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지금 나는 거의 폐관 수련을 하듯 오랜만에 무공 수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갑자기 수련에 집중하게 된 이유는 하나의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무협 지식으로 말하자면, 이른바 깨달음이었다.
하지만 이걸 깨달음이라고 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왜냐하면 깨달음에 집착하지 말자는 것이 내가 새로 얻은 깨달음이었으니까.
‘나는 그동안 너무 깨달음에 집착하였었다. 지금 경지에 오르기까지 깨달음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었는데도 말이야.’
보법, 검기, 검풍, 점혈 등등.
그동안 나는 무협지에 나오는 무공 기술들을 참고하여 무공을 만들었었다.
그래서 초절정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무협지에서 나오는 루트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즉, 깨달음이란 것을 얻어야지만 경지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무공에 대한 이해도가 늘수록, 꼭 깨달음 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초절정 고수의 경지를 ‘구현’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를 테면 이런 거다.
무협지에서 흔히 등장하는 검강.
초절정 고수가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나 역시도 이 검강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였다.
검강을 배우면 검기의 공격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검기를 나선형 구조로 형성한다면 검기의 위력이 더 강해진다는 사실을.
‘꼭 나선형 구조가 아니어도 돼. 검기를 어떤 구조로 생성하냐에 따라 위력은 천차만별이다.’
그 뒤로 나는 정형화된 검기를 버리고 새로운 검기를 계속 만들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런 시도를 했었다면 아마 ‘주화입마’를 당했을지도 몰랐다.
단전을 통해 정제된 무인의 내공은 비교적 안정적이었지만, 내공의 본질은 마력이었다.
그리고 마력은 폭발의 위험성을 안고 있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다.
당연히 새로운 시도는 위험을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천부적인 마력 감응력이 있었고 15년 이상 내공을 다룬 경험도 있었다.
검기를 내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변형하면 위험이 따를지, 안 따를지 정도는 바로 알 수 있다는 뜻.
그렇게 새로운 검기를 만드는 것에 집중한 결과, 나는 엄청난 위력을 가진 검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외형부터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검기였다.
이전에는 그저 일직선 형태였다면, 지금은 복잡한 기계를 보듯 여러 형태가 혼재되어 있었다.
“그, 그게 검강입니까?”
“검강이라 부르고 싶긴 한데, 일단 테스트부터 제대로 해봐야겠습니다.”
위력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예상하는 것과 실제 위력은 또 다를 수 있는 법.
“한번 검기를 만들어보시겠습니까?”
“제 검기를 막아보십시오.”
장성민이 나보다 더 긴장한 태도로 검기를 발출하였다.
강충구의 사제답게 비각성자치고 상당히 위력적인 검기였다.
하지만.
그 위력적인 검기조차 내 검기에 닿기 무섭게 박살이 났다.
검기만 박살 난 것이 아니었다.
장성민은 검기가 부서지는 순간, 트럭에 치이기라도 한 것처럼 멀리 날아갔다.
입에선 주르륵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다급히 그의 혈을 눌러 중상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았다.
“괜찮습니까?”
“진짜 검강을 만드셨군요.”
냉철한 성격답게 고통스러울 텐데도 그저 검강 이야기만 하였다.
“엄청난 위력입니다. 절정 고수들도 사부님의 검강은 버틸 수 없을 거 같습니다.”
기존의 검기라면 아무리 많은 내공을 밀어 넣어도 한계는 명확하였다.
내 검강에 닿는 순간, 장성민의 검기가 그랬던 것처럼 파괴되고 말리라.
‘심지어 효율도 좋지.’
만드는 방법만 복잡할 뿐, 검강의 내공 소모는 생각보다 적었다.
검기처럼 며칠이고 유지할 정도는 아닐 테지만, 몇 시간 정도야 문제없이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이건 내가 내공을 8갑자나 보유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사부님.”
“일단 쉬십시오.”
