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죄송합니다. 사도.”
미국 대통령 앞에서도 당당하기 그지없었던 앤디 올드먼.
그가 한 사내 앞에 무릎을 꿇으며 사죄하였다.
하지만 정작 사내는 그런 앤디 올드먼을 무감정한 눈으로 바라본 채 물었다.
“얼마나 잃었지?”
“상급 마법사 세 명, 중급 마법사 네 명을 잃었습니다.”
물론 그들 말고도 중하급 신도 다수를 잃었다.
마법사는 아니어도 무공 학교의 조교들처럼 마법사들을 보좌해줄 그런 인력을 말이다.
하지만 앤디 올드먼은 구태여 그들까지 언급하지 않았다.
가치 있는 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일곱 명이라. 타격이 심히 크겠구나.”
큰 정도가 아니었다.
그의 제자 중 절반 이상이 죽은 셈이었으니, 수년의 시간을 잃은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사내, 매디슨에게 말했다.
“마법 학교를 만들었으니 금방 손실을 복구할 수 있을 겁니다.”
“이번 일이 있었는데 헌터들이 과연 마법 학교에 들어가려고 하겠느냐?”
“강해지고 싶은 욕구는 누구도 꺾을 수 없습니다. 정원을 채우는 것은 문제없을 겁니다.”
헌터를 모집할 때 악영향이 없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었다.
무려 수십 명이 죽은 대사건이었다.
심지어 일반 헌터는 감당할 수 없는 8성급 몬스터가 대거 습격하였다.
당연히 헌터들로선 마법 학교에 다니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미국의 헌터는 수십만 명이니 말이야.’
수십만 명의 헌터 중에 마법사가 되고 싶은 헌터가 얼마나 많겠는가.
이 정도 일은 정원을 채우는 데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만약 박한새, 그놈이 또 습격한다면?”
“…다음에는 쉽게 당하지 않을 겁니다.”
“성의 없는 대답이군.”
“대응은 그게 끝인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똑같이 무공 학교를 습격할 생각입니다.”
그는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했는데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박한새가 했던 공격을 자신도 똑같이 시도하리라.
하지만 그런 앤디 올드먼의 말에 매디슨은 한심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단순한데? 승산도 희박할 거 같고 말이야.”
“자네가 생각하기에 헌터들이 무공을 배우려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 거 같나?”
“그야 강해지려는 이유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무공을 배워서 어떤 식으로 강해질지를 물은 거다.”
“그야 육체 능력을 극대화해서 강해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앤디 올드먼은 그렇게 답하고는 매디슨을 올려다봤다.
매디슨이 무슨 목적으로 이런 말을 꺼냈는지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었다.
물론 매디슨의 얼굴을 본다고 그의 본심을 읽을 수는 없었다.
다시금 고개를 숙인 그에게 매디슨이 물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무공의 핵심은 검기라고 본다.”
“검기, 말씀입니까?”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던 앤디 올드먼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가 생각하기에도 무공의 핵심은 검기였다.
서양에서는 오러라고도 부르는 그 무공 기술은 공격으로도, 방어로도 사용이 가능하였다.
심지어 실력만 좋다면 원거리에서도 사용이 가능하였으니 무공의 핵심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약… 만약에 말이다. 우리가 그 검기, 오러란 것을 만들 수 있다면 어떨 거 같으냐?”
“오러를 만든다는 말씀은, 마법으로 오러와 비슷한 효과를 낸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 오러와 비슷한 효과를 내는데 배우는 것은 훨씬 쉬운 형태일 테지.”
앤디 올드먼은 눈을 부릅떴다.
보급형 오러라니!
만약 그런 마법이 생긴다면 마법은 확실히 무공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다.
‘보법이니, 육체 강화니 그런 것들은 어차피 기존 마법들로도 대체할 수 있다!’
물론 마법으로는 효율이 떨어질 순 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는 건 사실.
반면, 검기는 절대 마법으로 대체할 수 없었다.
그 작은 검에 그런 막강한 에너지를 담고 그걸 몇 시간이고 유지하는 건 마법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마법을 만들어내신 겁니까!”
세상 사람들은 앤디 올드먼을 최초의 마법사라 불렀다.
하지만 진정한 최초의 마법사는 따로 있었다.
여명회의 1사도, 매디슨.
그가 최초의 마법사이자 앤디 올드먼의 스승이었다.
그리고 매디슨의 장기는 마법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발견했다고 해야겠지. 오러를 대신할 수 있는 그런 마법을 말이야.”
“추, 축하드립니다! 이는 실로 엄청난 업적입니다!”
앤디 올드먼은 심장이 격동하는 것을 느꼈다.
오러를 대체할 수 있는 마법의 존재가 그를 그 어느 때보다 들뜨게 만들었다.
“단,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 나도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정하거든.”
“얼마든지 기다리겠습니다.”
몇 년이고 기다릴 수 있었다.
보급형 오러만 가질 수 있다면 몇 년이 대수겠는가.
‘마법이 만들어지기만 한다면 바로 무공의 위상을 뛰어넘을 수 있을 거다!’
그러니 그 전까지는 박한새의 공격을 최대한 막아야 했다.
설령 마법이 만들어져도 마법을 가르쳐줄 사람이 전부 죽으면 의미가 없게 될 테니 말이다.
백악관에서는 침음이 흘러나왔다.
“설마 마법 학교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그보다 죽음의 천사라니. 그녀는 부모의 복수를 위해 빌런 짓을 해온 게 아니었습니까?”
“빌런은 빌런일 뿐입니다. 부모의 복수는 그저 핑계였던 거지요.”
“전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녀가 누구의 제자입니까?”
