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런던 마법 학교의 분위기도 어수선하였다.
“IHA가 우리를 배제하고 자기들끼리 아프리카로 가려는 거 같은데?”
“아니, 자기들이 뭔데 우리를 배제해?”
“애초에 견제가 너무 심해. IHA 유럽 본부도 독일로 옮긴 이유가 뭐겠어?”
“마법이 두려운 건가.”
“그게 아니고서는 이리 견제할 이유가 없겠지.”
“야비한 새끼들!”
마법 학교의 학생들은 IHA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IHA가 은연중에, 아니 거의 대놓고라고 해도 좋을 수준으로 마법사를 견제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지켜만 봐야겠어? 국민들도 우리가 직접 나서길 원하고 있는데?”
“교수님들은 별말씀 없으시던데?”
“그분들이야 워낙 고고하신 분들이라, 따로 입장 표명을 안 하시는 거지! 본심은 분명 우리와 같은 마음일 거야!”
추진력이 남다른 학생들은 곧 루키푸구스 토벌전에 마법사들도 참가해야 한다고 선동하였다.
그들은 공적 점수 같은 것엔 욕심이 없었다.
단지 마법사가 세계에서 인정받는 것, 그리고 자신이 배운 마법이 얼마나 강한지 실전에서 사용하고 싶은 마음에 루키푸구스 토벌전에 참가하기를 바랐다.
“스승님, 교내 여론도 심상치 않습니다.”
“수업에서 분명 루키푸구스의 위험성을 강조했을 텐데도 그러한가?”
“예. 스승님이 함께라면 루키푸구스 같은 악신도 두렵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입니다.”
‘우리도 출정하지 않으면 안 될 분위기군.’
국민 여론부터 교내 여론까지.
모두가 마법사의 출정을 외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뒤로 발을 뺀다?
토벌전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는 겁쟁이란 오명을 쓰게 될 것이다.
마법사에 대한 평가도 더 안 좋아지게 될 것이고.
‘이렇게 된 이상 유럽 헌터들의 힘을 최대한 끌어모아야겠어. 유럽 헌터들은 그나마 IHA의 영향력을 적게 받으니 말이야.’
그는 IHA를 믿지 않았다.
정확히는 IHA의 협회장, 박한새를 믿지 않았는데, 앤디 올드먼은 박한새라면 무조건 자신의 목숨을 노릴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무수히 많은 사람이 참석하였던 마법 학교 창립식 때도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자신을 암살하려고 하였던 박한새였다.
만약 IHA가 주도하는 토벌대에 참가한다면 박한새는 절대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
그렇기에 유럽 헌터들을 함께 데려갈 필요가 있었다.
유럽 헌터들이 함께라면 아무리 박한새라도 애먼 짓을 하지 못할 테니까.
제니퍼가 만든 아프리카 연구소의 직원들과 함께 앞으로 있을 악신 토벌에 대해 회의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유럽에서 이성은의 전화가 걸려왔다.
-사부, 나즐라 씨가 사고를 쳤어요.
“또 무슨 사고를? 지금 이탈리아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
-예. 이탈리아 헌터 협회의 간부를 용의자라고 추궁하다가 그쪽에서 반발하자, 싸움을 일으켰어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지?”
-이탈리아 헌터 다섯 명이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내 입에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회귀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말썽꾸러기가 됐는지 의문이었다.
“여론이 안 좋아졌겠군.”
-그녀가 범죄자라며 당장이라도 체포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이탈리아뿐만이 아니라, 프랑스나 영국 등에서도 여론이 썩 좋지 않아요.
“거기는 또 왜?”
-우리가 아프리카 영토를 노린다는 헛소문이 돌고 있어요. 그런데 각국 정부는 그 소문을 진심으로 믿는 분위기더라고요.
“…황당하군.”
IHA가 아프리카 영토를 노린다니.
아무리 유럽에서 IHA의 여론이 안 좋았다지만, 이런 헛소문까지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장성민이 들어와 전해주기를, 이탈리아 대사가 찾아왔다고 하였다.
‘이탈리아 대사가 내게 무슨 일이지?’
