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여명회 9사도, 요한.
그가 영국으로 건너와 1사도인 매디슨에게 말했다.
“매디슨. 루키푸구스가 우리의 영역을 침공했어요.”
“루키푸구스가?”
“제 뒤를 추적하던 IHA 요원이 그자의 손에 죽었더군요.”
“감히….”
매디슨은 미간을 좁혔다.
악신이라 불리는 존재는 파롤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성좌의 수는 무척이나 많았고 악신이라 불릴 성좌의 수도 결코 적다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악신 중 가장 강한 악신이 파롤인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같은 악신들 역시 파롤을 자신보다 위에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껏 감히 파롤의 권위에 도전할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중동, 아프리카를 제외하면 어떤 곳에서도 세력 확장을 시도하지 않았던 것도 다른 지역을 파롤의 영역으로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루키푸구스 그놈은 우리의 영역을 침공했다는 말이지.”
매디슨은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
IHA 아니, 박한새 때문에 최근 여명회의 위세가 예전 못지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러시아, 중국, 아메리카까지.
모든 대계가 어그러지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매디슨은 여명회의 위세가 줄었다고 자신이 숭배하는 파롤의 위상까지 줄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신, 파롤은 여전히 위대하였고 찬란하였으며 어떤 신보다 강대하였다.
루키푸구스?
파롤과 비교하면 언급할 가치도 없는 성좌였다.
‘고작 보물을 지키는 자 따위가….’
북아프리카에서 광대한 영역을 지배하고 있는 악신이 루키푸구스였다.
하지만 그런 악신도 파롤과 비교하면 한낱 보물지기에 불과하였다.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게 만들어줘야겠어.”
“11사도에게 부탁할 생각인가요?”
“아프리카는 그의 영역이니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나?”
“저는 루키푸구스를 그냥 놔두는 건 어떤가 싶은데요.”
“우리의 영역을 침범한 루키푸구스를 가만히 내버려 두라고?”
매디슨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요한이 어딘가 음흉하게 느껴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오히려 이 일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봐요. 루키푸구스, 그놈이 IHA와 충돌했잖아요?”
“…둘의 싸움을 유도하자는 건가.”
매디슨은 요한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이른바 이이제이.
요한이 노리는 것은 바로 두 세력을 충돌시키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악신’의 흔적을 쫓는 것에 혈안이었던 IHA 유럽 본부였다.
요란하게 세를 확장하는 루키푸구스였으니 곧 IHA도 루키푸구스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될 터.
굳이 여명회가 개입하지 않아도 둘의 싸움은 필연이라고 볼 수 있었다.
‘나쁘지 않군. 루키푸구스, 그놈이라면 IHA에 큰 타격을 줄 수도 있겠지.’
매디슨과 요한이 별거 아닌 인물로 취급하였지만, 루키푸구스는 명색이 성좌였다.
그것도 악신이라 부를 만큼 흉폭하고 잔인한 성좌.
여명회 역시도 만약 루키푸구스와의 전쟁 시, 11사도가 제때 개입하지 않을 경우 큰 타격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 루키푸구스니 IHA와의 전쟁에서 여명회가 원하는 역할 정도는 수행할 수 있으리라.
“네잣 에르겐치 요원을 살해한 헌터는 F랭크 헌터인 예지 비에키에비츠입니다.”
니콜라라는 프랑스 출신의 이사가 유럽에서 일어난 일을 브리핑하였다.
“F랭크 헌터가 B랭크 헌터를 살해했다고?”
“설마 무공을 익힌 자입니까?”
“무인이 그런 범죄를 저지를 리 없습니다. 이건 분명 마법사의 짓일 겁니다.”
F랭크 헌터가 B랭크 헌터를 살해하는 것.
이전이라면 모두가 그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의문을 표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었다.
IHA 간부들은 그리 놀라지 않은 표정으로 범인이 마법을 배웠는지, 무공을 배웠는지 물었다.
“마법사도 무인도 아닙니다.”
“그러면 그냥 평범한 F랭크 헌터라는 겁니까?”
