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봤다.
악신의 사자라는 자를 단호하게 베어버리는 내 모습에 놀란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덤덤한 표정을 한 채 그들에게 말했다.
“사탄주의자를 수행원으로 데리고 오다니. 보안이 많이 허술하게 느껴집니다.”
마치 책망과도 같은 내 말에 그들은 얼굴을 붉혔다.
특히 바티칸 쪽 인사가 많이 부끄러워하였다.
신을 믿는 자들이 정작 악신의 졸개를 알아차리지 못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덕분에 쓸데없는 기 싸움은 하지 않아도 되겠군.’
나는 속으로 픽 웃으며 그들과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하였다.
던전은 꼭 필요하였다.
무공이 도입되면 될수록 던전 부족 사태를 겪게 될 터.
F랭크 헌터조차 4성급 이상, 심지어 5성급 던전도 사냥이 가능해지는 시대가 온다.
안 그래도 던전의 수가 그리 넉넉하지 않았는데 헌터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되면 당연히 던전의 수는 더 부족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북아프리카의 던전을 얻는 것으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북아프리카의 던전을 가지는 건 당연한 권리였다.
우리 아니면 누가 북아프리카를 수복하겠는가.
우리 아니면 누가 어떻게 북아프리카의 던전을 관리할 수 있겠는가.
인구라고는 100만이 넘을지조차 의문인 튀니지 망명 정부가 던전을 관리할 순 없는 일.
내가 원하는 것은 IHA 영향력의 확대였다.
‘최소한 던전 브레이크 상황 때의 지휘권은 우리 쪽으로 가져와야 한다.’
유럽은 8성급 던전 브레이크 사태가 벌어졌을 때, IHA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사태를 해결하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입지 않아도 될 피해를 상당히 입어야 했다.
그래도 그때는 8성급이라 피해를 약간 입는 정도로 끝이 났다.
그런데 만약 9성급 던전 브레이크 사태가 벌어진다면?
‘애초에 만약의 일이 아니라, 반드시 일어날 일이지.’
회귀 전, 유럽은 이미 8성급 던전 브레이크 사태 때 여명회의 5사도의 진격을 제대로 막지 못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었다.
그리고 9성급 던전 브레이크 사태가 벌어지자 섬나라인 영국을 제외하고 모조리 멸망하였다.
멸망한 유럽 땅에는 악신들이 들어섰고 말이다.
나는 이 같은 미래의 일을 방관할 마음이 없었다.
이미 남미를 비롯하여 한국, 러시아, 일본, 대만 등, 여러 국가에서는 비상 상황 지휘권을 획득한 상태.
유럽에서도 반드시 지휘권을 획득하여 위기 상황 때 지휘계통을 통일화할 필요가 있었다.
“예상 밖이네요. 설마 우리의 요구를 다 들어줄 줄이야.”
협상은 순조롭게 끝이 났다.
내 요구를 전부 수용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그만큼 유럽의 사정이 안 좋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보다는 한새 씨가 욕심이 너무 적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죠.”
돈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영토를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어찌 보면 대세에 순응하라는 요구밖에 한 것이 없었다.
그러니 욕심이 적었다는 그녀의 말이 틀리다고 볼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내게 있어 IHA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지.’
회귀 전에 겪었던 인류의 위기들.
그런 위기들이 다시 발생하게 될 때, 전 인류가 IHA 아래 힘을 합치는 게 바로 내가 원하는 일이었다.
“아무튼, 슬슬 원정대를 모집해야겠네요.”
유럽과 협상이 끝났으니 아프리카로 출동할 준비를 해야 했다.
“아니요. 따로 원정대를 모집할 필요 없습니다.”
“각 학교의 총장과 무공 학과장들만 불러주십시오.”
나는 최소한의 인원으로 신속하게 북아프리카로 향할 생각이었다.
‘이미 튀니지 결사대가 구성되어 있는데 추가로 인원을 모집할 필요는 없지.’
