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북한 신의주 지역에 개미 군단이 나타난 일은 절대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여명회의 첫 반격이라 볼 수 있는 일대 사건이었으니까.
하지만 세계는 조용하였다.
큰 피해 없이 개미 군단이 전멸하였기 때문이었다.
‘설마 개미 여왕이 더 있는 것은 아니겠지?’
물론 나는 개미 군단의 재등장을 예의 주시하였다.
러시아에서 내가 제거했었던 개미 여왕이 재등장한 상황이었다.
개미 여왕은 병정개미뿐만이 아니라, 8성급 이하의 일반 몬스터라면 가리지 않고 지배할 수 있었다.
그런 개미 여왕을 여명회가 확보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내가 위협적으로 여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나저나 놈들이 노린 것은 뭐였을까.’
원래도 여명회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은 특히 그렇게 느껴졌다.
갑자기 북한을 공격하여 여명회가 얻을 수 있는 게 뭘까?
강화된 병정개미를 테스트하려는 의도는 아닐 거 같은데 말이다.
“박한새 협회장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위원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시간이 되었는지 김정운 측에서 나를 불렀다.
참고로 지금 나는 북한의 최고 지도자인 김정운의 초청을 받아 평양에 와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박한새 협회장님.”
“오시는데 불편한 것은 없었습니까?”
“예. 편히 왔습니다.”
나는 김정운의 공손한 태도를 보고 눈에 이채를 띠었다.
북한에서 절대적인 권력자로 군림하는 것이 김정운이었다.
그나마 헌터들의 쿠데타 이후 위상이 실추되었다지만,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였다.
그런 김정운이 내게 미국이나 중국 같은 강대국의 대사에게도 하지 않는 공손한 태도를 보이니 의미심장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내게 부탁할 것이 있는 모양이군.’
김정운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박한새 협회장님. 저는 중국을 도무지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중국을 말씀입니까?”
“협회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이번 일의 배후를.”
설마 김정운도 알아차린 것인가?
개미 군단을 동원한 게 여명회라는 사실을?
“국경을 지키던 중국군은 마치 개미 군단이 나타날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미리 지역을 이탈하였습니다. 이게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중국이 개미 군단을 동원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정확히는 개미 군단을 우리 쪽으로 유인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박한새 협회장님의 생각은 다르나 봅니다.”
완전히 틀린 추측은 아니었다.
여명회가 배후라는 것은 중국 정부와도 관련이 없다고 볼 수 없었으니 말이다.
“저는 몬스터를 상대로 국경을 열어준 일에 대해 공식적으로 중국에 항의할 생각입니다.”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김정운이 간곡한 목소리로 내게 부탁하였다.
“중국 정부와 갈등이 생길 때, 꼭 좀 저희의 편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개인적인 감정으로는 김정운을 좋아할 수 없었다.
그는 독재자였으니까.
하지만 북한과 중국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북한을 선택해야 했다.
지금의 중국은 사실상 여명회와 동맹 관계였으니까.
‘안 그래도 중국을 견제할 생각이었었지.’
북한이 오히려 앞에 나서준다면 나야 나쁠 것도 없었다.
대중국 포위망이 조금 더 단단해진다는 것을 의미하였으니 말이다.
김정운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화끈하였다.
<북한 김정운, “중국이 지역 평화를 해치고 있다! 국경을 열어준 일에 대해 해명해야 할 것!”>
<중국과 북한이 갈등하게 된 원인은 여명회?>
<중국, “여명회와 손을 잡았다는 북한의 주장은 사실무근! 그런 일 없다.”>
북한은 유례없는 강도로 중국을 맹비난하였다.
심지어 여명회 이야기까지 들먹였는데 ‘중국은 여명회의 졸개!’라고 할 정도였다.
내가 김정운에게 여명회 관련 이야기를 꺼냈더니 진의 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일단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우리 IHA도 북한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야 합니다.”
