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류샹이라 밝힌 여명회 소속 중국인에게 이세훈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어떤 식의 거래를 하자는 거지?”
“제가 생각하기로, 지금 이세훈 길드 마스터께서 가장 바라는 일은 강병철이란 자를 처리하는 것일 겁니다.”
너무도 직설적이었기에 이세훈은 대답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입을 다문 것만으로도 의사전달은 충분히 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개미 군단이라고 아십니까?”
“러시아를 침략했던 몬스터 부대를 말하는 건가?”
“그건 갑자기 왜 말하는 거지?”
“저희가 개미 군단을 이끌고 북한을 침략하겠습니다.”
이세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병철을 처리하는데 왜 갑자기 북한 이야기가 나오는지 이해가 안 갔던 것이다.
“북한은 개미 군단을 막을 수 없을 겁니다.”
“북한이 막지 못하면 IHA가 움직일 텐데, 지금 한국에 IHA 요원이 얼마나 있습니까?”
“…다 세계로 나가 있는 상태이긴 하지. 무공 학교 인원들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IHA의 주역은 한국 헌터들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한국에는 IHA 요원이 얼마 없었다.
러시아, 대만, 남미, 미국, 유럽까지.
세계 곳곳에서 무공 교육기관이 만들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무공 학교 멤버들도 전 세계로 흩어진 상황이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당연히 성연 길드가 움직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북한이 무너지면 그다음은 한국이 될 테니 말입니다.”
이세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류샹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제 이해가 갈 거 같았다.
“개미 군단으로 놈을 북한 쪽에 보낸다고 치자. 과연 당신들이 놈을 죽일 수 있을까?”
계획이 설령 통했다고 해도 강병철을 죽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러시아를 멸망시킬 뻔했었던 개미 군단은 분명 강했다.
하지만 결국 그 개미 군단을 무너뜨린 것은 박한새를 위시한 무공을 익힌 헌터들이었다.
“검기를 써보시겠습니까?”
“검기?”
이세훈은 잠시 미간을 찌푸리다가 검을 뽑았다.
“어디다 사용하면 되지?”
“여기다 사용해주십시오.”
사내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 무언가는 조그만 철판이었다.
마치 방패를 내밀듯, 검붉은색의 철판을 내미는 그를 보며 이세훈은 같잖은 듯 조소를 지었다.
“그따위 거로 검기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의 검에 철판이 싱겁게 갈라졌다.
하지만 철판을 가른 이세훈의 표정은 썩 좋지 못하였다.
“꽤 단단한 장갑이군. 방어구로 사용해도 되겠어.”
“우리는 무공이 등장한 이후로 계속 연구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무공을 상대할 수 있을지를.”
“그건 나에게도 썩 긍정적인 이야기는 아닌 거 같은데.”
“끝까지 들어보십시오. 저희가 연구한 끝에, 검기의 그 막강한 공격력을 견뎌낼 수 있게끔 몬스터를 진화시켰습니다.”
“그 철판 같은 게 몬스터의 장갑이라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병정개미의 장갑입니다. 개미 군단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지요.”
이세훈은 미간을 좁혔다.
그 역시 한 명의 무인이었기에 좋아할 수만은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놈을 죽일 수만 있다면….’
어쨌든 개미 군단을 상대해야 하는 건 그가 아니었다.
그러니 개미 군단이라는 몬스터 부대가 강해지는 것도 그리 우려할 필요는 없으리라.
“이 장갑으로 무장한 개미 군단이 끊임없이 들이친다면 강병철, 그자도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저 정도로 단단한 장갑으로 무장한 개미 군단이라면, 한 마리를 죽일 때 평소보다 수배의 내공을 사용해야 했다.
아무리 절정 고수들이 일인군단이라고 해도 내공에는 한계가 있는 법.
수백 기의 개미 군단이라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더 남은 문제가 있다.”
“박한새는? 그자가 오면 어떻게 할 거지?”
“미국 동부에 있는 그가 제때 올 수 있으리라 보십니까?”