일단 이성은과의 통화를 끊고 이탈리아 대사를 불렀다.
곧 콧수염이 풍성한 사내가 접견실로 들어왔다.
어딘가 이탈리아 출신의 교수, 로렌초를 떠올리게 하는 인상이었다.
“앉아도 되겠지요?”
“…앉으시죠.”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미 그는 의자에 착석하였다.
“커피를 타드리겠습니다.”
“얼음 넣어드립니까?”
“얼음이요? 저는 미국인이 아닙니다만.”
“…얼음 빼서 드리겠습니다.”
후루룩.
이탈리아 대사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커피 맛이 별로라는 얼굴이었다.
그러고는 생뚱맞은 이야기를 꺼냈다.
“협회장님의 이야기는 유럽에서 많이 들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여성에게 인기가 많다고 들었는데, 참 부럽습니다. 여기 올라오면서 보니까 미인들이 많아 보였는데 말입니다.”
당연히 무공이나 내가 세운 업적을 칭찬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꺼낼 줄이야.
‘그래서 결국 나를 찾아온 목적이 뭐야?’
나즐라 때문에 찾아온 거 같기는 한데 용건을 꺼내지 않으니 답답하게 느껴졌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내가 먼저 용건을 물었다.
“곧 회의가 있어서 그런데, 저를 뵙자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쁘신가 보군요. 혹시 곧 있을 회의에서 다루어질 내용 중에 아프리카와 관련된 내용도 있습니까?”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흠, 아쉽군요.”
이탈리아 대사는 자신의 콧수염을 잠시 쓰다듬고는 내게 말을 꺼냈다.
“사실 제가 협회장님을 찾아온 이유는 아프리카 문제를 상의하기 위함입니다.”
“말씀해보시죠.”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데, 아프리카의 악신을 공격하러 아프리카로 병력을 보내실 것이지 않습니까?”
“악신을 토벌하기 위한 목적으로 토벌대를 구성할 생각이긴 합니다.”
“만약 토벌에 성공하면 그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그 이후라면?”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가 말없이 다시 커피를 마셨다.
“아무래도 영토 배분을 어떻게 할지 물어보려는 거 같습니다.”
장성민이 옆에서 내게 귓속말로 그 같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혹시 영토 문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영토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북아프리카는 특히 오랜 시간 주인이 없는 땅이었지 않습니까?”
“만약 튀니지를 비롯한, 아프리카의 옛 영토를 악신으로부터 탈환하게 된다면 당연히 그 나라의 원주민에게 영토를 돌려줄 생각입니다.”
“호오. 그렇습니까? 역시 공명정대하시군요.”
“공명정대한 게 아니라,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원주민이라 할 수 있는 존재가 없다면? 그 영토는 누구의 것입니까?”
꽤 의미심장한 물음이었다.
마치 이탈리아 또한 그 영토에 대한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튀니지 난민들이 유럽 각국에 흩어져 산다고 들었습니다. 당연히 그들이 중심이 되어 나라를 구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흠. 그렇군요. 협회장님의 생각을 알게 돼서 기쁩니다.”
“다른 용건은 더 있으십니까?”
“하하, 없습니다. 듣고 싶은 대답은 다 들었습니다.”
이탈리아 대사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니, 한 가지만 더 물어보겠습니다. 만약 튀니지 사람들이 IHA의 도움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때도 IHA는 아프리카로 토벌대를 보낼 겁니까?”
“…이렇게만 답변을 드리고 싶군요. 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신을 토벌할 것입니다.”
튀니지 사람들이 반대하든, 안 하든 악신을 토벌하겠다는 대답이었다.
그러자 이탈리아 대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접견실을 빠져나갔다.
이탈리아 대사와 접견하고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유럽에서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탈리아에서 튀니지 사람들이 모여 망명 정부를 수립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갑자기 튀니지 망명 정부가 수립된다고?
“그 사람들이 갑자기 한마음 한뜻이 되어 망명 정부를 만들려는 것은 아닐 테고, 이탈리아의 짓이겠군요.”