“하지만 협회장님. 그리했다간 중국에서 강하게 분노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정치에 관여하는 셈이니, 중국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우려를 표할 거 같습니다.”
예상대로, 북한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잔 내 말에 IHA 간부들이 반대를 표하였다.
“북한의 주장은 단순히 허위로만 보기 어렵습니다.”
“그 말씀은, 정말 중국이 여명회와 손을 잡았다는 말씀입니까?”
“적비단이란 중국의 폭력 단체가 여명회 소속이라고 했던 것은 기억하실 겁니다.”
“예.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일개 폭력 단체가 어떻게 그리 세력을 키울 수 있었겠습니까? 중국 정부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사실 적비단과 관련해서 의문을 느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한국이나 대만, 일본 같은 주변국에서는 이미 여러 번 항의했던 상황.
하지만 중국은 뻔뻔하게 사실무근이라는 주장만 반복하였다.
의심스러우면 증거를 가져오라는 식이었다.
IHA 간부들 역시 적비단의 배후에 강한 의심을 품고 있었을 터.
그런데 내가 강한 어조로 적비단이 여명회의 산하 단체이고 그 적비단을 키운 게 중국 정부라고 하자 IHA 간부들도 마냥 반대할 수 없게 되었다.
“이번 일에 대해서는 저를 믿고 맡겨주십시오. 꼭 북한과 관련된 일이 아니더라도 중국은 한 번쯤 강하게 제재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듭된 설득이 통한 것인지 간부들은 더 이상 반대를 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중국 문제와 관련해서 IHA 간부들과의 회의가 끝이 났을 때, 갑자기 비서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강충구의 사제 중 한 명으로 ‘쓴소리맨’이라 불리는 장성민이란 사내였다.
“김정운이 10분 전, 총 세 명의 S랭크 헌터들에게 습격당했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김정운이 S랭크 헌터들에게 습격을 당했다?
나는 1초의 고민도 없이 중국을 배후로 지목하였다.
“설마 중국에서 김정운 위원장의 목숨을 노린 겁니까?”
“목숨을 노린 건 아니고, 아무래도 경고를 하고자 찾아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경고라. 중국다운 경고군요.”
S랭크 헌터들을 보내 경고하다니.
엄청난 몸값을 자랑하는 S랭크 헌터를 이런 식으로 사용하는 나라는 중국뿐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김정운의 경호를 담당하는 무인들이 잘 막아냈다고 합니다.”
중국의 수작은 예전이었으면 잘 통했을 것이다.
북한의 S랭크 헌터는 겨우 한 명뿐이니, 세 명의 S랭크 헌터는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북한은 이전의 북한과 차원이 달랐다.
여전히 S랭크 헌터는 한 명뿐이고 심지어 그 한 명은 한국 구치소에 갇혀있었지만, ‘일류 무인’은 십수 명이었다.
그중 김정운의 곁을 지키는 일류 무인만 다섯 명.
이 정도 숫자라면 S랭크 헌터 세 명 정도는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물론 같은 숫자라면 위험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S랭크 헌터 한 명은 아예 포로로 잡기도 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군요.”
“당연히 부인할 겁니다. 자신들의 뜻이 아니었다고 말입니다.”
장성민의 예측은 정확하게 적중하였다.
중국은 뻔뻔하게 나왔다.
김정운에게 잡힌 S랭크 헌터가 자국 정부와 관련이 없는 헌터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 헌터는 중국 정부와는 관련이 없으나 중국의 헌터이니 시급히 돌려보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하였다.
당연히 이 같은 중국 정부의 철면피 같은 태도에 북한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김정운은 심지어 국경 부대까지 움직이며 초강경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북중 관계가 냉전으로 치달을 때, 중국 대사가 나를 찾아왔다.
“IHA 협회장이 왜 정치의 일에 관여하는 겁니까?”
