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조제 콜로르, 엑토르 펠릭스, 로코 모라비토, 후안 카르도나, 호세 바첼레트 등등.
남미 빌런 연합의 수장들이 쇠사슬로 온몸이 묶인 채 한곳에 감금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감금된 상태에서도 하나같이 여유가 넘쳐 보였다.
“이 쇠사슬은 언제쯤 치워주는 거지?”
“그러니까. 어차피 우리 상대로 쇠사슬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박한새, 그놈이 요식행위를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풀려나면 진짜 그놈부터 죽이고 말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이 원한을 어떻게 잊어?”
“근데 아르헨티나 년은 결국 안 오는 모양인가 봅니다.”
“제기랄. 그년도 우리랑 다를 게 없는데 왜 그년만 안 잡는 거지?”
“또 몸을 이용한 외교를 한 게 아니겠습니까.”
“여자여서 좋겠군. 빌어먹을.”
“카르도나. 당신 같은 외모면 여자여도 별로 좋을 게 없을 거 같은데.”
“푸하하! 맞는 말입니다!”
“아니, 제 얼굴이 어때서요!”
서로 웃고 떠드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듯, 그들은 자신의 안위에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S랭크 헌터이자, 남미 각국의 우두머리였다.
남미에서는 여전히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이 적지 않았다.
IHA는 국제 여론 때문에라도 그들을 언젠가 풀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제 콜로르. 따라와라.”
“너, 랭크가 몇이야? 어디서 건방지게.”
“조제 콜로르. 두 번 말하지 않겠다.”
그때 간수가 나타나 조제 콜로르를 불렀다.
S랭크 헌터를 담당하는 자답게 간수는 절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기세만 봐도 범상치 않았는데, 남미의 최강 헌터라는 조제 콜로르조차 주눅이 들 정도였다.
‘IHA 이 괴물 같은 것들! 왜 만나는 놈마다 나보다 강한 거야!’
평생 동안 자신보다 강한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는 조제 콜로르였다.
그런데 IHA의 헌터들과 마주칠 때마다 조제 콜로르는 기세 싸움에서 늘 밀렸다.
실제로 싸웠을 때는 더더욱 밀렸고 말이다.
“이, 일어날 생각이었어!”
조제 콜로르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간수를 따라갔다.
그가 도착한 곳은 고문실처럼 생긴 쪽방이었다.
“여기에 앉아라.”
“나를 고문이라도 할 생각인가?”
간수는 그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간수를 보며 조제 콜로르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고문 따위는 두렵지 않았기에 그는 더 망설이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
‘뭐 하려는 거지?’
갑자기 등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손길에 조제 콜로르는 강한 의문을 느꼈다.
뜬금없이 자신의 등에 손을 대는 간수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눈을 부릅뜨며 경악했다.
“뭐, 뭐야! 왜 내 마력이…!”
마력이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미미한 양이었다.
그런데 눈덩이 굴러가듯, 시간이 지날수록 빠져나가는 마력의 양이 커졌다.
조제 콜로르는 비명을 지르며 간수의 행동을 막기 위해 발버둥 쳤다.
다른 건 몰라도 마력을 뺏기는 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쇠사슬 때문은 아니었다.
아무리 쇠사슬이 단단히 묶여 있어도 그의 완력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마력이 전부 빠져나가자 그는 절규하였다.
권력을 잃은 그에게 남은 것은 마력뿐이었다.
그런 그가 마력까지 잃었으니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야기 들었어? 조제 콜로르가 마력 제거형에 처해졌다던데?”
“마력 제거형? 그게 뭐야?”
“말 그대로 마력을 제거하는 형이래.”
한때 남미에서 전설적인 헌터라 불렸던 조제 콜로르의 최후를 전해 들은 남미 헌터들은 조금 과장해서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마력을 완전히 잃어서 아예 스킬도 못 쓸 정도가 되었다고?”
“미친! 폐인이 된 거나 다름이 없잖아?”
“아니, 그런 기술이 존재한다는 게 말이 돼? 헌터에게서 마력을 빼앗아가다니….”
