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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213화 (213/275)

#213화

IHA의 남미 본부 회의장.

각국 지도자들이 박한새를 기다리며 작게 대화를 나누었다.

“IHA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면 어떡하죠?”

“근데 무리한 요구를 해도 저희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후우. 국민들부터 IHA를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아마 IHA에서 말단 직원이 대선에 나와도 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정도입니까?”

“그만큼 국민들이 염증을 느낀 거지요. 기존 정치권의 모습에 말입니다.”

“허어, 전임 대통령이, 아니 빌런들이 패악을 저지른 것이지, 모든 정치인의 잘못은 아니었지 않습니까.”

“던전 브레이크 사태 때 무능한 정치로 국가 전체가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사실이니 국민들이 비난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민심도 IHA를 따르고 명분과 힘까지 갖추고 있으니 그들이 무슨 요구를 해도 우리는 따를 수밖에 없겠군요.”

그들은 IHA에서 자신들을 부른 것을 두고 걱정하는 표정들을 지었다.

남미 전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IHA였다.

IHA 협회장인 박한새는 사실상 남미 전체의 지배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도 그럴 것이 헌터의 지배가 익숙한 남미였다.

IHA는 그런 헌터들의 정점에 있는 집단이었으니 당연히 IHA를 무서워할 수밖에 없었다.

“무리한 요구를 하지는 않을 겁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IHA이지 않습니까?”

“IHA라고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그들은 정의를 추구하는 단체입니다. 우리도 그들 덕에 이렇게 다시 정권을 되찾은 것이 아닙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너무 IHA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거 같습니다. IHA는 우리의 은인이지, 남미의 정복자가 아닙니다.”

남미의 모든 정치인이 IHA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IHA를 은인으로 생각하는 정치인이 더 많았다.

남미 빌런 연합의 수괴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가던 게 남미 정치인들이었다.

실제로 빌런들의 손에 죽은 정치인이 적지 않았다.

살았어도 대부분 어딘가에 감금되어 있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 빌런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IHA가 직접 빌런들을 퇴치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남미 정치인들은 빌런의 위협으로부터 해방해준 IHA에 감사한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오시는 거 같습니다.”

누군가가 주의를 주자, 회의장의 분위기는 언제 소란스러웠냐는 듯 조용해졌다.

주의를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묵직한 발소리를 내며 한 사내가 등장하였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IHA의 협회장 박한새였다.

‘저 사람이 박한새….’

‘세계 최강자라.’

‘부디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나는 남미 각국의 지도자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몸은 다 나았냐, 어느 나라의 무슨 음식이 맛있더라, 관광지를 꼭 가고 싶다.

원래 나는 빈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저 용건만 딱딱 말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인지, 나도 IHA 협회장이 되니 이런 실속 없는 말들도 잘하게 되었다.

사실 내가 느끼기에만 실속이 없지,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게 바로 이런 말들이었으니.

운이 좋으면 유대감을 형성할 수도 있고 말이다.

물론 내가 남미의 지도자들을 불러놓고 쓸데없는 말들만 할 리는 없었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풀어지자, 나는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여러분께 한 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사람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그들은 여전히 나를 경계하였다.

아니, 정확히는 두려워한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리고 나는 이런 그들의 두려움을 굳이 없앨 생각은 없었다.

“저는 펜테리움과의 전쟁 즉, 마약과의 전쟁이 아직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펜테리움은 세계 곳곳에서 유통되고 있었다.

남미 마약 카르텔들 거의 전체를 없애다시피 하였으나 새로운 마약왕을 꿈꾸는 자들이 마약을 유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나는 이들을 가만히 방치할 생각이 없었다.

“여러분, 마약과 조금이라도 연관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저는 마약에 관해서는 내정 간섭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 말에 남미 각국 지도자들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내정 간섭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내 살벌한 협박을 듣고 저런 표정을 짓는 거다.

“아시겠습니까?”

내가 대답을 강요하듯 그리 말하자, 남미 지도자들이 억지로 대답하였다.

“하, 하! 마약이라니. 아국에서는 절대 마약이 유통될 일이 없을 겁니다.”

“IHA에서 마약을 통제해주시니 든든합니다!”

나는 그들의 대답을 들었음에도 아무 말 없이 한 번씩 훑어봤다.

살기가 조금 담겨있는 나의 눈빛에 그들은 몸을 움찔하였다.

만약 내가 진심으로 살기를 담았다면 실신하는 자도 나왔으리라.

“믿겠습니다.”

사실 믿지는 않았다.

애초에 여기 있는 정치인 중에 부정부패 사건에 연루되지 않은 정치인이 드물었다.

마약 카르텔이 쿠데타를 일으키기 전에 마약 카르텔에게서 뇌물을 받았다는 정황도 확인된 상황.

나로선 그들을 믿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투표로 선출된 정치인들까지 내가 하야시킬 수는 없으니까.’

조제 콜로르를 체포한 일로 다른 나라에서 크게 반발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범죄자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조제 콜로르가 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이었으면 나도 그들을 강제로 체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눈앞의 정치인들은 투표로 선출된 정치인들이었기에 내가 강제로 뭔가를 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말로써 협박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던 것.

‘물론 말로 협박하는 것만으로 충분하겠지만 말이야.’

