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저곳입니다. 루키푸구스의 마력이 밀집된 곳이.”
진격을 이어가던 튀니지 결사대는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하였다.
물론 제대로 된 목적지라고 볼 수는 없었다.
그들이 찾은 것은 그저 루키푸구스의 마력이 밀집되어있는 장소일 뿐이니.
“누가 악신 아니랄까 봐, 이런 짓을!”
튀니지 결사대 소속의 헌터들은 전부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베테랑인 만큼, 어지간한 일에는 절대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베테랑들조차 눈앞의 시체 무덤을 보면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백 구, 아니 수천 구의 인간이 쌓여서 올려진 시체 무덤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시체는 하나같이 눈을 부릅뜨고 있었는데, 수천 개의 눈이 그들을 향하자 더더욱 기괴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설마 저거 움직이지는 않겠지?”
“영화에서 비슷한 장면을 보긴 한 거 같은데.”
“빌어먹을 영화 이야기를 왜 여기서 꺼내는 거야.”
시체가 피라미드 구조로 수천 구나 쌓여있는 것은 실로 끔찍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더 끔찍한 것은 바로 그 시체 무덤이 움직인다는 사실이었다.
“우, 움직인다!”
“젠장! 진짜 움직이다니!”
꿈틀꿈틀.
마치 몸을 일으키듯, 시체들이 꾸물거리며 어떠한 형태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조금씩 잡히고 있는 그 형태는 누가 봐도 ‘사람’의 형태였다.
‘멍청한 놈들! 적이 변신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다니!’
앤디 올드먼은 속으로 혀를 차고는 강하게 외쳤다.
“시체 더미를 공격하십시오! 저것이 악신의 본체입니다!”
사실 본체일 가능성은 낮았다.
성좌의 본체가 이 세상에 현신해있을 리는 없었으니.
하지만 앤디 올드먼에게는 마치 본체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엄청난 마력이 저 시체 더미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콰콰콰쾅!
그의 지시에 따라 수백, 수천 명이 각자의 스킬과 마법을 펼쳤다.
순식간에 야포 수천 문에 버금가는 화력이 시체 더미를 뒤덮었다.
아마 몬스터에게 박히는 대미지만큼은 야포 수천 문보다 더 강할 것이다.
하지만 연기가 걷히자 그들은 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시체 더미는 거대한 거인으로 변신해 있었다.
수천 명의 인간이 겹겹이 쌓인 듯, 그로테스크한 형상의 거인이었다.
특이사항으로는 수천 개에 달하는 인간의 손이 각자 무기를 하나씩 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인간들아. 나는 도저히 너희를 이해할 수 없구나. 인간 주제에 성좌인 나에게 반기를 들다니.
대원들의 귓가에 음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악신, 루키푸구스의 목소리였다.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내게 복종하라. 영혼까지 내게 바치면 소원을 들어주겠다.
“악신과 타협할 생각은 없다!”
-후후, 악신이라. 진짜 악신은 너희가 지휘관으로 떠받드는 저 마법사 놈의 성좌일 텐데 말이야.
예상치 못한 말이었기 때문일까?
대원들은 루키푸구스의 말을 듣는 순간, 흠칫하며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앤디 올드먼은 태연하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속으로는 분노하였으나, 겉으로는 태연한 척 굴었다.
“우리를 분열케 하려는 수작입니다. 악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악신이 왜 악신이겠습니까!”
“역시 악랄하기 그지없군!”
“하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 올드먼 경이 도대체 왜 악신 따위를 숭배한단 말인가.”
금세 분위기를 되찾는 튀니지 결사대였다.
-후후후, 재미있군.
하지만 루키푸구스는 개의치 않다는 듯 웃어 보이고는 앤디 올드먼을 향해 물었다.
-파롤의 졸개여. 한 명의 마법사는 수십 명의 헌터를 대신할 수 있다지?
“…파롤의 졸개라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그리고 마법사라면 혼자서 수십 명은 능히 감당할 수 있다.”
-그럼 과연 수십 명이 아니라, 수백 명의 헌터라면?
루키푸구스가 장난스럽게 묻자, 앤디 올드먼은 미간을 찌푸렸다.
