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나는 비행기에서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일행들에게 초절정 고수가 되면 생기게 될 변화들을 말해주었다.
물론 어떻게 해야 초절정 고수가 될 수 있는지도 설명해주었고 말이다.
북아프리카에 도착하자 이정이 도발적으로 말하였다.
“초절정 고수가 얼마나 강한지 직접 견식해보고 싶군.”
“나도 궁금하다. 초절정 고수의 위력이!”
로렌초가 이정을 따라서 내게 대결을 신청하였다.
우습게도 그런 두 사람을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현근조차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악신, 루키푸구스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나치게 여유로운 모습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책망하지 않았다.
일행 중에는 결계 전문가, 고정희가 있었다.
그녀가 설치한 결계 안에서라면 크게 위험할 것도 없으리라.
“좋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는데,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배, 백문이가 뭐?”
“백 번 듣는 게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는 의미입니다. 로렌초 교수.”
“로렌초 교수. 이정 본부장. 두 분이 동시에 덤비십시오.”
내 말에 이정이 미간을 찌푸렸다.
“나를 무시하는 거냐?”
그런 이정의 태도에 나는 그저 묵직한 기세를 뿜어낼 뿐이었다.
기세만으로 대답이 되었는지 이정은 말없이 로렌초에게 눈빛을 보냈다.
함께 힘을 합쳐 나와 싸우자는 의미가 담긴 눈빛이었다.
그러자 로렌초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이내 동시에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무공만으로 승부를 보려는 것인지 스킬은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 다 무공 실력이 상당하였기에 경지가 오르기 전이었으면 꽤 난감했을 거 같았다.
물론 초절정 고수가 된 지금은 여유가 넘쳐흘렀지만 말이다.
“사라졌다!”
갑자기 내 신형이 사라지자 두 사람 다 놀란 반응을 보였다.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하는 그들이지만, 절정 고수의 감각을 피하고 눈앞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그들 사이로 여유롭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로렌초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고 이정은 주먹부터 날렸다.
누가 무공의 천재 아니랄까 봐, 엄청난 반응 속도였다.
이번에는 굳이 그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제자리에서 무방비한 자세로 그의 공격을 맞아주었다.
만약 주현근이나 신경철이었으면 나의 무방비한 자세를 보고 공격을 망설였겠지만 이정은 달랐다.
온 힘을 다해 내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이정이었다.
평소 나를 어지간히도 때리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주먹은 내 호신강기를 뚫지 못하였다.
“아, 아름답다!”
공격이 막히자 이정은 표정을 구겼고 로렌초는 엉뚱한 소리를 내뱉었다.
아마 내 호신강기를 보고 감탄한 게 아닐까 싶었다.
한눈에 봐도 기의 흐름이 범상치 않게 느껴질 테니까.
“저도 이제 반격하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주먹은 어느덧 로렌초의 복부를 향하고 있었다.
로렌초는 다급히 내 주먹을 막으려 들었으나 강기로 뒤덮인 공격을 막을 순 없었다.
주먹에 맞은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폭음과 함께 로렌초가 뒤로 멀리 날아갔다.
그의 옆에는 이미 이정이 똑같은 자세로 날아가고 있었다.
로렌초를 공격하기 전에 이정에게 먼저 공격을 시도했던 것.
그렇게 절정 고수 두 명이 순식간에 내 공격에 당해 무력화되었다.
‘저들이 스킬을 쓰면 달랐을까?’
나는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설령 스킬을 썼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으리라.
이정이 분신을 쓰든, 시간 가속을 쓰든 내 공격을 피할 수는 없었으니까.
반면 그는 나를 공격할 수 없었고 말이다.
“누가 남자들 아니랄까 봐.”
김민경이 대결을 펼치는 박한새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악신이 바로 근처에 있는데 이러고 있어도 되는지 모르겠어.”
“괜찮지 않을까요? 다른 누구도 아니고 사부인데.”
어차피 그들은 결계 안에 있었다.