“모르는 건가,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건가?”
“무얼 말씀하시는 겁니까?”
“박한새, 그자에게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아이템이 있다는 사실. 설마 모르는 건 아닐 테지?”
“하하, 박한새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자는 미국에서 발이 묶여있을 테니 말입니다.”
이세훈은 턱 끝을 쓰다듬었다.
박한새도 방해를 하지 않는다면 확실히 승산은 있어 보였다.
“근데 너희는 나와 동맹해서 무엇을 바라지?”
“중국으로 와주십시오.”
“중국?”
“중국의 헌터들도 무공을 배우는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만약 성연 길드가 중국으로 와 무공을 가르친다면 이세훈 길드 마스터님은 전 중국의 스승이 되실 수 있을 겁니다.”
이세훈은 그 말을 듣고 눈을 빛냈다.
중국.
한때는 러시아와 세계 2위의 헌터 강국을 다투던 나라였다.
물론 현재는 세계 각국에서 무공 도입을 시도하자 ‘도태된 나라’로 취급받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의 인구를 생각했을 때, 세계 그 누구도 중국의 잠재력을 무시하지는 못하였다.
‘중국의 헌터는 수십만이다. 만약 그들의 스승이 될 수 있다면…. 중국 제일의 권력자가 되는 건 일도 아니다.’
이세훈이 왜 강병철을 두려워하였던가.
무공을 가르치는 ‘스승’이란 위치가 그만큼 위협적이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지금 중국의 상황이 과거 성연 길드의 상황과 똑같았다.
박한새를 배척했다는 이유로 무공 도입이라는 세계 흐름에서 완전히 배제되고 있었던 것.
이런 상황이라면 이세훈이 중국 헌터들이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스승이 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계획이 성공한다면 긍정적으로 고민해보겠다.”
“최고의 대우를 약속해드리겠습니다. 후후.”
류샹의 음흉한 웃음을 보고 이세훈은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민족의 배신자라도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최고의 권력을 얻을 수 있다면 민족 따위가 대수일까.’
애초에 선택받은 자, 헌터에게 민족이니 나라니 그게 다 무슨 상관일까 싶었다.
북한 신의주.
평소에도 떠들썩한 분위기였던 이곳이지만 오늘은 다른 의미로 떠들썩하였다.
“모, 몬스터다! 몬스터가 쳐들어왔다!”
“미친! 중국 아새끼들은 도대체 뭘 한 거야!”
수백 마리를 넘어 천 마리에 가까운 규모의 몬스터가 북한 국경 지역을 공격하였다.
북한군은 총을 쏘며 몬스터 부대의 진격을 저지하려 하였으나 소용없었다.
총알이 통하지 않는 몬스터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내 사기가 낮은 병사들이 총을 버리고 도주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헌터 부대가 다급히 지원을 왔다.
하지만 막상 몬스터 부대를 맞이한 북한의 헌터들은 겁에 질린 기색이었다.
“너, 너무 많아.”
“많은 것도 많은 건데! 시발, 저것들 다 8성급이잖아!”
“비, 빌어먹을! 8성급 몬스터가 수백 마리나 되는 게 말이 되는 거야?”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수준이 낮은 편에 속하는 북한의 헌터들이었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도 쉽게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 부대가 쳐들어왔으니 패닉에 빠지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였다.
배신웅은 그런 북한 헌터들을 향해 외쳤다.
“무엇이 두려우냐! 이 몸이 왔는데!”
원래라면 그는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계급이 높은 것도, 랭크가 높은 것도 아니었으니.
하지만 북한의 유일한 S랭크 헌터인 방병률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IHA가 이를 진압한 이후 그의 인생은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였다.
박한새는 상황을 정리하고 북한에 무공 교수 몇 명을 보냈다.
헌터 전력이 전멸하게 된 북한의 상황을 고려한 결과인데, 이때 배신웅도 기초적인 무공을 배우게 되었다.
절정이니, 초일류니.
