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피터 파인 국장이 괜히 나를 찾아와 경고한 것이 아니었다.
마법 학교가 습격당한 일로 언론에서는 은연중에 나를 의심하는 보도를 내기 시작하였다.
인터넷에서도 온갖 음모론이 나오고 있었는데, 그 음모론 대부분이 내가 마법사를 견제한다는 식의 음모론이었다.
영국에서는 아예 정부가 대놓고 나에게 해명하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마법 학교를 두고 여론이 어수선할 때, 나는 정면 돌파를 선택하였다.
“리암 골드버그 학과장. 당신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무공 아카데미 1기 학생으로 무공에 엄청난 재능을 가진 인물이었다.
현재 1년이 넘는 무공 수련으로 절정 고수급의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정확히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마법 학교에 인재를 빼앗기지 않게 총력을 다해주셔야 합니다.”
동부에 세워진 마법 학교는 현재 아수라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교수진이 거의 다 죽거나 다쳤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학생을 받는 일도 기약 없이 미뤄졌는데 나는 이 틈을 노리기로 하였다.
서부에는 이미 무공 학교를 세웠으니, 동부의 헌터 학교에서 무공 학과를 개설하기로 한 것이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S랭크 헌터들은 다 잡아놨습니다.”
“A랭크와 B랭크 헌터들도 중요합니다.”
“예,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마법 학교에 한 명도 뺏기지 않고 다 데리고 오겠습니다.”
리암 골드버그는 자신감 있게 대답하였다.
나는 그런 리암 골드버그의 모습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나치게 권력욕이 강해서 내게 한번 경고를 받았던 적이 있는 리암 골드버그였다.
아마 그 권력욕 때문에라도 최대한 많은 헌터들을 끌어들이려고 할 것이다.
그것도 랭크가 높은 헌터 위주로 말이다.
‘올드먼. 계속 발버둥 쳐봐라. 네놈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미국에서 마법사의 세상이 펼쳐질 날은 절대 오지 않을 거다.’
나는 어떤 음모론이 퍼지든 계속해서 마법 학교를 견제할 생각이었다.
미국이나 영국에서의 여론은 안 좋아지겠지만 그거야 무슨 상관인가.
여론에 신경 쓸 시간에 적의 힘을 약화하는 게 더 중요하였다.
내 저택에 가면 쓴 손님이 찾아왔다.
가면 쓴 손님, 김수민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 큰일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아직 실력이 부족하단 걸 느꼈습니다.”
김수민은 겸손하게 대꾸하였다.
앤디 올드먼에게 당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실력은 충분합니다. 단지 경험이 부족할 뿐.”
“더 노력할게요.”
“이걸 받아주십시오.”
“이것은?”
그녀가 놀란 눈으로 내가 건넨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프러포즈를 하기 위해 목걸이를 선물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프러포즈 선물용으로 보기엔 너무 기괴한 외형이기도 했고 말이다.
이 목걸이 이름은 뱃사공의 목걸이.
중국에서 얻은 유니크 아이템이었다.
“이 아이템으로 여명회를 계속 괴롭혀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듀라한 군단을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여명회에서도 알게 되었다.
“…제가 맡기엔 너무 값비싼 아이템이에요.”
“이미 이 아이템의 소유자는 수민 씨로 알려졌습니다.”
이미 까발려진 패인데 굳이 감추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여유가 생길 때마다, 계속해서 여명회를 괴롭히리라.
“그리고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끼신다면 장산군도의 던전에서 계속 수련하십시오. 제가 꾸준히 들러서 가르침을 드리겠습니다.”
꼭 직접 들를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내 권속이었기에 거리가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그녀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눈앞에서 직접 가르침을 주는 것과 그저 음성으로 가르침을 내리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그 정도 정성을 쏟는 거야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알겠어요. 당분간 제가 맡도록 할게요.”
“수련에 막히는 부분이 생길 때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그녀는 그리 대답하고는 목걸이를 찼다.
하회탈 가면을 쓴 그녀가 기괴한 외형의 뱃사공 목걸이를 차니 뭔가 심상치 않은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거 같았다.
