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채영진 국회의원이 찾아왔습니다.”
한국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채영진 국회의원.
그는 3선 국회의원이기 이전에 이윤세 대통령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인물이었다.
그가 나를 찾을 이유야 뻔했다.
“VIP의 말씀을 전달하고자 협회장님을 찾아왔습니다.”
VIP, 즉 이윤세 대통령의 말을 전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밝힌 그였다.
“중요한 이야기를 하실 거 같은데, 저는 나가 있으면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강충구 비서실장님과 박한새 협회장님이 서로를 얼마나 믿고 따르는 관계인지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자리를 피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충구가 내 최측근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 한국 정부에도 알려진 모양이었다.
하긴 매일 붙어 있으니 모르는 게 더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대통령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얼마 전, 각국의 VIP끼리 비밀리에 한 가지 주제로 회담을 하였습니다.”
“왠지 그 주제가 저에 관한 주제일 거 같군요.”
채영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회의의 주제를 이야기하였다.
“IHA가 초국가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을 어떤 식으로 대비하는 게 좋겠냐는 것이 주제였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저를 어떻게 견제할지 대책을 모의하는 회의이군요.”
“그렇게도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누가 주도했습니까?”
“중국입니다.”
역시.
나는 놀랍지도 않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내가 IHA 협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계속해서 맹비난을 퍼붓는 게 중국 정부였다.
여명회, 정확히는 7사도의 입김을 강하게 받는 중국이었기에 나와는 적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서도 여명회의 손발을 잘라야 할 텐데.’
적비단의 세력이 크게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만족하고 싶지는 않았다.
중국 주석조차 7사도의 허수아비나 다를 게 없는 상황이었다.
여유가 되는 대로 7사도의 세력을 완전히 궤멸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7사도의 조직은 점조직 형태를 하고 있어 제거가 쉽지 않았지만 말이다.
“또 누구누구가 참석했습니까? 혹시 미국 대통령이나 러시아 대통령도 그 회담에 참석하였습니까?”
“예, 둘 다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대통령의 경우, IHA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최근에 통화했을 때만 해도 나에게 무척이나 우호적으로 대하였던 블라디미르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역시 정치인은 믿을 수 없는 족속들이었다.
뒤에서는 설마 저런 짓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좋은 정보를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 저는 어디까지나 VIP의 명령을 받고 움직였을 뿐입니다.”
“대통령께 감사 인사를 전해주십시오.”
“예, VIP께서도 박한새 협회장님께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로 크게 기뻐하실 겁니다.”
나는 채영진 의원을 1층까지 배웅해주었다.
“이윤세 대통령이 그래도 역시 시류를 잘 아는 거 같습니다.”
채영진 의원이 사라지자 강충구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이윤세 대통령을 칭찬하였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 그냥 양쪽에다 줄을 대려는 것일 수도 있다. 이기는 쪽에 붙으려는 생각으로 말이야.”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군요.”
“뭐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야. 하지만 정치인들은 신뢰할 수 없는 이들이니 그들을 너무 믿을 필요는 없다.”
“하긴, 블라디미르 대통령만 봐도 정치인은 믿을 수 없는 존재인 건 확실한 거 같습니다.”
미국의 해리스 대통령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그런 회의에 참석했으면서 나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으니까.
“한새 씨, 지금 중동과 남미의 총 17개 국가에서 공동 성명을 냈어요.”
집무실로 올라오니 나의 또 다른 비서, 정소연이 내게 심각한 목소리로 정보를 전해주었다.
“무슨 성명입니까?”
“IHA는 미국 정부의 조종을 받고 있으며, 미국 정부는 IHA라는 비정부 기관을 내정 간섭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공동 성명이었습니다.”
IHA가 미국 정부의 조종을 받고 있다니.
정작 미국 정부는 우리를 견제하려는 의도로 비밀회의에 참석하였는데, 참으로 황당한 오해가 아닐 수 없었다.
“한새 씨. 각국 정부에서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거 같은데, 이대로 괜찮을까요?”
정소연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이미 시작된 빌런과의 전쟁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제로 나는 전쟁을 어영부영 끝낼 생각이 없었다.
남미에서 독재자로 군림하는 헌터들을 반드시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말리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 같습니다. 이번 전쟁,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강충구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그리 말하자, 정소연이 의아하게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강충구는 남아메리카에서 벌어지는 빌런 체포 작전에 대해 설명하였다.
“A급 빌런 라파엘 푸엔테스, A급 빌런 파블로 퀸테로 등이 오늘 추가로 체포되었습니다. 이 밖에 B급 이하의 빌런은 남아메리카 헌터들이 직접 잡아서 저희에게 데려오고 있습니다.”
체포 작전이 시작되자마자 우리는 IHA의 헌터들을 보내 A급 빌런들을 체포하였다.
참고로 우리가 지정한 A급 빌런들은 그 나라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권력자들이었다.
즉, 작전이 시행된 그날 하루에만 남아메리카 권력자 수십 명이 IHA에 의해 체포되었다는 뜻이었다.
이제 남은 A급 빌런도 얼마 없었고 B급 이하의 빌런들도 현상금을 노린 남아메리카 헌터들에 의해 속속 체포되고 있었다.
어쩌면 강충구의 장담처럼 곧 전쟁이 끝날 수도 있으리라.
‘제삼자가 개입하지 않는다면 금방 끝날 전쟁이긴 하지.’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제삼자는 여명회였다.
나를 증오하고 있을 여명회라면 지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으리라.
그렇게 정소연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또 한 명의 손님이 나를 찾아왔다.