비서실장의 말에 해리스 대통령이 심각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가 누구의 제자인지는 여기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텐데,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겁니까?”
“저는 그녀가 IHA 협회장의 지시를 받고 일을 저지른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혀, 협회장이 말입니까?”
박한새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자, 모두가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물론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갑자기 박한새 협회장이라니. 증거라고 할 만한 것은 있는 겁니까?”
“이번 습격을 주도한 인물은 한 명이 아닌, 두 명입니다. 그리고 두 명 다 이른바 ‘절정’이라는 경지의 고수들이고 말입니다.”
“…무공을 익힌 존재가 흔치 않기는 합니다만.”
“흔치 않은 게 아닙니다. 무공 학교 교수들 말고 절정 고수인 사람이 또 있습니까?”
해리스 대통령은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확실히 테러를 저지른 빌런이 ‘무공’을 익혔다는 것을 생각하면 용의자는 크게 좁힐 수 있었다.
무공을 익힌 헌터, 그중에서 ‘절정’ 경지의 고수는 흔치 않았으니까.
하지만 해리스 대통령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박한새 협회장이 테러 같은 것을 저지를 사람으로는 안 보입니다.”
“대통령께서는 IHA 협회장이 정도를 지키는 인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도를 지키는 인물이냐?’라는 질문에 해리스 대통령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는 개인적으로 박한새의 정의감을 높게 평가하였다.
러시아에서만 수천만 명, 전 세계로 따지면 ‘억’ 단위의 인구를 구했다고 할 수 있는 게 박한새였다.
심지어 사람들을 구하는 과정에서 박한새는 얼마든지 금전을 탐할 수 있었는데도, 그는 절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저 어떠한 탐욕도 없이, 모두를 위한 방향으로 움직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에서 나올 법한 정의의 히어로는 아니야.’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의 행동은 히어로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히어로보다는 플라톤의 저서에 나오는 ‘철인’에 가까웠다.
백악관 참모 중에는 아예 그를 독재자로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고 말이다.
“하지만 박한새 협회장이 왜 마법 학교를 공격한단 말입니까?”
“마법사들을 경쟁자로 인식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박한새 협회장이 왜 마법사를 경쟁자로 인식합니까?”
“그야….”
“…저희 때문이군요.”
만약 비서실장의 말이 맞다면?
정말로 박한새가 저지른 일이라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추궁은 해야겠어. 이왕이면 경고까지도.’
그 이상은 할 수 없었다.
증거가 없기도 했고 박한새의 힘이 너무도 강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 마법 학교를 습격한 범인이 저라는 겁니까?”
“그,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닙니다.”
“무공을 익힌 이가 저의 제자들밖에 없다면서 범인은 정해져있다는 식으로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내가 강한 어조로 그리 말하자, 피터 파인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러더니 이내 화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범인이 무공을 익힌 자이니, 정황상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저는 사건이 벌어진 그 시간에 무공 학교 창립식에 참석하였었습니다. 설마 동부 끝과 서부 끝인데 저를 의심하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물론 박한새 협회장을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 수준의 무공을 익힌 이가 박한새 협회장 한 명만 있는 것은….”
“저 정도 수준의 강자가 얼마나 있을 거 같습니까?”
“그건 저도 모릅니다.”
“교수들 알리바이는 모두 파악하셨을 테고, 심지어 이성은 본부장도 유럽에 가 있습니다.”
“범인이 단지 무공을 익힌 것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저희를 의심하는 거, 너무 터무니없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내가 강하게 압박하자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증거가 없으니 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을 것이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저를 의심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피터 파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였다.
내 경고를 듣고 분노하고 있는 게 분명하였다.
예전 같았으면 그는 이 분노를 절대 삭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무공 학교 설립을 반대한 일로 헌터들의 엄청난 반발을 경험한 상태였기에 그는 분노를 드러낼 수 없었다.
예상대로 그는 분노를 드러내기는커녕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였다.
“괜한 일로 협회장을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일은 어디까지나 미국을 위한 일이니 꼭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사과할 거면 사과만 하고 끝내면 될 텐데 쓸데없는 변명까지 하였다.
뭐 나로선 그와 더 대화하고 싶지 않았기에 대충 사과를 받아주었다.
“경고를 하러 온 거 같은데, 오히려 한새 씨에게 경고만 받고 가네요.”
피터 파인이 물러나자 유지은이 싱글 웃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충분히 경고는 됐습니다.”
“그럼 이제 그 수법은 안 사용하실 건가요?”
그녀가 말하는 그 수법이란 듀라한을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그녀라고 해도 듀라한의 정확한 정체는 알지 못하였지만 말이다.
“또 그것들을 사용하시게요?”
“마법 학교를 가장 확실하게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인데, 굳이 안 쓸 이유는 없습니다.”
듀라한은 이미 드러낸 패였다.
이왕 드러난 김에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좋았다.
‘다만 숫자가 계속 늘어난다는 사실은 숨기는 게 좋지.’
백 기의 듀라한과 천 기의 듀라한은 상대하는 쪽에서 느끼기에 차이가 클 수밖에 없었다.
만약 듀라한뿐만이 아니라면?
듀라한보다 더 강한 몬스터가 추가된다면 어떨까.
상대 쪽에서는 듀라한을 모르는 게 더 나았을 정도로 큰 차이를 느낄 것이다.
그때는 그야말로 비장의 수로 활용할 수 있겠지.
“백악관과 사이가 더 벌어질 텐데, 괜찮겠어요?”
“그들이 마법 학교의 편을 든다면 사이가 멀어지는 게 대수겠습니까.”
마음 같아서는 마법 학교의 편을 든 미국 정치인들도 제거하고 싶었다.
내 입장에선 그들은 인류의 배신자나 마찬가지였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