그리고 박한새가 말하길, 결계 안에 있다면 제아무리 악신이라 해도 일행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고 하였다.
즉, 일종의 안전지대인 셈이었다.
“무엇보다 사부의 실력을 보면 악신이든 뭐든 경계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그건 그래.”
박한새의 실력은 김민경이 보기에도 경이적으로 느껴졌다.
“움직임이 아예 보이지도 않을 줄은 몰랐어.”
갑자기 처음 무공을 배웠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그녀는 박한새가 보법을 펼치면 전혀 그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하였다.
그녀의 눈에는 박한새의 움직임이 아예 보이지 않았던 것.
김민경은 절정 고수가 되고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보법에다 가속 스킬을 사용하는 이정의 움직임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정도로 실력이 오른 그녀였으니.
하지만 초절정 고수가 되었다는 박한새의 움직임만큼은 도저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신경철 총장이 쓰러졌어요!”
이번에도 그랬다.
하늘을 날던 신경철이 눈 깜짝할 사이에 땅으로 추락하였다.
무언가가 그를 땅으로 끌고 내려온 것.
그런데 그녀는 그 무언가 즉, 박한새를 보지 못하였다.
김민경의 눈에는 신경철이 천상비를 펼치다가 자기 혼자 떨어진 것으로 보였다.
“절정 고수 일곱 명이 힘을 합쳐도 도저히 상대가 안 되다니.”
세간에서는 절정 고수쯤 되면 세계 최강의 헌터로 인정받았다.
실제로 S랭크 헌터 여럿이 힘을 합쳐 덤벼도 한 명의 절정 고수를 대적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웠고 말이다.
그런 절정 고수를, 박한새는 혼자서 일곱 명을 상대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일곱 명은 주현근, 이정, 신경철, 로렌초, 리암 골드버그, 이성은, 권혁진으로 무공에 있어 천재 중의 천재라 불리는 자들이었다.
김민경은 감히 경쟁자라 부를 수조차 없는 상대들이었던 것.
‘사부는 도대체 어디까지 강해지려는 거지.’
이제는 여명회란 자들이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의 사부, 박한새 앞에서는 한낱 악신의 졸개일 뿐이니.
“어, 사부가 저희에게도 손짓을 하는데요?”
“…우리도 가야 한다고?”
아무래도 박한새는 그녀들에게도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은 듯했다.
두 ‘주먹’으로 직접 말이다.
‘초절정 고수가 얼마나 강한지는 이미 알겠는데….’
이미 확실하게 체감하였다.
자신과 같은 실력의 고수가 열 명이 있어도 박한새를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하지만 박한새는 어떻게 해서든 직접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김민경은 쓰게 웃으며 고정희와 함께 박한새에게 달려갔다.
“검강이란 것은 도대체 어떻게 만드는 거지?”
“일단 검기를 극한까지 익혀야 합니다.”
“검기를 계속 연습하면 만들 수 있다는 건가?”
“예. 검기를 마스터해야 검강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그 전에는 시도하지 마십시오. 위험하니까.”
“한눈에 봐도 위험해 보이긴 해. 검강이란 거. 그래서 더 탐이 나지만 말이야.”
이정은 마치 예전의 그가 그랬듯, 열성적인 학생으로 탈바꿈하였다.
나는 그런 이정의 모습이 기꺼웠다.
검강은 아직 완벽하다고 볼 수 없었다.
재능 있고 향상심까지 겸비한 이정이 검강을 다룬다면 나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제자들에게 검강의 기초를 가르치며 이동하는데 멀리서 신경철이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무언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멀리 ‘그것’이 보입니다.”
신경철이 말하는 그것이란 다름 아닌, 루키푸구스의 화신을 말하였다.
시체가 뭉치고 뭉쳐서 만들어진 거인의 형태.
그 괴랄하기 그지없는 겉모습만 봐도 악신의 피조물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국, 왔구나.
육안으로 보일 거리까지 다가가니, 어디선가 의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이 목소리가 루키푸구스의 목소리일 것이다.
