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피터 파인은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분명 그가 처음 보는 종류의 몬스터였다.
하지만 The Guardians의 수장인 그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말에 타고 있어 기사처럼 보이는 저 몬스터들은 하나하나가 8성급 수준의 몬스터란 사실을 말이다.
‘애초에 워싱턴 한복판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것부터 말이 안 되는 거잖아!’
8성급 던전 브레이크 사태가 처음 벌어졌을 때도 이런 일은 없었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똑같은 종류의 몬스터가 백 마리 이상 튀어나왔다.
서로 밀치고 넘어지며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피터 파인도 사람들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헌터들만 있다면 모를까, 이 안에는 몬스터에 면역이 없는 일반 시민들이 수천 명이었다.
몬스터를 처음 본 사람들 앞에 엄청난 수의 몬스터가 튀어나온 상황인데 통제가 될 리 없었다.
심지어 헌터들조차 패닉에 빠진 상황이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으리라.
‘미, 믿을 건 앤디 올드먼 경뿐이다!’
피터 파인은 군중에 휘말리지 않은 채 헌터들의 경호를 받으며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뒤로 물러나면서 한편으로는 전방을 주시하였다.
전방에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최초의 대마법사, 앤디 올드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 빌어먹을.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이야?’
하지만 앤디 올드먼의 상황을 확인한 피터 파인은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들이 사방으로 퍼져서 앤디 올드먼의 제자들을 공격하는 장면은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보다는 앤디 올드먼이 가면을 쓴 괴한과 치열한 교전을 치르는 장면만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 때문인지 화력이 약한 마법들만 펼치고 있는 앤디 올드먼.
하지만 화력이 약해도 그가 펼치는 공격은 그 어떤 S랭크 헌터의 스킬보다 매서웠다.
그런데 그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고 있었다.
가면을 쓴 괴한이 마치 앤디 올드먼이 자랑하는 블링크를 사용하는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마법을 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저 괴한은 죽음의 천사?’
뒤늦게 떠올랐다.
무려 재해급 빌런이라 평가받는 죽음의 천사라는 인물이.
자세히 보니 저 가면은 죽음의 천사가 사용하는 그 가면이 맞았다.
한국에서 흔히 하회탈이라고 이야기하는 바로 그 가면이었다.
‘죽음의 천사가 갑자기 왜 앤디 올드먼 경을 공격한단 말인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가면 쓴 괴한 아니, 죽음의 천사가 소환한 백여 마리의 몬스터가 사방으로 퍼져서 마법 학교 관계자들을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한 것은 앤디 올드먼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라! 저 빌런 놈이 인명 피해를 입히게 놔둬서는 안 된다!”
피터 파인과 달리 그는 죽음의 천사를 조금 더 빨리 알아봤다.
바로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죽음의 천사를 알아본 순간, 자신의 제자들을 향해 다급히 외쳤다.
사람들을 지키라고.
절대 누구도 죽게 해서 안 된다고 말이다.
여명회의 일원인 그가 인명 피해를 줄이려고 노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오히려 악의 축으로서 사람을 무의미하게 죽이면 죽였지 살리는 쪽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무려 마법 학교의 창립식이지 않은가.
마법의 역사가 새로 쓰일 날인데 사람이 죽는 걸 바랄 리는 없었다.
‘저 몬스터들은 뭔데 저리 강한 거지?’
죽음의 천사가 몬스터를 소환했을 때, 그는 크게 위기감을 느끼진 않았다.
애꿎은 사람들이 몇 명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제자들에 의해 바로 진압되리라 여겼다.
설령 몬스터들이 8성급 몬스터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마법 학교 창립식에 참석한 그의 제자들은 최소 중급에서 최대 상급 수준의 마법사였다.
헌터로 따지면 S랭크 이상의 수준인 것.
8성급 몬스터라고 해도 보스 몬스터가 아닌, 일반 몬스터는 S랭크 헌터에 상대가 안 됐으니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바로 제거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결과는 예상과 전혀 달랐다.
100기가 넘는 말을 탄 기사들은 그의 제자가 펼친 마법을 엄청난 속도로 피했다.
마치 보법이라도 사용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어쩌다 한 방 맞히더라도 기사는 쉽게 죽어주지 않았다.
