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흐흐, 블랙잭이라고.”
“운 좋은 놈! 어떻게 세 번 연속 블랙잭이야?”
“나 운 좋은 거 인제 알았어? 푸하하!”
튀니지 결사대의 원정은 순조로웠다.
어찌나 순조로웠는지 부대 내에서 카드 도박이 성행할 정도였다.
프랑스 헌터, 앙투안도 카드 도박을 즐겼다.
블랙잭을 세 번 연속으로 한 덕에 일반인의 한 달 월급 수준의 돈을 따냈다.
물론 고랭크 헌터들에게 이 정도야 용돈 수준이었지만.
“그런데 너희들 그 이야기 들었어?”
“무슨 이야기?”
“요즘 종자 놈들이 올드먼한테 마법을 배운다던데?”
“마법을?”
“아니, 올드먼이 뭐가 아쉽다고 종자 놈들에게 마법을 가르쳐줘?”
앙투안은 카드 도박을 하던 중, 한 가지 소문을 접하였다.
앤디 올드먼이 마법을 가르쳐준다는 소문이었다.
‘마법이라. 배울 수 있으면 나쁘지 않은데 말이야.’
더 강해지고 싶은 욕구가 앙투안이라고 없을 순 없었다.
오히려 그는 B랭크 헌터이기에 강해지고 싶은 욕구가 대단히 강했다.
“장, 마법사들에게 마법을 배우고 있다던데, 사실이냐?”
그는 종자 즉, E랭크 헌터인 장을 찾았다.
소문으로는 장도 앤디 올드먼에게 마법을 배우고 있다고 하였다.
“…예, 기초 마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한번 사용해봐.”
B랭크 헌터이자, 업계의 한참 선배인 앙투안의 말을 거부할 수는 없는 일.
장은 복잡한 룬어를 외우며 두 손으로 기초 마법을 펼쳤다.
매직 미사일이란 마법이었다.
앙투안은 그 모습을 보며 감탄하였다.
E랭크 헌터에 불과한 장이었다.
중세시대 기사가 거느렸던 종자처럼 일종의 잡일을 담당하기 위해 결사대에 참여한 하급 헌터였다.
그런 하급 헌터의 손에서 누가 봐도 멀쩡하게 느껴지는 스킬이 펼쳐졌다.
물론 그건 스킬이 아닌, 마법이었다.
‘대마법사에게 직접 배우는 건 확실히 다른가 보군.’
그가 영국의 마법 학교에 다니는 지인에게 듣기로는 마법을 배우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랭크가 높은 헌터들도 최소 한 달 이상은 있어야 기초 마법을 펼친다나?
그런데 장은 고작 E랭크 헌터의 볼품없는 사내였다.
그런 장이 이렇게 빨리 마법을 배웠다고 하니 앙투안으로선 앤디 올드먼의 지도 실력을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한번 배워봐야겠어.’
안 그래도 마법의 강력함은 이번 원정에서 몇 번이고 느꼈다.
설령 그가 기적적으로 S랭크 헌터가 된다고 해도 앤디 올드먼만큼은 이길 수 없으리라.
‘혹시 알아? 내가 마법에 재능이 있어서 앤디 올드먼보다 더 강력한 마법사가 될지?’
사실 그는 내심 앤디 올드먼을 불쾌하게 여겼었다.
단순히 앤디 올드먼이 영국인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얼굴, 무력, 사회적 영향력 등.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우월한 앤디 올드먼의 모습에 질투를 느낀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마법을 배우면 반드시 앤디 올드먼을 뛰어넘어보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제 말을 따라 해보십시오. 제이란트 메카틴 모홀 퀴임 쥐오른 배티아르 뮈센 하이브르 조웨르퀴 하졔.”
앤디 올드먼에게 가서 마법을 가르쳐달라고 청하자 그가 대뜸 이상한 주문을 외웠다.
“제…, 뭐라고요?”
“제이란트 메카틴 모홀 퀴임 쥐오른 배티아르 뮈센 하이브르 조웨르퀴 하졔.”
“제이란트 메카틴 모홀….”
앙투안이 다음 내용이 기억 안 난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자 앤디 올드먼이 다시금 주문을 외웠다.
하지만 이번에도 앙투안은 끝까지 외우지 못하였다.
사실 그는 내심 ‘내가 왜 이런 걸 외워야 하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 집중이 안 되기도 했다.
“가장 기초적인 룬어입니다. 그런데 세 번이나 이야기했는데도 제대로 따라 하지 못하시는군요.”
“…제가 기억력이 좀 안 좋은 편이라서.”
