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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208화 (208/275)

#208화

현재 상황을 정리할 겸 IHA 이사들을 모아 회의를 주최하였다.

“아르헨티나의 상황은 완전히 종료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거 같습니다.”

“우루과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산발적으로 일어나던 빌런들의 습격이 완전히 중단되었습니다. 마피아 조직을 이끌던 빌런들도 타국으로 도주하는 중입니다.”

이사들의 말처럼 남미 빌런 연합과의 전쟁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브라질을 제외하면 더는 빌런들의 저항을 겪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이사들에게 희소식을 전해주었다.

“어젯밤, 칠레의 대통령이 비밀리에 항복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자신을 체포하지만 않는다면 대통령직에서 하야하며 앞으로 절대 IHA를 적대하지 않는다더군요.”

내가 그렇게 말을 꺼내자 IHA 이사들의 안색이 환해졌다.

“잘됐군요. 칠레의 항복을 받아냈으니 곧 남미 빌런 연합은 도미노처럼 무너질 것입니다.”

“전쟁이 끝나는 것도 시간문제일 거 같습니다. 하하.”

“기세등등하더니, 결국 하야하고 물러나는 꼴이 우습기 그지없습니다.”

이사들은 벌써 전쟁이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하였다.

칠레는 남미 빌런 연합에서 상당히 중요한 축에 속하였다.

그런 칠레가 항복한다고 하니 전쟁이 끝날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들이 종전 분위기에 젖어드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제 말을 잘못 알아들으신 거 같은데, 저는 칠레의 항복을 받아준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내 말 한마디로 얼어붙었다.

“항복을 받아주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예, 거절하였습니다.”

“왜 거절하셨는지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칠레의 대통령이 터무니없는 조건을 제시해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대통령 자리까지 포기한 거면 사실상 전부를 포기한 거나 다름이 없지 않나요?”

의아해하는 그들에게 나는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빌런과의 전쟁에서 그 어떤 예외도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감형할 수는 있어도 모든 빌런은 예외 없이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즉, 칠레의 대통령을 체포해야만 칠레의 항복을 받아주실 거란 말씀입니까?”

이사들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느끼기에 이건 항복을 받지 말자는 뜻과 다를 게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조건이라면 남미의 어떤 대통령도 투항을 선택하지 않을 거 같습니다만.”

“투항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까? 다 이긴 전쟁인데?”

“…그들의 투항을 받으면 불필요한 희생이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지금 그들에게 기회를 준다고 그들이 갱생할 거 같습니까? 결국에는 나중에 더 큰 피해를 입게 될 겁니다. 그들 국가의 민간인까지도 말입니다.”

내가 괜히 아르헨티나의 호의를 무시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결코 남미 빌런 연합과의 전쟁을 어정쩡하게 끝낼 생각이 없었다.

이왕 전쟁을 시작했으면 확실하게 끝을 보아야 했다.

빌런들의 투항을 받아줬다간 결국 언젠가 다시 범죄를 저지를 터.

나로선 구태여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갱생을 시킨다 해도, IHA의 교화 시설로 끌고 와서 내가 직접 갱생을 시키고 말리라.

“다른 나라나 무공 아카데미에서 급한 연락이 오거든, 네가 사정을 이야기해줘. 이틀 정도 기다리라고 말이야.”

“오늘이 그날입니까?”

강충구가 농담하듯 묻자, 박한새가 피식 웃었다.

“폐관 수련 한다고 생각해. 실제로도 더 강해지기 위해 가는 것이기도 하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외부와의 소통은 걱정하지 마시고 제게 맡겨주십시오.”

어차피 이제 웬만한 연락은 그가 응대하고 있었다.

백악관에서 온 연락조차 대통령이 직접 전화한 것이 아니라면, 이제는 그의 선에서 끝날 정도였다.

그러니 이틀 정도라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으리라.

박한새는 그리 말하더니 이내 강충구의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안 그래도 엄청난 무력을 가지신 사부님인데 순간이동 옵션이 달린 아이템까지 가지고 계시다니. 과연 사부님이 위기에 처할 날이 올까?’

