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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225화 (225/275)

#225화

무공 학교 1기생, 최대형.

9반의 에이스라 불리기도 했던 그는 현재 러시아에 있었다.

사실 그 말고도 러시아에 있는 학생은 적지 않았다.

시베리아의 많고 많은 던전을 IHA에서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형아. 또 레이드 가냐?”

“어.”

“안 힘드냐? 오늘만 몇 탕 뛰었잖아, 너.”

“돈 벌어야지.”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무공 학교의 학생들은 무보수로 일하지 않았다.

무보수는커녕 비교적 저렴한 던전 입장료를 내며 사냥에서 나온 전리품은 모두 자신이 가졌다.

길드나 개인 용병으로 활동하는 것보다 훨씬 남는 게 많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부족하다.’

최대형은 매일같이 던전 사냥을 나가는데도 돈이 항상 부족하였다.

그의 집안이 빚이 많거나 아니면 그가 사치에 빠져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최대형은 사치나 향락에 그리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실 무공 학교에서 ‘에이스’라는 별명을 얻은 사람들은 전부 무공에 미쳐있었다.

최대형 역시도 무공에 미친 무인 중 한 명이었고 말이다.

그런 그가 수련 시간도 줄이며 던전 사냥에 열중하는 것도 사실 무공 때문이었다.

‘영약의 가치가 더 오르기 전에 최대한 많이 사놔야 한다.’

무공을 수련하는 것에 있어 내공은 필수였다.

같은 경지라면 내공의 양에 따라 우열이 가려질 정도였다.

그렇기에 영약은 중요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영약의 개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원래도 영약은 가치 있는 던전의 전리품으로 헌터뿐만이 아니라, 각국의 부호나 권력자들도 탐하던 것이었다.

영약은 단순히 내공만 상승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부수적인 효과가 있는데 이는 일반인에게도 큰 효과로 작용하였다.

이러니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무공을 익힌 사람이 늘어나자 영약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안 그래도 비쌌는데 더 비싸졌다는 뜻이었다.

최대형이 사냥에 열중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래도 수련은 빼먹을 수 없지.’

사냥에 열중하면서도 수련은 빠뜨리지 않은 그였다.

애초에 사냥하는 목적이 강해지기 위해서였으니 수련을 빼먹을 순 없었던 것이다.

“최대형 씨.”

수건으로 땀을 닦던 그에게 한 명의 사내가 다가왔다.

“누구십니까?”

사내가 명함을 건넸다.

하지만 최대형은 명함을 보고도 사내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명함에는 온통 한자가 적혀있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인인가?”

최대형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가 한국인인 것을 알면서도 한자로만 적혀있는 명함을 건네는 사내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다.

“예,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중국 정부에서 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중국인이 내게 무슨 일이지?”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어서 최대형 씨를 찾아왔습니다.”

“무슨 제안이지?”

“중국에 오실 생각 없으십니까?”

하지만 최대형은 놀란 기색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중국으로 와 달라? 내가 왜 중국에 가야 하지?”

“러시아에서는 던전 사냥을 할 때 세금도 내고, 던전 입장료도 내야 하지 않습니까?”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나라마다 다르지만, 헌터는 기본적으로 세금을 많이 냈다.

그나마 IHA의 입김을 강하게 받는 러시아라서 20%의 세금만 낼 뿐이었다.

“중국은 다릅니다. 던전 입장료도, 세금도 낼 필요 없습니다.”

“내가 들었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데.”

최대형은 미간을 좁혔다.

중국은 헌터들의 대우가 그리 좋은 나라가 아니었다.

그 역시 정확한 세율은 모르지만, 중국에서 활동했던 동료에게 버는 것의 절반은 가져간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물론 최대형 씨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입니다.”

최대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모두에게 그런 혜택이 주어질 리 없었다.

“대가는?”

“없습니다. 최대형 씨가 중국으로 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희는 만족합니다.”