앙투안이 뒷머리를 긁적이자 앤디 올드먼이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마법을 배우실 수 없습니다.”
“겨우 이거 가지고 마법을 배울 수 없다니요. 농담이시죠?”
“겨우 이것도 외우지 못하니 배울 수 없다고 하는 겁니다.”
앤디 올드먼은 단호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말했다.
그러자 앙투안은 미간을 좁혔다.
“설마 제가 과거에 마법사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여서 이렇게 나오는 겁니까?”
“그런 건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전 그저 당신이 멍청해서 제자로 두지 않겠다고 말하는 겁니다.”
“뭐, 뭐라고 했습니까? 멍청하다고요?”
앙투안은 얼굴이 새빨개졌다.
고랭크 헌터로 반평생을 살아온 그였다.
이런 모욕은 당연히 처음으로 경험해보는 것이었다.
“저희 형이 프랑스 헌터 협회의 이사라는 사실을 잘 모르시나 봅니다.”
“그래서라니! 나에게 잘못 보이면 당신의 마법이 프랑스에서 배척당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거다!”
-해봐. 프랑스 헌터 협회? 네가 설령 프랑스 헌터 협회의 협회장이라 해도 내가 두려워할 거 같나?
앤디 올드먼은 싸늘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아니, 입으로 말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분명 마법이나 다른 무언가로 그에게 자신의 본심을 전한 것이리라.
‘이 자식이!’
앙투안은 크게 분노하였다.
하지만 S랭크 헌터도 감당할 수 없는 앤디 올드먼에게 B랭크 헌터인 그가 싸움을 걸 순 없는 일.
“두고 보자!”
결국 그는 그 말을 외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감히 나를 모욕하다니. 그깟 기억력이 뭐가 중요하다고!’
다른 놈은 되고 왜 자신은 안 된단 말인가?
그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복수하기로 한 앙투안은 프랑스 헌터들을 모아 앤디 올드먼을 비난하는 여론을 형성하려고 하였다.
“올드먼 경을 그렇게 말씀하시다니, 실망입니다.”
“앙투안. 우리가 올드먼 경에게 몇 번이나 도움을 받았는지 벌써 잊은 것이냐?”
“대세는 마법인데, 대마법사를 비난해봤자 얻을 게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프랑스 헌터들은 되려 그를 비난하기 바빴다.
마치 앤디 올드먼의 추종자 같은 반응이었다.
‘저 영국 놈이 뭐라고!’
복수하려다가 오히려 화만 쌓였다.
그가 그렇게 울분에 쌓여 있을 때, 그의 눈앞에 검은 안개가 나타났다.
-마법이란 힘이 탐이 나는가?
-나는 힘을 줄 수 있다. 네가 그토록 바라는 마법이란 힘을 말이야.
앙투안은 눈을 부릅떴다.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건… 악마의 목소리!’
정확히는 루키푸구스의 목소리인 게 분명하였다.
하지만 정작 앙투안은 지금 들리는 목소리가 루키푸구스의 목소리임을 알았음에도 제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법이란 힘을 제게 어떻게 준다는 겁니까?”
앙투안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공손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그는 몰랐지만, 루키푸구스의 영역에서는 탐욕이 더 강해졌다.
하물며 앙투안처럼 원래도 탐욕이 강했던 사람이라면?
지금 앙투안은 참을 수 없는 탐욕을 느끼고 있었다.
마법을 향한 탐욕을 말이다.
-나는 성좌다. 내 권속이 된다면 마법을 부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지. 우선 선물을 주마.
갑자기 허공에서 스태프 하나가 생성되었다.
-사용해보아라.
“이, 이걸 어떻게?”
앙투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스태프를 들어 올리자 사용법이 떠올랐다.
그리고 스태프로 마법을 펼친 그는 감탄을 거듭하였다.
‘이, 이게 마법의 힘!’
불, 물, 얼음, 흙….
다양한 속성의 마법들이 그가 쥔 스태프에서 펼쳐졌다.
-어떠냐?
“대, 대단합니다!”
-내 권속이 되면 이보다 더 강해질 수 있다. 어떤가. 나와 계약하지 않겠나?
“계약하겠습니다. 반드시!”
-좋다. 이제부터 너는 내 권속이다.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마법사를 죽여라.
-만약 그 스태프로 마법사를 제거한다면 제거할 때마다 더 강한 힘을 주겠다.
갑작스러운 명령이었다.
그의 현재 위치를 생각하면 절대 들어줄 수 없는 명령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때 다른 생각을 하였다.
마법사를 죽이면 더 강한 힘을 주겠다니!