“예. 그런데 다른 유럽 국가들도 이탈리아를 도우려는 듯 보입니다. 튀니지 출신의 난민들을 이탈리아로 보내고 있습니다.”
수상쩍은 움직임이었다.
왜 이탈리아는 튀니지 출신의 난민들을 자국으로 받아들인 것일까?
국민들이 싫어할 게 뻔한데 말이다.
‘설마 우리를 배제하고 자기들끼리 아프리카를 치려는 건가? 영토를 확장하려고?’
잠시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미 유럽의 여러 나라는 수차례 참패를 겪었었다.
아프리카의 영토를 수복하겠다고 수십만의 병력을 동원하였지만 전부 실패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런 과거가 있는데 설마 무리한 짓을 또 벌일까 싶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너무 순진무구한 생각이었던 듯싶었다.
“튀니지 망명 정부가 결사대를 조직하였습니다.”
“결사대를 말입니까?”
“예! 외국의 ‘의용군’을 대거 포함한 결사대를 만들어 고토 수복을 위해 곧 아프리카로 출정한다고 합니다.”
“의용군이라.”
이탈리아, 아니 유럽의 의도가 뻔히 보였다.
튀니지 망명 정부가 구성했다는 결사대는 사실상 유럽의 정복군이었다.
빈 땅이나 마찬가지인 북아프리카를 차지하기 위한 정복군이랄까.
“그 결사대에 마법사들도 동참한다고 합니다.”
“마법사? 그러면 앤디 올드먼도 참여하는 겁니까?”
“예, 아마 앤디 올드먼 본인도 참가할 거 같습니다.”
나는 조소를 흘렸다.
‘상황이 우습게 되었군. 악신을 토벌하려는 원정대에 또 다른 악신의 졸개들이 끼어들다니.’
뭐 내가 바라던 결과이긴 했다.
물론 IHA가 토벌대를 주도하지 못한 것은 예상치 못한 결과였지만 말이다.
‘억지를 부리면 우리가 주도권을 갖기는 하겠지만, 악신이라는 인류의 적 앞에서 내부 총질을 할 수는 없지.’
내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 내부 총질이었다.
그러니 튀니지 결사대라 불리는 유럽의 원정대도 일단은 두고 봐야 할 거 같았다.
그들의 실질적인 목적이야 어떻든,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은 악신을 토벌하고 튀니지의 옛 영토를 수복하는 것이었으니.
“IHA는 결코 순수한 목적으로 토벌대를 구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들은 라틴 아메리카와 러시아, 아시아 등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프리카를 마음대로 주무르기 위해서 악신 토벌이란 명분하에 토벌대를 보내는 것입니다.”
프랑스 협회의 이사가 강한 어조로 IHA를 비난하였다.
그러자 이에 동조하듯, 이탈리아 헌터 협회의 이사가 말했다.
“애초에 튀니지는 유럽의 영역인데, 어찌 동양인에게 유럽의 영역을 내줄 수 있겠습니까?”
“IHA는 너무 오만합니다! 그들이 없더라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합니다!”
유럽 헌터 협회는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다.
그들은 IHA가 다른 나라들처럼 유럽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렇게 될 경우, 그들은 기득권을 비롯한 각종 이권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급히 튀니지 결사대를 조직한 것도 IHA의 개입을 배제하기 위함이었다.
IHA가 개입하고 그들이 튀니지를 수복한다면 결국 유럽에서의 헌터 권력도 IHA가 좌지우지하게 될 터.
하여 유럽 각국의 헌터 협회는 서둘러 튀니지 결사대를 조직하여 북아프리카로 출정할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피해가 크지는 않을지 걱정입니다.”
물론 우려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았다.
왜 지금까지 인류는 아프리카를 수복하지 못했었던가.
대륙 전체가 던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몬스터가 득실거리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심지어 몬스터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이 토벌하려는 주체, 루키푸구스부터 무려 ‘악신’이었다.
당연히 피해를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기 앤디 올드먼 경이 함께해 주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최초의 대마법사가 함께한다면 무서울 게 없습니다!”
그런 이사들의 반응에 앤디 올드먼은 그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