-만약 수천 명의 헌터라면 어떻겠는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과연, 파롤의 졸개들이 사용한다는 마법이 무공이란 것보다 강한지 내가 한번 확실하게 시험해주마.
하필 무공과 비교하다니.
앤디 올드먼이 버럭 화를 내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루키푸구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의 공격은 번개를 내리치거나 해일을 일으키는 그런 종류의 공격이 아니었다.
오히려 평범하였다.
스킬, 헌터들이 흔히 사용하는 스킬이었다.
그것도 기껏해야 D랭크 헌터가 가졌을 법한 스킬들.
하지만 문제는 아이템이었다.
아이템의 효과인지 분명 평범한 D랭크 헌터의 스킬들도 엄청난 공격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숫자.
별거 아닌 스킬이어도 수백, 수천 개가 쏟아지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하물며 아이템으로 강화된 스킬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으리라.
“이, 이러다 다 죽겠어!”
“막아! 방어막을 펼치란 말이야!”
“펼칠 수가 없다고!”
동시에 쏟아지는 수천 개의 스킬들.
순식간에 전열 한 곳이 붕괴하였다.
몸이 단단한 탱커들까지 단 한 번의 공격에 목숨을 잃었다.
다시 루키푸구스가 공격을 퍼부었다.
이번에도 수천 개의 다양한 스킬이 날아왔다.
앤디 올드먼은 다급히 마법을 펼쳐 막으려 들었으나 그가 막을 수 있는 스킬은 정면에서 날아온 스킬들뿐이었다.
그의 마법이 닿지 못한 전열에서는 또다시 큰 피해가 발생하였다.
결사대도 분명 인원수가 수천 명에 이르는데도 화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루키푸구스는 정확하게 같은 타이밍에 수천 개의 스킬을 날렸고 반면 결사대는 각자 준비가 되고 나서 스킬을 펼쳤다.
이러니 상대가 안 될 수밖에 없었다.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냐? 겨우 이 정도 수준으로 감히 나를 공격해?
루키푸구스의 비웃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앤디 올드먼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대원들이 죽는 것은 알 바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어렵게 키운 제자들이 죽은 것은 속이 쓰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앤디 올드먼은 참담한 심정으로 후퇴를 선언하였다.
“후퇴! 후퇴! 다시 제대로 준비하고 사탄을 멸하겠습니다!”
그의 지시가 떨어지자 헌터들은 기다렸다는 듯, 뒤로 도망쳤다.
앤디 올드먼도 일체의 망설임 없이 플라이 마법을 사용하여 물러났다.
“가, 같이 가!”
“대마법사라면서! 나도 제자인데 왜 버리는 거야!”
뒤에 남겨진 대원들이 그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아무래도 육체 능력이 떨어지는 헌터들은 제때 도망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낙오된 헌터 중에는 앤디 올드먼이 이번 원정에서 새로 제자로 뽑은 헌터도 존재하였다.
‘내가 네놈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 이유는 없잖아?’
하지만 앤디 올드먼은 냉정하였다.
기초 마법밖에 배우지 못한 초급자들의 목숨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물론 아예 마법도 배우지 못한 헌터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사, 살았다!”
간신히 살아난 대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때.
쿵! 쿵!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울려댔다.
뒤를 돌아보니 루키푸구스의 화신이 거대한 몸으로 잘도 쫓아왔다.
결사대 대원들은 그 모습을 보고 패닉에 빠졌다.
“아, 아직도 쫓아오고 있어!”
“올드먼! 대마법사라면 뭐라도 해보십시오!”
그런 대원들의 모습에 앤디 올드먼은 버럭 화를 냈다.
“입 닥쳐!”
대원들이 놀라서 입을 다물자, 앤디 올드먼은 속으로 고민을 거듭하였다.
‘혼자서라도 도망쳐야 하나?’
혼자서 도망친다면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지금까지 투자한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명예, 권력, 그리고 제자들까지.
마법의 위상은 땅끝으로 추락하여 아무도 배우지 않게 되리라.
“던전으로 간다.”
“더, 던전이요?”
“바로 이 앞에 미로형 던전이 있잖아!”
앤디 올드먼은 던전으로 도주하였다.