어쩌면 앤디 올드먼보다 강해질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영국 놈들이다. 그깟 영국 놈들 따위, 얼마든지 죽여도 상관없다.’
언제나처럼 몬스터 무리가 들이닥쳤다.
다른 대륙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8성급 몬스터들.
그런데 아프리카에서는 한 번 습격할 때마다 8성급 몬스터가 꼭 끼어 있었다.
물론 튀니지 결사대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8성급 던전 보스도 수차례 격퇴한 그들이었다.
일반 몬스터가 끼어 있다고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루, 루시가 쓰러졌어!”
“뭐야! 루시가 갑자기 왜 쓰러져?”
“뒤에서 날아온 공격에 당했어!”
“미친! 어떤 미친놈이 아군을 공격해!”
그러던 중 큰 사건이 일어났다.
루시라는 하급 마법사가 아군이 있는 후방에서 날아온 공격을 맞고 사망한 사건이었다.
“루시를 공격한 건 스킬이 아니라, 마법이었어!”
루시를 공격한 범인은 앙투안이었다.
하지만 정작 앙투안은 본인이 먼저 마법사를 의심하였다.
마법을 배우지 않은 자신에 대한 의심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일단 지금은 전투에 집중해!”
“빌어먹을! 내부 총질을 하는 놈을 뒤에 두고 싸워야 한다니!”
대원들은 다시 몬스터와의 전투에 집중하였다.
마법사 한 명이 당한 것은 분명 큰 피해지만, 지금 그들 눈앞에는 무려 수백 마리의 몬스터가 있었다.
즉, 몬스터와의 전투를 끝내는 게 우선순위였던 것.
‘크크. 이거 나쁘지 않은데?’
앙투안은 다른 대원들처럼 몬스터와의 전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엄청난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루시는 마법 학교 1학년에 불과한 하급 마법사였다.
그런데 겨우 하급 마법사를 죽였다는 이유로 그의 성좌, 루키푸구스는 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힘을 주었다.
이제는 ‘파이어볼’이란 마법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다음은 저놈이다.’
E랭크 헌터 장.
마법을 조금 배웠다고 자신을 무시하던 놈이었다.
앙투안은 기회가 생기자 루시를 공격했을 때처럼 뒤에서 장을 공격하였다.
이번에는 새로 배운 파이어볼로 펼친 공격이었다.
“장! 괜찮아?”
“젠장! 장이 죽었어!”
“또 뒤야! 분명히 뒤에서 날아왔다고!”
장을 죽인 앙투안은 다시금 희열을 느꼈다.
하급 마법을 새로 얻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개방되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스태프로 펼칠 수 있는 마법의 개수가 늘어난 것에 불과했으니.
물론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스태프를 쥐고 있는 자신의 무력이 더 강해졌다는 것.
오직 그 사실만 중요할 따름이었다.
‘대마법사가 될 때까지 몇 놈이고 죽여주마. 크크큭!’
하지만 그는 몰랐다.
앤디 올드먼의 시선이 어느덧 그를 향해 있다는 사실을.
앤디 올드먼은 분노를 참기 어려웠다.
이런 시시한 전투에 자신의 제자들이 죽다니!
심지어 몬스터도 아니고 아군의 손에 죽었다는 것이 그를 분노하게 하였다.
분노한 그는 자신의 제자들을 몰래 죽인 흉수를 금세 찾아냈다.
“앙투안! 네놈이 감히 나의 제자를 죽여?”
“결사대 대원들이 죽을 때는 눈 하나 깜빡 안 하더니 제자들 목숨은 소중했나 봐?”
“용서하지 않겠다!”
그는 일체의 망설임 없이 마법을 펼쳤다.
하지만 앤디 올드먼은 이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펼친 마법이 갑자기 공중에서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하하하하! 대마법사의 마법도 별거 없네!”
그는 진지한 눈으로 앙투안을 노려봤다.
디스펠 능력이라니.
앙투안에게 그런 스킬이 있다고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역시 저 스태프가 문제겠군.’
그가 다시 마법을 펼쳤다.
앙투안이 같잖다는 듯 디스펠을 펼쳤지만 앤디 올드먼이 펼친 마법은 한 개가 아니었다.
수십 개의 마법이 동시에 펼쳐지자 앙투안도 감당할 수 없었다.
스태프에 의존하던 앙투안은 그렇게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정작 복수에 성공한 앤디 올드먼은 웃지 못했다.
“루키푸구스…. 같잖은 짓을 하는군.”
안 그래도 숫자가 적었던 마법사다.
그런데 또 몇 명의 마법사를 잃었으니 앤디 올드먼으로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절대 용서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