기사들은 몬스터답지 않게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며 마법에 맞은 기사가 다시 복귀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자랑스러운 마법사들이 몬스터 앞에서 쩔쩔매고 있다는 게 그로선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우습게도 정작 그는 몬스터를 상대할 여력도 없었다.
쉴 새 없이 쫓아오는 가면 쓴 괴한의 모습에 앤디 올드먼은 이를 악물었다.
블링크를 아무리 써도 거리를 벌릴 수 없었다.
가면 쓴 괴한은 보법이란 것을 사용하여 그와의 거리를 계속 좁혀왔던 것이다.
‘한 달 전에 이성은을 상대해보지 못했다면 낭패를 경험했겠어.’
무인은 실로 강하였다.
설령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른다고 해도 압도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그리고 가면 쓴 괴한이 바로 그 무인이었다.
경지로 따지면 이성은과 똑같은 절정 고수의 경지이리라.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성은보다는 실력이 조금 떨어지는 거 같군.’
앤디 올드먼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괴한의 검기를 보며 눈에 이채를 띠었다.
괴한도 절정 고수답게 엄청난 강자였다.
그가 제자들을 도우러 가지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만 봐도 가면 쓴 괴한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앤디 올드먼이 보기에 가면 쓴 괴한의 무공 실력은 이성은보다는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일단 보법의 속도부터가 미세하게 느렸고, 검기의 사거리나 날카로움도 이성은과 비교했을 때, 많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너, 정체가 뭐지?”
“역시 대답하지 않는군. 그래도 상관없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네놈만큼은 반드시 죽여주마!”
죽음의 천사의 정체는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었다.
과거, 무공 학교에 다녔던 김수민이란 헌터가 바로 죽음의 천사이리라.
‘그리고 그 김수민이란 여자는 박한새가 총애하는 제자였지.’
박한새의 사람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죽여야 할 이유는 충분하였다.
마법 학교를 공격하여 그의 상황을 난처하게 만들었다면 더더욱 말할 것도 없을 것이고.
가면 쓴 괴한을 죽이기로 결심한 앤디 올드먼은 더 이상 뒤에서 벌어지는 일은 신경 쓰지 않았다.
몬스터들에 의해 몇 명이 죽든 상관없었다.
설령 목숨을 잃게 되는 자가 그의 제자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
그는 박한새의 뼈를 취할 수만 있다면 제자들의 목숨도 내줄 각오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앤디 올드먼이 본격적으로 맹공을 퍼붓자 가면 쓴 괴한은 순식간에 수세에 몰렸다.
괴한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피하는 것뿐.
하지만 피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화력이 강한 마법 사용을 자제하였던 앤디 올드먼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시간이 지나 도망칠 사람은 모두 도망친 상황.
헌터 몇 명만이 힘겹게 몬스터를 상대하는 중이었다.
지금이라면 강한 마법의 사용을 자제할 이유가 없었다.
건물이 무너지는 것도 각오한 그의 공격은 실로 무시무시하였다.
괴한이 보법을 펼칠 공간 자체가 사라질 정도였다.
그러자 괴한은 제자리에서 마법을 막아야 했는데 검기나 검막으로 막으려 하니 엄청난 양의 내공이 소모되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
앤디 올드먼은 확신하였다.
공격을 조금만 더 퍼부어준다면 괴한을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고.
갑자기 뒤에서 날아오는 검기 공격에 그는 다급히 블링크를 사용하였다.
‘분명 피했는데…. 어째서?’
그의 등에 긴 자상이 생겼다.
솟구치는 선혈을 지혈해서 막으며 그는 블링크를 수차례 반복하였다.
정체 모를 또 한 명의 괴한이 그를 공격하고 있었다.
죽음의 천사라 추정되는 이보다 훨씬 강하고 훨씬 날렵하였다.
‘심지어 내가 이동할 곳까지 완벽하게 예측하고 있다!’
거리를 아무리 벌려도 위기는 해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 등장한 괴한과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그러자 피하지 못하는 공격도 더 많이 생겨났다.
이번에는 그의 긴 장발이 잘려나갔다.
물론 머리카락만 잘리지는 않았다.
