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간을 넘어가 루키푸구스의 본체까지 소멸시켜보자는 생각이.
하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가는 건 문제없어도 돌아오는 게 문제다.’
루키푸구스의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도 모르는 상황.
내 무력만 믿고 루키푸구스의 세상으로 가는 건 너무 위험하게 느껴졌다.
겨우 루키푸구스 하나 잡겠다고 내 목숨을 걸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만약 파롤이라면… 목숨을 걸어봐도 되지 않을까?’
파롤을 죽인다면 내가 없어도 인류는 생존할 수 있을 터.
그때가 되면 도박 수를 던져도 될 거 같았다.
물론 지금 같은 기회가 다시 찾아올지는 미지수였지만 말이다.
루키푸구스의 화신이 죽자, 여기저기서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맙소사.”
“한 방 컷이잖아?”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 잡을 줄이야.”
“초절정 고수 앞에서는 신도 별거 아닌 모양인데?”
놀랍다 못해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하긴, 전 세계를 두려움에 빠뜨리고 있는 게 루키푸구스였다.
사탄으로 알려진 악신이니 그만큼 두려움의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악신이 검격 한 번에 소멸하였으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설마 이렇게 쉽게 악신을 잡을 줄은 몰랐습니다.”
신경철의 말에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악신의 본체라면 조금 상황이 달랐을 겁니다.”
“하, 하. 그렇습니까?”
그 말을 하며 뿔이 달린 악마의 외형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흐릿한 안개 너머로 잠깐 봤던 악마의 외형은 확실히 무시무시하게 느껴지긴 했다.
아마 9성급 던전 보스들만큼 강하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이라면….’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물론 9성급 던전 보스들 역시도 마찬가지였고.
“아니, 이럴 거면 나는 뭐 하러 데려온 거야?”
“맞다! 우리 몫도 남겨줘야 하는데, 사부 실망이다!”
내가 잠시 상념에 잠겨있자, 로렌초와 이정이 내게 다가와서는 투정을 부렸다.
기껏 아프리카까지 데려와놓고 자신들을 구경만 시키니 화가 난 모양이었다.
“두 분을 믿지 못해서 제가 죽인 게 아닙니다.”
실제로 나는 내가 없어도 절정 고수끼리 힘을 합치면 루키푸구스의 화신 정도는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내가 나선 것은 그들을 못 믿어서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악신, ‘마계의 모든 보물을 관리하는 자’의 화신을 제거하였습니다. 카르마 +100,000,000]
[추가적으로 권속 제한이 50명까지 해제됩니다!]
퀘스트 보상이 천만 카르마를 넘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심지어 천만도 아니고 억.
무려 1억 카르마였다.
이것이 루키푸구스를 단독으로 잡은 보상이었다.
‘사실 카르마보다 중요한 것은 권속 제한이 풀린 거지.’
처음 나는 권속을 겨우 열 명밖에 둘 수 없었었다.
무공 학교의 교수들과 추가로 김수민 외에는 권속을 둘 수 없었던 것.
다행히 이후에 퀘스트를 통해 30명으로 늘어났지만, 이 역시 금방 채워졌다.
리암 골드버그, 마리아 엘리사, 유리 포포프 등.
러시아, 미국, 남미 등에서 새로운 권속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유럽이나 중동 쪽에서도 영향력이 확대될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권속 수는 터무니없이 부족하였다.
그러니 내게 있어 권속 제한이 풀리는 것만큼 큰 보상은 없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두 분이 활약할 기회는 앞으로도 많을 겁니다.”
“사탄을 죽였으니 이제 원정도 끝난 거 아닌가?”
이정이 내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그런 이정을 향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원정은 이제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시작이라고? 튀니지 결사대 놈들만 구출하면 끝 아니었어?”
“우리 인류가 잃은 영토는 튀니지뿐만이 아닌 걸 아시지 않습니까.”
인류가 잃은 영토는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잃어버린 것.
초절정 고수의 경지에 올랐는데 나로선 인류의 땅을 되찾는 일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지금이라면 여명회가 자랑하는 11사도란 자도 두렵지 않았으니까.
‘물론 튀니지 결사대부터 구하는 게 순서겠지만 말이야.’
던전에 숨은 채 생존하고 있는 튀니지 결사대의 상황은 날이 갈수록 안 좋아졌다.
“프랑스 대원들이 정찰 명령을 거부하였습니다.”
“…프랑스 놈들은 탈출할 생각이 없는 건가.”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바깥이 궁금하다면 영국 대원들을 보내라는 분위기입니다.”
앤디 올드먼은 이를 악물었다.
지금 튀니지 결사대에서 발생한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다.
분열.
영국과 그 외 나머지 국가들 간의 분열이 발생한 것이다.
물론 영국의 중심에 있는 것은 바로 그, 앤디 올드먼이었다.
‘사탄 놈의 말을 믿고 나를 불신하다니.’
루키푸구스를 상대하기 전까지만 해도 결사대의 그 어떤 이도 그에게 반기를 들지 않았다.
실력부터 최고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마법 그 자체가 그에게 엄청난 권위를 선사하였다.
그에게 반기를 들면 혹시 나중에 마법을 배우지 못하게 될까 두려워 그를 절대적으로 지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루키푸구스와의 일전에서 큰 패배를 경험하면서 그의 위상은 끝없이 추락하였다.
정신 오염의 영향인지 그를 향한 되지도 않는 음모론까지 제기되고 있었다.
그가 다른 악신의 졸개라는 음모론이었다.
‘이대로라면 희망이 없다.’
암담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과연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결사대 안에서 가장 강한 무력을 가진 그조차 생존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스, 스승님!”
