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튀니지 망명 정부가 악신으로부터 고토를 회복하기 위해 구성한 ‘튀니지 결사대’는 순식간에 출정 준비를 끝마쳤다.
사실 말이 튀니지 결사대지, 튀니지 출신은 거의 없다시피 하였다.
결사대 멤버는 유럽 전역에서 온 ‘의용군’들로 구성되었다.
그중에는 영국에서 온 마법사들도 있었다.
“우리도 서둘러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IHA 간부들은 조급해하였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전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악신과의 전쟁이지 않은가.
인류사에 기록될 중요한 전쟁에서 IHA가 배제되는 것을 원하는 간부는 아무도 없었다.
“일단 지켜봅시다.”
조급한 태도를 보이는 간부들과 달리 나는 차분한 어조로 간부들을 진정시켰다.
‘루키푸구스가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니지.’
단기간에 끝날 전쟁이 아니었다.
상대는 악신이었고 전장은 그 악신의 영토였다.
튀니지 결사대만으로 루키푸구스를 토벌하는 건 절대 쉽지만은 않으리라.
‘시간이 생겼으니 그동안 수련에 집중해야겠어.’
경지만 오른다면 루키푸구스가 예상보다 허무하게 잡히더라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루키푸구스를 잡으며 얻게 될 이익보다 경지를 높일 때 얻는 것이 훨씬 많을 테니까.
“오우거다!”
“비, 빌어먹을! 오우거가 이렇게 흔한 몬스터였어?”
“쫑알거릴 시간에 스킬이나 준비해!”
아프리카 북부 해안에 상륙한 튀니지 결사대 대원들은 상륙하자마자 왜 인류가 아직도 아프리카를 수복하지 못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몬스터가 발에 치일 정도로 많다는 것은 그저 비유가 아니었다.
결사대 대원들의 눈에는 그야말로 몬스터로 이루어진 해일이 자신들을 덮치는 것처럼 보였다.
시야 전체가 몬스터로 가득했던 것이다.
“트, 트윈 헤드 오우거다!”
“미친! 왜 보스 몬스터가 벌써 나오는 거야!”
“반대편에는 사이클로프스 떼가 나타났다는데?”
“도대체 여기에 몇 종류의 몬스터가 있는 거야!”
미친 듯이 달려드는 몬스터의 규모는 S랭크 헌터조차 방심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마력을 전부 쏟아야 전장 하나가 간신히 정리될까 말까 하였다.
‘이거, 괜히 참전한 거 아닌가 모르겠군.’
한 S랭크 헌터가 튀니지 결사대에 참여한 것을 후회하기 시작할 때, 갑자기 몬스터 진영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순간 대원들은 함대의 포격 지원이라고 생각하여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포함으로는 6성급 이상의 몬스터에겐 큰 타격을 주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윽고 연기가 걷히면서 결사대 대원들은 크게 환호하였다.
“마법사다! 마법사의 융단 폭격이야!”
“엄청나군! 모조리 죽었어!”
“마법사 만세다!”
6성급 몬스터부터, 7성급 던전 보스까지.
수백 마리의 몬스터가 마법 한 방에 사라졌다.
“마법 한 방이 S랭크 헌터의 스킬보다 더 강력한 거 같은데?”
“저거지! 무공 따위는 보여줄 수 없는 압도적인 화력!”
“대마법사가 있는 한, 몬스터 따위에게 질 리는 없다!”
앤디 올드먼이 펼친 마법을 지켜본 결사대 대원들의 사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결사대 대원들이 난전을 펼칠 때면 어김없이 마법사들이 지원을 와주었다.
몇 차례 그 과정을 반복하자 튀니지 결사대는 북부 해안 지대에서 조금씩 전진할 수 있었다.
“오우거 던전이다!”
“막아버려! 이 던전을 막기만 하면 오우거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거야!”
몬스터와의 전쟁은 인간과 인간의 전쟁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거점을 장악하고 적의 보급과 생산을 차단하는 것.
던전을 장악하는 것이 바로 적의 보급과 생산을 차단하는 일이었다.
튀니지 결사대는 던전을 하나하나 점령하며 조금씩 영역을 넓혀 갔다.
결사대는 처음으로 ‘사람’을 발견하였다.
