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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223화 (223/275)

#223화

“협회장님. 마법 학교의 총장이 찾아왔습니다.”

“마법 학교의 총장? 앤디 올드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어떻게 할까요?”

비서 직원의 물음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앤디 올드먼, 그자가 왜 하필 이때 나를 찾아온단 말인가.

“쫓아내십시오. 그를 상대할 시간 없습니다.”

타이밍이 공교로웠다.

내가 신의주로 가려던 타이밍에 나를 찾아오다니.

지금껏 한 번도 나를 찾은 적이 없던 사람인데 말이다.

만나주지 않으면 그만이었으니까.

“여기 있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1층에서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가의 정체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앤디 올드먼의 목소리예요.”

마침 유지은이 그의 정체를 이야기해주었다.

물론 나도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내가 여기 있는 걸 이미 알고 있다라. 쯧. 귀찮게 구는군.’

일단 그를 만나봐야 할 거 같았다.

“방금 내렸던 지시는 무시해주십시오. 아무래도 그자를 한번 만나봐야겠습니다.”

“예, 바로 불러오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앤디 올드먼이 집무실로 올라왔다.

“오랜만입니다. 협회장님.”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분명히 오랜만인데, 왠지 얼마 전에 뵌 것처럼 느껴지는군요.”

앤디 올드먼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법 학교를 습격한 범인을 나로 확신하는 태도였다.

하지만 나는 그가 의심하든 말든 개의치 않았다.

“그래서 용건이 뭡니까?”

“선의의 경쟁을 요구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선의의 경쟁이라.”

나는 조소를 지었다.

파롤의 졸개가 선의의 경쟁이라니?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었다.

-나에게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경쟁 따위 할 생각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네놈들을 말살할 거거든.

난 구태여 내 본심을 숨기지 않았다.

물론 녹음이라는 경우의 수도 있었기에 전음을 사용하였지만, 어쨌든 그를 향한 적대감은 숨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앤디 올드먼의 동공이 격렬하게 떨렸다.

전음 때문에 놀란 것은 아닐 테다.

그보다는 내가 보여준 적대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적대감에 놀란 것이리라.

“우리는 굳이 적이 되지 않아도 됐을 거 같은데 말입니다.”

“글쎄. 악신을 따르는 자들과 인간이 공생할 수 있나 싶군.”

“…악신이라고 하셨습니까?”

앤디 올드먼의 표정이 싸늘하게 바뀌었다.

다른 건 참아도 자신의 신을 욕하는 건 참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인류의 파멸을 노리는 신을 우리는 보통 악신이라고 부르지.”

“진정한 파멸이 뭔지도 모르는 무지한 자들이나 하는 소리입니다.”

“너도 이 세계가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꽤 많은 것을 알고 계십니다. 하긴, 예전부터 그러셨었죠. 근데 박한새 협회장님.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으셔도 됩니까?”

그가 화제를 돌렸다.

역시 그도 성좌와 관련된 이야기는 하지 못하게끔 제한이 걸려있는 듯싶었다.

“왜 내가 여기 있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거지?”

“누군가가 지금 협회장님의 도움을 절실하게 기다리고 있을 거 같아서 말입니다.”

나는 같잖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 누군가는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 7사도에게 당할 만큼 약하지 않거든.”

물론 강병철만 믿고 여유를 부리는 것은 아니었다.

강병철보다는 바다를 건너 신의주로 날아가고 있는 한 여인을 믿고 여유를 부리는 것이었다.

‘듀라한 부대를 대동한 죽음의 천사라면 개미 군단쯤 두려울 것도 없지.’

두 명의 백인 헌터가 병정개미를 미친 듯이 베어냈다.

무공을 배운 헌터인 것인지 그들의 검에는 아지랑이가 깃들어 있었다.

“끝도 없군.”

둘 중 체격이 큰 백인 사내가 목 뒤로 흐르는 땀줄기를 닦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다른 사내가 킥킥 웃었다.

