇게 미친놈이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IHA의 강력한 조치에 헌터들은 두려움을 느꼈다.
헌터가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는 남아메리카 국가들도 막 나가는 것으론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하지만 박한새.
그만큼은 예외였다.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진짜로 ‘장관급’ 인사를 체포할 줄?
그것도 한두 국가가 아닌, 남아메리카 거의 모든 국가의 정치인들을 말이다.
박한새는 이번 체포 작전으로 다시금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증명하였다.
스스로 선언한 것을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란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한 번이라도 죄를 지은 적이 있는 헌터들은 이런 그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아예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한 남아메리카의 독재자들은 더더욱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어, 어쩌면 좋습니까?”
“일단 국제 여론에 호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IHA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내정 간섭을 저질렀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헌터라는 점입니다.”
“아니, 헌터인 게 무슨 문제가 된답니까?”
“아시지 않습니까. 미국을 비롯하여 일명 자유민주주의 세력은 우리 헌터들이 정권을 잡는 걸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빌어먹을! 우월한 헌터가 권력을 행사하는 게 무슨 문제라고!”
“중동은? 중동도 헌터들이 정권을 잡은 건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들도 IHA가 두려운 듯싶습니다. 입을 다물기로 한 것인지 아무런 성명도 발표하지 않고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브라질이 주도하는 반 IHA 연합에 참여할 거 같았던 중동의 국가들은 IHA의 과감한 행동을 보고서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자신들도 IHA에 의해 강제로 체포당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어, 어쩌면 좋습니까? 아군이 하나도 없는 거 같은데….”
유일한 아군이었던 중동 국가들의 지원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남아메리카의 독재자들은 절망감을 느꼈다.
일부는 고개를 계속 두리번거리며 초조한 기색을 내비쳤는데, 이 자리에 IHA 요원들이 쳐들어오는 것을 걱정하는 듯싶었다.
“어쩌긴 뭘 어쩝니까? 우리에겐 남은 수단은 하나뿐입니다. 전쟁! 그들이 전쟁을 걸어왔으니 우리도 전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침전된 분위기 속에 브라질의 대통령, 조제 콜로르가 강하게 주장하였다.
맞서 싸우자고.
적이 전쟁을 걸어왔으니 우리에게 남은 것은 전쟁밖에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IHA 요원들의 무력 수준이 얼마나 뛰어난지 아시지 않습니까?”
“정면으로 상대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저들과 똑같이 우리도 현상금을 거는 겁니다. IHA 제복을 입은 모든 이들에게 말입니다.”
그들이 공권력을 붕괴시킬 때 자주 쓰던 방법이 바로 이것이었다.
제복을 입은 자들을 공격하는 것.
조제 콜로르는 이번에도 똑같은 수단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남아메리카의 모든 헌터를 전쟁으로 끌어들이기에 이만큼 적합한 수단은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