장성민을 돌려보낸 뒤, 다시 무공 수련에 집중하였다.
‘공격력을 극대화하였으니, 이제는 방어력이다.’
검강은 아직 완성된 게 아니었다.
하지만 뼈대는 만들어졌으니, 내용물은 나중에 채우면 됐다.
지금 중요한 것은 방어력.
즉, ‘검막’을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초절정 고수의 검막이라면 호신강기쯤 되어야겠지?’
강기란 것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이제 알았다.
127개에 달하는 혈도를 특정한 흐름으로 지나친 뒤, 내공으로 강기를 구현할 때 나선형과 와선형이 혼재된 특정한 도형을 만들어내면 된다.
물론 말이 간단한 것이지, 아마 이를 배우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성은이나 이정 같은 천재들도 몇 년이 필요할지도 모를 일.
하지만 어찌 되었건 나는 이미 검강을 만들면서 여러 노하우를 터득하였다.
호신강기도 똑같은 방식으로 구현한다면 검강처럼 어렵지 않게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예상대로 호신강기는 쉽게 만들어낼 수 있었다.
장성민에게 테스트해본 결과,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아마 S랭크급 방어 스킬도 내가 만든 호신강기보다 단단하지는 않을 거 같았다.
“이제 남은 건 하나뿐이다.”
무협지에서 흔히 나오는 것이 있다.
초절정 고수라면 빠질 수 없는 것.
신체의 재구성.
즉, 환골탈태였다.
사실 어찌 보면 검기를 검강으로 강화하는 것보다 이게 더 급하다고 볼 수 있었다.
인간의 육체는 몬스터들의 육체와 비교하면 너무도 나약하였다.
아무리 내공으로 육체를 강화해도 한계는 존재하였고 말이다.
동체 시력이나 반응 속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적이 빛의 속도로 나를 공격하면 나는 호신강기에 의존한 채, 거북이마냥 숨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반드시 육체의 피지컬을 상승시켜야만 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건 바로 영약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만년설삼’을 구매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예’를 누르자 내 앞에 엄청난 영기를 품은 영약이 생성되었다.
이 영약 하나만 복용해도 1갑자의 내공이 늘어나는 효과를 가져다줄 터.
물론 원래라면 나로선 굳이 복용할 이유가 없었다.
이미 막대한 내공을 가진 상태에서 만년설삼 수준의 영약을 복용하는 건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알았음에도 만년설삼을 구매하였다.
[‘만년지극혈보’를 구매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만년하수오’를 구매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추가로 구매한 영약들.
전부 만년설삼만큼의 가치를 지닌 영약들이었다.
내공이 부족한 편에 속하는 무인이라면 그야말로 천금을 줘서라도 구매했을 영약들.
나는 그런 영약들을 동시에 복용하였다.
가장 먼저 만년설삼을 복용하자 엄청난 내공이 해일처럼 쏟아졌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른 영약들까지 추가로 복용하자 해일 수준이 아니었다.
아마 지금 내 몸을 누군가 봤으면 기겁했을 것이다.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포화 상태였으니.
‘내 이론은 틀리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침착하였다.
예상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깨달음은 필요 없다. 내가 가진 재능과 무공 이해도를 바탕으로 육체를 재구성하리라.’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듣고 나는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세상이 달라 보였다.
무채색이었던 세상에 색깔이 칠해진 것처럼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심지어 문밖에서 누가 노크하는지도 직접 두 눈으로 보는 것보다 뚜렷하게 보였다.
‘이것이 환골탈태인가.’
물론 겨우 이 정도 변화로 끝은 아니겠지만, 나는 이미 내 몸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확실하게 느꼈다.
더 빠르고 더 예민하며 더 강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력’ 즉, 내공의 친숙도가 높아졌다.
몸 곳곳에 고속도로 아니, KTX를 깐 느낌이었다.
다시금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나는 문밖을 향해 말했다.