꼭 S랭크 헌터에게만 마력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스킬을 가진 D랭크 이상의 헌터들은 물론이고 스킬을 가지지 않은 E랭크나 F랭크 헌터에게도 마력은 중요하였다.
마력을 보유하기만 해도 완력이나 체력 등이 좋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스킬이 없는 헌터도 마력만 많으면 육체 강화 능력자처럼 강한 힘을 보여주었다.
“IHA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헌터를 위해 조직한 협회인데, 헌터에게서 마력을 빼앗아가다니!”
“맞아. 아무리 범죄자들이라지만, 이건 너무 심한 처벌 아니야?”
“심지어 마력을 뺏기면 무공도 배울 수 없다던데?”
“비각성자보다 못하게 되는 거잖아!”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마력을 뺏기다니. 나는 진짜 저런 꼴 당하고 싶지 않아.”
몇몇 헌터들은 IHA의 처사에 분통을 터뜨렸다.
헌터들에게 있어 가장 끔찍하게 여겨지는 형벌을 하필 헌터를 위해 조직된 협회가 만들어냈으니 화를 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불만을 드러내는 헌터는 소수였다.
대부분의 헌터들은 조제 콜로르의 최후를 보고서 두려움을 느꼈다.
“젠장! 마약 사업은 아무래도 접어야겠군.”
“파블로! 너, 이번에 대마밭 인수하지 않았어?”
“대마는 다 없애고 다른 거 심으려고. 괜히 대마 생산하다가 IHA에 걸리면 X 되잖아.”
“돈 아깝지 않냐?”
“돈이 대수야! 걸리기만 하면 내 헌터 인생이 끝나게 될 텐데!”
조제 콜로르를 비롯한 남미 빌런 연합의 수괴들은 정부 요직을 독점한 권력자이면서 한편으로는 마약 카르텔의 수장이기도 하였다.
남미에서 생산되는 마약의 90% 이상이 조제 콜로르, 로코 모라비토, 후안 카르도나 등에 의해 유통될 정도였다.
하지만 이들이 사라졌다고 남미에서 마약이란 게 단번에 사라질 리는 없었다.
남미 헌터들은 이들의 빈자리를 노리고 새로운 마약 카르텔을 만들 준비를 하였었다.
그런데 조제 콜로르의 비참한 최후에 대한 소식이 남미 전역으로 퍼지자, 남미 헌터들은 바로 마약 사업에서 철수하였다.
감옥에 가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남미 헌터들이지만, 마력을 잃는 것만큼은 극도로 두려워하였다.
마력을 잃으면 사실상 헌터의 길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잘됐어. 곧 남미에도 무공 아카데미가 세워진다는데, 거기 들어갈 준비나 하자고!”
“그래. 어차피 마약왕이 되어봤자 IHA에게 찍히면 끝나는 인생이야. 차라리 내가 IHA에 들어갈 생각을 하는 게 낫지.”
남미 헌터들은 이번에 IHA의 힘을 똑똑히 보았다.
S랭크 헌터라고 거들먹거리던 각국의 정상들이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체포되는 장면도 물론 똑똑히 보았다.
그런 상태에서 IHA가 무서운 형벌까지 만들어내니 남미 헌터들은 음지에서 놀 생각을 완전히 접었다.
음지보다는 IHA에 들어가는 게 훨씬 이익이란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헌터들이 마약 사업을 포기했다고 남미에서 마약이 사라질 리는 없었다.
마약만큼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은 없었으니, 비각성자들도 기회를 노리고 마약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비각성자들의 마약 사업은 하나같이 오래가지 못하였다.
IHA 때문에 마약 사업을 포기했던 남미 헌터들이 ‘공적 점수’를 노리고 그들을 공격하였기 때문이었다.
“고맙다. 나의 공적치가 되어줘서!”
“크크. 우리가 괜히 이 사업을 접은 줄 알아? 멍청한 놈들!”
“꽤 짭짤한데? 돈도 벌고 공적치도 쌓고 아주 좋아!”
남미 헌터들은 그렇게 자발적으로 치안 활동에 나섰다.
그러자 무법천지였던 남미가 순식간에 정상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하였다.