“평범하다고만 볼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그가 스킬을 사용했다는 증거를 확보했습니다.”
“F랭크 헌터가 스킬을 사용했다니, 그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그 질문에 니콜라는 심각한 목소리로 답하였다.
“아무래도 예지 비에키에비츠는 ‘권속’인 거 같습니다.”
“권속이라….”
성좌에 관한 정보는 그리 잘 알려져있지 않았다.
원래 8성급 던전 브레이크 사태 때 몇몇 권속들이 크게 활약을 하며 성좌의 존재를 알렸는데 나비효과로 그런 역사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IHA 간부쯤 되면 성좌에 관해 모를 수 없었다.
특히 파롤에 관한 정보는 이미 다 공유된 상태.
파롤이 인류의 적이자 국제 빌런 단체인 여명회가 숭배하는 성좌란 정보도 모두 알고 있었다.
“파롤입니까?”
니콜라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예지 비에키에비츠의 휴대폰과 컴퓨터에서 인터넷 검색 기록을 조사한 결과, 그는 루키푸구스란 성좌를 숭배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루키푸구스?”
“그 성좌는 또 어떤 성좌입니까?”
“그것까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사탄주의자들은 누군가를 살해하여 영혼을 바칠 경우, 루키푸구스에게서 큰 힘을 받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미친…. 살인을 권장하는 성좌란 말입니까?”
“…정말 악신 그 자체이군요.”
나는 그런 간부들에게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루키푸구스는 주로 북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악신입니다.”
사실 나도 루키푸구스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내가 아는 성좌는 몇 없었으니까.
하지만 루키푸구스의 이명이 무엇인지, 대표적인 권속이 누구인지만 모를 뿐, 그 악신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살인, 식인, 자살 유도, 분쟁, 전쟁, 테러.
루키푸구스를 숭배하는 사탄주의자들이 벌일 만행이었다.
이 악신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등장하였다면 반드시 멸해야 했다.
‘아프리카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했는데….’
멕시코 사태도 해결하고 10사도까지 처리한 나다.
하지만 그런 나도 아프리카의 상황을 해결하는 일엔 자신이 없었다.
그만큼 아프리카에는 무시무시한 적들이 우글거렸다.
그야말로 인세의 지옥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였다.
‘그래도 경지만 올린다면, 11사도도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멀게만 느껴졌던 초절정의 경지.
근데 곧 닿을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토벌대 구성을 마치고 아프리카로 갈 때쯤, 초절정의 고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직 내게는 ‘수련 효과 x200 상승권’이 남아있었으니.
간부 회의에서 루키푸구스에 관한 대책회의를 한 나는 유지은을 집무실로 불렀다.
“유럽의 상황은 혹시 달라진 것이 있습니까?”
“나즐라 부본부장이 부하의 복수를 하고자 폴란드로 갔는데, 거기서 꽤 마찰이 일어나고 있다고 해요.”
“마찰이라면?”
“폴란드 헌터들을 사탄주의자로 의심하다가 마찰이 벌어졌다네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그녀라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긴, 루키푸구스의 흔적을 발견한 것도 어찌 보면 그녀의 공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그녀가 직접 IHA 요원들에게 사탄주의자들을 찾아내라고 지시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래도 다행히 누군가 크게 다치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그나마 다행이군요.”
“나즐라 부본부장은 사고를 일으키고 이번에는 이탈리아로 떠났다고 하네요.”
“이탈리아에서 또 무언가를 발견했나 봅니다.”
“네. 이탈리아에서도 헌터 출신의 사탄주의자가 나타난 모양이에요.”
“루키푸구스의 권속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확실히 루키푸구스가 유럽 전역에서 활개 치는 거 같긴 했다.
사탄주의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을 보면 말이다.
“유럽 각국도 루키푸구스의 존재를 알아차린 거 같아요.”
“만약 IHA에서 공식적으로 루키푸구스 토벌을 선언한다면 이에 응할 유럽의 헌터가 적지 않을 거예요.”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한국 헌터를 아프리카까지 데리고 가는 것은 아무래도 곤란했는데, 유럽 헌터들이 참여한다면 토벌대 구성이 한결 쉬워지리라.