이번에는 브라질에서 찾아온 손님이었다.
“브라질 외교부 장관이 어쩐 일로 한새 씨를 찾는 걸까요?”
“항복하러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강충구가 대수롭지 않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히 그의 추측은 일리가 있었다.
국제 시선도 있고 해서 아직 브라질 대통령을 빌런으로 선포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명분은 만들어지고 있었다.
브라질 대통령, 조제 콜로르가 저지른 범죄들을 조사한 뒤, 언론에 제보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론이 어느 정도 만들어지기만 한다면 바로 그를 빌런으로 선포할 계획이었다.
이 사실을 조제 콜로르라고 모를 수는 없었기에 한창 위기감을 느끼고 있을 게 분명하였다.
‘일단 만나봐야 알겠지.’
나는 브라질에서 온 손님을 바로 집무실로 불러왔다.
“브라질의 외교부 장관인 엑토르 펠릭스라고 합니다.”
“IHA 협회장 박한새입니다.”
엑토르 펠릭스.
안타깝다고 해야 할지, 부정부패 관련 범죄만 저질렀을 뿐, 살인이나 마약, 민간인 폭행 같은 범죄에는 연루되지 않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워낙 부정축재로 쌓은 재산이 많아, 정권이 바뀐다면 가장 먼저 숙청을 당할 인물이지 않을까 싶었다.
“제가 IHA를 찾은 이유는 마지막 경고를 하기 위함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강충구가 옆에서 몸을 움찔하였다.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말을 하니 놀란 듯싶었다.
“마지막 경고라. 일단 들어는 보겠습니다.”
“IHA에서 강제로 납치한 브라질 정치인들을 풀어주십시오. 풀어주기만 한다면 그 죄는 묻지 않겠습니다.”
꽤 과격한 용어를 사용하였다.
납치라니.
누가 보면 브라질이 아닌, 우리가 범죄 집단인 것처럼 보일 거 같았다.
“그렇게 못 하겠다면 어쩌겠습니까?”
나는 그가 사용한 용어를 지적하는 대신, 차가운 목소리로 그같이 물었다.
“우리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입니다. 그 어떤 것이라도.”
‘그 어떤 것이라도’를 강조하는 그의 태도만 봐도 브라질의 각오를 엿볼 수 있었다.
그들은 승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리라.
‘하지만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라고 대충 상대할 생각은 없었다.
수틀리면 나의 비밀 무기, 뱃사공의 목걸이도 사용할 생각이었다.
듀라한 수십 기를 기습적으로 사용한다면 브라질 대통령을 살해하는 거야 일도 아니리라.
물론 듀라한 말고도 나에게는 순간이동 옵션이 탑재된 와그너의 신발이 있었고 또 다크 히어로로 활동 중인 김수민도 있었다.
사용할 수단은 내가 훨씬 더 많다는 뜻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뭐든 해보십시오.”
“구태여 끝까지 갈 필요가 있습니까? 지금 외부에서 IHA를 보는 눈도 그리 곱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른 사람 눈치 볼 거였다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을 겁니다.”
엑토르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러더니 이내 나를 강하게 노려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 제안을 거절한 것을 곧 후회하게 되실 겁니다.”
“저를 적대했던 모든 이들이 저에게 후회할 거라고 말했지만, 저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나 말고 상대 쪽에서 후회한 적은 많을 테지만 말이다.
엑토르가 내 말을 듣고 분을 참기 어려웠는지 살기를 일으켰다.
그러자 나 역시 자연스럽게 맞받아쳤다.
본인이 가진 마력도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르는 자가 내 살기를 이겨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결국, 엑토르는 얻은 것 없이 망신만 당한 채 도망치듯 집무실을 벗어났다.
“사부, 조제 콜로르가 정말 미친 짓을 했습니다.”
“무슨 짓을 했는데?”
“IHA에 소속되어 있는 모든 이에게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강충구의 표현대로 정말 미쳐도 단단히 미친 짓이었다.
아직 IHA에서 공식적으로 탈퇴하지도 않은 주제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다니.
‘알아서 명분을 만들어주는군.’
아군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만 한다면, 이번 수는 조제 콜로르의 자충수가 될 것이었다.
“심지어 저에게도 현상금을 걸었는데, 저에게 걸린 현상금이 무려 50만 달러나 됩니다.”
“50만 달러라. 너의 몸값을 대충 A랭크 헌터 수준으로 본 모양이야.”
“그걸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너에게 현상금을 걸 정도면 협회장인 나에게도 현상금을 걸었겠군.”
“사부에게 걸린 현상금은 조금 터무니없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IHA 협회장인데 나에게 적은 금액을 걸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영향력을 생각하면 최소 천억 단위는 걸었을 터.
‘얼마 걸었을까. 5억 달러? 어쩌면 10억 달러까지 갈 수도 있으려나.’
한 사람의 목에 걸린 현상금이 10억 달러라니.
내가 생각해도 조금 터무니없게 느껴지기는 했다.
하지만 내 몸값을 생각하면 그리 터무니없는 액수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무공의 창시자인 나의 몸값은 아무리 못해도 조 단위일 게 분명했으니까.
“사부에게 무려 1,000억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1,000만 달러? 의외로 적은데? 그 정도면 이정 본부장과 거의 비슷한 수준 아닌가?”
“1,000만 달러가 아니라, 1,000억 달러입니다.”
“…100조라고?”
순간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한화로 100조나 되는 현상금이라니.
회귀를 경험해본 나조차 처음 보는 액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