카사 로사다.
한국말로 분홍빛의 저택이란 이름을 가진 이 건물은 대통령궁이라 불렸다.
그리고 이 대통령궁 내부에서는 안도의 한숨 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말 다행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만약 조제 콜로르, 그자의 뜻에 동참했으면 지금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지금에 와서 보니, 대통령님이 정말 현명한 결정을 내리신 거 같습니다.”
남미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측근들은 헌터 수가 적었다.
실무 능력 위주로 사람을 뽑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설령 헌터가 아니라도 조제 콜로르의 뜻에 아르헨티나가 동참했다면 지금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지 모를 수 없었던 것이다.
“저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운이 아니라, 사람 보는 눈이 좋아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아르헨티나 대통령, 마리아 엘리사는 최측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녀는 사람 보는 눈이 좋았다.
박한새를 보자마자 덤비면 안 될 사람임을 바로 알아차렸으니까.
‘뭐 그자의 강함을 몰랐어도 브라질이 주도하는 전쟁에 참여할 일은 거의 없었겠지만 말이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앙숙과도 같은 관계였다.
심지어 두 나라의 대통령까지 서로 앙숙인 상황.
당연히 아르헨티나로서는 브라질이 주도하는 남미 빌런 연합에 참여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이 같은 결정을 내릴 때, 아르헨티나 헌터들의 심한 반발을 받긴 했었지만 말이다.
“대통령님. 지금 IHA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IHA에서요? 뭐라고 하던가요?”
“브라질에서 협회장이 직접 회의를 주관하려는데 참석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대통령궁 관계자들이 한창 박한새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알기라도 하듯 IHA의 연락이 왔다.
“어쩌시겠습니까?”
“어쩌긴요? 협회장이 불렀는데 바로 가야죠.”
마리아 엘리사는 고민할 것도 없이 대답하였다.
미국 대통령이 불렀다면 고민을 했겠지만 상대는 IHA 협회장이었다.
사실상 남미의 지배자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었기에 그의 초대는 절대 거절할 수 없었다.
나는 IHA 남미 본부의 건물을 가만히 쳐다봤다.
“꽤 멋있지 않나요? 아마 브라질에서는 가장 비싼 건물일 거예요.”
한때 IHA 남미 본부는 브라질 소속 헌터들의 공격으로 완전히 쑥대밭이 되었다.
건물 전체가 화염에 휩싸여 사실상 폐허가 된 것이다.
하지만 보름이 채 지나지 않아 IHA 남미 본부는 더욱더 번쩍번쩍하게 변했다.
물론 그 짧은 시간 동안 건물이 복구된 것은 아니었다.
복구가 아닌, 새로운 건물을 본부로 삼은 것인데 브라질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한 빌딩이었다.
“너무 위압감을 주지는 않을지 걱정입니다.”
“글쎄요. 브라질에서는 그래도 되지 않을까요?”
유지은이 그리 말하자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자 유지은이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무서운 말을 내뱉었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든 브라질 사람들은 우리를 정복자로 여길 거예요. 이왕 정복자가 되었다면 저항할 생각은 꿈도 못 꾸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내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다시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이내 웃었다.
“농담이에요. 농담.”
“앤디 올드먼에 관해서는 더 알아낸 게 있습니까?”
“그 영국의 마법사 말이죠? 대단한 정보는 얻어내지 못했어요. 평소엔 호텔에서만 생활하거든요.”
“다만, 정치인들과 자주 만나는 거 같던데요? 여야를 가리지 않고 말이죠.”
여전히 앤디 올드먼의 목적을 알 수 없었다.
‘기회가 되면 죽이는 게 최선이긴 한데…. 아무리 나라도 소란 없이 죽일 수는 없을 거 같아서 곤란하단 말이지.’
처음에는 김수민을 보내 암살을 시도할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앤디 올드먼은 나도 쉽게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김수민이 아무리 무공 아카데미 교수급의 무력을 가졌다고 해도 그녀 혼자서는 앤디 올드먼을 죽일 수 없을 것이다.
‘어려워도 반드시 죽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