그 정도 수준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한국이었다면 그저 일류에 지나지 않았을 수준.
하지만 북한에서는 그 정도만으로도 절대 강자로 불리기에 충분하였다.
검기를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북한 헌터들은 우러러보기 바빴으니 말이다.
“배신웅 검사님이다!”
“배신웅 동지 만세!”
사기가 오른 북한 헌터들은 수백 마리의 개미 군단을 앞에 두고도 더 이상 두려움을 표출하지 않았다.
개미 군단의 개미 병사 한 마리 한 마리가 8성급 수준이라는 사실을 알았는데도 그러했다.
배신웅의 존재는 그만큼 그들에게 큰 안정감을 주었던 것이다.
“공격이 안 통하는데?”
“헬파이어를 쐈는데도 한두 마리밖에 안 죽다니!”
하지만 아무리 사기가 높아졌어도 개미 군단을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러시아를 멸망시킬 뻔했다던 개미 군단의 명성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접근을 막으려고 북한 헌터들이 온갖 원거리 스킬을 사용했지만, 몇 마리도 채 죽이지 못했던 것이다.
배신웅은 어쩔 수 없이 앞에 나서서 검기를 휘둘렀다.
그러자 병정개미 한 마리가 순식간에 죽었다.
“역시 배신웅 검사님!”
“배신웅 동지만 믿으라우!”
그의 일격에 병정개미가 즉사하는 모습을 본 헌터들은 크게 환호하였다.
하지만 정작 병정개미를 벤 배신웅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뭐지? 왜 이렇게 반발이 강한 거야?’
첫 일격이라 내공을 가득 실어서 휘둘렀다.
여러 마리를 동시에 잡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가 잡은 개미의 수는 한 마리뿐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였다.
개미의 장갑이 생각했던 것보다 두꺼웠기 때문이었다.
‘이놈만 특별한 건가?’
배신웅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검을 휘둘렀다.
처음 벤 개미만 특별한 몬스터라고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로 벤 개미도 저항이 거셌다.
이때 그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나 혼자서는 절대 감당할 수 없다!’
지원군.
최소 절정 고수급의 지원군이 절실하게 필요하였다.
“북한과 중국의 접경 지역에 개미 군단이 출몰했다는 말씀입니까?”
“예. 러시아에서 출몰했던 개미 군단이 갑자기 중국에서 나타나 북한의 신의주를 습격하였어요.”
“여명회의 짓이군요.”
나는 바로 알아차렸다.
개미 군단의 기이한 움직임의 배후에 여명회가 있다는 사실을.
‘근데 개미 여왕은 분명 죽였었는데, 어떻게 개미 군단이 또 조직될 수 있었던 거지?’
내가 알기로 개미 군단을 조직하려면 개미 여왕이 반드시 필요하였다.
아무리 여명회가 몬스터를 잘 다룬다고 해도 8성급 몬스터는 아직 쉽게 다룰 수 있을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지금 당장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북한의 위기는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북한이 뚫리면 한국도 위험할 테니 말이다.
“지금 한국에 누가 있습니까?”
“일단 성연 길드의 강병철 교수가 출격하였습니다.”
“강병철 교수가 출격하였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내 말에 유지은이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성연 길드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강병철 교수에다 강병철 교수가 키운 수십 명의 무인이 있는데, 그들만으로 부족하다는 말씀입니까?”
“저도 방금 확인한 정보인데, 개미 군단의 병정개미들이 러시아에서 저희가 상대했던 병정개미와는 조금 다르다고 해요.”
“어떤 식으로 다르답니까?”
“장갑이 두꺼워졌다고 해요. 검기가 잘 안 통할 정도로 말이에요.”
검기가 안 통할 정도로 몬스터를 강화했다니.
실로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역시 창웨이, 그놈을 죽였어야 했는데….’
몬스터를 강화하는 그의 능력은 실로 위협적이었다.
여기에 개미 여왕까지 그의 손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니 더더욱 위협적으로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