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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229화 (229/275)

#229화

빅터 그린은 침을 꿀꺽 삼켰다.

미국의 헌터 학교에서 실세라고 하는 자들은 보통 30대에서 40대였다.

누군가를 가르치려면 연륜은 필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 있는 사내, 리암 골드버그는 절대 30대 이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가 헌터 학교에서 실세 중의 실세로 불린다는 것을 생각하면 실로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다른 나라의 헌터 학교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공 학과의 학과장은 실세가 될 수밖에 없는 독보적인 위치였으니.

“빅터 그린. 마법 학교에 다녔었다지?”

리암 골드버그가 서류를 내려놓더니 빅터 그린을 향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예…. 설마 마법 학교 출신은 무공을 배울 수 없는 겁니까?”

“만약 마법에 정식으로 입문했다면 그랬겠지.”

그 말을 듣고 빅터 그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공 학교와 마법 학교의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일반인도 다 아는 정보였다.

그래서 그도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룬어밖에 배우지 않아서 그런지 무공을 배우는 것에 따로 제한은 없는 듯싶었다.

“근데 자네, 공적 점수가 10점밖에 안 되는군. 몬스터 한 마리 죽인 점수인데, 어떻게 10점밖에 못 모을 수가 있지?”

“…따로 공적 점수를 노려본 적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도 아예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경쟁률이 워낙 치열해서 제대로 시도도 못 해보고 포기했을 뿐.

“일정 기준 이상 공적 점수를 채우지 못하면 무공을 배울 수 없네.”

리암 골드버그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친! 내가 마법 학교도 자퇴하고 왔는데 무공을 배울 수 없다고?’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D랭크 헌터밖에 안 되는 게리도 무공을 배우는데 B랭크 인재인 그가 무공을 배울 수 없다니!

“하, 하지만 지금 공적 점수를 모을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공적 점수를 얻으려면 빌런을 잡거나 던전 브레이크를 막아야 했다.

그런데 공적 점수를 노리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무공 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이유, 그리고 영약이나 아이템을 얻기 위한 이유 등으로 공적 점수를 노리는 사람이 최소 수만 명이었다.

심지어 이미 무공을 익힌 헌터들도 공적 점수를 노릴 정도였다.

그렇다 보니 수배되어 있던 빌런이란 빌런은 죄다 잡혔다.

중동, 인도 그리고 아프리카 등.

IHA의 영향력이 약한 곳으로 도망친 빌런을 제외하면 사실상 수배된 빌런은 거의 다 붙잡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던전 브레이크로 공적 점수를 쌓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8성급 던전 브레이크 사태 같은 갑작스러운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미국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일은 없었으니까.

“공적 점수를 얻기 힘들다면 봉사라도 하게.”

“보, 봉사 말씀입니까?”

“고아원이든, 아니면 양로원이든. 봉사로 점수를 채워.”

“저 B랭크 헌터입니다. B랭크 헌터가 무슨 봉사입니까.”

그가 절대 못 하겠다는 식으로 말하자, 리암 골드버그가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

언뜻, 살기까지 느껴지는 거 같은 시선이었다.

그러자 빅터 그린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언제부터 B랭크 헌터가 그리 대단한 존재였지?”

“고랭크 헌터라고 귀족은 아니야. 명심하게.”

“보, 봉사하겠습니다.”

기세에서 밀린 빅터 그린은 결국 봉사하겠다고 답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워싱턴주, 왈라왈라 지역에 큰 화재가 발생하였다.

진화 작업을 위해 소방관들이 출동하였지만, 화재는 순식간에 주변 밀밭으로 확산하였다.

‘내가 왜 이런 일을!’

솟구치는 불기둥과 철을 녹일 만큼 강렬한 화염 바로 앞에 빅터 그린이 있었다.

화염이 강렬하여 소방관들도 멀찍이 떨어져 있는 상황.

오직 빅터 그린만이 그런 거대한 화염 앞에 서있었다.

빅터 그린은 잠시 한숨을 내쉬고는 자신의 스킬, 화염구를 사용하였다.

