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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211화 (211/275)

#211화

조제 콜로르는 쥐고 있던 신문지를 사정없이 찢었다.

“여명회 놈들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IHA는 다른 국가의 도움을 얻는다고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IHA는 국가가 아니었다.

하나의 단체일 뿐.

그리고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IHA를 공격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웠다.

IHA 본부가 워싱턴에 있는 이상, 군대를 동원해서 공격하고자 한다면 미국과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제 콜로르가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그와 같은 헌터 단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IHA가 무엇의 약자이던가. 국제 헌터 협회의 약자이지 않은가.

당연히 IHA를 공격하는 것에 협조할 헌터 단체는 별로 없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명회는 그에게 있어 사실상 유일한 동맹이었다.

여명회 역시 IHA처럼 초국가적인 영향력을 가진 헌터 단체로 알려져 있었다.

그렇기에 조제 콜로르는 그들의 조력을 받는다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였다.

하지만 정작 여명회가 그들을 도운답시고 가장 먼저 한 일이 펜테리움 복용자들을 폭주시킨 것이었다.

즉, 펜테리움의 부작용을 전 세계에 광고한 것.

그러자 IHA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지금 조제 콜로르가 읽고 있는 신문에 나온 내용처럼 남미 빌런 연합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당연히 남미 빌런 연합의 국제적 여론은 더욱더 악화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님, 칠레 대통령의 전화입니다.”

“줘 봐.”

그때, 칠레 대통령에게 전화가 왔다.

조제 콜로르가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전화를 받으니 칠레 대통령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콜로르! 지금 IHA 놈들이 내 관저로 쳐들어왔소! 어서 빨리 지원을 와주시오!

“IHA가 칠레의 대통령인 당신을 공격했다고?”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박한새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니 당연히 각국 대통령이라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설마 이렇게 최소한의 명분도 만들지 않은 채 기습적으로 공격을 시도할 줄은 예상 못 하였다.

‘적어도 선전포고 정도는 할 줄 알았거늘.’

조제 콜로르는 혀를 찼지만, 당황하지 않은 기색으로 말했다.

“기다려보게. 바로 지원을 보낼 테니.”

-기다릴 시간이 없소! 놈들이 바로 코앞까지 왔단 말이오!

“아니, 몇 명이나 왔기에?”

-몇 명이 왔든 지원부터 보내라고!

절규하는 칠레 대통령의 목소리를 듣고 조제 콜로르의 얼굴이 조금 심각해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이 심각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칠레 대통령이 비명을 질렀다.

벌써 그가 있는 곳까지 IHA 헌터들이 당도한 듯싶었다.

‘호세 바첼레트가 이렇게 순식간에 당하다니.’

한때는 라이벌 관계였기에 호세 바첼레트가 얼마나 강한지 잘 알았다.

그는 S랭크 헌터로서 적어도 남미에서는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였다.

조제 콜로르 본인이 호세 바첼레트를 잡으려고 했어도 최소 몇 시간은 걸렸을 터.

하지만 IHA에서 누가 움직인 것인지 호세 바첼레트는 순식간에 당하였다.

“대, 대통령님! 콜롬비아 대통령이 다급히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베네수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네수엘라 수도가 IHA에 점령당하였다고 합니다!”

칠레는 시작에 불과하였다.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페루….

남미 빌런 연합에 속한 나라들이 거의 동시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들을 공격했다는 것은 나도 안전하지 않다는 뜻인데….’

조제 콜로르의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그의 경호실장이 다급하게 외쳤다.

“이정! 이정 그 괴물 같은 놈이 쳐들어왔습니다!”

이정.

IHA 남미 본부의 수장인 그는 남미 헌터들에게 있어 두려움의 존재였다.

조제 콜로르는 이정이 쳐들어왔다는 말을 듣자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빌어먹을. 하필 그놈이 움직이다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S랭크 헌터들은 하나같이 자존심이 강했다.

상대가 누구든 겁을 먹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다.