“들어오십시오.”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훈련실 안으로 들어왔다.
“정소연 헌터.”
“이, 이게 무슨 일인가요? 혹시 습격을 받으셨던 건가요?”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은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내 몸속에서 뻗어나간 내공의 폭풍이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든 것.
‘정작 내 몸은 멀쩡한데 말이지.’
심지어 의복도 멀쩡하였다.
역시 아이템이 좋긴 좋은 듯싶었다.
“제가 훈련실에 들어오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습니까?”
나는 조금 걱정하였다.
왜, 무협지에서도 깨달음을 얻어서 수련에 집중하니 수개월이 훌쩍 지나가고 그러지 않던가.
심지어 나는 환골탈태한답시고 죽고 살기를 반복하였으니 시간 개념이 더 흐트러졌다.
‘진짜 몇 달 이상 지났을 수도 있겠어.’
몇 달이 지났다면 루키푸구스를 토벌하는 일도 이미 끝났을지 몰랐다.
만약 그렇다면 앤디 올드먼은 전 세계에서 엄청난 인기인이 되었겠지.
‘설령 그렇다 해도 이제는 상관없다.’
초절정 고수가 되었기 때문일까?
마법사들과의 경쟁이 이제는 시답지 않게 느껴졌다.
물론 검강도, 환골탈태한 새로운 육신도 아직은 적응이 끝나지 않았다는 문제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 또한 상관없다. 나에게는 수련 효과 x200 상승권이 있으니까.’
단 하루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나는 완전한 상태가 될 수 있으리라.
내가 그 같은 생각을 하며 자신감을 가지는데, 정소연이 이상한 얼굴로 말했다.
“정확히 17시간 지났어요.”
“17시간이라….”
이번에도 괜히 오버했던 듯싶었다.
성좌의 성격은 인간처럼 각양각색이었다.
그리고 성격이 천차만별이듯, 세상에 개입하는 방식도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성좌는 오직 한 명의 권속만 둔 채 권속의 성장을 지켜봤다.
또 어떤 성좌는 여러 권속을 두기도 했고 어떤 성좌는 아예 권속을 안 두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성좌도 있었는데, 바로 ‘화신’을 통하여 직접 세상에 현신하는 성좌였다.
“벌레 놈들이 거슬리게 하는군.”
루키푸구스.
사람들은 흔히 ‘사탄’이라 부르는 그의 경우는 화신을 통하여 직접 세상에 개입하는 쪽이었다.
성좌들 중에선 극히 드문 성향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만큼은 의외로 흔한 일이었다.
아프리카는 그야말로 악신들의 각축장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악신들 간의 땅따먹기가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벌레 따위가 감히 신의 영토를 노리다니.”
동과 서 그리고 남.
그 어떤 방향으로도 세력 확장이 어렵다고 느낀 루키푸구스는 북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본래는 ‘심연을 들여다보는 자’ 즉, 파롤의 영역으로 인정받던 지역이었다.
파롤은 가장 강대한 힘을 가진 악신.
루키푸구스도 어려워하는 상대였다.
하지만 파롤의 세력은 아프리카 남쪽 끝에 있었고 파롤이 그를 응징하기에는 중간에 있는 세력들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루키푸구스는 북쪽으로의 세력 확장을 꾀했다.
이 판단은 나름대로 틀리지 않았다.
파롤은 지금껏 그를 응징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황당하게도 파롤이 아닌, 인간 따위가 그를 응징하기 위해 그의 영토를 침공하였다.
그것도 무려 수천 명의 인간이 말이다.
‘마법사라. 저놈들을 믿고 나를 치러 온 건가? 차라리 무인이라 불리는 놈들이라면 모를까, 파롤의 졸개 따위를 믿고 오다니 말이야.’
루키푸구스는 조소를 흘렸다.
인간들이 자신을 죽여달라고 애원하니 신으로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뻔했다.
죽이고 또 죽여서 카르마로 환원시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