불로 불을 진압하는 것.

그것은 단순히 비유가 아니었다.

비록 위험이 따르지만, 맞불을 놓아 불을 진압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수단이 없었다.

빅터 그린이 맞불을 펼치며 화염이 향하는 길목의 나무들을 모조리 태워버리자, 화염의 기세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연료가 될 나무들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소방관들이 와서 물을 뿌리자 화염은 순식간에 잡혔다.

“헌터님 덕분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소방관들은 그에게 진심이 담긴 인사를 건넸다.

화재가 진압됐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농장 주인도 헐레벌떡 뛰어와서는 그에게 고맙다고 말하였다.

그런 그들의 감사 인사에 빅터 그린은 낯선 기분을 느꼈다.

‘뭐지? 왜 기분이 들뜨는 거야?’

빅터 그린에게는 사실 별거 아닌 일이었다.

화염의 기세가 아무리 강렬하다고 해도 그는 화염구 스킬을 사용하는 헌터였다.

불에는 엄청난 저항력을 가졌다는 의미였다.

그렇기에 위험도도 낮았고 스킬을 몇 번 사용하기만 하면 되니 고생이랄 것도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감사 인사를 들으니 이상하게 뿌듯한 감정이 들었다.

처음으로 5성급 던전 레이드에 성공했을 때보다 더 뿌듯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헌터님! 고맙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우연히 차에 치일 뻔한 꼬마를 구해주었다.

이 역시 그에겐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조금 몸을 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하지만 꼬마와 꼬마의 부모는 마치 그가 엄청난 일을 해낸 것처럼 그에게 거듭 감사 인사를 건넸다.

‘봉사란 이런 건가.’

빅터 그린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왜 헌터들이 히어로를 꿈꾸는지 조금은 이해가 갈 거 같았다.

‘나중에 무공을 배우고 나서도 여유가 되면 다른 사람을 조금씩 돕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하지만 이렇게 기분 좋은 마음으로 봉사하는 것도 며칠뿐이었다.

너튜브에 올라온 하나의 영상을 보자 빅터 그린은 기분이 급격하게 나빠지는 것을 느꼈다.

영상은 다름 아닌, 앤디 올드먼이 새로운 마법을 개발했다며, 오러란 마법을 사용하는 영상이었다.

‘젠장! 계속 마법 학교에 있었으면 나도 오러 마법을 배웠을 텐데!’

대부분의 헌터가 그렇듯, 그 역시 마법이나 무공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편에 속하였다.

오러 마법을 보고선 마법의 약점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하였다.

따지고 보면 오러 마법 하나 생겼다고 마법사의 전투력에 엄청난 변화가 생길 리 만무한데도 그저 무공의 검기를 떠올리며 마법사의 약점이 사라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무공이라도 제대로 배웠으면 모를까, 이게 뭐 하는 거야!’

답답했다.

지금 생각하니 마법 학교에서의 수업이 훨씬 유익하게 느껴졌다.

그때는 그래도 무언가를 배우기라도 하지 않았던가.

무공을 배우기는커녕 인생에 도움 안 되는 봉사만 실컷 하고 있었다.

물론 봉사를 하며 새로운 감정을 느낀 건 그 역시 유익하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헌터 학교로 돌아온 빅터 그린은 학생들이 한쪽에 모여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쟤네들은 무공 학과생들이잖아?’

그의 경쟁자이자 선배라고도 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물론 그는 경쟁자면 경쟁자지 선배로 대우할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학과장님이 왜 모이라고 한 건지 알아?”

“새로운 기술의 시범식을 보여준다던데?”

“배울 게 아직 많은데 또 새로운 기술이 나왔어?”

“나는 보법부터 도저히 진도가 안 나가던데….”

빅터 그린은 앓는 소리를 하는 무공 학과생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그들이 하는 소리는 전부 기만처럼 느껴졌다.

어찌 됐든 무언가를 배우기라도 한다는 뜻이 아닌가.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젓고는 리암 골드버그가 보여줄 시범식에 집중하였다.