‘여명회에게는 그야말로 악몽 같은 존재가 될 테지.’
죽음의 천사가 왜 재해급 빌런인지 파롤의 졸개들은 곧 실감하게 될 것이었다.
“아쉽게도 아르헨티나 무공 학교의 총장은 고정희 교수로 내정되었습니다.”
강병철은 전혀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성연 길드의 길드 마스터, 이세훈에게 말했다.
그러자 이세훈은 썩은 표정을 지었다.
마치 강병철이 아르헨티나로 가지 않은 걸 짜증스럽게 여기는 듯한 표정이었다.
“왜 강병철 교관 같은 인재를 몰라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야, 제가 성연 길드의 사람인 걸 알기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겠습니까?”
무공 학교 교수들의 실력은 이제 세상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 어떤 S랭크 헌터도 감당할 수 없는 게 교수들의 실력이었다.
그리고 그런 실력쯤 되면 어느 한 단체에 소속되는 걸 꺼릴 수밖에 없었다.
일인군단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 일개 길드에 들어갈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세훈은 엄청난 행운아라고 할 수 있었다.
강병철 같은 실력자가 자신이 공공연히 성연 길드의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이세훈의 표정은 전혀 기뻐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탐탁지 않은, 아니 그보다는 경계에 가까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그런 시선을 보내는 것은 잠시뿐이었다.
이세훈은 이내 크게 웃으며 강병철을 향해 말했다.
“하하, 강병철 교관이 성연에 남아주니 정말 든든하기 그지없습니다!”
“앞으로도 성연에 남아 무공 교육에 힘쓰겠습니다.”
“예, 그러십시오!”
그렇게 두 사람은 웃는 얼굴로 대화를 마쳤다.
하지만 이세훈은 강병철과 헤어지는 순간, 웃음이 가식이었던 듯 무표정한 얼굴로 바뀌었다.
“아버지, 강 교관과의 대화는 어떠셨습니까.”
“강병철, 그놈. 아주 성연 길드에 뼈를 묻을 생각인 거 같더군.”
이세훈은 강병철을 대할 때, 마치 길드의 은인을 대하듯 공손하게 대우하였다.
실제로 강병철은 성연 길드의 은인이기도 했으니 아무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실질적인 무력도 강병철이 압도적이었고.
하지만 강병철이 없는 자리에서는 강병철을 대하는 태도가 확 달라졌다.
마치 원수를 대하는 태도였는데, 지금도 강병철을 그놈이라고 부르며 인상을 와락 찌푸리고 있었다.
“놈이 이대로 남아있으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이세훈의 장남, 이석우도 강병철이 성연 길드에 남는다는 소리를 듣자 불편했는지 인상을 찌푸린 채 말했다.
“곤란한 정도가 아니야. 최악의 경우, 길드를 빼앗길 수도 있다.”
“설마 그렇게까지 되겠습니까.”
“길드원들이 그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도 안일한 생각을 하는 것이냐?”
“간부들이고, 길드원이고 죄다 그놈을 스승으로 여기고 있다. 가끔은 누가 길드 마스터인지 헷갈릴 정도야.”
다른 10대 길드가 무공 학교에서 무공을 배울 동안, 성연 길드의 길드원 중 그 누구도 무공을 배우지 못했다.
이세훈이 박한새와 대립하게 되면서 무공 학교로 사람을 보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성연 길드만 도태될 위험에 빠졌을 때,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났다.
당연히 그 백마 탄 왕자는 강병철이었는데, 그는 성연 길드의 길드원들에게 적극적으로 무공을 가르쳐주었다.
기초부터 검기나 보법을 활용하는 방법까지.
그런 그의 도움 덕에 성연 길드의 길드원들은 모두 무공 학교 학생들 수준의 실력을 가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10대 길드에서 도태되기는커녕 오히려 최선두 길드로 치고 갈 수 있었다.
“아무래도 24시간 내내 붙어있다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보내려고 한 건데, 그게 안 됐으니 곤란한 거야.”
“어떡하면 좋습니까?”
“가장 좋은 것은 놈을 죽이는 거다.”