-그런데 숫자가 많이 적어 보이는군.
“굳이 많이 데려올 필요는 없어서.”
내가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그리 대꾸하자 갑자기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하하하!
일반인이었으면 그 웃음을 듣자마자 귀를 막고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그러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피를 토한 채 죽음을 맞이했겠지.
랭크가 낮은 헌터라면 정신이 오염되어 미치광이가 되었을 수도 있고.
하지만 내 일행 중에서 겨우 이 정도에 영향을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간 중에서 조금 강하다고는 들었지만, 실로 오만하기 그지없구나. 감히 이 몸을 상대로 그런 여유를 부리다니.
악신과 더 대화를 이어나갈 필요가 없었기에 나는 검을 뽑았다.
‘건방진 놈.’
검을 뽑은 박한새의 모습을 보고 루키푸구스는 조소를 지었다.
그 기세가 사뭇 강렬하게 느껴지기는 했다.
애초에 자신의 화신 앞에서 혼자 당당하게 앞으로 나온 모습만 봐도 예사롭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봤자 놈은 한낱 인간일 뿐이다.’
설령 박한새 뒤에 어떤 성좌가 있든 달라지지 않았다.
세상에 그만큼 화신에게 투자를 많이 한 성좌는 없었다.
그는 자원이 모이는 대로 화신에게 모조리 투자했었던 것.
그렇기에 파롤과 적대하는 것도 두렵지 않아 했던 것이다.
적어도 그의 화신만큼은 제아무리 파롤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으리라 생각했으니까.
파롤을 상대로도 당당한 그인데, 하물며 상대가 한낱 인간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음?’
갑자기 박한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가 당황하는 사이, 박한새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모습을 드러낸 곳이, 바로 그의 정면이었다.
루키푸구스는 화신이 가진 수천 개의 눈으로도 보지 못하였다.
박한새가 화신 앞까지 어떤 방식으로 날아왔는지를 말이다.
‘이, 이렇게 빠르다고?’
무공의 특징이 무엇이고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그는 이미 대비를 다 끝냈다고 생각하였다.
‘보법’이란 기술에 대한 대비 역시도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막상 박한새가 보법을 펼치니 그는 전혀 박한새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 그래봤자 속도만 빠른 날파리에 불과해! 공격을 막으면 아무리 빨라도 의미는 없어!’
-쿠오오오오오!
루키푸구스는 괴성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수백 개의 방어 관련 스킬이 그의 전신에 펼쳐졌다.
‘공격해봐라. 네놈이 가진 검기로는 내 방어를 절대 뚫을 수 없을 테니!’
방어 스킬이 한 개도 아니고 300개 이상 펼쳐졌다.
심지어 물, 모래, 불 등 다양한 속성의 방어 스킬이었다.
이 정도 방어력이면 성좌가 직접 공격해도 한 번은 막아낼 수 있으리라.
박한새의 검격 한 번에 그가 펼친 모든 방어 스킬이 무력화되었다.
그리고 그 검격은 강화될 대로 강화된 화신의 육체까지 무력화시켰다.
-끄아아아아악!
나는 루키푸구스의 화신을 향해 검강을 휘둘렀다.
중간에 루키푸구스가 스킬을 펼친 게 보였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검강이라면 모든 것을 베어내리란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실제로 검강은 막힘없이 모든 것을 베어냈다.
루키푸구스가 펼친 수백 개의 방어 스킬은 물론이고 루키푸구스의 화신까지도.
심지어 루키푸구스의 화신만 갈라진 것이 아니었다.
공간까지 갈라졌다.
갈라진 공간 너머로 무언가가 보였다.
뿔이 달린 그것은 마치 악마를 보는 듯하였다.
그리고 그 무언가 역시 루키푸구스의 화신을 따라서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저것이 루키푸구스의 본체인가?’
저 고통에 찬 괴성은 화신이 당해서 지르는 괴성이리라.
‘만약 이 공간을 넘어간다면 어떻게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