튀니지 결사대의 생존자 수는 그래도 이천 명이 넘을 것이다.
그 정도 숫자라면 원정을 이어나가기에 충분한 숫자.
굳이 인원을 추가하여 애꿎은 피해를 늘릴 필요는 없었다.
‘이참에 튀니지 결사대를 IHA 소속으로 만들고 말리라.’
나즐라는 답답한 표정으로 이성은에게 따지듯 물었다.
“언제까지 대기해야 하는 거야?”
“그야, 사부의 지시가 떨어질 때까지 대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성은은 조급함을 드러내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곧 원정대가 만들어지고 본격적인 원정이 시작될 텐데 조급할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나는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아.”
나즐라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그리 말했다.
“설마 튀니지로 간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닐 거라 믿습니다.”
“어차피 협회장도 곧 올 거라며? 선발대라고 치지 뭐.”
“사부께서는 그런 지시를 내린 적이 없습니다.”
“현장에서 더 가까운 건 우리야. 현장 상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나즐라는 자신 때문에 부하가 죽었다는 죄책감을 안고 있었다.
그 죄책감 때문인지 그녀는 유럽 전역을 돌며 사탄주의자를 잡아내 부하의 복수를 이어왔다.
하지만 그 정도로 만족하기는 어려웠다.
사탄주의자 따위, 아무리 잡아봤자 사탄주의자가 숭배하는 사탄, 루키푸구스를 잡지 못하면 의미가 없었으니까.
‘박한새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놈이 도망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녀가 생각하는 최악의 경우란, 루키푸구스가 사라지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박한새의 무력이라면 신도 두려워하는 게 정상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녀는 조급할 수밖에 없었다.
루키푸구스가 도망치기 전에 잡으러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본부장님.”
“협회장님이 지금 막 비행기를 타고 이탈리아로 오고 계시다고 합니다.”
나즐라는 눈을 크게 떴다.
설마 박한새가 이렇게 빨리 출발할 줄이야.
이러면 굳이 그녀가 먼저 출발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마침내 박한새가 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으로 박한새를 마중 나온 나즐라는 눈을 크게 떴다.
멀리서 박한새의 모습이 보였다.
“분명, 원정대와 같이 온다고 하지 않았어?”
“저도 그렇게 듣긴 했는데…. 수행원의 수가 적군요.”
나즐라는 박한새의 수행원 수를 보고 놀랐다.
“겨우 열 명…?”
분명 이성은에게 듣기로 토벌대 대원들과 함께 온다고 하였는데 왜 겨우 열 명이란 말인가.
“그게 다인가요?”
나즐라가 마치 따지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원정대 인원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더 올 사람은 없습니다.”
“…너무 인원이 적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세요?”
“유럽의 IHA 요원들도 원정에 참여할 것이지 않습니까?”
“충분합니다.”
내 단호한 말에 나즐라는 입술을 다물었다.
하지만 표정은 전혀 납득하지 않은 듯,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곧 이해하게 될 거다.’
따지고 보면 이 정도 전력도 과한 것이었다.
유럽에서 출발할 인원도 꽤 있었으니까.
“반나절 정도 휴식 후 바로 아프리카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빨라서 좋네요.”
“길게 끌 필요는 없는 작전이니까요.”
“너무 방심하는 거 아닌가요?”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협회장님, 영국에서 손님이 왔습니다.”
“마법사들입니다.”
마법사라.
그들이 나를 찾는 이유는 뻔했다.
“원정대에 합류하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나를 찾아온 마법사들은 대뜸 원정대에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예! 저희의 스승이신, 앤디 올드먼 총장님을 구출해야 합니다. 부디 함께할 영광을 주십시오.”
“악신을 토벌하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스승을 구하고 싶다는 이유와 악신을 토벌하여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고 싶다는 이유 등.
꽤 합리적인 이유를 대는 그들이었다.