브라질의 S랭크 헌터들도 자존심이 강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브라질의 S랭크 헌터들은 자신들이 세계 최강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런 브라질 헌터들도 IHA와의 전쟁이 시작되자 소극적으로 행동했다.

브라질에서 세 번째로 강한 헌터가 IHA 헌터들에 의해 순식간에 체포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어떡하지? 이정, 그 괴물 같은 놈이 쳐들어왔다는데?”

“제기랄! 도망쳐야 하나?”

“도망치기는! 일대일로 붙는 거면 모를까, 우리는 셋이잖아!”

“맞아! 대통령까지 오면 넷이야. 우리가 이길 수 있어.”

IHA의 체포 작전으로 남미의 S랭크 헌터들이 연이어 체포되자 브라질 S랭크 헌터들은 한곳에 모였다.

대통령 관저에만 무려 세 명의 S랭크 헌터가 모였을 정도였다.

그 덕에 브라질 헌터들은 이정이 등장했다는 소식에 필요 이상으로 겁먹지 않았다.

S랭크 헌터가 세 명이니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그들이 이정과 맞서 싸울 준비를 할 때, 마침 이정으로 보이는 동양인 사내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잔챙이들은 꺼져라. 내가 잡으려는 것은 오직 한 놈. 조제 콜로르뿐이다.”

약간 어눌하게 느껴지는 스페인어였다.

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브라질 헌터들은 확실하게 알아들었다.

“감히 우리를 무시해?”

“후회하게 해주지!”

세 명의 S랭크 헌터는 각자 그리 외치고는 자신의 스킬을 펼쳤다.

한 명은 땅의 거인을 소환하여 이정을 뒤에서 공격하였고 또 한 명은 눈에서 레이저를 쏘았다.

마지막 한 명은 전형적인 근접 딜러였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이정을 향해 달려갔다.

그렇게 이정은 사방에서 S랭크 헌터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생각보다 별거 없는데?”

“역시 소문이 과장된 거였나!”

“아니, 소문이 과장된 건 아니지. 우리를 상대로 나름 잘 싸우고 있으니. 그냥 우리가 강한 거야!”

“하하하! 그런 거였군!”

S랭크 헌터들은 벌써 승리를 확신하는 태도를 보였다.

조제 콜로르를 기다리지 않고 더 맹공을 퍼붓는 것만 봐도 그들이 어떤 마음가짐인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땅의 거인을 소환한 S랭크 헌터만은 굳은 표정을 지었다.

‘바보 같은 것들. 이정의 스킬은 분신이잖아! 놈은 아직 스킬조차 사용하지 않았다고!’

상대가 전력을 다하는 것이 아님을 뻔히 아는데 표정이 좋을 수가 없었다.

셋의 공격을 맞상대해주던 이정이 갑자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뿐이냐?”

이번에는 한국어였다.

하지만 굳이 스페인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그가 자신들을 비웃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이 자식이!”

“본때를 보여주마!”

버럭 화를 내던 그들은 이내 눈을 부릅떴다.

“나를 알면서도 내 스킬은 몰랐단 말이야?”

“그, 그러고 보니 저놈의 스킬이….”

“분신이라니! 제기랄!”

한 명의 이정을 상대로도 고전하였던 그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눈앞에 무려 열 명의 이정이 나타났다.

“미친! 분신 하나하나가 본신과 똑같잖아!”

“본신과 똑같다고? 아직도 모르는군. 네놈들이 처음에 상대하던 것은 내 분신이었다. 그리고 본신인 나는 분신들보다 훨씬 강하지.”

“마, 말도 안 돼!”

이정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스킬을 사용하자 세 명의 S랭크 헌터들은 오래 버티지 못하였다.

근접 딜러는 몇 초 만에 쓰러졌고 다른 두 명 역시 1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조제 콜로르, 그놈은 왜 안 오는 거지?”

“북쪽으로 달아났다고 합니다.”

“하!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정은 조소를 지었다.

