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대신 회귀함-230화 (230/275)

#230화

지그 호프란 이름의 S랭크 헌터와 대결을 마치고 본부로 돌아오니 한 여성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 장풍만으로 이겼다며?”

“새로운 기술을 배웠으니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풍이 너의 트레이드마크가 되겠네. 이미 지금도 인기 스타인데 말이야.”

나즐라가 놀리는 목소리로 이성은에게 말했다.

“인기 스타까지는 아닙니다.”

“독일에서만큼은 네가 협회장만큼 유명할걸?”

“설마 그러겠습니까.”

이성은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인기를 얻으려고 따로 무언가를 시도한 적은 없었다.

단지 유럽의 헌터들이 그를 인정하지 못해서 계속 대결을 신청하였고 그 대결에서 연전연승하여 인기를 얻게 되었을 뿐.

“근데 너, 장풍을 벌써 마스터한 거야?”

“장풍이야 원리만 알면 원래 쉽지 않습니까?”

“쉽다고?”

나즐라가 혀를 내둘렀다.

그녀는 아직도 장풍을 완벽하게 사용할 수 없었다.

혼자 연습할 때만 세 번 사용하면 한 번 제대로 나갈 정도였다.

이성은처럼 실전에서 사용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수준.

“정말 부러운 재능이야. 네가 그렇게 재능이 있으니까 협회장이 너를 그렇게 아끼는 거겠지?”

“나즐라도 재능이 나쁘지 않습니다.”

“…나쁘지 않은 거지, 좋은 건 아니잖아.”

“사부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다 보면 나즐라도 실력이 빠르게 상승할 겁니다.”

“글쎄. 협회장은 나를 싫어하는 거 같던데.”

그 말에 이성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느꼈었다.

박한새가 나즐라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그런데 레이한 길드 출신의 요원들을 폴란드로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화제를 전환할 겸,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어. 그게 왜?”

“이번엔 무슨 이유입니까?”

“파롤의 흔적을 발견했거든.”

“그렇습니까. 근데 그건….”

“이번에는 헛소문 아니야.”

나즐라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더니 이내 부연 설명하듯 말을 이었다.

“설령 헛소문이라 해도 반드시 진의 여부를 확인해야 해. 파롤과 관련된 것은 절대 타협할 수 없거든. 그 이유는 너도 알지? 파롤은 인류의 파멸을 바라는 악신이란 것을.”

이성은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인력 낭비처럼 느껴지긴 했다.

유럽의 IHA는 아직 규모가 많이 작은 상황.

각국 정부도 제대로 협조하지 않았기에 곳곳에서 인력난을 겪고 있었다.

오죽하면 남미에서 도망친 빌런들이 파리, 런던 등 각국 수도에 머물러있는데도 아직 다 잡아내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나즐라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야. 사부께서도 여명회를 견제하는 것을 가장 우선시하라고 지시했으니까.’

여명회가 숭배하는 악신이 바로 파롤이었다.

그러니 파롤의 흔적을 찾는 것도 IHA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폴란드 크라쿠프.

전 레이한 길드 소속이자, 현 IHA 요원인 네잣 에르겐치는 한 연쇄 살인마를 쫓고 있었다.

“이번에도 사탄주의자입니까?”

“그런 것으로 추정됩니다. 범인이 현장에 남긴 표식이 일치합니다.”

현재 폴란드뿐만이 아니라, 유럽 곳곳에서 연쇄 살인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른바 사탄주의자라 불리는 이들이 벌이는 연쇄 살인이었다.

나즐라는 갑작스럽게 사탄주의자들이 늘어난 이유가 파롤 때문이라고 추측하였다.

즉, 사탄주의자들은 파롤을 추앙하는 광신도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나즐라의 추측에 네잣 에르겐치도 동의하였다.

‘멕시코에서 했던 짓을 유럽에서도 하려는 것인가 본데, 그리 쉽지는 않을 거다.’

네잣 에르겐치는 이를 갈았다.

그 역시 멕시코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였었다.

인세의 지옥이나 다를 게 없는 그 참상을 말이다.

그런 그이기에 유럽에서 사탄주의자들이 활개 치고 다니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여기입니까?”