“저거… 사람 맞지?”
“우리 몰골도 심각하긴 한데, 저쪽은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군.”
“환경이 이러니 어쩔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들 앞에 나타난 일단의 무리는 성기만 간신히 가리는 거적때기를 입고 있었다.
마치 시대를 건너뛰어 고대 원시인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대장님. 어떻게 합니까?”
“으음. 일단 데리고 와. 먹을 것도 나눠 주고.”
“위험하지는… 않겠군요.”
“뭘 걱정하고 그래. 우리의 전력이라면 국가조차 막을 수 없을 텐데. 하물며 저런 거지 떼, 흠흠! 원주민 무리라면.”
대원들에게 대장이라 불린 헌터는 튀니지 난민들에게 선의를 베풀어주었다.
먹을 것을 나눠주고 잠자리까지 배정해주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튀니지 난민들은 살짝 어눌하게 느껴지는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로 연신 감사 인사를 하였다.
그러자 대원들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몬스터로부터 고통받던 사람들을 해방하였으니 뿌듯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수상하군.’
결사대가 난민 무리와 접촉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앤디 올드먼은 미간을 좁혔다.
그는 보았다.
난민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한 기운을.
‘이미 자신의 영혼을 바친 자들인 건가.’
하지만 앤디 올드먼은 자신이 알게 된 사실을 결사대 동료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사실 그로선 알려줄 필요가 없었다.
결사대는 진정한 동료가 아니었으니까.
앤디 올드먼의 예상대로 튀니지 난민들이 일을 벌였다.
캠프 한복판에서 폭동을 일으킨 것이다.
“뭐, 뭐야? 왜 갑자기 지랄 염병이야?”
“설마 난민들에게 영국의 전투식량을 배급한 건가!”
“개소리하지 말고 저놈들 빨리 제압해! 이러다 몬스터 쳐들어오면 위험하다고!”
결사대 대원들은 당황했지만, 패닉에 빠지지는 않았다.
그래봤자 무장도 하지 않은 비각성자들이었다.
물론 죽음도 불사하며 미친 듯이 달려드는 저들의 광기 어린 태도는 당혹스럽긴 하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때 난민 중 한 명이 갑자기 검을 소환하더니 대원들의 목을 베었다.
“로맹이 죽었어!”
“비, 빌어먹을! 헌터가 숨어있었다니!”
“제압은 못 할 거 같습니다!”
“제압 같은 소리! 그냥 다 죽여!”
“저, 정말 다 죽입니까?”
“아군을 죽인 이상, 저놈들은 적이다!”
대원들이 한 명씩 목숨을 잃자, 그들은 더 이상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
스킬을 사용하여 난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하였다.
유일하게 검을 든 난민만이 끝까지 남아 발악하였다.
“이 새끼, 육체 능력은 형편없는데 왜 이렇게 끈질긴 거야?”
“사탄에게 뭔가를 받았나 보지!”
“개 같은 사탄주의자 놈들….”
물론 그 난민의 저항도 오래가지 못하였다.
사지가 베어지자 결국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이후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며칠을 굶주렸다면서 식량을 구걸하던 난민들은 밤이 되면 사람이 바뀐 것처럼 광기 어린 얼굴로 결사대를 공격하였다.
결사대는 비슷한 사태가 반복되자 단호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단호한 정도를 넘어, 의심스러운 난민 무리를 만나면 바로 공격하였다.
나중에는 일단 공격하고 나서 진짜 난민인지 아닌지를 따질 정도였다.
간혹 사탄주의자와 관련이 없는 난민 무리도 만났다.
하지만 결사대는 그들을 믿지 않았다.
마치 범죄자를 다루듯 다루었고 조금이라도 저항한다면 현장에서 즉결처분하였다.
그러자 적들은 더욱더 교활해졌다.
매복, 유인, 기습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그들을 공격하였다.
“무슨 게릴라 부대를 상대하는 기분이군.”
“문제는 게릴라 부대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지.”
낮에는 몬스터가, 밤에는 인간의 형태를 한 적이 공격하였다.
결사대 대원들은 나름대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들이었지만,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 전투에 빠르게 지쳐갔다.