그의 제자 중 한 명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무슨 일이냐.”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던전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사람이라고!”
사람이라니.
설마 지원군이 왔단 말인가?
‘하지만 그게 가능한 일인가? 그 사탄 같은 루키푸구스를 상대할 수 있는 세력은 여명회 말고는 없을 텐데….’
그가 그런 의문을 느낄 때,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하였다.
두려울 게 하나 없다는 듯, 당당하게 걸어오는 일단의 무리가.
‘…박한새의 제자들이군.’
익숙한 얼굴들을 본 순간,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여명회였으면 좋았을 텐데, 여명회가 아니라 그의 숙적, 박한새의 제자들이 지원군으로 왔다.
우습게도 그는 숙적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것이다.
나는 던전에서 나오는 앤디 올드먼을 보고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행색이 생각보다 멀쩡하군.”
“…명색이 마법사가 던전 안에 있다고 거지꼴이 될 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앤디 올드먼이 평소와 같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하지만 나는 느꼈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것을.
‘느껴지는 모양이군. 내가 강해졌다는 것이.’
어차피 들킬 일이지만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적에게 굳이 내 전력을 드러내봤자 좋을 건 없었으니까.
하지만 반박귀진이란 경지에 오르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사실 이제는 앤디 올드먼쯤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도 않아서 전력을 감추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군.’
최초의 대마법사로 명성이 자자한 앤디 올드먼이었다.
하지만 소문만 대마법사일 뿐, 진짜 대마법사도 아닐뿐더러, 그리 유능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마법사 세력의 수장이란 이유로 필요 이상 경계할 필요는 없으리라.
‘뭐, 그렇다고 방심할 생각은 없지만.’
계속 견제는 할 것이다.
진짜 대마법사가 등장한다면 그때는 나 역시 마냥 안심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내가 혼자서 루키푸구스의 화신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튀니지 결사대의 대원들은 혼란에 찬 반응을 보여주었다.
“호, 혼자서 그 괴물 놈을 쓰러뜨렸다고?”
“아니, 그 괴물 놈은 핵폭탄 수백 발을 떨어뜨려도 못 잡을 거 같았는데….”
“아무리 협회장이 강하다고 해도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야?”
튀니지 결사대 수천 명이 덤벼도 감히 대적하지 못했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던전에 숨어서 구조대가 오길 기다리는 것뿐.
그렇기에 그들은 믿을 수 없었다.
IHA가 총력을 다해 루키푸구스의 화신을 잡았다면 모를까, 겨우 혼자서 잡았다는 게 그들로선 선뜻 믿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던전에서 나오자 더는 진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나타나야 할 존재, 루키푸구스가 나타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그 괴물 놈을 잡은 건가!”
“와… 강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혼자서 악신을 잡을 정도라니!”
“마법사와 비교하는 게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거였잖아?”
튀니지 결사대 대원들은 혀를 내둘렀다.
박한새가 강하다는 사실은 그들도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루키푸구스를 혼자서 잡을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하였다.
그렇게 그들이 놀라고 있을 때, 박한새가 나타나 그들에게 물었다.
“혹시 이곳에서 원정을 이어나갈 생각이 있으신 분 계십니까?”
“원정이라니요? 그 사탄 놈은 이미 잡힌 것이 아닙니까?”
“제가 잡은 건 사탄의 화신일 뿐, 화신의 본체는 아닙니다. 그리고 이 아프리카 대륙에는 사탄 말고도 여러 악신이 존재합니다.”
그거야 튀니지 결사대 대원들도 모르는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심 회의적인 마음을 가졌다.
‘지옥 같은 곳에서 이제 나가려는데 다시 지옥 속으로 들어가라고?’
‘악신은 이제 질색이야!’
‘내가 무슨 정의의 히어로도 아니고…. 이미 충분히 희생했는데 여기서 더 희생할 이유는 없다.’
‘주인공이 되기는 글렀다는 걸 이미 알았는데, 원정을 이어가서 뭐 하게?’
아프리카 대륙을 다시 인류의 품으로 가져오는 것?
일부 사명감 있는 대원들이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였다.
대부분의 튀니지 결사대 대원들이 아프리카로 온 이유는 오직 하나.
‘명예’ 때문이었다.
결코 순수한 목적으로 아프리카에 온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그들이다 보니 박한새의 말에 회의적인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때 박한새가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공적 점수를 채우면 무공을 배울 수 있습니다.”
원래라면 전혀 귀담아들을 이야기가 아니었다.
유럽의 헌터는 기본적으로 무공에 관심이 없었으니까.
‘무공이라고?’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은데…. 그 이야기가 거짓이 아니었나 보구나!’
‘이왕 배울 거면 마법보다는 무공이 낫긴 하지.’
만약 그들이 원정을 이어나간다면 공적 점수란 것은 금방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무공이란 것도 배울 수 있게 될 터.
심지어 원정 혜택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원정에 합류하여 공을 세우신 분들은 특별히 제가 직접 무공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악신도 잡은 박한새에게서 무공을 배울 수 있다고?
이건 사탄이라 불리는 루키푸구스의 유혹보다 더 강한 유혹이 아닐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박한새는 사탄을 잡음으로써 사탄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않았던가.
사탄이 소원을 들어주겠다느니, 뭘 해주겠다느니 유혹해도 사탄을 상대로 승리한 박한새에게 신뢰가 갈 수밖에 없었다.
“합류하겠습니다!”
“저도 인류의 영광을 위해 싸우고 싶었습니다. 협회장님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무공의 위력이 대단하긴 한 거 같았다.
분위기가 이렇게 극적으로 바뀌는 것을 보면.
“단, 원정대에 합류하기 위해선 조건이 있습니다.”