내 말에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한데 분노한 기색을 드러내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두려워하는 표정을 지은 채 내 말에 순응하기만 할 뿐이었다.

심지어 S랭크 헌터 출신인 아르헨티나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르헨티나 대통령, 마리아 엘리사의 표정을 바라보다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엘리사 대통령님. 혹시 회의가 끝나고 남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 말인가요?”

“예. 엘리사 대통령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내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마리아 엘리사를 향하였다.

몇몇은 마리아 엘리사를 걱정하는 눈치였고 몇몇은 마리아 엘리사를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이 자리에서 나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헌터 출신이 바로 그녀였다.

헌터라는 이유로 특혜를 받을 수도 있고 반대로 박해를 받을 수 있으니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도 반반으로 나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리아 엘리사는 아무래도 후자를 걱정하는 거 같았다.

“…예. 남을게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얼굴이었다.

S랭크 헌터답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어쩌겠는가.

남미의 S랭크 헌터들이 무더기로 IHA에 잡혀간 상황.

심지어 그 S랭크 헌터들은 마력이 제거되는 형벌을 받았다.

그녀 역시도 아직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나와의 독대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드시죠.”

“아, 고마워요.”

내가 커피를 건네자 그녀가 음료수 마시듯 후루룩 마셨다.

“아까 제가 했던 이야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약과의 전쟁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저는 당연히 찬성이에요.”

“아니요. 무공 학과를 이야기한 겁니다.”

멕시코에 그랬듯, 남미에도 무공 학과를 개설할 계획이었다.

한 국가에서만 개설하는 것이 아니라, 남미 전역에서 개설할 계획이었는데, 이 중 가장 중요한 곳이 아르헨티나였다.

“물론 찬성이죠. 무공을 배울 수 있게 되는 건데요.”

“무공 학과가 아니라, 아예 무공 아카데미를 세운다면 어떨 거 같습니까?”

“무공 아카데미라고요?”

“예, 그리고 마리아 엘리사 대통령님이 바로 그 무공 아카데미의 총장이 되시는 겁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기 때문일까?

마리아 엘리사의 입이 떡 벌어졌다.

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그녀는 이내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아르헨티나에 무공 아카데미를 세우신다는 말씀이신 거죠?”

“예.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두고 고민하였지만, 아르헨티나를 선택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남미 중심은 브라질이었다.

영토도 가장 크고 인구도 많은 나라.

땅덩어리가 큰 나라치고 의외로 적대 국가가 적기도 했다.

오히려 브라질보다 아르헨티나를 싫어하는 나라가 더 많을 정도였으니.

“마리아 엘리사 대통령님이 아르헨티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내 대답을 듣고 그녀가 다시 놀랐다.

아마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놀라지 않았을까 싶다.

“현재 남미에서 가장 강한 무력을 가지신 분 아닙니까?”

“아…. 그런 이유였군요.”

“어떻습니까? 무공 아카데미의 총장이 될 생각이 있으십니까?”

그녀는 고민하지 않고 말했다.

“시켜준다면 당연히 거절할 이유가 없죠. 무려 무공 아카데미 총장인데요.”

“무공 아카데미의 총장이 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직을 포기해야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마리아 엘리사가 입을 다물었다.

무공 아카데미의 총장이 되기 위해 대통령직을 포기해야 한다니.

대부분이라면 아마 내 제안을 듣자마자 코웃음을 칠 것이다.

겨우 학교 총장 자리 하나 때문에 막강한 권력을 포기해야 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먼 곳까지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무공 아카데미 총장 자리를 선택할 가능성이 컸다.

“아직 임기가 남아있는데, 임기를 마칠 때까지 기회가 유효하다면 그 제안에 따를게요.”

마리아 엘리사는 사실상 내 제안을 수락하겠다는 식의 답변을 하였다.

“현명한 선택을 하셨습니다.”

“한 가지 질문을 해도 될까요?”

“예, 얼마든지 하십시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왜 저죠?”

“그야, 대통령께서는 무공에 재능이 있으시니까요.”

“재능이라고요?”

그녀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진실만을 이야기하였다.

무공 아카데미의 교수들을 제치고 그녀에게 총장 자리를 주는 이유는 오직 하나.

그녀에게 그만한 재능이 있기 때문이었다.

‘내공만 거의 10갑자에 달할 정도인 괴물이지.’

다른 재능도 물론 훌륭하였다.

하지만 일단 내공 보유량이 가히 괴물이라 부를 수준이었는데, 사실 지금도 그녀의 막대한 마력은 세계에서 유명하였다.

워낙 마력이 넘쳐나서 S랭크 헌터 중에서 전투력이 낮게 취급받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화력 하나는 남미 최고로 인정받을 정도였다.

‘물론 그런 이유 말고도 배신이 걱정돼서 내 옆에 두려는 이유가 가장 크지만 말이야.’

적을 가까이 두라는 말이 있다.

마리아 엘리사는 아직 적이 아니었다.

하지만 회귀 전처럼 언제든 인류를 배신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무공을 가르친다는 핑계로 그녀를 옆에 두고자 하였다.

내 옆에 두고서 여명회 접촉만 막는다면 그녀가 배신할 일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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