나를 찾아와서는 다짜고짜 따지는 어조로 그같이 말하는 중국 대사였다.
“몬스터 군단이 북한을 쳐들어왔는데 정치의 일로 치부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설마 IHA가 북한의 말을 믿는 것은 아니겠지요?”
“정황이 수상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보세요. 박한새 협회장! 지금 대국을 어떻게 보시고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어떻게 보냐고?
그냥 중국으로 보고 있었다.
‘영토는 넓으나, 속은 좁으니 그래서 중국이다.’
내가 속으로 딴생각을 할 때, 그가 강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북한의 공식 성명을 지지한 일, 다시 철회하세요.”
“박한새 협회장! 이런 사소한 일로 우리를 적으로 돌려서 좋을 거 없어요!”
“그건 제가 해야 할 말인 거 같습니다만. 이번 일로 저를, 그리고 IHA를 적으로 돌리시겠습니까?”
“이익! 말이 안 통하는 작자군!”
막상 나를 적으로 돌리기는 두려웠던 것일까?
그는 최후의 선은 밟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한새 협회장! 당신 곧, 후회하게 될 거요!”
그런 중국 대사의 모습에 나는 그저 조소를 흘릴 뿐이었다.
‘아주 빌어먹을 상황이 되었군.’
이세훈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강병철에게 지원을 보내지 않은 일로 성연 길드 내부에서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길드원들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그가 왜 지원을 보내지 않은 것인지 알았던 것이다.
‘젠장! 빌런 놈들의 말을 듣는 게 아니었는데!’
잃을 게 없는 제안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니 얻는 건 하나도 없고 잃는 것만 많았다.
그중 가장 크게 잃은 것은 바로 민심이었다.
“이세훈 길드 마스터님, 반갑습니다. 저는 류샹을 대신하여 성연 길드와의 협상을 담당할 왕밍이라고 합니다.”
대책을 구상하던 이세훈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이세훈으로선 절대 반길 수 없는 손님이었다.
“실패자 주제에 뻔뻔하게 얼굴을 내미는군.”
“우리는 마라톤 중입니다. 계획이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우리의 공생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생이라.
여명회가 인류의 적이란 사실을 생각하면 절대 반길 수 없는 말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았던가?”
“류샹이 제안했던 것을 그대로 제안하고 싶습니다.”
“류샹의 제안이라면?”
이세훈은 코웃음을 쳤다.
“이 상황에 내가 중국을 갈 거 같나?”
그러자 왕밍이 손바닥을 펼쳤다.
그의 손바닥에는 구 형태의 조그만 돌이 있었다.
이세훈이 그 돌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릴 때, 돌에서 갑자기 음성이 흘러나왔다.
익숙한 음성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세훈 본인의 음성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세훈 목소리만 담긴 것이 아니었다.
음성에는 이세훈과 류샹의 대화가 담겨있었는데, 두 사람 대화의 가장 핵심 내용은 강병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여명회가 개미 군단을 동원할 것이니, 성연에서는 강병철을 보내고 절대 지원하지 말라는 그런 내용 말이다.
“비열한 수를 쓰다니.”
이세훈은 이를 갈았다.
불문율을 아무렇지 않게 어기는 모습을 보니 인류의 적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듯싶었다.
참고로 스킬을 이용하여 녹취나 녹음을 하지 않는 게 고랭크 헌터들 사이의 불문율이었다.
“중국에 오십시오. 최고의 대우를 약속해드리겠습니다. 물론 배신자란 오명도 피하실 수 있을 겁니다.”
뻔뻔하기 그지없는 그의 말에 이세훈은 입술을 다물었다.
화를 내봤자 의미는 없었다.
어차피 전 세계에서 빌런으로 찍힌 자들이니 불문율을 이야기해봤자 그만 비웃음을 당하리라.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중국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쿠데타입니다! 강병철 그놈이 결국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예상했다면 예상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현실이 되자 이세훈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