그의 목표는 언젠가 박한새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박한새에게 배운 무공으로 박한새에게 도움을 주는 것만큼 뿌듯한 일은 없을 것이리라.

하지만 박한새의 모습을 보면 과연 그에게 도움이 될 날이 오기는 할지 의문이었다.

안 그래도 세계 최강의 무력을 가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강한 박한새였다.

그런데 각종 유니크 아이템까지 갖기 시작하니 이제는 도저히 약점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나도 유니크 아이템을 얻게 된다면 사부에게 도움을 줄 방법이 생길 수도 있겠지.’

유니크 아이템이 없어도 된다.

그가 보기에 지금 시점에서 박한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일종의 깨달음이었다.

다음 경지로 갈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깨달음을 절실히 바라고 있으니 무공 지식으로 도움을 주면 박한새도 크게 기뻐하리라.

강충구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회의실을 지나가는데, 회의실 내부에서 의미심장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걱정입니다. 요즘 협회장님께서 저희의 의견을 잘 듣지 않으려고 하세요.”

“저도 느꼈습니다. 독단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남미 빌런 연합과의 전쟁에 대한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시고 계시죠.”

“IHA를 향한 각국 정부들의 반감이 커지는 것도 걱정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헌터들의 미움을 사는 상황에서 각국 정부들의 반감까지 사고 있으니 이러다 IHA가 여명회 같은 취급을 받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어찌 보면 뒷담이라고 할 수 있는 대화였다.

박한새 앞에서는 절대 하지 않는 말이었으니.

강충구는 그들의 말을 들으며 헛웃음을 흘렸다.

‘착각하고 있군. 사부는 조금도 변하지 않으셨는데 말이야.’

가장 가까이서 박한새를 지켜본 강충구이기에 알 수 있었다.

IHA 이사들이 하는 말과 다르게 박한새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제로 박한새만큼 일관적인 사람은 없었다.

그는 과거에도 지금도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부는 오직 인류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다.’

돈, 권력, 명예, 여자.

박한새는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의 곁에 여자가 끊이지 않았지만, 정작 그는 여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오직 인류의 미래였다.

‘설령 이사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부가 독재의 길을 걷는다고 해도 나는 사부를 계속 따르리라.’

이사들이 걱정하는 바도 어느 정도는 이해했다.

IHA가 점점 고립되고 있는 것은 비서실장인 그가 가장 크게 느끼고 있었으니까.

박한새가 이사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어느 정도는 공감하였다.

하지만 강충구는 박한새를 믿었다.

그가 절대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을 거란 사실을 말이다.

IHA 본부 바로 근처에서 갑자기 폭음이 들렸다.

“남미 빌런 놈들의 습격인가?”

“폭발 소리를 보면 테러인 거 같기도 합니다.”

“뭐가 됐든 서두릅시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게 이쪽 업계였다.

남미 빌런 연합에서 현상금까지 걸기 시작하면서 변수는 더더욱 늘어난 상황.

그렇기에 헌터들은 당황하지 않고 자신이 맡은 구역으로 출동하였다.

하지만 폭음은 한두 곳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조지타운에 최소 C랭크 이상으로 보이는 빌런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아니, 빌런들이 갑자기 어디서 이렇게 튀어나온 거야?”

“일단 남미 출신의 빌런들은 아닌 거 같습니다.”

“출동할 인원은?”

“현재 출동 가능 인원은 없습니다. 데이즈 팀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워싱턴 D.C. 곳곳에서 빌런이 등장하자, IHA는 순식간에 인력 부족에 시달렸다.

‘하필 사부가 없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혀를 차며 상황을 지켜보던 강충구는 이내 중앙 통제실 직원들에게 이같이 말하였다.

“조지타운에는 제가 가겠습니다.”

“비서실장님이 말씀입니까? 하지만 비서실장님은….”

“저도 헌터입니다. 잊으셨습니까?”

강충구도 지금은 어엿한 헌터였다.

랭크를 꾸준히 높여 지금은 무려 A랭크 헌터였다.

“아, 알겠습니다. 조지타운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융통성을 발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서둘러 자신의 무기를 챙겼다.