대가가 없다는 말을 듣고 최대형은 미간을 좁혔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이 호구도 아니고 대가 없는 호의를 베풀 리가 없었다.

분명 그가 모르는 무언가를 바라고 그를 중국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이리라.

“고민해보지.”

“혹시 영약이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최대형이 거절의 의미를 담아 고민해보겠다고 답하니 그가 갑자기 영약 이야기를 꺼냈다.

“인형설삼을 구하였습니다.”

“중국으로 오시고 최소 10년 이상 중국에 머물겠다는 계약서를 작성하신다면 이 인형설삼은 최대형 씨의 것이 될 겁니다.”

한화로 수십억의 가치를 지닌 인형설삼.

그런 인형설삼을 계약금 형태로 주겠다는 말을 듣자 최대형은 눈을 부릅떴다.

무인으로서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에서 우리 사람을 빼가려고 작정한 모양이에요.”

회의 도중, 유지은이 갑자기 그런 말을 꺼냈다.

“또 누구에게 영입 제안을 했답니까?”

“최대형 학생에게도 찾아갔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그 말을 듣고 혀를 찰 때, 오랜만에 IHA 회의에 참석한 미국 무공 학교의 총장, 신경철이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돈으로 회유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다니. 무공 학교에는 충신들밖에 없거늘!”

다른 간부들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IHA의 주요 자리들은 어느덧 무공을 배운 이들이 꿰찬 상황.

간부들은 대부분 무공을 배운 인사였다.

그리고 무공을 배운 사람들답게 나에 대한 배신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었다.

최초의 배신자라는 오명이야 그렇다 쳐도, 새로운 무공을 배울 수 없게 되는 것.

무인들에게 있어 이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공은 정체되지 않고 계속 발전하는데, 나를 배신하면 혼자만 도태될 것이니 말이다.

‘물론 그것만 믿고 있을 수는 없지.’

사람들의 기대대로 나는 IHA의 일에 열중하면서도 무공을 연구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경지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무공을 꾸준히 연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순하게 무공 지식만 믿고 제자들이 배신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오만한 행동이었다.

“영약 생산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얼마 전, 바스타크 던전에 심어놓은 영약 중, 자홍선지초는 곧 수확할 수 있을 거 같다고 보고받았습니다.”

내가 가장 믿는 것은 시베리아 던전에 심어놓은 영약들이었다.

나도 그렇지만, 무인들이 최고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던전 전리품이 영약이었다.

아이템 하나로는 무력이 크게 증가하는 경우는 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영약이라면?

그것도 1갑자 묵은 값비싼 영약이라면 어떨까.

그런 영약은 복용하기만 하면 일류 이하의 무인인 경우, 순식간에 경지를 높이는 것도 가능하였다.

물론 꼭 그런 값비싼 영약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바스타크 던전에서 생산한 자홍선지초는 영약이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적은 양의 내공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런 영약 아니, 영초도 꾸준하게 복용하면 무력 증진에 큰 도움이 되었다.

컨디션이나 집중력 향상에도 영향을 주었고 말이다.

나는 이런 영약들을 꾸준하게 생산하여 내 제자들에게 지급할 생각이었다.

자홍선지초는 시작에 불과하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값비싼 영약들이 생산되리라.

그때쯤 되면 내 제자들은 나를 배신하고 싶어도 절대 배신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첫 수확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큰 포상이 있을 거라고 전해주십시오.”

나는 고개를 돌려 장성민을 바라보며 물었다.

“정의문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중소 길드를 합병하며 세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현재 규모로 보면 10대 길드 이상의 규모로 확대되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정의문은 강병철이 성연 길드에서 독립하고 세운 길드, 아니 문파였다.

무공 학교를 제외하면 사실상 유일하게 무공을 가르치는 단체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세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었다.

외국에서도 가입 문의를 할 정도였다.

“정의문을 계속 지원해주십시오. 우리 IHA가 할 수 없는 일을 정의문이 대신 해줄 겁니다.”