“예, 아직 현장 정리가 끝나지 않아서 나중에 들어가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이런 일에 익숙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잣 에르겐치는 현장에 가서 직접 시신의 상태를 확인해보았다.

‘이놈도 미친놈이군.’

연쇄 살인마가 만든 현장은 그야말로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20대 중반의 여성이 거실 한복판에 쓰러져 있었는데 그녀의 팔다리가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녀의 얼굴 역시 흉측하게 훼손되었다.

“경찰들은 범인이 헌터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범인이 강제로 열었습니다. 그냥 악력으로요. 이 정도의 힘을 가진 사람은 헌터가 아니고서는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확실히 범인이 헌터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겠군요.”

네잣 에르겐치는 작게 혀를 찼다.

헌터가 사탄주의자라니.

같은 헌터로서 이보다 창피한 일이 있을까 싶었다.

“뭐 그래봤자 F랭크 수준일 거 같습니다. E랭크 이상이었으면 애초에 이런 흔적도 안 남겼을 테니 말입니다.”

그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네잣 에르겐치는 곧바로 자신의 후배 직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폴란드 지부에 연락해서 이 지역 F랭크 헌터 명단 좀 뽑아 와.”

후배에게 용의자 명단을 뽑아오라고 한 뒤, 그는 자신의 승용차가 있는 인근 주차장으로 향하였다.

경찰과 공조한 결과, 범행이 한 동네에서 벌어진다는 사실과 주로 새벽에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범인의 연쇄 살인은 계속 이어질 테니 다음 범행을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미리 자놔야겠어. 새벽에 움직일 수 있게.’

잠에서 깨어난 네잣 에르겐치는 한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 자신의 스킬을 사용하였다.

그는 범인을 쫓는 일에 적합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청각을 극대화하는 스킬이었는데, 그가 원하는 소리만 들리게 하는 것도 가능하였다.

기초 무공을 배우면서 스킬의 효과는 더욱더 좋아졌다.

‘다행히 조용한 동네라서 소리를 분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군.’

이 정도면 범인을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거 같았다.

대략 300m 떨어진 저택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가구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억지로 비명을 참는 소리가 이어졌다.

이어지는 소리도 수상하기 그지없었기에 네잣 에르겐치는 바로 그 저택을 향해 뛰어갔다.

저택의 문을 두드리니 안에서 갑자기 소음이 뚝 끊기는 게 들렸다.

다시 두드렸지만,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안에 있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어서 나오십시오.”

계속 문을 두들기자, 한 사내가 짜증이 서린 얼굴로 문을 열었다.

네잣 에르겐치의 눈에는 꽤 낯익은 얼굴의 사내였다.

그는 곧 사내를 어디서 봤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

아까 전, 후배에게 받은 용의자 명단에서 발견한 얼굴이었다.

“예지 비에키에비츠 헌터 맞습니까?”

“당신은 왜 이곳에 있습니까? 그리고 당신의 셔츠에 묻은 그….”

네잣 에르겐치는 더 추궁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무언가가 그의 목을 노리고 날아왔기 때문이다.

보통 헌터라면 인지조차 못 할 속도였다.

하지만 그는 보통의 헌터가 아니었다.

유럽에서는 극소수에 불과한 ‘무공을 배운’ 헌터였다.

그의 목을 노리고 날아온 칼이 허공에서 부서졌다.

네잣 에르겐치가 바로 검을 뽑아서 부서뜨린 것이다.

상대의 가슴을 향해 발차기를 날리니 상대는 피하지 못하고 문을 부순 채 바닥으로 쓰러졌다.

“크으윽!”

“겨우 한 방 맞아놓고 엄살 부리지 마.”

네잣 에르겐치는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사내가 자신이 찾던 연쇄 살인마라는 사실을.

최소 다섯 명 이상을 살해한 연쇄 살인마가 한 대 맞고 낑낑거리는 모습이 역겹게만 느껴졌다.

쓰러진 상대의 얼굴에다 다시금 발길질하자, 안 그래도 흉측했던 얼굴이 더 흉측하게 바뀌었다.

“어디 있어?”

“뭐, 뭐가요?”