“유럽 헌터들이 참가한다면, 마법사들도 참가하게 해야 합니다.”
“마법사들을요?”
갑자기 왜 경쟁자라 할 수 있는 마법사들을 토벌대에 참가하게 하라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갔을 것이다.
“그들이 참여하면 토벌이야 쉬워지긴 하겠지만, 만약 그들이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서 IHA의 자리를 요구하면 어쩌시려고요?”
지금도 마법사들은 IHA의 고위직을 요구하고 있었다.
실력에 따라 자리가 배분된다면 자기들도 자격이 있다는 명분이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마법사들이 활약할 일은 없을 테니까요.”
마법사들을 전장에 데려가려는 이유?
너무도 간단하였다.
마법 학교에서 안전하게 머물러 있는 그들을 야생으로 내보내 기회가 생길 때 모조리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아프리카에서라면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놈들을 제거할 수 있을 테지.’
물론 이런 이유 말고도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이이제이.
루키푸구스란 악신을 또 다른 악신, 파롤의 졸개들을 이용하여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며칠 뒤, IHA는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현재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탄주의자들의 만행에는 루키푸구스란 악신이 배후에 있다는 선언이었다.
그리고 그 악신의 영토는 북아프리카에 있으니 곧 힘을 모아 악신을 토벌할 것이라는 내용이 IHA의 선언에 포함되어 있었다.
“악신? 여명회의 배후에 파롤이란 성좌가 있다던데, 이번 배후도 파롤인 건가?”
“파롤이라면 파롤이라고 했겠지. 다른 악신 아니야?”
“세상에 악신이라니. 진짜 미친 세상이다.”
IHA의 선언문을 읽은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이미 악신, 루키푸구스의 존재는 유럽을 넘어 전 세계로 알려진 상황.
심지어 한국이나 미국 등에서도 사탄주의자가 벌인 것으로 추정되는 범죄가 일어나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사탄주의가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각국 정부는 IHA가 루키푸구스를 토벌한다는 이야기에 우려의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신’이지 않은가.
아무리 IHA가 강하다고 해도 과연 신을 멸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는 반응이었다.
“공적 점수를 벌 기회인데?”
“인정. 멕시코 때 참여 못 한 게 엄청 후회됐는데 이번에는 무조건 참가해야지.”
“위험하지는 않겠지?”
“위험? 절정 고수들이 함께할 텐데 뭐가 위험해? 악신이 나타나면 악신까지 베어버릴 게 절정 고수들인데.”
“크크크, 그러게. 내가 절정 고수였으면 진짜 신도 무섭지 않았을 거야.”
반면 헌터들의 반응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니, ‘공적 점수’를 노리는 헌터들의 경우 루키푸구스란 악신의 등장을 오히려 반기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모처럼 공적 점수를 쌓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한편, 영국도 루키푸구스에 관한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브로턴에서 E랭크 헌터가 세 명을 살해하였는데, 알고 보니 그놈이 사탄주의자래!”
“사탄주의자면 요즘 유명한 루키푸구스란 악신의 졸개 아니야?”
“맞아! 그 빌어먹을 악마 놈의 짓인 거지!”
사탄주의자들이 영국 곳곳에서 잔혹한 범죄를 일삼고 있는 상황.
당연히 이들, 사탄주의자가 숭배하는 루키푸구스에 관한 여론도 최악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루키푸구스에게 분노를 표출하던 영국의 국민 여론은 이내 마법사들을 부추기기 시작하였다.
“우리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거 같은데.”
“그러니까! 저 악마 놈을 빨리 처단해야 한다고!”
“근데 앤디 올드먼은 왜 이렇게 조용하대? 설마 아프리카에 안 가려는 건 아니겠지?”
“에이! 대마법사가 악신과의 전쟁을 피할 리는 없잖아!”
이쯤 되니 마법 학교에서도 국민 여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