‘아무래도 이번 전쟁의 지휘권은 마법사들에게 양도할 수밖에 없겠어.’
악전고투가 계속되자, 결사대 대장은 그 같은 결심을 내렸다.
‘드디어.’
앤디 올드먼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결사대에 참가한 것은 그가 바라던 일이 아니었다.
국민 여론, 그리고 교내 여론 때문에 등 떠밀리듯 억지로 참가하게 된 것.
그렇기에 그는 전투에서 그리 열의를 보여주지 않았다.
물론 건성으로 임했음에도 대원들은 그의 활약을 보고 환호하기 바빴지만 말이다.
그러던 중 결사대의 피해가 나날이 커졌다.
벌써 전력에서 이탈한 인원만 500명이 넘을 정도.
이때쯤 되자 결사대 지휘부도 위기감을 느꼈다.
영토를 수복하기는커녕 전멸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었다.
“…앤디 올드먼 경. 경이 저희를 이끌어주셨으면 합니다.”
위기감을 느낀 결사대 지휘부는 마침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지휘권을 앤디 올드먼에게 양도한다는 결정이었다.
이는 실로 놀라운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결사대 내부에서 은연중 앤디 올드먼을 견제하는 헌터가 적지 않았다.
마법사라는 존재가 그들에겐 달갑지 않게 느껴졌던 것이다.
국가 간의 갈등도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결사대 지휘부는 그런 여러 조건을 배제하였다.
내부 갈등보다 일단 영토를 수복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저를 믿고 따라준다면 승리를 안겨주겠습니다.”
“믿겠습니다. 앤디 올드먼 경!”
그렇게 앤디 올드먼은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 튀니지 결사대를 장악하였다.
‘이렇게 된 이상, 빠르게 토벌을 끝내야겠어. 박한새, 그자가 오기 전에 말이야.’
그는 아프리카에 오고서 단 한 순간도 경계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언제 박한새가 기습을 시도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몬스터를 사냥할 때도 제대로 집중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음에도 박한새는 그 어떤 수작도 부리지 않았다.
이쯤 되니 앤디 올드먼은 박한새가 루키푸구스 토벌에 관심이 없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의 생각이 맞다면 앤디 올드먼에게 있어 기회라고 볼 수 있었다.
마법사의 명성을 드높일 수 있는 기회 말이다.
‘아프리카에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해주지.’
“지휘권이 앤디 올드먼에게 양도되고 연전연승한다던데?”
“제길.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그 허우대만 멀쩡한 마법사 놈보다 더 활약할 수 있었을 텐데!”
앤디 올드먼이 지휘권을 장악하고서 튀니지 결사대는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순식간에 해안 지대를 넘더니, 튀니지 수도까지 진격할 정도였다.
“이대로 가만히 지켜봐야 해?”
“아직 협회장님은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았어.”
“루키푸구스는 우리 IHA 요원을 살해한 악신이야!”
“…어쩌겠어. 위의 지시를 기다려야 하는데.”
“이러다 마법사들이 그 악신이라는 놈을 죽여버리면 어떡하지?”
“적어도 유럽은 마법사들의 세상이 되지 않을까.”
“최악이잖아!”
IHA 사람들은 앤디 올드먼의 활약을 심각한 눈으로 바라봤다.
인류가 이기는 것은 좋았다.
하지만 자신들의 대척점에 서 있는 마법사 세력이 득세하는 꼴은 절대 보고 싶지 않은 게 그들의 본심이었다.
“협회장님. 간부들도 지금의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는 거 같은데, 이대로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어도 괜찮겠습니까?”
확실히 앤디 올드먼의 활약이 대단하긴 한가 보다.
평소 침착한 성격으로 유명한 장성민까지 저리 말하는 것을 보면.
하지만 나는 그에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루키푸구스쯤 되는 성좌가 그리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 수련에 집중하라 전해주십시오. 곧 활약할 순간이 올 겁니다.”
당분간 앤디 올드먼의 이름이 전 세계에 울려 퍼질 것이다.
아마 인류의 희망이니 아프리카 정복자니 그런 별명이 붙게 되겠지.
하지만 그 정도는 허용 범위였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루키푸구스를 누가 잡느냐이니까.
‘루키푸구스를 잡는 건 내가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