‘얼마나 대단한 기술이 나왔는지 한번 보자!’

얼마 지나지 않아 시범식 준비가 끝났는지 리암 골드버그가 자리를 잡고는 자신이 보여줄 무공 기술에 대해 설명하였다.

“이 무공은 원거리 적을 타격하는 장풍이란 이름의 무공으로 내공에 따라 단순히 적을 밀어내는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고, 반대로 살상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다.”

이윽고 리암 골드버그가 장풍의 시범식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기마 자세를 한 채 양손을 정면으로 내뻗는 리암 골드버그.

그러자 리암 골드버그의 정면에 서 있던 무공 학과생들이 무언가를 맞고는 뒤로 멀리 날아갔다.

“으아아!”

“저게 장풍인가!”

멀리 날아가는 무공 학과생들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크게 감탄하였다.

장풍이란 무공을 어떤 순간에 사용할 수 있을지 단번에 간파한 것이었다.

‘수, 수십 명을 한 번에 날려버리다니!’

리암 골드버그의 시범식을 지켜본 빅터 그린 역시 눈을 부릅뜨며 놀라워하였다.

그는 장풍을 본 순간, 반하고 말았다.

근접하는 적을 넉백(적을 뒤로 밀어내는 효과)할 수 있는 기술이라니!

이건 원거리 딜러인 그를 위해 존재하는 스킬이었다.

‘무, 무조건 봉사 점수 채우자. 저건 반드시 배워야 한다.’

빅터 그린은 상상했다.

근접하는 적을 장풍으로 날린 뒤, 보법을 펼쳐서 더욱 거리를 벌리고 그렇게 거리가 멀어지면 일방적으로 화염구를 날려서 적을 쓰러뜨리는 자신의 미래를.

그리고 이 미래는 무공만 배우면 얼마든지 현실로 만들 수 있는 미래였다.

한편, 이성은도 독일에서 장풍 시범식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S랭크 헌터와의 대결에서 장풍을 사용한 것이었다.

“가까이 접근도 못 하는데?”

“저게 장풍이라는 거군!”

구경꾼의 수는 상당하였다.

무려 S랭크 헌터와 절정 고수로 알려진 이성은의 대결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이성은은 IHA 유럽 본부의 본부장이기도 했다.

그의 직함 때문에라도 구경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성은은 구경하는 사람이 많았는데도 전혀 긴장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뒷짐을 진 채 상대가 달려오면 한 손으로만 장풍을 쏘아 멀리 날리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를 상대하듯 여유가 느껴지는 태도였다.

그런 그의 태도에 지그 호프라는 S랭크 헌터가 씩씩거리며 다시 달려들었다.

이미 승부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독일 헌터의 자존심이 걸려있는 대결에서 쉽게 포기할 수는 없는 법.

지그 호프는 더욱더 몸을 가속시켜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이성은에게 달려갔다.

물론 아무리 빨라져봤자 바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성은의 손에서 강풍이 쏘아지자 그는 다시 멀리 날아가고 말았다.

이번에는 그냥 날아가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지그 호프의 전신이 무언가에 베어져 있었다.

S랭크 탱커에게도 타격을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장풍의 위력이었다.

“…졌다.”

치명상은 입지 않았다.

하지만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그는 중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상태를 인지한 지그 호프는 결국 패배를 인정하였다.

“수고하셨습니다.”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본 독일 시민들은 그리 놀란 반응이 아니었다.

독일의 S랭크 헌터인 지그 호프가 얼마 전까지는 이름도 들어본 적 없었던 한국 헌터에게 패배했음에도 그러했다.

그만큼 익숙한 광경이기 때문이었다.

“지그 호프도 기술 하나만 사용하고 이겼네.”

“심지어 저 장풍이란 기술은 만들어진 지 며칠밖에 안 지난 기술이래!”

“헉. 그러면 아직 제대로 수련하지도 않은 기술로 지그 호프를 이긴 거야?”

“그만큼 무공이 강하다는 뜻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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