지형 특성상 루키푸구스 같은 거인은 절대 들어올 수 없는 던전으로 말이다.
현명한 대처였으나 이로써 그는 적지 한복판에 고립되고 말았다.
북아프리카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듣고 유럽 각국 지도부는 패닉에 빠졌다.
“뭐, 뭐라고요? 다시 한번 말해보세요!”
“결사대가 악신에 의해 전멸 위기에 놓였다고 합니다!”
“대마법사는! 대마법사가 갔는데도 악신을 어쩌지 못한 겁니까?”
“앤디 올드먼 경도 악신이라 불리는 괴수에게 패배하였습니다.”
“그, 그래서 지금 결사대는 어떻게 된 겁니까?”
“튀니지 결사대 전체가 고립되었습니다!”
실로 심각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튀니지 결사대의 대원들은 각국에서 에이스라 불리는 자들로 구성되었다.
랭크도 높고 잠재력도 뛰어난 이들이라는 것.
심지어 하나같이 연예인급으로 인지도도 높아서 그들이 죽을 경우, 엄청난 혼란이 올 가능성이 컸다.
“벌써 인터넷에서는 협회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였다.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튀니지 결사대를 구성하는 것에 적극적이었던 나라들은 이미 큰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협회 지지율뿐만이 아니라, 정부 지지율까지 크게 흔들리는 상황.
특히 IHA를 배제한 것에서 비난을 많이 받고 있었다.
“어떻게든 그들을 구출해내야 합니다. 그들을 구출하지 못하면 저희 이사진에게는 총사퇴밖에 남은 길이 없습니다!”
“총사퇴한다고 해도 비난은 피할 수 없을 겁니다!”
“지금 비난이 문제입니까? 그들은 우리 프랑스의 국력을 상징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전부 전사한다면 우리 프랑스는 누가 지킨단 말입니까!”
가장 비난을 많이 받던 프랑스 헌터 협회는 그야말로 절규하고 있었다.
이미 총사퇴는 기정사실.
하지만 그들이 사퇴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생존자들이라도 반드시 구출해야 하는 상황이란 뜻이다.
“하지만 대마법사, 올드먼 경도 당해내지 못한 상대입니다. 말 그대로 신에 필적하는 무력을 가진 존재인데, 그런 존재에게서 어떻게 헌터들을 구출해낸단 말입니까.”
튀니지 결사대를 결성했을 때만 해도 자신감이 넘쳤던 그들이다.
애초에 ‘악신’이란 존재를 진지하게 믿는 이도 별로 없었다.
대부분은 여명회 같은 새로운 빌런 조직의 출현으로 받아들였다.
즉, 악신 토벌이라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그저 명분에 불과했다는 것.
하지만 앤디 올드먼이 루키푸구스의 화신에게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은 더는 악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었다.
반신이나 다를 게 없는 위용을 보여주었던 앤디 올드먼이 아니었던가.
S랭크 헌터 여럿이 덤벼도 그에게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었다.
그런 앤디 올드먼이 패배했다고 하니 패배주의에 빠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IHA가 있지 않습니까.”
“…IHA라.”
“확실히…. 지금으로선 믿을 수 있는 패가 IHA밖에 없겠습니다.”
우습게도 최후의 상황에서 그들이 떠올린 건 IHA였다.
프랑스에서 아니, 유럽 전체가 배척하였던 IHA.
하지만 유럽인들도 알았다.
세상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무력을 가진 건 IHA뿐이란 사실을.
“저는 의문입니다. IHA라고 악신을 토벌하는 게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물론 회의적인 반응도 없지는 않았다.
단순히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발악이 아니었다.
루키푸구스가 보여준 무력.
그 경악스럽기 그지없는 무력에 절망감을 품은 것이다.
“일단 지금 중요한 것은 악신을 잡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튀니지 결사대의 대원들을 구해내야 합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맞습니다. 악신을 잡는 건 어려워도 결사대 생존 대원들을 구출하는 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IHA라면, 박한새라면 루키푸구스를 죽이는 건 불가능해도 결사대 대원들을 구출하는 건 가능하리라.
유럽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 그런데 만약 IHA가 결사대 대원들을 구출하지 않는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