“피해자 어디 있냐고.”

“…지하실에 있어요.”

고분고분하게 대답하는 모습도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일까?

네잣 에르겐치가 인상을 찌푸리고는 다시금 발길질하였다.

“아악! 때리지 마세요!”

“한심한 새끼.”

하찮기 그지없는 상대였다.

이런 놈이니 헌터면서 사탄주의 같은 것에 빠지는 게 아닐까 싶었다.

“만약 피해자가 죽었으면 너도 내 손에 죽는 줄 알아.”

그리 경고하고 지하실로 내려가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주문을 외우는 목소리가 들렸다.

“뭐 하는 거야, 저 새끼.”

그가 뒤를 돌아보자, 예지 비에키에비츠가 벽에 기댄 채로 이상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마법사의 룬어처럼 느껴지는 그 주문은 네잣 에르겐치로 하여금 찝찝함을 느끼게 하였다.

‘F랭크 따위가….’

잠깐이라도 몸을 움찔했다는 사실에 짜증이 난 네잣 에르겐치는 다시 그에게 접근하였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때려눕혀 기절시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때 예지 비에키에비츠의 손에 롱소드 한 자루가 쥐어졌다.

왠지 모를, 불길한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그런 검이었다.

‘어디서 검이 나타난 거지?’

그것도 그냥 검이 아닌, 마검처럼 생긴 롱소드였다.

‘마검이든, 뭐든 검기로 베어내면 그만이다!’

네잣 에르겐치는 검기를 뽑고는 그대로 사내를 향해 휘둘렀다.

하지만 그가 예상했던 상황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검기를 막았다고?”

네잣 에르겐치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예지 비에키에비츠의 검을 노려봤다.

마검처럼 보이는 불길한 검은 그의 검기와 부딪쳤는데도 멀쩡한 상태였다.

그가 당황하고 있을 때, 예지 비에키에비츠가 검을 휘둘렀다.

검기로 막으려 하였으나 상대의 검 안에는 그가 감당할 수 없는 거력이 담겨 있었다.

뒤로 나가떨어진 네잣 에르겐치는 손등으로 입술을 닦았다.

‘방심했나.’

잠시 그런 생각도 해봤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방심했건, 방심하지 않았건 상대가 그의 검기를 막은 것부터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

F랭크 따위가 검기를 막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뒤져라!”

예지 비에키에비츠가 지금 보여주는 모습만 봐도 그의 무력이 절대 F랭크 헌터 수준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정식으로 검술을 배운 그가 보기엔 엉성하게만 느껴지는 그런 칼질이었다.

하지만 저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검격 하나하나가 그에게는 무척이나 위협적이었다.

“커어억!”

다시 검을 들어 상대의 검을 막아내자 그는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상대의 검에는 단순히 거력만 담긴 것이 아니었다.

저주라도 걸려 있는 듯, 그의 힘과 체력을 빼앗기까지 하였다.

‘아니, 이건 영혼이 빨리는 느낌이다.’

네잣 에르겐치는 느꼈다.

한 번 더 상대의 검과 부딪친다면 그때는 더 버틸 수 없을 거라고.

하여 그는 보법을 펼쳐서 연신 공격을 피하였다.

하지만 공간은 협소하였고 그는 결국 검을 들어 다시 상대의 검을 막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처음에 느꼈던 대로 상대의 검과 부딪친 순간, 그는 자신이 죽음과 가까워졌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크하하하하하! 뭐 하는 것이냐? 더 발버둥 치지 않고!”

“…죽여라.”

“하하하하하하! 살려달라고 말해 봐라. 그럼 내가 관대함을…. 컥!”

재수 없게 웃어대던 사내가 갑자기 피를 토했다.

검을 쥐고 있던 팔뚝의 핏줄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네잣 에르겐치의 눈에 들어왔다.

아니, 비정상적인 것은 팔뚝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전신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였다.

과도한 힘에는 역시 부작용이 따르는 듯싶었다.

‘이딴 놈에게 내가 죽는다니.’

네잣 에르겐치는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차라리 파롤에게 죽었으면 죽었지, 저런 조무래기에게 죽는다는 사실이 불명예스럽게만 느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