이번 중국 문제도 그랬다.

IHA가 관여하지 않았으면 더 말끔하게 해결이 되었을 터.

그런 의미에서 IHA와 겉으로는 관련이 없는, 정의문을 키우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볼 수 있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협회장님.”

“성연 길드를 저대로 내버려 둬도 될까요?”

장성민이 그리 묻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성연 길드는 강병철이 독립하면서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성연 길드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길드 마스터인 이세훈과 그의 측근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하였다.

길드의 잔여 세력을 이끌고 그대로 중국으로 넘어간 것이다.

‘추잡하게 발버둥을 치는군.’

-명령을 내려주시면 성연 길드의 길드 마스터, 이세훈을 처단하겠습니다.

김수민이 마치 오늘 회의를 엿듣기라도 한 것처럼 이세훈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세훈을 죽인다라.’

죽음의 천사라고 불리는 그녀가 나선다면 이세훈을 죽이는 일쯤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절정 고수였고 염동력이라는 엄청난 스킬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녀가 누군가를 죽이기로 작정했다면 웬만해서는 암살에 실패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녀에게는 150기가 넘는 듀라한이 있기도 했고 말이다.

“그자를 죽일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말렸다.

물론 인제 와서 살생을 피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난 인류에 해가 되는 존재라면 언제든 살생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이세훈, 그자가 어설프게 배운 무공이라면 오히려 저쪽에 해가 됐으면 해가 됐지, 도움이 되지는 않을 거다.’

어차피 이세훈이 아니더라도 중국에 무공이 퍼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었다.

이미 무공을 배운 헌터의 숫자만 천 명 단위를 넘어선 상황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이세훈을 제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이세훈을 이용한다고 하는 게 맞는 이야기였다.

중국 헌터들은 어설픈 무인에게서 어설픈 무공을 배우고 어설픈 실력을 가지게 되리라.

이세훈은 중국 헌터들에게 있어 그야말로 독이나 다를 게 없는 존재였다.

물론 지금은 그마저도 감지덕지하며 배울 테지만 말이다.

중국으로 넘어온 이세훈은 처음엔 기분이 그리 좋지 못하였다.

그가 중국에 온 것은 그의 의지가 아니었다.

여명회의 협박과 강병철의 배신이 겹쳐서 불가피하게 중국으로 오게 된 것.

하지만 막상 중국으로 넘어오고 시간이 지나자 이세훈은 긍정적인 감정을 품기 시작하였다.

“씨푸(shīfu)!”

수십 명의 중국 헌터들.

B랭크 이상의 고랭크 헌터들이 그를 씨푸 즉, 사부라 부르며 존경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이 보내는 눈빛은 성연 길드의 길드원들에게서도 받지 못한 눈빛이었다.

‘이거, 나쁘지 않을 수도?’

지금이야 형편없는 실력들이었다.

성연 길드의 말단 길드원보다 못한 수준.

하지만 그의 눈앞에 있는 수십 명의 헌터는 중국 전역에서 가리고 가려서 뽑은 인재들이었다.

랭크로 따지면 평균이 A랭크일 정도였다.

‘1년이면 이들을 아드리안이나 브루노 클라크 수준으로 키울 수 있다.’

성연 길드가 자랑하는 두 헌터, 아드리안과 브루노 클라크.

만약 그가 키우는 중국 헌터들이 아드리안이나 브루노 클라크 수준만 되어도 그는 전성기의 성연 길드가 부럽지 않았다.

한국이란 작은 나라에 안주하던 성연 길드가 아닌, 과거 적비단이란 폭력 단체가 누렸던 영광을 그가 누릴 수 있게 될 테니까.

‘계획대로 이들이 성장한다면 강병철…. 그리고 박한새. 너희 둘만큼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테다!’

이세훈은 쑥쑥 자라나는 중국 헌터들의 모습을 보며 강병철과 박한새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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