“숫자가 많다고 설마 몬스터를 상대로 쫀 거는 아니겠지? 촌놈?”

이죽거리는 사내의 이름은 미국의 S랭크 헌터인 아드리안이었다.

그는 다른 사내, 브루노 클라크보다 여유 있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런 아드리안도 상황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브루노 클라크의 말처럼 몬스터는 끝도 없이 몰려왔다.

죽이고 죽여도 도저히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결국, 아드리안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강한 척하던 그도 한계를 맞이한 것이다.

“시발! 내공이 쭉쭉 빨리네!”

“혈액 공격은 사용 안 하나?”

“저 괴물 같은 놈들에게 혈액 공격이 통할 거 같아?”

“검기만 사용했다가는 내공이 남아나지 않을 거다.”

“혈액 공격을 하면 내공 소모는 더 클 거야!”

아드리안은 대량 학살이 가능한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무공 덕에 스킬의 위력도 한층 배가된 상태.

하지만 정작 개미 군단을 상대로는 스킬 한 번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개미 병정들의 장갑이 얼마나 두꺼운지 검기로 베고 있는 그가 가장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이러면 물러나는 수밖에 없겠는데?”

“이 촌놈 새끼. 도망칠 생각만 하냐!”

“방법이 없지 않나?”

브루노 클라크의 말에 아드리안은 혀를 찼다.

그 역시 이대로 싸움을 계속 지속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내공 소모부터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고전하던 도중,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나 병정개미들을 베기 시작하였다.

사내의 검기는 두 사람의 검기와 사뭇 달랐는지 마치 두부를 베듯 쉽게 베어냈다.

“곧 지원이 올 겁니다.”

순식간에 십수 마리의 병정개미를 벤 사내, 강병철이 두 사람을 향해 그같이 말하였다.

하지만 두 사내는 그런 강병철의 압도적인 모습을 보고서도 무덤덤한 반응이었다.

심지어 ‘지원’이 올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그러했다.

“글쎄. 지원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은데?”

“킥킥킥! 이번만큼은 촌놈 말이 맞아. 지원은 무슨. 이세훈, 그 새끼는 우릴 버린 거야!”

물론 두 사람이 강병철을 싫어해서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강병철이 전해준 소식, 지원이 올 거라는 그 소식에 회의적인 생각을 품고 있어서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었다.

“아니, 버린 정도가 아니지. 이세훈이라면 지금쯤 사부를 죽일 생각이 아닐까?”

아드리안의 그 같은 말에도 강병철은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아드리안은 혀를 차며 말했다.

“만약 여기서 살아 돌아간다면, 이세훈 그 새끼를 밀어내는 거 어때?”

“밀어내다니, 어디로 밀어냅니까?”

“어디긴, 길드 바깥으로 밀어낸다는 거지.”

그 말을 듣자 강병철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실상 쿠데타를 종용하는 말이었으니,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확실히 이세훈의 태도를 생각하면 지금 같은 관계를 계속 유지할 필요가 없긴 해.’

두 사람의 생각과 달리 강병철은 이세훈에게 어떤 감정도 품고 있지 않았다.

당연히 충성심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박한새에게만 충성하는 강병철이었다.

이세훈은 그저 직장 상사에 불과하였다.

‘사부님께 여쭤봐야겠어. 이세훈을 어찌해야 하는지 말이야.’

성연 길드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박한새의 몫.

그렇기에 강병철은 더 고민하지 않고 개미 군단을 상대하는 것에 열중하였다.

7사도의 최측근, 류샹.

그는 현재 7사도를 대신하여 개미 여왕을 통제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쯧. 진격이 저지되고 있군.”

개미 군단과 개미 여왕의 거리는 굉장히 가까웠다.

대략 1km 정도.

그래서 류샹은 개미 군단의 상황을 자세하게 볼 수 있었다.