그 혼자 조제 콜로르를 잡으러 온 것이 아니었다.

강충구의 복수를 하겠다고 남미로 날아온 무공 아카데미의 인원이 거의 천 명에 가까웠다.

이 중 사백 명이 브라질로 와 조제 콜로르 체포 작전에 합류하였다.

즉, 조제 콜로르가 무사히 도망칠 가능성은 단 1%도 없다는 뜻이었다.

그가 관저에서 다시 나오자 바로 소식이 들려왔다.

조제 콜로르가 강충구의 사제들에게 체포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우우우!”

“죽어라, 이 범죄자야!”

온몸이 쇠사슬로 속박된 채 공항에 도착한 조제 콜로르의 모습에 미국 시민들은 야유를 보냈다.

얼마 전까지는 미국에서도 브라질 대통령으로 인정했던 사내였다.

하지만 펜테리움 복용자들이 미국 수도에서 난동을 부린 이후, 조제 콜로르는 범죄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되었다.

당연히 조제 콜로르를 바라보는 미국 시민들의 분위기는 좋을 수가 없었다.

“브라질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대체로 독재자의 압제에서 해방된 것을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만약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강제로 체포하였다면 아마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반발이 상당했을 것이다.

어쩌면 미국에다 전쟁을 선포했을지도 모를 일.

하지만 조제 콜로르는 달랐다.

조제 콜로르가 헌터치고 정치를 잘한다지만, 그의 밑에 있는 헌터들까지 정치를 잘하는 것은 아니었다.

뭐 애초에 마약 카르텔 출신의 마피아들이 제대로 된 정치를 할 리가 없었고 말이다.

당연히 조제 콜로르가 강제로 체포된 일에 브라질 국민들은 환영하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근데 정작 조제 콜로르는 기가 죽지 않은 모습이군요.”

미국 시민들을 향해 윽박지르는 조제 콜로르의 모습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쩌면 사형 선고를 받을지도 모를 상황에서 그는 두려울 게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였다.

남미 빌런 연합이 전부 붕괴한 이상, 그를 도울 세력은 없을 텐데도 저런 자신감을 보이니 나로선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겁나지 않나? 곧 죽을 수도 있는데?”

“푸하하하! 내가 왜 겁을 먹어야 하지?”

내가 직접 조제 콜로르에게 묻자, 그가 크게 웃었다.

“죽는 게 두렵지 않나 보군.”

“죽음? 그야 두렵지 않을 수는 없지. 하지만 너는 나를 죽일 생각이 없잖아?”

“왜 그렇게 생각하지?”

“나는 S랭크 헌터다. 그것도 육체 강화 계열의 헌터지.”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무공을 배우기에 적합한 몸이라는 거다!”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내가 재해급 빌런인 너에게 무공을 가르칠 거라고?”

“못 가르칠 것은 없지 않나. 재능이 있는데. 그리고 진정한 재해급 빌런은 내가 아니라, 여명회라는 놈들 아닌가?”

“여명회, 그놈들을 잡을 때 나를 써라. 적극적으로 협력해주지. 나도 그놈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말이야.”

조제 콜로르의 당당한 모습에 나는 역겨움을 느꼈다.

아마 그가 이런 착각을 하는 것도 자신이 가진 헌터로서의 능력 때문일 것이다.

살아만 있으면 언제든지 재기할 수 있는 것이 그의 능력이었으니.

‘내가 절대 죽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겠지. 그래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자를 죽이는 것은 부담이 상당하니 말이야.’

실제로 나는 조제 콜로르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명분도 명분이지만, 사실 죽일 ‘필요’가 없어서 그랬다.

‘죽이지는 않으마. 단, 너는 더 이상 헌터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될 거다.’

약육강식을 세계의 진리처럼 여기며 살아왔던 남미 빌런 연합의 수괴들.

과연 그들이 마력이란 힘을 잃게 되었을 때 어떤 변화를 보일지 무척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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