그의 뒷목에는 등에 새겨진 자상과 똑같은 상처가 새겨졌다.
“스승님!”
“도와드리겠습니다!”
제자들이 그의 위기를 알아차리고 괴한을 향해 마법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앤디 올드먼은 그런 제자들을 강하게 말렸다.
“피해라! 너희가 상대할 수 있는…!”
앤디 올드먼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의 제자 두 명이 괴한의 검에 목숨을 잃었다.
반응할 새도 없이 극한의 속도로 이동하여 제자의 목을 벤 것이었다.
‘이자는 도대체 누구이기에 이런 실력을 가졌단 말인가!’
한 달 전, 이성은과의 대결로 그는 인정하였다.
무인의 무력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란 사실을.
하지만 그는 아무리 무인이 강하다지만, 무인을 상대로 이런 상황까지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설마 제자들과 힘을 합쳐도 이길 수 없는 상대라니!
‘…박한새! 놈은 박한새다!’
갑자기 앤디 올드먼의 머릿속에 박한새란 이름이 떠올랐다.
명확한 근거는 없었지만, 왠지 그는 괴한의 정체가 박한새일 거 같았다.
그리고 사실 근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괴한의 체형, 분위기, 실력 등.
그 외에 ‘동기’까지 고려한다면 박한새일 가능성이 없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만약 놈이 박한새가 맞다면 오히려 사람들 곁으로 피해야 한다!’
앤디 올드먼은 다급히 블링크를 사용하였다.
“총장이다!”
“우리를 구해주러 온 겁니까?”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그를 보고 어리둥절하였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박한새로 추정되는 괴한만 바라봤다.
역시 그의 예상이 맞았는지 괴한은 그를 함부로 공격하지 않았다.
검기를 날릴 거리가 되었음에도 그저 보법을 펼쳐서 거리만 좁혀온 것.
그는 박한새가 거리를 좁혀올 때마다 사람들이 있는 장소로 이동하였다.
몇 차례 반복하자 마침내 추격이 멈추었다.
“허억, 허억! 완전히 물러났군.”
앤디 올드먼은 속으로 살았다며 기뻐하다가 이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설마 그 박한새가 빌런이나 할 짓을 하다니.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박한새의 태도가 그로서는 그저 끔찍하게만 느껴졌다.
한편 같은 시각.
LA에서 진행되고 있는 무림 학교의 창립식.
마법 학교의 소식을 들은 창립식 참석자들은 크게 놀랐다.
“허어, 설마 마법 학교에서 테러가 일어날 줄은 몰랐습니다.”
“이거 우리도 위험한 거 아닙니까?”
“무인들이 있는데 설마요.”
“그렇게 따지면 마법 학교도 마법사들이 있었지 않습니까?”
“다행히 피해 자체는 그리 크지 않다고 합니다.”
“아까 속보로는 백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데, 그건 오보였나 봅니다.”
“백 명까지는 아니고, 마법 학교 관계자만 수십 명이 죽거나 크게 다쳤다고 합니다. 물론 이게 어디까지 사실일지는 모릅니다.”
“휴우. 마법사들이 그나마 잘 막아줬나 보군요.”
사람들은 수십 명이 죽거나 다쳤다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죽음의 천사는 무려 ‘재해급’ 빌런이었다.
지금껏 그녀가 어떤 일들을 벌였는지 생각하면 이 정도 피해는 그나마 작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근데 죽음의 천사가 왜 마법 학교를 공격했을까요?”
“빌런에게 이유가 있겠습니까?”
“흠, 글쎄요.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그 빌런은 IHA 협회장의 제자 아닙니까?”
“설마 IHA 협회장이 마법 학교를 견제할 의도로 죽음의 천사를 보낸 걸까요?”
“가능성 없는 이야긴 아닙니다. 이상하게 박한새 협회장의 모습이 안 보이지 않습니까?”
일부 사람들이 마법 학교 테러와 관련해서 박한새를 의심할 때였다.
“무공의 창시자이신 박한새 협회장님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모두 뜨거운 박수로 박한새 협회장님을 환영해주시길 바랍니다.”
사회자가 박한새의 등장 소식을 알렸다.
그러자 정말로 강단에 박한새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