수십 명의 한국 헌터들에게 개미 군단 전체의 진군이 막히고 있는 상황을 말이다.

“하지만 시간문제입니다.”

“드디어 지친 건가?”

“예. 일류 무인 수준인 성연 길드의 일반 길드원들은 이미 검을 들 힘도 없어 보입니다.”

“S랭크라던 미국 헌터들은?”

“시끄럽게 쫑알거리던 그들도 지금은 말없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개미 군단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많이 지쳤다는 뜻이군!”

“길어야 한 시간일 거 같습니다.”

류샹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무공 학교의 교수쯤 되는 인물을 제거하는 것인데, 한 시간이라면 못 기다려줄 것도 없었다.

‘여명회에서 내가 최초인 건가? 아니지, 여명회뿐만이 아니라 세계 최초겠군.’

절정 고수란 것들은 하나같이 목숨이 질긴 자들이었다.

무공 자체가 생존력을 극대화하니 허무하게 죽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것.

강병철이 만약 여기서 죽는다면 절정 고수 중엔 최초의 죽음이었다.

‘사도님이 다시 이전의 입지를 회복할 수 있겠어.’

한때 여명회에서 엄청난 입지를 자랑하던 7사도였다.

중국은 물론이고 대만, 베트남, 그 외에 동남아의 각종 국가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것이 7사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적비단이 몰락하고 박한새가 크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명목으로 7사도의 입지는 여명회에서 크게 줄어든 상태였다.

그렇기에 강병철과 강병철의 부하를 죽이는 일은 류샹에게 대단히 중요하였다.

절정 수준의 고수는 흔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개미 여왕인가?”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중성 목소리에 류샹은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 가면은…?”

“설마 죽음의 천사…!”

그가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그의 부하들이 중성 목소리의 정체를 이야기하였다.

‘주, 죽음의 천사라고?’

류샹은 다급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하회탈이란 이름의 가면을 쓴 괴한의 모습이 말이다.

‘미국에 있어야 할 년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당연히 류샹은 몰랐다.

김수민이 언데드 던전을 관리할 겸, 신의주 바로 근처에 있는 장산군도에서 무공을 수련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뭐, 뭣들 하는 거야! 저년 죽여!”

잠깐 패닉에 빠졌던 류샹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수하를 향해 그렇게 외쳤다.

하지만 죽음의 천사는 괜히 ‘재해급’ 빌런이란 소리를 듣는 자가 아니었다.

듀라한도 소환하지 않은 채 검기를 휘둘러 한 명 한 명 천천히 숫자를 줄여 나가는 김수민.

류샹은 그런 김수민의 공격을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결국 그 역시 개미 여왕과 함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개미 군단의 본진이 죽음의 천사에게 습격을 당했다고 합니다.”

류샹이 전사했다는 소식은 곧바로 7사도에게 전해졌다.

7사도는 자신의 최측근이 죽었다는 소식에도 전혀 표정이 달라지지 않았다.

나른하면서 정신이 어디로 가 있는 그런 표정을 하며 소식을 전해준 전령에게 물었다.

“개미 여왕은?”

“…그녀 역시도 죽음의 천사에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궁전에는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최측근인 류샹의 죽음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7사도는 개미 여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팔걸이를 내리쳤다.

오랫동안 그를 섬겼던 류샹의 가치보다 개미 여왕의 가치가 더 높았기 때문이었다.

“아직 그녀의 지배 특성을 완전히 체화하지 못했거늘.”

개미 여왕은 8성급 던전 보스치고 무력이 형편없었다.

독보적인 능력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몬스터를 다스리는 ‘지배’란 특성이었다.

7사도 역시 무척이나 탐을 내던 특성이었는데 아쉽게도 아직 완벽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였다.

‘개미 여왕이 이렇게 쉽게 죽을 줄이야.’

최악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7사도는 이내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와서는 이같이 중얼거렸다.

“이렇게 된 이상, 플랜 B로 가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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