갑작스러운 출동이었지만, 여느 헌터 못지않게 자연스러웠다.

평소에도 늘 마음의 준비를 해온 덕분이었다.

현장에 도착하자 전투가 한창이었다.

조지타운의 헌터들이 빌런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IHA에서 왔습니다. 저항을 멈추고 항복하십시오.”

빌런은 강충구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는 오히려 더 흉포해진 기색으로 미쳐 날뛰었다.

‘완전히 이성을 잃은 모습인데? 펜테리움 복용자인가?’

박한새가 IHA의 협회장으로 취임하고 가장 먼저 한 것이 펜테리움 유통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이미 멕시코 사태로 펜테리움이 엄청난 부작용을 가진 마약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매일같이 펜테리움을 복용하던 헌터들도 멕시코 헌터들의 비참한 최후를 보며 바로 펜테리움을 끊었다.

하지만 중독성 있는 약물을 끊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펜테리움을 불법적으로 복용하는 헌터들은 여전히 적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한날한시에 부작용이 나타나는 게 말이 되는 일일까?’

강충구의 영리한 두뇌는 순간적으로 이번 사건이 단순히 마약 중독자들이 벌인 소동이 아닌, 더 큰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였다.

물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눈앞의 빌런부터 제압하는 게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이었다.

스킬인지 긴 손톱을 마구 휘둘러대는 빌런은 그가 보기에도 위협적이었다.

손톱이 칼처럼 날카로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 속도도 무척이나 빨랐는데, 강충구는 보법을 펼쳐 단숨에 거리를 좁히기보다는 다른 헌터들과 움직임을 맞추었다.

진법 고수답게 그는 자연스럽게 다른 헌터들의 움직임에 동화되었다.

그러자 빌런은 순식간에 수세로 몰렸다.

헌터들의 공세가 마치 진법을 쓴 것처럼 유기적으로 바뀌었던 까닭이다.

“뭐지? 갑자기 공격이 수월해진 거 같지 않아?”

“IHA 헌터 때문인가?”

“겉으로 봐서는 특별한 게 없어 보이는데….”

빌런을 상대하던 헌터들은 의아해하면서도 계속 공격을 이어나갔다.

강충구 역시 공격을 멈추지 않았는데, 그러다 결국 빌런은 강충구가 날린 일격을 정통으로 맞고 말았다.

전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고통을 잊고 날뛰던 빌런은 검기에 당하자, 괴성을 지르더니 털썩 쓰러졌다.

“이, 이겼다!”

헌터들이 환호를 지르자, 강충구도 환호하였다.

IHA에서 무려 A급으로 측정하였던 빌런이었다.

헌터 랭크로 따지면 A랭크 수준이라는 뜻이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일개 비각성자에 불과했던 그가 A급 빌런을 잡아냈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IHA시네요! 정말 잘 싸우세요!”

금발 여성 헌터가 강충구를 보며 감탄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다른 헌터들도 그녀를 따라 강충구를 칭찬하였다.

“확실히 IHA 헌터는 듬직한 거 같습니다. 헌터님이 등장하니까, 갑자기 빌런을 상대하는 게 쉽게 느껴졌습니다.”

“랭크가 몇인가요? 당연히 B랭크 이상일 거 같은데, A랭크인가요?”

“빌런을 상대하는 것이 상당히 노련하게 보였는데, 혹시 팁이 될 만한 거 있으면 저희에게도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강충구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무공 아카데미에서야 나름대로 인정받는 위치였지만, 이렇게 처음 본 헌터들에게 칭찬을 받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은근히 기분 좋은데? 나를 진짜 헌터로 봐준 거잖아?’

갑자기 섬광처럼 실 같은 형태의 빛줄기 다섯 개가 생기더니 헌터들이 풀썩 쓰러졌다.

강충구가 놀라서 헌터들을 바라보니 목이 꿰뚫려 있었다.

“벌써 도착해서 약쟁이를 처리하다니. 확실히 IHA가 능력이 있긴 한 거 같아?”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의문의 목소리를 듣고 강충구는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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