명분상 거절하기 어려운 이유들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마법사들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죄송하지만, 원정대에 합류하실 수 없습니다.”
“어째서입니까?”
“마법사가 전장에서 얼마나 유용한지 협회장님도 아실 텐데요!”
내 거절 의사에 마법사들은 강하게 항의하였다.
“악신을 토벌하는 일입니다. 제가 신뢰하는 자들만 데려갈 생각입니다.”
“저희는 신뢰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까!”
“아무리 마법사를 싫어하셔도 저희를 배제하는 것은 불공정한 처사입니다!”
원정대에 마법사만 배제한다면 뒷말이 나올 가능성이 컸다.
안 그래도 내가 마법사를 싫어하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
여기서 편협함을 드러내면 좋을 건 없었다.
‘하지만 마법사만 배제하는 게 아니라면 상관없지.’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그들에게 말했다.
“마법사뿐만이 아니라, IHA 소속이 아닌 다른 헌터들도 데려갈 생각이 없습니다.”
“사, 상대는 악신입니다! 몬스터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상대란 말입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내가 죽일 수 없는 존재라면 마법사 몇 명을 더 데려간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으리라.
“더 하실 이야기가 없으면 이만 물러나십시오.”
축객령을 내리자 그들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물러났다.
“협회장님. 바티칸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마법사들이 물러나니 이번에는 바티칸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무슨 중세 시대도 아니고….’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바티칸 사람들과 접견하였다.
아무래도 나만큼은 따로 휴식 없이 바로 북아프리카로 출동해야 할 거 같았다.
뭐 지금 내 몸이라면 이 정도 강행군이야 강행군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루키푸구스는 처음 튀니지 결사대가 던전으로 도망쳤을 때, 성가심을 느꼈다.
얌전히 죽어줬으면 좋겠는데 자신이 들어갈 수 없는 던전으로 도망치니 성가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놈들을 잡는 것도 이제 시간문제다.’
튀니지 결사대는 지금 독 안에 든 쥐나 다를 게 없었다.
던전에 갇힌 상태로 이도 저도 못 하는 중이었다.
간간이 탈출 시도를 하였지만, 그가 눈을 부릅뜨고 포위하고 있는데 탈출이 가능할 리 없었다.
오히려 던전 밖으로 나온 헌터들만 애꿎은 희생을 당할 뿐이었다.
‘슬슬 분열의 조짐이 보이는 거 같단 말이지.’
악신이라 불리는 성좌들의 특기는 인간을 분열하는 것이었다.
각자 과정은 다를 수 있어도, 결과적으로 인간의 분열을 이끌었다.
루키푸구스는 이 방면에서 권위자라고 볼 수 있었다.
사탄주의자를 대거 양산하여 전 세계적인 소동을 일으킨 게 그였으니까.
그리고 튀니지 결사대 내부에서도 그런 사탄주의자들이 나올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제아무리 던전 안에 숨었어도 그의 정신 오염은 피할 수 없었던 것.
특히 앤디 올드먼을 향한 불신이 깊어졌기에 더더욱 분열이 쉬워졌다.
길어야 보름.
튀니지 결사대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보름이 최대일 것이다.
‘하지만 박한새라는 놈이 감히 내게 반기를 들었단 말이지.’
자신의 사자를 죽일 줄이야.
상상도 못 한 대응이었다.
어찌 인간이 성좌에게 반기를 들 수 있단 말인가.
마법사도 그렇고 무인이라는 자들도 그렇고.
역시 인간이란 족속은 힘을 가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을 가지기만 하면 성좌를 우습게 보니 말이다.
‘오히려 좋다. 놈까지 죽인다면 인간들은 나를 숭배할 수밖에 없게 되겠지.’
박한새는 인간계 최강자라 불리고 있었다.
그런 그를 죽인다면 인류는 루키푸구스가 대적할 수 없는 존재란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으리라.
‘얼마든지 와라. 다 죽여서 카르마로 환원해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