이세훈의 그 같은 말을 듣고 이석우는 흠칫 놀랐다.
물론 강병철을 토사구팽한다는 것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답게 이석우 역시도 피를 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단지 이석우가 놀란 것은, 이세훈이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아드리안 패튼과 브루노 클라크가 놈을 적극적으로 따르는데 놈을 죽이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아드리안 패튼과 브루노 클라크는 미국의 S랭크 헌터들이었다.
S랭크 헌터들답게 무공의 재능도 상당하였다.
현재 성연 길드에서 독보적인 실력을 자랑하는 것도 바로 그 두 사람이었다.
‘사실 두 헌터가 아니라도 강병철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지.’
굳이 두 S랭크 헌터를 언급한 것은 이석우가 이세훈의 자존심을 생각해준 것이었다.
성연의 길드 마스터가 강병철이라는 한 명의 헌터를 감당하지 못하는 건 창피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문제다. 놈을 쫓아낼 수도 없고, 놈을 죽일 수도 없으니.”
“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놈 대신 놈 밑에 있는 자들을 공격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놈의 충신 노릇 하는 놈들을 괴롭히자는 말이지?”
“예. 던전으로 계속 보내 수련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든가, 아니면 아예 무리한 레이드를 하게 만들어 큰 부상을 입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습니다.”
유치하다면 유치한 방법이었다.
강병철을 직접 어쩌지 못하니 강병철의 사람을 집단으로 따돌리자는 말이었으니.
하지만 길드 내의 정치에서 흔히 있는 일이기도 하였다.
“문제는 그런 짓을 했다간 놈이 진짜로 길드를 장악하려고 들지도 모른다는 거다.”
이세훈이 대놓고 강병철을 견제한다면 강병철로선 선택의 길이 두 가지뿐이었다.
길드를 떠나거나, 아니면 쿠데타를 일으키거나.
그리고 이세훈이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후자였다.
그에게 혐오감을 느끼고 길드를 떠난다면 오히려 이세훈은 반길 것이다.
하지만 길드의 스승이자 은인인 자신을 푸대접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아 쿠데타를 일으킨다면?
그땐 그는 모든 것을 잃게 되리라.
“저, 저에게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쥐 죽은 듯 지켜보던 이세훈의 차남, 이창우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너에게 방법은 무슨. 괜히 이상한 생각 하지 말고 너는 무공 수련에나 집중해!”
“석우야, 일단 창우 이야기도 들어보자. 모처럼 의견을 낸 것이니 말이야.”
이석우가 이창우를 나무라자, 이세훈이 주의를 줬다.
그러자 이창우가 용기를 내고 자신이 생각한 방법을 이야기하였다.
“사실 얼마 전에 저에게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누가 찾아왔는데?”
“여명회의 7사도라는 자를 모시는 사람입니다.”
“…여명회라고?”
“너, 뭐 하고 다니는 거야! 여명회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알기나 하는 거냐!”
두 사람의 반응에 이창우는 놀라 몸을 웅크렸다.
이창우는 용기를 내서 말문을 이어나갔다.
“저도 그놈들의 정체가 빌런인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빌런이어도 때에 따라서는 손을 잡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놈들이 그러더냐. 우리와 손을 잡자고?”
“네, 네…. 박한새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박한새의 간섭이라. 하하! 강병철 그놈이 박한새의 부하라는 사실을 놈들도 알고 있나 보구나.”
물론 그도 아직 확신하는 일은 아니었다.
박한새가 구태여 강병철이라는 절정 고수를 성연 길드로 보낼 이유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봐도 강병철은 자신의 스승을 배신할 인물로 보이지 않았다.
강병철이 성연 길드로 온 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던 것이다.
“일단 이야기 정도는 들어봐도 되겠지. 너의 말처럼 빌런이라고 손을 못 잡을 이유는 없으니까.”
그냥 강병철 한 명으로도 위협적이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그 뒤에 박한새까지 있다면?
이세훈이 SS랭크 헌터, 아니 SSS랭크 헌터라도 감당할 수 없었다.
물론 그런 랭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